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에이징 월드/ 아무튼, 젊음
서울시립미술관의 《에이징 월드 – Will you still love me tomorrow?》와 코리아나미술관의 《아무튼, 젊음》은 이러한 시대에 늙어가는 나 자신과 타인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 실제적이면서도 철학적인 질문과 사유를 이끌어낸다.
서울시립미술관의 《에이징 월드 – Will you still love me tomorrow?》와 코리아나미술관의 《아무튼, 젊음》은 이러한 시대에 늙어가는 나 자신과 타인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 실제적이면서도 철학적인 질문과 사유를 이끌어낸다.
2019 휘트니 비엔날레는 역대 최다로 유색인종과 여성작가가 전시에 참여했다. 또한 다양한 연령대의 작가들을 선정함으로써 미국사회가 떠안고 있는 정치사회적인 현안을 폭넓게 다루고자 했다. 그 어느 대회보다 신랄하고 과격한 현실 고발의 현장이란 평을 받고 있는 휘트니 비엔날레를 만나본다.
Megacities Asia
아시아에 대한 동시대의 평가는 급속한 경제발전을 기반으로 한 도시문화 발달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여기에 주목받는 아시아의 도시라면 서울, 베이징, 상하이, 뭄바이 등이 있는 바, 이 도시에 기거하는 작가가 미국 보스턴에 모였다. 보스턴뮤지엄(Museum of Fine Arts Boston)에서 열린 (4.3~7.17)이 바로 그것. 해당 도시의 급격한 성장을 체험하며 성장한 작가들이 각자의 도시를 어떻게 미술을 매개로 풀어내는지 살펴보자.
시적 도시, 메가 시티
최다영 | 독립큐레이터
‘메가 시티(Mega City).’ 우리는 이 단어를 단순히 거대 도시 혹은 대도시, 인구 천만이 넘는 도시로 번역한다. 2009년 도시의 인구가 전 세계 인구의 반을 넘어서는 ‘사건’이 기록되었고, 인구 천만을 넘어서는 초거대 도시도 점차 증가하고 있음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다. 행정적 구분을 넘어 국가 경제력으로까지 해석되는 거대 도시라는 뜻을 지닌 메가 시티. 2015년 유엔의 보고에 따르면 상위 10개 메가 시티 중 8개가 아시아 국가의 수도로 아시아에 집중되어 있다. 현재 1위는 도쿄로 3,800만 명, 2위는 상하이로 3,500만 명이다. 서울은 2,500만 명으로 세계 4위다. 인구 밀집도뿐만 아니라 도시를 중심으로 급속한 경제성장을 만들어낸 아시아 국가들이 상위권에 포진해 있다.
“한강의 기적.”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역사와 특징은 이 한 문장에 함축돼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8년 올림픽 이후에 눈부신 발전과 변화에 따른 경제적인 풍요의 혜택을 받은 곳이다. 하지만 급속한 도시 성장 이면에는 소외와 빈부격차 같은 사회의 모순이 심화하고 있었고 최근 그 동안의 결계가 무너지며 폭발하듯 터져 나오는 문제의 현장을 우리는 온몸으로 마주하고 있다. 작가들은 거대하게 팽창해 나가는 도시에서 어떤 단면을 포착하고 있을까? 메가 시티로 특정지워진 아시아 몇몇 도시의 동시대 미술 현장을 조명하는 전시를 위해 각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 중인 작가들이 미국에서 가장 유서깊은 도시 보스턴에 초대되었다. 전시 기획자들은 아시아 메가 시티의 이야기와 그곳에서 도시의 팽창을 겪으며 성장한 작가들에 의해 발화된 형상들이 어떻게 조우하는지 관찰하고자 했다.
뮤지엄 오브 파인 아트 보스턴(Museum of Fine Art, Boston, 이하 ‘보스턴 뮤지엄’)에서 한국, 중국, 인도 작가들을 초대한 <메가 시티즈 아시아(Megacities Asia)> 기획전이 4월 3일부터 7월 17일까지 열린다. 제목에서 설명하고 있듯이 급속도의 성장을 일궈낸 거대 도시를 조명하는 이번 전시에는 서울, 베이징, 상하이, 뭄바이, 델리를 중심으로 거주하고 활동하는 작가들의 작품 19점이 출품되었다. 보스턴 뮤지엄의 알 마이너(Al Miner) 와 로라 바인스타인(Laura Weinstein)이 대표적인 아시아 메가 시티를 일일이 방문한 뒤 총 11명의 작가를 선정했다. 한국에서 전용석(플라잉시티), 최정화, 한석현이, 중국에서 아이웨이웨이(Ai Weiwei), 쑹둥(Song Dong), 후샹청(Hu Xiangcheng), 인슈전(Yin Xiuzhen), 인도에는 수보드 굽타(Subodh Gupta), 앗디티 조쉬(Aaditi Joshi), 헤마 우파디야(Hema Upadhyay), 아씸 와키프(Asim Waqif)가 참여하였다. 이들의 작품은 보스턴 뮤지엄 지하에 위치한 기획전시실 외 미술관 곳곳에 설치되어 유물들과 함께 관람할 수 있다.
세계 4대 미술관 중 하나로 평가받는 보스턴 뮤지엄은 서립된 지 100년이 넘었으며 수준 높은 전시로 명성이 높다. 특히 1854년 일본이 미국에 의해 강제 개항된 이후 일본뿐만 아니라 아시아 각국에서 수집한 미술품이 총 10만 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1994년 이후 19년간 재임한 말콤 로저스(Malcolm Rogers) 관장이 물러나고 대신해 2015년 취임한 매튜 테이텔바움(Matthew Teitelbaum)이 이끄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면서 야심차게 마련한 기획전이다. 참여한 작가들이 포착한 지역을 거점으로 예술의 동시대성을 다양한 층위에서 섬세하게 다루어냈다기보다는 ‘메가 시티 아시아’라는 다소 직설적인 전시 명칭에 걸맞게 아시아 미술 현장을 평면적으로 재단하고 작가들의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발화 형식과 구성 방식을 집중 조명한다.
서울을 대표하는 작가로는 전용석(플라잉시티), 최정화, 한석현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이번 전시를 공동 기획한 로라 바인스타인은 특히 최정화의 작품세계가 ‘메가 시티’를 주제로 기획하는 데 있어 모티프가 됐다고 전시 오프닝 당시 짧게 언급한 바 있다. 전시 기획 서문에서도 ‘중첩’적이라는 표현을 일종의 키워드로 삼았는데, 이번 전시에서 최정화 외에도 많은 작가에게서 발견되는 특기할 만한 부분은 작품의 구성과 조형 언어에 있다. 다수의 작품에서 보이는 ‘누적’ 혹은 ‘축적’의 표현 방식 때문이다. 이 구성은 최정화의 대표작인 플라스틱 바구니 작업에서 눈에 띄게 드러나는데, 이번 보스턴 전시에서는 많은 관람객이 드나드는 중앙 계단 로비 쪽에 층층이 쌓여 일종의 기둥 역할을 하고 있다. (2016)는 시내 99센트 마켓에서 찾은 듯 보이는 바구니와 플라스틱 장식품들을 화려하면서도 위태롭게 쌓아 올린 작품으로 그 모습은 마치 메가 시티들이 단시간에 만들어낸 도시의 형국과도 유사하다.
