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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숙경

제14회 광주비엔날레 예술총감독

사진: 로저 시넥(Roger Sinek)

미술사의 편향된 각도를 바로잡기

“미술관이나 미술 현장에서 서구 중심의 미술사를 교과서적 진리로 표방할 이유는 없다.”

이숙경은 국제적 기관인 테이트(Tate)에서 비서구권의 미적 서사를 연구해온 큐레이터로, 아시아 중심의 미술사 보기 방법을 제안하며 시각예술 안에서의 탈권위와 관련한 주제 구현에 집중해왔다. 그는 《월간미술》과의 인터뷰에서 15년 만에 선임된 ‘한국인’ 광주비엔날레 예술총감독으로서의 위치보다, 총감독 후보 선정 당시부터 고민해온 “이질적인 문화와 사회들을 비교적 잘 이해하고 경험한 큐레이터로서 기여할 바”와 “행성적(planetary) 차원”의 의제로 동시대미술을 제시할 방안에 주목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제까지 시각예술 담론 구성과 그 서술 방식이 노출하는 서구중심적인 위계를 재고해온 그에게, “아시아적 관점을 통한 세계 미술사 해석의 시도”는 ‘탈국가적 큐레이팅’의 시작점이었다. “큐레이터로서 비서구의 시각을 일원적 개념으로 이해하지 않고 아시아라는 특정한 문화권의 사상 및 철학을 토대삼아, 수평적 ‘관계성’으로 탈국가성을 규정하려 했다. 주류의 자리를 대체하거나 거기에 합류하는 것이 아니라 ‘주류  ·  비주류’라는 대항적 관계 자체를 없애려는 것이 탈국가성의 핵심이다. 이를 바탕에 둔 미술사는 한정적인 질서 대신 다중적이고 차별적인 상호연결성 (interconnectedness)으로 구성된다. 관객이 몸담고 있는 사회와 문화권에 토대를 둔 시각으로 동시대 세계 미술의 다양한 양태를 이해하는 것이 지적으로나 윤리적으로 타당하다.” 이 감독의 말은 서양미술사를 전제로 우리 미술을 읽는 습관을 반성하게 하고, 이러한 태도로부터 시작될 미술 현장에서의 의식적인 변화를 요망하게 한다. 2013년부터 지금까지 테이트 모던 국제미술 수석 큐레이터로서 아시아 태평양 지역 미술 연구와 신소장품 구입을 담당해온 이숙경이 실천해온 일 역시 “테이트 소장품의 서구 편향적 역사 수정”이었다. 이 업무를 하면서, 그는 “기본적 연구 단계부터 전시 프로그램에 이르는 미술관 활동의 전 과정에서 새로운 미술사적 이해와 큐레이팅의 방법론이 적용 및 발현”되고 전시 외에 큐레이터의 움직임을 뒷받침할 수 있는 연구 플랫폼의 필요성을 느꼈다며, 그가 이끌고 있는 ‘현대 테이트 리서치센터: 트랜스내셔널(이하 센터)’의 주력 과제와 기관의 방향에 대해 설명했다. “센터는 표면적인 미술관 활동과 이를 위한 저변의 활동을 연결하고 관객과 공유하는 것을 목표한다. 큐레이터의 업무 중 상당 부분이 소장품이나 전시를 위한 연구인 한편, 미술관의 연간 프로그램 결정에 있어 참여 작가들의 개인적 배경과 변화하는 관객들의 정체성이 중시되고 있다. 센터는 이런 변화의 맥락을 학술적 방식만이 아닌 예술적 언어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센터의 활동으로는 작가와의 인터뷰 영상, SNS 게시글 등이 대규모 학술 심포지엄과 거의 비등하게 소개되고 있다. 동시대의 주요한 이슈들을 예술가들의 작품으로 이야기하다 보면, 이러한 주제가 왜 국가 및 문화적 경계를 넘어 존재하며 해결책 또한 초국가적일 수밖에 없는지가 분명해진다.”

이어 이 감독은 2023년 광주비엔날레의 얼개를 약술했다. “최근 세계 곳곳의 동시대 작가들이 식민주의, 글로벌리즘, 원주민 억압, 기후 변화, 팬데믹 등을 앞다투어 다루는 모습에서, 일련의 이슈들이 인류라는 큰 시각에서 사실상 하나의 뒤엉킨 문제가 아닌지를 생각했다. 지구를 집으로 삼고 하나의 종(種)으로서 인류를 바라볼 때, 현재의 위기를 인식하는 시각은 행성적 차원이어야 하며, 이를 통해서만 진정한 해결책이 나올 수 있다. 이러한 거시적인 맥락은 시각의 특정성이 전제되어야 구체화될 수 있기에 한국인으로서 동아시아 철학에 사상적 바탕을 둔 스스로의 정체성을 기준으로 일련의 문제를 보는 것 자체가 혁신적인 내용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도교, 불교, 유교 등 우리 사회에 폭넓은 영향을 미치는 사상으로 ‘광주정신’을 해석하고, ‘예향’ 광주의 특성을 파악하고자 한다.” 한편, 국제적인 기관 및 예술가들과 교류해온 이 감독의 경력에 비추어 이번 전시에 합류하는 작가군의 범위도 넓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이에 그는 “특수성과 보편성, 현재와 ‘긴 시간’, 상징과 지표 간의 균형을 중시해 다양성을 통해 유사성을 드러내는 한편, 광주를 비롯한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상당한 비중으로 다뤄 탈국가적 담론의 구체적인 시작의 축으로 삼고자 한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 감독은 그가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사로 재직하던 1995년 당시 제1회 광주비엔날레의 마지막 설치작업을 도왔던 일을 떠올리며, 남다른 감회를 전했다. 이제 비엔날레를 꾸리는 입장에서, 그는 “미술사와 예술관에 대해 비판적인 연구를 이어가며 과연 대안은 무엇인지, 미술사라는 학제의 서구 중심 구조를 진정으로 넘어설 수는 있는지”를 되묻고 있다. 기존의 서술을 답습하지 않고, 작가와 작품이 드러내는 다층적인 사회의 특성을 밝혀 보편적인 역사로 편입시켜온 이 감독이 실현할 광주비엔날레가 작금의 현실을 투영하는 창이자 독자적인 서사가 피어오르는 지면으로 굳기를 바란다.

이숙경은 1969년 태어났다. 홍익대에서 예술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영국 런던시티대에서 예술비평 석사학위를, 영국 에식스대학교에서 미술사 & 이론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93년부터 5년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로 근무했으며, 2007년부터 2012년까지 테이트 리버풀의 전시 및 컬렉션 큐레이터직을 지냈다. 주요 기획 전시로는 리버풀 비엔날레에서의 〈더그 에이트킨 : 원천〉(2012, 테이트 리버풀), 〈축지법과 비행술 : 문경원 & 전준호〉(2015,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백남준〉(2019~2022, 테이트 모던, 암스테르담 스테델릭 미술관,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싱가포르 국립미술관), 〈미술로 본 한 해 : 호주 1992〉(2021~2023, 테이트 모던) 등이 있다. 현재 영국 테이트 모던 국제미술 수석 큐레이터이자 ‘현대 테이트 리서치센터: 트랜스내셔널(Hyundai Tate Research Centre: Transnational)’의 수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조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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