아시아의 도시, 내부의 직설적 제시
이러한 표현 방식은 베이징을 대표하는 아이웨이웨이의 작품에서도 드러나는데, 이 작품 또한 미술관 로비 중앙에 설치되어 메가 시티즈 아시아가 바로 이러한 축적의 이미지와 관계 있음을 전달하는 데 이번 전시 기획 의도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전시 출품작 (2003)는 베이징 도시 생활자에게 자전거가 주는 의미를 통해 도시 사회사를 기리고 있다. 자전거로만 조립되어 그 형태를 유지하는 이 작품은 로비에 많은 사람 사이에 위태롭게 버티고 서있으며, 첩첩이 쌓여있는 구성은 언제든지 무너질 것만 같은 불안함을 드러낸다.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작품은 작가 쑹둥의 (2005~2006)이다. 베이징에서 태어나 자신의 개인적인 역사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작업세계로 잘 알려진 그는 이번 전시에서 2000년대 초반부터 발표해온 연작 중 대표 작품을 선보인다. 베이징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의 가족들이 살아온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듯한 이 작품은 천장에 비둘기집을 만들고 아래는 오래된 후통(골목)에서 그대로 가져온 문짝과 기왓장들을 블록쌓기 하듯 쌓아 올려 간신히 한 칸 정도의 집 형태를 갖춘 공간 설치작업이다. 한 명이 겨우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은 전통적인 베이징 노동자 계급의 집의 형태를 설명한다. 지금의 베이징에 수도 없이 세워지는 화려한 고층 아파트의 형세와 사뭇 다르나, 오랜 세월을 견뎌낸 문짝이 서로 기대고 기대어 구축된 좁디좁은 공간에선 아늑한 온기가 느껴진다.
뭄바이를 기반으로 활동하던 헤마 우파디야 역시 전시에서 주목할 만한 작가이다. 그는 불행히도 지난 해(당시 43세) 전시 준비 기간 중에 살해되어 전시에 참석할 수 없었지만, 뭄바이의 오래된 슬럼가인 다라비(Dharavi)의 모습을 기록한 설치작품 <8’×12’>(2009)와 수십 개의 장난감 새로 구성한 (2011)가 이번 전시에 초대되었다. <8’×12’>(2009)는 너무나 촘촘히 들어서서 사람이 지나다닐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인도 슬럼가의 집들이 마치 인형 집처럼 마구잡이로 엉켜있는 형상이다. 이 구역 내에서 과연 인간적인 삶이 가능할까하는 의문까지 들게 하는 이 작업은 커다란 컨테이너 박스 안쪽에 붙어 대도시가 번영해가는 메커니즘을 적나라하게 설명하고 있다. 또한 그의 두 번째 작업은 장난감 새 수십 마리가 한 줄의 글귀가 적힌 종이를 물고 한 줄로 나란히 앉아있는 형태다. 이 새들은 클레이로 만들어지긴 했지만 모두 인도 토종이 아닌 외래종 새들로 구성됐다. 이들은 뭄바이에 살고 있는 이민자들을 상징한다.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뭄바이의 생활자들 속에서 소외받아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을 나타낸다.
이 외 한창의 개발 논리에 따라 공사 현장이 도시를 뒤덮었을 때 일각에서 웰빙 문화를 주장하며 내놓았던 초록 플라스틱 병들과 제조된 도구들을 쌓아 설치한 한석현의 (2011) 현대 서울의 도시문화와 공간을 연구하고 비평을 목표로 작업하는 플라잉시티 전용석의 작품, 격변하는 인도 도시의 사회 문제를 일상의 오브제를 이용해 꼬집어 드러내는 수보드 굽타의 작품 등 한국, 인도, 중국 작가들의 작품을 묶은 <메가 시티즈 아시아>는 경제의 급속한 성장으로 거대 도시가 된 생활권 내 예술가들이 어떠한 예술 활동을 펼치고 있는지를 관찰하고 있었다.
이번 전시는 급속도로 거대해진 아시아의 도시를 중점적으로 다루며 그 속 도시 생활자이자 동시대 작가들이 만들어내는 조형적 언어를 직설적으로 드러내고자 하였다. 그 속의 문화와 사회의 현상을 ‘중첩’, ‘반복’을 키워드로 삼아 압축적으로 설명하면서, 중첩의 언어를 운율로, 반복의 위태로움을 역설적으로 시적으로 환원하려는 기획자의 의도가 엿보인다. 하지만 본 전시는 표면의 일부만 직설적으로 전달하는 방식과 더불어 다양한 층위의 동시대 거대 도시 미술 현장의 모습을 드러내는 점에서는 다소 한계가 있었다고 보인다. 그 동안 동시대 현대미술의 현장과는 동떨어진 기획 전시로 주목받지 못했던 보스턴 뮤지엄이 이번 전시를 계기로 추후 다양한 전시를 선보이길 기대해 본다. ●
3년간의 공사를 거쳐 지난 5월 14일 재개관한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SFMOMA). 새 건물과 함께 전시 공간 면적을 대폭 확장해, 미국 서부를 대표하는 현대미술관으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있다. 푸른 하늘을 살린 자연채광과 안개를 형상화한 건물의 조화, 광범위한 컬렉션의 만남은 미술애호가들의 발길을 샌프란시스코로 향하게 한다. 《월간미술》은 샌프란시스코를 직접 찾아 변화하고 있는 그곳의 아트신을 전한다. *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www.sfmoma.org
임승현 기자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이하 SFMOMA)이 3년간의 긴 휴식을 마치고 지난 5월 14일 신축 건물의 베일을 벗으며 재개관했다. 3만3000점에 달하는 소장품, 1억6000만달러의 건축비, 4만3000m2에 달하는 새 미술관 규모, 뉴욕 현대미술관보다 1만8000m2 넓은 전시장. 미술관을 둘러싼 숫자의 나열만으로 엄청난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한마디로 SFMOMA는 명실공히 미국 최대 규모 현대미술관으로 자리매김했다. 기자는 일반 오픈을 2주가량 앞둔 4월 28일 프레스 오프닝에 맞춰 현장을 방문했다. 미술관은 아침부터 취재를 위해 전 세계에서 모인 기자들과 지역 미술계 인사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날 간담회에는 닐 베네즈라(Neal Benezra) SFMOMA 관장, 크레이그 에드워드 다이커(Craig Dedward Dykers) 건축사무소 스노헤타(Snøhetta) 대표 등이 참석했다. 지난 3년간 SFMOMA에는 이슈가 있었지만 무엇보다 재개관에 관한 이슈의 중심은 ‘건축’일 수밖에 없다. 세계적인 건축가 마리오 보타(Mario Botta)가 1995년 디자인한 붉은 벽돌 건물 위로 솟은 흰색 포인트의 둥근 유리천장의 미술관 건물은 SFMOMA의 상징과도 같았다. 마리오 보타는 삼성미술관 LEEUM 뮤지엄1 건축에 참여해 국내에도 잘 알려진 스위스 건축가다.
사실 이 건물은 주변 도시미감과 이질적이라는 의견이 팽배해 첫 공개 당시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만큼 이전 건축이 지닌 존재감이 큰데다 컨템포러리 건축에 다소 보수적인 시선을 가진 샌프란시스코의 분위기 때문에 신축의 부담감은 막중했을 것이다. 이에 대해 크레이그 에드워드 다이커는 “보타의 건축물과 연계해서 작업해 영광스럽다. 보타의 건물은 상징적이다. 그러나 우리는 외관에 있어서 그의 건물과 통일성을 주려 하지 않았다. 사실 보타의 건물을 리노베이션하면서 가장 곤란한 부분은 로비에서 천장으로 이어지는 육중한 계단이었다. 우리는 이를 나무계단으로 대체했다. 마리오 보타는 너무나 관대하게 받아들여 주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건축사무소 스노헤타와 SFMOMA는 기존 건축을 보존 및 보완하면서 바로 뒤에 10층 높이의 새 건물을 지어 전시 공간을 3배 이상 확보했다. “공공성의 확대를 새로운 목표로 삼는다”는 닐 베네즈라 관장의 말처럼 새로운 건축은 세부적인 부분에서 ‘소통과 열린 공간’을 지향한다.
우선 근교와 도시의 연계를 위해 유입 인구가 많은 방향으로 새로운 입구를 추가 설치했다. 이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공공 갤러리가 이어진다. 통유리로 밖에서도 볼 수 있는 이곳은 시민들이 전시관람과 상관없이 드나들 수 있는 휴식공간이다. 이곳에는 현재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의 상징적인 조각 (2006)가 놓여있다. 한편 자유로운 입장이 가능한 3층 테라스는 야외 조각과 미국 내 최대 크기의 식물 담장(living wall)이 있다. 1만5000종 이상의 지역 식물이 자라고 있어 계절과 시간에 따라 독특한 풍경을 자아낸다. 식물 지배엔 빗물과 재활용수를 이용한다. 갑갑한 빌딩 사이로 자연을 끌어드린 효과를 준다.
이외에도 여름에 안개가 많이 끼는 샌프란시스코의 날씨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한 동쪽 파사드, 기존 건물에서 둥근 유리천장으로 이어지는 육중한 계단을 가벼운 나무 재질로 바꾸면서 신관 역시 같은 재질과 구조의 계단을 층별로 사용해 건물 전체에 내부적 통일감을 살린 점이 주목할 만하다. 또한 1m 정도의 간격을 두고 세워진 신축 건물과 기존 건물을 교묘하게 연결했는데 전시장에 작은 창을 뚫어 이 연결지점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한 점은 소소한 재미다. 사실 두 건물의 외관은 이질적인 물질성을 띤다. 붉은 벽돌 건물과 언덕이 많은 지형적 특징을 담아 볼록한 수평선으로 입체감을 살린 스노헤타의 건물이 막상 실내에서는 물흐르듯 하나로 연결되는 것이다.
미술관의 공공성
건축만큼이나 중요한 부분은 바로 전시다. 재개관전은 미술관이 나아갈 방향과 색깔을 보여주는 장이다. 아쉽게도 SFMOMA의 재개관은 전반적으로 ‘전시’보다는 ‘건축’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아무래도 강렬한 주제를 선정하거나 창의적인 담론을 제시하기보다 소장품을 보여주는 다소 밋밋한 설정 때문인 듯하다. 화려하고 거대한 스케일의 전시에 비해 소장품전은 극적인 효과를 내기 쉽지 않다. 소장품을 묶어낸 주제도 뻔하다. 그러나 ‘시대’와 ‘장르’ 중심으로 나눈 교과서적 분류에도 불구하고, 이 전시를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미술관의 메시지는 뚜렷하다.
앞서 닐 관장의 말을 인용했듯 SFMOMA는 ‘공공성 확대’에 열을 올리고 있다. 18세 이하 청소년에게 전시를 무료개방하며, 다양한 시민참여 교육프로그램을 개발, 지역과의 연계를 확대할 운영 방침을 내세운 상태다. 그런데 이러한 맥락에서 공공성의 대상이 미술관만은 아닌 것 같다. 미술관을 찾고, 유지하는 사람들에게 화살을 돌린듯한 메시지가 전시에서 전달된다.
이번 개관전은 소장품을 크게 3가지 갈래로 나눠 총 19개의 주제로 구성됐다. 그런데 각 전시는 미술관에 작품을 기증 및 장기대여한 컬렉션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마치 SFMOMA에 작품을 기증하면 ‘최고의 환경에서 당신의 작품이 빛날 수 있도록 미술관이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는 듯한 무언의 프로모션 의지가 엿보인다.
그 첫 번째는 100년간의 장기 임대 파트너십을 체결한 ‘도리스 앤 도날드 피셔 컬렉션(Doris Donald Fisher Collection)’(이하 피셔 컬렉션)이다. 피셔 컬렉션은 의류브랜드 갭(GAP) 창업자 부부의 소장품으로 전후 미술 부분에서 가장 큰 개인 컬렉션 중 하나다. 260점의 피셔 컬렉션 중에서 미국 추상표현, 팝, 미니멀과 구상미술의 섹션에 해당하는 대표작을 선별해 전시했다. 성곡미술관 개인전으로 국내에 잘 알려진 척 클로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엘스워스 켈리 외 아그네스 마틴,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 등이 대표적인 작가다. 1960년 독일 미술작품도 주목할 만하다. 시그마 폴케, 게르하르트 리히터 등의 작품을 집약적으로 한자리에 모아놓아 집중도를 강화했다. 이 외에도 통유리벽을 사용해 리빙 가든과 마주보는 전시장에 놓인 1920~1960년대에 걸친 알렉산더 칼더의 모빌 작업, 신관과 구관이 연결되는 전시장에 놓인 ‘영국의 조각가’-토니 크레그, 리처드 데컨, 바바라 앱스워스와 리처드 롱-의 섹션은 화이트큐브이면서도 큰 창을 통해 도시의 모습을 전시장으로 끌어들여 야외에 있는 듯한 착각을 준다.
두 번째 컬렉션은 ‘캠페인 포 아트(Campagin for Art)’이다. 2009년부터 230명의 지역 미술 컬렉터로부터 기증받은 3000여 점의 작품 중 엄선한 600점의 현대미술 작업을 장르별로 나눠 선보였다. 이러한 기증문화는 기증자와 미술관 간의 유대와 공고한 신뢰를 부여준다. 또한 미술관 내에 플리츠커 센터 포 포토그라피(Pritzker center for Photography)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은, 미국 내 최대 사진관련 전시실이자 연구 공간에서 열리는 사진전도 마련했다. 리사 앤 존 플리츠커(Lisa and John Pritzker Family) 재단에 의해 완성된 이 공간에는 다워드 베이, 줄리아 바가렛 바케런,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등의 작업이 전시되었다. 일련의 전시는 미술관이 대중에게 문을 여는 만큼, 대중 또한 미술관 주요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각인시키며 적극적인 참여를 바라는 미술관의 의도를 여과없이 드러낸다.
SFMOMA는 이제 미국 서부를 넘어 세계 현대미술에서의 역할을 꿈꾼다. 이를 구축해가는 배경에 화려하고 실용적인 건물과 내실 있는 큐레이터도 한 몫을 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미술관의 미래를 밝히는 부분은 미술관을 구성하고 받쳐주는 자본가와 지역주민들을 미술관의 참여자로 끌어들였다는 점이다. 시원한 샌프란시스코의 바다처럼 SFMOMA는 재개관을 시작으로 미술관의 외연을 차츰 확장해 나갈 것이다. ●
샌프란시스코는 LA에 이어 미국 서부 제2의 도시이자 대표적인 아트 허브다. 이곳은 ‘미국의 유럽’이란 별칭이 있을 만큼 빅토리아시대 건물이 즐비하고, 케이블카가 다니는 고전적 아름다움을 머금고 있으면서 한편으로 최첨단 기술산업이 발달한 실리콘밸리가 공존하는 차분하면서도 역동적인 도시다. 최근 샌프란시스코는 현대미술에 대한 뜨거운 관심으로 클래식한 도시에 모던한 감성을 입히는 중이다. 미국 서부의 어느 도시보다 활발하게 움직이는 샌프란시스코의 아트신에서 최근 1년 이내에 개관 혹은 재개관한 ‘핫 플레이스’를 직접 방문해 소개한다
버클리대학교 미술관
UC Berkeley Art Museum and Pacific Film Archive(BAMPFA)
미술관을 확장 이전하는 경우는 있어도 규모를 줄여 재개관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지난 1월 31일, UC 버클리 대학에서 운영하는 미술관, BAMPFA(이하 밤프파)가 이전보다 실면적을 줄이면서 건물을 신축해 재개관했다. 밤프파는 1997년 내진설계 기준 미달 판정을 받은 후부터 신축 논의가 있었다. 2010년 뉴욕 하이라인 프로젝트에 참여한 건축사무소 ‘딜러 스코피디오+렌프로(Diller Scofidio+Renfro)’는 대학의 프린팅 공장 건물을 유지하면서 증축하는 독특한 디자인을 제안했다. 기존의 공장 위에 삼각형 구조를 2층으로 테트리스처럼 쌓아놓은 형태를 띤다. 미술관을 이전하면서 기존 건물보다 실면적은 줄였지만 창의적인 공간구획으로 영화관, 전시장, 카페테리아 등의 공간을 확보했다. 개관전 〈삶의 건축 (Architecture of life)〉은 밤프파의 디렉터 로렌스 린더(Lawrence Rinder)가 직접 기획했다. 미술관 신축에 맞춰 기획된 이번 전시는 건축 드로잉과 모델을 나열하기보다 간학문적 시각 매체를 통해 건축과 삶의 유기적 연결지점을 찾고자 한 독특한 개념의 전시다. 전시 못지않게 눈에 띄는 작품은 로비에 있는 대형 벽화다. 중국 작가 추즈제(Qiu Zhijie)의 〈세계정원의 스케치(Sketch of The World Garden)〉인데 이 작업은 통유리를 통해 밖에서도 누구나 볼 수 있다. 이 벽화 프로젝트의 시작을 중국인 작가에게 맡겼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 밤프파는 아시아 미술에 어느 곳보다 애정을 쏟는다. 버클리대는 권위있는 중국미술사학자 제임스 케일(James Cahill)(1926~2014)이 학생을 가르치던 곳이기도 하다. 미술관은 재개관에 맞춰 미술관 한 켠에 그의 이름을 딴 ‘제임스 케일 아시아 아트 스터디 센터’를 마련해 누구나 그가 남긴 연구업적을 포함한 방대한 양의 아시아 미술 자료를 조회하고 리서치할 수 있도록 했다. 밤프파는 영화 분야에도 특화되어 있다. 특히 일본, 소비에트 영화의 최대 컬렉션을 자랑하는 17,500여 편의 영화와 비디오는 미술관의 자랑이다. 새 건물에는 232석과 33석이 겸비된 두 영화 상영관이 마련되어 다양한 영화프로그램을 이어갈 예정이다.
데이비드 아일랜드의 집
David Ireland House
“‘예술을 위한 예술’을 하지 않을 때 진정한 예술이 된다.” 일상의 오브제를 작업으로 승화한 개념미술 작가 데이비드 케네스 아일랜드(David Kenneth Ireland, 1930~2009)의 말이다. 그의 말을 증명하듯 샌프란시스코에서 활동한 이 작가의 대표작은 ‘500 Capp Street’에 위치한 〈데이비드 아일랜드의 집> 자체다. 1975년, 그는 1886년에 세워진 빅토리안식 집을 구매했다. 창문의 몰딩을 제거하고, 벽체를 벗기고, 노란색 폴리우레탄으로 바니시 칠을 해서 집을 개조했다. 또한 30년간 생활하면서 생활도구부터 가구까지 점차 그의 작품으로 채웠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2004년 그가 건강 악화로 집을 떠난 후 가족들이 경제적인 문제로 집을 부동산에 내놓았다. 이 소식을 들은 지역 컬렉터이자 후원자인 칼리 윌리엄스(Carlie Williams)는 집을 구매하고 작품의 보존을 위해 거리 이름을 딴 ‘The 500 Capp Street 재단’을 설립했다. 여기에 데이비드 아일랜드의 오랜 동료인 안 해치(Ann Hatch)와 예일대 아트갤러리의 디렉터인 조크 레이놀드(Jock Reynolds)가 협력해 작품 보존 및 복원에 참여했다. 2014년 시작된 복원작업은 2년의 시간을 거쳐 올해 1월 15일 드디어 대중에 공개됐다. 의외의 공간에 놓인 책, 가구, 서신을 포함한 그의 일상 속 작업은 마치 시간여행을 떠난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데이비드의 정신은 일상과 지역 공동체에 깊이 뿌리박혀있다. 그런 그의 삶이 기록된 공간을 유지하고 동시에 대중에 공개함으로써 그의 유산을 확대하는 일에 참여했다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라는 칼리 윌리엄스의 말은 미술 후원자의 태도와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미네소타 스트리트 프로젝트
Minnesota Street Project
지난해 여름, 샌프란시스코 근교에 위치한 산업단지 도그패치(Dogpatch)에 2층 창고형 건물을 개조한 복합문화공간, 미네소타 스트리트 프로젝트가 들어섰다. 이 프로젝트는 비영리 예술공동체와 상업 갤러리 간 지속가능한 문화적 연대를 목표로 한다. ‘1275 미네소타 스트리트’는 프로젝트의 시작을 알리는 공간으로 현재 10개의 상설 갤러리를 포함해 2곳의 순환 갤러리, 다목적 미디어룸 등이 들어서 있다. 서울에도 한 건물에 여러 개의 상업 갤러리가 모인 경우는 있지만 지역 주민을 위한 비영리적 성격을 띤 공간이 포함된 경우는 드물다. 이곳의 설립자인 앤디 라파포트(Andy Rappaport)와 그의 아내 데보라 라파포트 (Deborah Rappaport)는 실리콘밸리 사업가 출신의 열렬한 아트컬렉터다. 이들은 3년 전 그들이 자주 가던 샌프란시스코 유니언스퀘어에 위치한 몇몇 갤러리가 치솟는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갤러리 유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에 “후원자의 도움을 통해 자생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예술 기업의 대안 모델이 필요하다고 느꼈다”며 설립 배경을 말했다. 미네소타 스트리트 프로젝트는 계속 확장 중이다. 6월부터 작가 스튜디오 건물인 ‘1240 미네소타 스트리트’를 오픈하고 매년 70명의 작가를 수용할 예정이다. 3번째 공간인 ‘1150 25번가 스트리트’는 최근 떠오르는 해안 지역(Bay Area) 작가들의 작업을 보관하는 수장고로 운영할 전망이다. 워낙 큰 규모의 프로젝트가 진행되다 보니 이 지역은 짧은 시간 안에 샌프란시스코 미술계의 새로운 아트밸리로 부상하고있다. 데보라는 “돈을 벌기 위해서 시작한 일이 아니다”라며 “작가와 갤러리가 보다 더 자유롭게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도록 돕고싶다”고 말했다.
샌프란시스코=임승현 기자
* 샌프란시스코관광청 www.sanfrancisco.travel
<뱀 지팡이 Ⅲ: 좌회전 갈림길(蛇杖Ⅲ:左开道岔)>(3.18∼6.19)로 명명된 황융핑(黄永砅)의 개인전이 상하이 동시대예술박물관(上海当代艺术博物馆)에서 열렸다. 전시명은 익히 알려졌다시피 그리스·로마신화에 바탕을 두고 있는바,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순적 상황을 제시한다. 큰 스케일의 설치작업으로 유명한 작가는 일종의 경외감까지 자아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작가가 직면한 갈림길에서 어떤 선택을 했는지 그 궁금증을 풀어보자.
권은영 예술학
중국 동시대 예술의 포문을 연 ‘85신조’ 미술운동의 대표적 단체 중 하나인 ‘샤먼다다(厦???)’의 중심에 서 있던 황융핑(?永?, 1954~)! 중국 저장미술학원(현 중국미술학원) 유화과를 졸업한 황융핑은 1989년 파리 퐁피두센터의〈대지의 마법사전〉을 계기로 프랑스로 건너가 정착했다. 그리고 10년 뒤, 1999년 그는 베니스 비엔날레 프랑스관 대표 작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가 후한루(侯瀚如)기획으로 3월 18일부터 6월 19일까지 상하이 동시대예술박물관 역사상 최대 규모의 설치작품을 선보이며 대규모 개인전을 연다.
상하이 동시대예술박물관 개관 이래 최대 규모의 설치작품이 등장했다. 바로 40미터에 이르는 황융핑의 〈뱀 지팡이Ⅲ(蛇杖Ⅲ)〉가 그 주인공이다. 〈뱀 지팡이〉는 이번 전시의 제목이자, 황융핑의 국제 순회전으로, 본래 2014년 로마 소재 이탈리아 국립 21세기예술박물관(MAXXI)에서 선보인 바 있는 작품이다. 당시 황융핑은 로마 지역의 역사에 초점을 맞추어, ‘종교 대항’이라는 주제로 총 8점의 작품을 선보였다. 이후 그는 자신의 개인전을 브랜드화하여 지난 2015년 베이징 소재 훙좐미술관에서 〈뱀 지팡이Ⅱ〉를 개최했다. 각각의 전시는 단순한 순회전이 아니라, 매번 소주제를 가지고 구성되는데, 두 번째 베이징 전시에서는 ‘영토 논쟁’을 주제로 했다. 왜냐하면 당시 중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영토’는 뜨거운 감자였기 때문이다.
3회를 맞는 올해 상하이 전시에서 기획자 후한루는 ‘좌회전 갈림길(左?道?)’을 통해서 세계 통치 역량의 운명에 대해 비판적 토론을 시도한다고 밝히고 있다. 가령 세계 경제체제와 중국의 경제체제는 상이하여, 여전히 완벽한 호환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또한 세계 대테러 공조는 또 하나의 세계 통치체제의 역량을 시험대에 올리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좌회전 갈림길’은 오늘날 세계의 흐름 속 우리의 운명’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갈림길’은 앞으로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의 표상이다. 세계화 시대를 사는 우리는 이제 지구 반대편 사건으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 없으며, 유일무이한 정답과 이별한 지 오래다. 선택의 홍수 속에 사는 우리에게 ‘좌회전 갈림길’은 어쩌면 매일 맞닥뜨리는 우리 일상의 단편일지도 모른다. 이번 상하이 전시는 총 25점의 작품으로 구성되었는데, 이는 첫 로마 전시 규모와 비교해보면 약 3배에 달한다.
줄곧 동서양의 문화 관계, 인간과 동물의 관계, 이데올로기 충돌의 표현 방식 그리고 현재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작업을 해 온 황융핑에게 〈뱀 지팡이〉 속 뱀은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뱀과 용은 신화 및 종교 경전에 등장하며 지식과 지혜 그리고 동시대 공포와 기만 등 모순적인 의미를 보여줬다. 결국 그의 뱀은 동서양 문화의 접점에서 이데올로기의 충돌을 보여주는 표상인 셈이다. 또한 전시장에 대단한 존재감으로 등장하는 그의 〈뱀 지팡이〉는 관람객에게 일종의 경외감을 자아내며 문화 부호 자체가 가지는 의미를 다시 한 번 사색하게 한다.
이번 전시에서 처음 선보이는 〈머리(?)〉작품은 25도로 기울어진 채 설치된 높이 7미터, 길이 11미터의 대형 설치작품이다. 〈머리〉는 본래 2012년 추즈제(邱志杰)가 기획한 〈상하이 비엔날레〉를 통해 상하이 동시대예술박물관에서 선보이고자 기획안이 만들어졌었다. 하지만 당시 실현되지 못했다가, 2016년 이번 개인전을 통해 비로소 현현되었다. 〈머리〉 작품이 이번 전시에서 갖는 의미 중 하나는 전시의 소주제 ‘좌회전 갈림길’의 은유라는 점이다. 기차의 한 끝에 이어진 철도는 두 갈래로 갈라지며 한 쪽은 에스컬레이터, 다른 한 쪽은 계단에 이어지며 동선으로 연결되고, 관람객으로 하여금 선택의 기로에 서게 한다. 갈림길에서 좌회전할지 우회전할지 말이다.
〈머리〉에는 총 41마리의 머리 없는 동물이 등장한다. 작가는 “머리가 없는 동물은 일종의 위기감을 자아내지만 개체는 각자 따로 존재하며 사실 각자의 의미를 가진다”고 강조한다. 본 전시에는 머리가 없는 동물이 〈머리〉 작품 외에도 몇 번 등장한다. 전체 전시에는 총 75마리의 몸통밖에 없는 동물이, 〈머리〉, 〈곡마단(???)〉, 〈부가라치 산(布加拉什)〉 세 작품 속에 등장한다. 75마리의 동물 머리는 또 어디에 있을까? 작가는 2층 빨간 커튼 뒤 〈우두머리〉 작품 속에 동물의 머리들로만 구성된 작품을 배치하여 연결고리로 삼았다. 개체의 존재성을 강조하며, 그들 각자의 의미를 언급했던 작가의 이야기에서 대중사회 속 소시민의 존재와 그 가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이렇게 황융핑의 작품에는 동물 혹은 곤충의 형상이 자주 등장한다. 후한루는 1990년대 초 〈황화(??, Yellow Peril)〉에서 처음으로 메뚜기 형상이 등장했다고 회고한다. 여기서 황화는 황색 인종이 서양 문명을 압도한다는 백색 인종의 공포심을 함의하는 단어로 동양인을 의미한다. 당시 황융핑은 중국과 기타 문화의 관계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메뚜기를 이용하여 그는 중국인과 피식민자의 편견과 고정관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즉, 동물의 형상을 통해 양자 대립의 관계뿐만 아니라, 명확한 일대일 대입이 불가능하게 서로 뒤얽힌 복잡한 관계를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해외에서 많은 활동을 하는 황융핑은 사실 중국 미술사의 핵심 인물이다. 1989년 프랑스로 건너가기 전까지 그는 중국에서 ‘샤먼다다(厦???)’라는 미술 단체를 조직하여 중국 미술사에서 전무후무한 파격적이고 전위적인 활동을 전개했다. 중국 저장미술학원을 졸업한 그는 저장(浙江)성 인근 푸젠(福建)성 샤먼(厦?)시에서 린춘(林春), 린자화(林嘉?), 차이리슝(蔡立雄), 자오야오밍(焦耀明) 등과 함께 ‘샤먼다다’를 조직했다. 단체 이름에서 예상할 수 있듯이 이들은 다다이즘 정신을 따르며, 부정, 부조리, 저항, 허무주의 색채가 가득한 작품을 쏟아낸다. 이들이 대륙에서 큰 주목을 받은 계기가 된 것으로 단연 1986년 11월 23일 〈분소사건〉(焚?事件)을 들 수 있다. 당시 황융핑이 이끄는 샤먼다다 그룹은 “예술을 제거하지 않으면, 생활도 안정될 수 없다”라는 구호를 내걸고 자신들의 작품을 샤먼신예술광장(厦?新????)에서 소각하는 행위예술을 단행한다. 이렇게 중국 미술사에서 괄목할 만한 업적을 남긴 황융핑의 이번 전시는 미술인들에게 중국 동시대 예술의 선봉에 있던 ‘자랑스러운’ 작가의 금의환향 전시로 포장되어 더욱 큰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
정치적인 목소리가 담긴 작품도 적지 않은 이번 전시에 대해 중국 대륙의 예술계는 선배 작가에 대한 존경과 함께 매우 호의적이다. 전설적인 샤먼다다의 중심 인물의 상하이 동시대예술박물관 역사상 최대 규모의 설치 작품 전시일 뿐만 아니라, 후한루와 황융핑의 만남에서부터 본 전시는 개막 전부터 대륙 미술계에서 회자되었으며,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신작으로만 구성된 개인전이 아닌 구작이 다수 포함되었고, 〈뱀 지팡이〉는 세 번째 전시임에도 불구하고 〈좌회전 갈림길〉은 중국 미술 애호가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호평을 받는 데 성공했다. 물론 〈뱀 지팡이〉는 매번 다른 소주제를 앞세워 새로운 이야기를 이끌었으며, 최근 연이은 테러 사건으로 ‘방향성’에 대해서 많은 이가 고민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과도 밀접하기에 더욱 큰 공감대를 불러일으킨 것은 아닐까? 이번 황융핑의 개인전을 통해 답답했던 속이 뻥 뚫리는 청량함마저 느꼈다. ●
함부르거 반호프-게젠바르트뮤지엄(2.10~7.10)에서 열린 율리안 로제펠트(Julian Rosefeldt, 1965~)의 개인전 전시명은 ‘개인이나 단체가 대중에 대하여 확고한 정치적 의도와 견해를 밝히는 것’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진 ‘매니페스토(Manifesto)’로 명명됐다. 프롤로그 포함 13개의 스크린에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배우 케이트 블란쳇(Cate Blanchett)이 각각 분장을 달리해 아방가르디스트와 사상가의 발언을 연설조로 늘어놓는 퍼포먼스가 펼쳐진다. 이를 통해 로제펠트가 제시하는 “예술가가 세계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의도”는 무엇인지 살펴보자.
최정미 전시기획
전시를 기획한 안나 카타리나 게버르스와 우도 키텔만은 보도자료를 일레인 스터트번트를 인용해 “To give visible action to words”로 시작했다. 관람객으로 미어터지는 오프닝 그리고 일레인 스터트번트의 알 듯 모를 듯한 문구로 전시에 대한 궁금증은 증폭되었다. 긴 기다림 끝에 들어간 전시장은 어두웠고, 총 12개 프로젝터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과 그 사이로 불안하게 움직이는 먼지 그리고 음향의 혼합 때문에 도망치듯 전시장 제일 뒤편에 설치된 스크린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완벽한 웨이브의 빨간 머리와 임플란트보다도 더 완벽해 보이는 가짜 이빨을 낀 듯한 케이트 블란쳇(이하 블란쳇)이 뉴스앵커와 리포터로 1인2역을 하고 있다. CNN뉴스 진행자 같은 발음과 억양으로 솔 르윗, 아드리안 파이퍼 그리고 일레인 스터트번트의 매니페스토에서 편집한 텍스트 “Good evening ladies and gentlemen, all current art is fake”를 외치고 있다. 리포터로 분한 또 다른 블란쳇은 억수같이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공격적이며 영웅다워 보이는 앵커 블란쳇을 받아주고 있다.
맞은편 벽에는 미국 남부 정통 보수파 어머니로 분신한 그녀가 점심 식탁에 둘러앉은 남편과 아들들을 위해 기도하는 형식을 빌려 다음과 같은 독백을 늘어놓는다. “I am for an art that is political-erotical-mystical that does something other than sit on its ass in a museum.” 청소년기 전으로 보이는 남자아이 셋은 눈을 뜨지도 감지도 않은 어정쩡한 모습으로 기도하는 듯한 자세다. 남편은 알아듣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아내의 중압감을 이겨내려는 듯 두 손을 모은 채 참고 있는 듯하다. 단지 식탁 앞에 조각상처럼 앉아 있는 개만 무념무상한 듯 머리를 꼿꼿이 쳐들고 있을 뿐이다. 다른 한 영상에서는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주식투자상담사가 “The iron network of speedy communications which envelops the earth”라고 외친다. 유가 하락, 주가 폭락, 중국 경제위기 등 마치 현재 세계경제를 예언한 듯하다. 베를린 중심에 있으며 단체 관광객의 핫스팟이기도 한 프리드리히스타트팔라스트 극장에서 러시안 악센트가 강한 안무가로 변신한 블란쳇은 외계인과 새를 합성한 듯한 복장 차림의 한 무용수들에게 마치 영웅처럼 “I demand the total mobilization of all artistic forces”라고 명령한다. 그녀의 과도한 연기는 거의 코미디에 가까운 수준이어서 관객은 실소하다가 시원하게 웃고 있다. 이렇듯 각 매니페스토 영상이미지는 설명하는 듯, 웃기거나, 역설적이거나 아니면 이해할 수 없을 때도 있다.
총 12편(프롤로그 1편)의 영상작품에서 교사, 펑크족, 퍼펫티어, 주식투자상담사, 노숙자, 매니저, 과학자, 장례식 주관자, 생산 근로자, 안무가 등으로 분한 블란쳇은 각 역에 맞는 연기력과 현란한 비주얼로 전시장을 꽉 채우고 있다. 할리우드도 울고 갈 완벽한 세트, 때로는 6시간 이상 걸렸다는 분장, 버즈 아이 뷰, 로 앵글, 클로즈 업 등 현란한 영화적 촬영 구도와 기법을 사용했지만, 영화와는 완전히 다른 성격과 분위기를 연출했다. 때로는 영상 촬영 장면을 그대로 보여주며 보이는 실제와 또 다른 실제를 부담 가지 않을 정도로 적절하게 섞어 놓았다.
율리안 로제펠트는 〈매니페스토전〉을 위해 지난 170년간 발표된 예술, 창작인의 매니페스토를 최대한 수집했다. 시인인 트리스탄 차라와 앙드레 브르통, 작가인 카지미르 말레비치, 클래스 올덴버그, 솔 르윗, 무용가 이본 레이너, 건축가 브루노 타우트, 그리고 영화감독 짐 자무시 등 60여 개 매니페스토를 모을 수 있었고 이를 12편의 연설문 형식이 아닌 연기할 수 있는 텍스트로 줄이고, 편집했다고 한다. 작가는 창작하지 않았고 단지 콜라주했을 뿐이라고 한다. 이렇게 재구성된 텍스트는 각 에피소드에서 역설적이며, 아름답고, 그로테스크한 형식으로 드러난다. 사조는 다다이즘부터 미래주의, 초현실주의, 플럭서스, 팝아트, 포스트모더니즘 그리고 공산주의적 사고까지 총망라했다.
매니페스토는 과거 남성 전유물이었으며 주로 예술, 정치 분야에서 사용되었다. 이렇게 확실한 의도와 목적을 가진 매니페스토를 여성인 블란쳇에게 주었다. 그렇다면 율리안 로제펠트(이하 로제펠트)에게 예술인의 매니페스토란 어떠한 의미를 담고 있는가. 2014년 후원자 중 하나이기도 한 바이리셔 룬드풍크 방송국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예술인의 매니페스토는 예술계를 변화시키려는 것뿐만 아니라 세계를 변형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 이를 위해 매니페스토의 시조라 할 카를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부터 짐 쟈무시의 《영화를 만드는 규칙》까지 정리했다.” 또 한 인터뷰에서는 “예술가의 매니페스토를 통하여 행위 실험적인 에너지(performative Energie von Kunstlermanifesten)를 구현하려 했다. 또한 그 안에서 사고의 아름다움과 시적인 사유를 찾았다. 또한 그녀의 퍼포먼스를 통하여 인기도 없고 잘 읽히지 않는 매니페스토가 사람들에게 좀 더 다가오기를 바랐다”고 했다.
1965년 뮌헨에서 출생한 로제펠트는 건축을 전공했으며 현재 베를린에서 활동하고 있다. 2011년부터는 뮌헨 미술아카데미 영상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호프만 컬렉션, 쿤스트무제움 본, 쿤스트무제움 볼프스부르그, 올브리히트 컬렉션, DZ 컬렉션, MoMA, CAC 말라가, 버거 컬렉션 홍콩 등 세계 유수 미술관과 컬렉터들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매니페스토〉 는 ACMI, 뉴사우스 웨일스 아트 갤러리, 함부르거반호프, 스프렝겔미술관 후원을 받았으며 2016년에는 함부르거 반호프 외에 스프렝겔미술관, 한오버 그리고 루르트리날레에서 순회전이 열린다.
그러고 보니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에 빛나는 블란쳇 같은 여배우와 로제펠트의 협업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약 6년 전 블란쳇이 베를린에 방문했을 때, 베를린 소재 샤우뷰네 연극장의 극단장인 토마스 오버마이어와 함께 베를린니셔 갤러리에서 열린 로제펠트의 전시를 방문했다고 한다. 이때 이들은 우연히 만나게 됐고 로제펠트의 작품에 감동한 그녀가 작가에게 즉흥적으로 재능을 기부하겠다고 했다. 로제펠트는 이후 작품 콘셉트를 준비했고 이들은 작가와 영화배우로서의 단순한 기능적인 측면이 아닌 예술인으로서 아이디어를 긴밀히 교환하는 등 협업 형태로 일을 진행했다고 한다. 배우와 리서처로 융합된 블란쳇은 하루에 전혀 다른 두 역을 연기해야 하는 강행군에도 불구하고 모든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했다고 한다. 촬영은 2014년 베를린에서 12일간 매일 이루어졌으며 작가와 여배우는 마치 신들린 사람처럼 촬영했다.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이 시리즈는 매니페스토 뿐만 아니라 블란쳇의 오마주(homage)이기도 하다고 전했다.
작가와 영화배우의 협업은 미디어아트 분야에서는 종종 이루어졌다. 하지만 연예인으로서 배우의 이미지가 너무 강하여 콘셉트가 이를 덮어쓰고 예술작품으로서 완벽하게 융합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배우가 작품 제작 과정에 깊이 연관된다거나 아이디어를 공유, 교환하는 일은 더울 드물 것이다. 〈매니페스토〉에서는 이러한 전례와 우려를 한 방에 날려준다. 각 영상작품 분량은 전시장에서 소화하기 쉽지 않은 약 10분 정도이다. 모든 작품을 다 감상하려면 약 두 시간 가량 소요된다. 관객은 영화관의 푹신한 의자가 아닌 등받이도 없는 딱딱한 전시장 나무의자나 차가운 바닥에 주저앉아 있거나 벽에 비스듬히 서 있다. 음향도 겹친다. 그러나 놀랍게도 상당수의 관객은 각 매니페스토를 마치 책을 숙독하듯 하나하나 읽어 나갔다. 〈매니페스토〉는 크지 않은 공간에 이들을 약 두 시간 정도 잡아두는 데 성공한다. 작가가 말하는 ‘사고의 아름다움과 시적인 사유’가 전해지는 모양이다. ●
알바니아 태생의 안리 살라(Anri Sala, 1974~). 이념의 충돌로 역사가 소용돌이 치던 유럽에서 성장기를 거친 작가는 자신이 겪은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작업하고 있다. 그의 작업을 모은 전시 <Answer me>(2.3~4.10)가 현재 뉴욕 뉴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다. 이 전시에서 안리 살라의 영상설치 작업 12점이 출품됐고 다양한 퍼포먼스가 라이브로 행해져 입체적인 전시였다는 평가다. ‘지역적 노마드’, ‘사상적 노마드’를 자처하는 그의 면모를 전시장을 거닐며 살펴보자.
서상숙 미술사
안리 살라는 1974년 알바니아의 수도 티라나에서 태어났다. 당시 알바니아는 같은 공산주의 국가들과도 교류가 끓긴 고립된 나라였고 그의 어머니는 청소년들을 공산주의자로 무장시키기 위한 이념교육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가 15세 때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으며 17세가 되던 1991년, 알바니아 역시 민주화를 택했다. 알바니아의 국립미술대학으로 진학해 회화를 전공하던 살라는 22세 때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다.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접한 비디오와 필름, 다큐멘터리라는 새로운 미술매체와 장르는 “충격”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현재 베를린에 살며 작업하는 40대의 살라는 세계가 주목하는 중진작가로 부상했다. 이렇듯 유아기, 청소년기 그리고 청년기의 일부를 폐쇄된 공산주의 체제하에서 보낸 작가가 21세기의 현대미술, 그리고 예술을 하는 방법은 어떤 것일까.
뉴욕 뉴뮤지엄의 2, 3, 4층 전관에서는 <안리 살라: 대답해(Anri Sala: Answer Me)전>이 지난 2월 3일 개막해 4월 10일까지 계속되며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유럽에서는 잘 알려져 있으나 미국에서는 다소 생소한 살라의 작품을 포괄적으로 한자리에 모은 첫 미술관 전시다. 12점의 비디오 설치작품과 더불어 조각과 드로잉도 함께 전시되고 있다.
이 전시에서 살라는 이 같은 물음에 뛰어난 미술적 해법을 제시한다. 사실, 어쩌면 진실까지도 그대로 전달할 수 있는 비디오와 필름 매체의 다큐멘터리적 특성, 그리고 음악(소리)을 통해 그 특성을 최대한 살리고 있다는 것이다. “언어를 믿지 않는다”는 살라의 비디오작업은 ‘사운드 인스톨레이션’으로 불린다. 음악은 스크린의 이미지와 더불어 가장 중요한 표현매체이며 전시 및 촬영장소는 물론 인물 선정까지 표현의 수단으로 이용된다는 점을 고려한 총체적인 설치작업으로 ‘심포닉 인스톨레이션(Symphonic Installation)’이라고도 한다. <라벨 라벨(Ravel Ravel)>(2013)은 두개의 화면이 상하로 놓여 있고 이 두 개의 화면에는 각각 피아노 건반과 그 피아노를 치고 있는 손이 클로즈업되어 상영된다.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고 있음이 분명한 이 피아니스트는 한 손만으로 피아노를 치고 있다. 그 한 손이 왼손이라는 것은 다리 위에 놓여 있는 오른손이 화면에 떠오르면서 밝혀진다. 중간중간 휴지기가 오면 피아노를 치던 왼손은 오른손 위에 놓인다. 마치 피아노를 칠 수 없는 오른손을 가만히 위로하는 것처럼….
이 음악은 모리스 라벨의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 D장조>로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오른팔을 잃은 오스트리아의 피아니스트 폴 비트겐슈타인(1887~1961)이 커미션하여 작곡된 작품이다. 철학자인 루드비그 비트겐슈타인의 형이기도 한 폴은 전쟁에서 돌아와 피아니스트로 활동하였으나 결국 나치의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하여 왼손의 피아니스트로 활동했다. 살라는 이 곡이 서로 어긋나도록 템포를 변형하여 두 명의 피아니스트가 이미 녹음된 오케스트라를 들으며 연주하도록 하여 이 작품을 만들었다.
<언라벨(Unravel)>(2013)은 디스크 재키가 음반을 돌리며 이 템포를 원래대로 돌려 놓으려고 하는 모습과 그 소리를 담은 작품이다. 뉴뮤지엄은 이 작품의 전시를 위해 3층 전시장을 막아 천장과 벽에 방음처리를 하여 문이 없는 극장을 만들었는데 16개의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의 조화가 음악회 못지않게 뛰어나다.
살라는 2012년 파리 퐁피두센터 전시, 특히 201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라벨 라벨 언라벨>을 발표하면서 국제적으로 그 인지도를 높혔다. 당시 프랑스를 대표했던 살라는 프랑스관이 아닌 보수와 파괴, 재건축 등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독일관을 전시장으로 선택함으로써 전시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그리고 독일 작품은 프랑스관에 전시되었다. 유럽에서 숙적 관계에 있던 프랑스와 독일의 역사적인 상처, 그리고 무엇보다 독일 나치정권에 의해 쫓겨난 피아니스트 폴 비트겐슈타인을 독일로 다시 불러들인다는 상징적 제스처는 사이트 스페시픽 인스톨레이션 장르의 특성을 기가 막히게 살렸다는 점에서 깊은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이처럼 어긋나는 역사, 그 역사가 남긴 상처들, 그리고 그 역사에 갇힌 사람들과 그들의 삶을 기억하며 그것을 회복하려는 노력은 살라의 전 작품에 흐르는 주제이다.
<현재의 순간(The Present Moment)>(2014)에 쓰인 음악, <정화된 밤>을 작곡한 아르놀트 쇤베르크(1874~1951)는 오스트리아인으로 1933년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유대인이다. 현대음악의 특징인 무조음악을 창시하고 12음계를 정립한 위대한 쇤베르크는 나치하에서 ‘타락한(degenerated)’ 예술가의 명단에 올랐었다, 무명 작곡가로서 유명한 작곡가의 딸을 사랑하던 25세의 쇤베르크가 독일의 시인 리하르트 데멜이 쓴 정열적인 연애시 <정화된 밤(Verklarte Nacht)>에서 영감을 얻어 같은 제목의 낭만적인 현악 6중주곡을 작곡했다. 살라는 이 곡을 ‘B?플랫’과 ‘D’ 등 한 음만을 연주하도록 변형하고 그 연주자들의 모습을 필름에 담았다. 천장에 설치된 19개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더불어 두 개의 화면에는 연주자들의 손가락, 팔, 목, 얼굴 등을 클로즈업한 장면이 보인다. 연주를 하는 동안 오랜 연습으로 훈련된 근육의 움직임, 그리고 그들이 아는 악보가 아닌 어긋난 음악을 연주하려는 심각한 표정이 함께 보인다. 이 작품은 나치가 ‘위대한 미술’이라고 부른 작품들을 전시하기 위해 나치건축의 원칙에 따라 뮌헨에 지어진 건물(Haus der Kunst)에서 찍은 것이다.
비디오나 필름을 찍는 ‘장소’는 살라에게 매우 중요한 작품 구성의 요건이다. 역사적인 사실에 근거해 장소를 정하고 음악을 선정한다.
그의 초기작 중 하나인 <색깔을 달라(Dammi I Colori)>(2003)는 황폐한 그의 고향, 티라나의 희망을 말하는 작품이다. 작가의 친구이며 미술가로서 (파리에서 살라와 룸메이트였다) 티라나 시장에 당선됨으로써 정치인으로 변신한 에디 라마(Edi Rama)와 택시를 타고 시내를 돌며 직접 찍은 비디오 작품이다.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각
현재 알바니아의 수상인 라마는 당시 낡은 티라나의 빌딩을 화려한 색으로 채색함으로써 주민들에게 유토피아적 희망을 주고 싶다는 계획을 역설한다. 그는 “동네 술집에서 색깔을 논의하는 곳은 전 세계에서 티라나 한 곳뿐일 것”이라며 “티라나 주민들에게 색깔은 옷이 아니라 (몸속의) 내장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색깔을 달라’는 제목은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의 남자 주인공의 아리아에서 따온 것이다. 이밖에 사라예보에서 찍은<붉은색이 없이 산 1395일(1395 Days without Red)>(2011), 나치 시대의 아파트를 부순 잔재들을 쌓아 생긴 언덕 위에 지어졌으며 한때 동독을 감시는 장소로 쓰인 ‘악마의 산(Teufelsberg)’에서 제작한 <대답해(Answer Me)>(2008), 동독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모여 살던 아파트단지에서 찍었으며 그 단지를 부르던 이름을 딴 <오래된 슬픔(Long Sorrow)>(2005) 등 살라의 작품은 모두 아픈 역사의 상처를 간직하고 있다.
그의 첫 작품인 <인터비스타(Intervista-Finding the Words)>(1998)는 그의 집 다락에서 찾아낸 필름이었다. 1970년대 후반 그의 어머니가 알바니아의 노동당회의에서 연설하는 장면으로 소리가 나지 않아 농아학교 학생들에게 입술을 읽어달라고 부탁해 그 연설 내용을 복원하였다. 어린 시절 바이올린을 오랫동안 배운 안리 살라는 클래식 음악뿐만 아니라 재즈 등 다른 장르의 음악도 폭넓게 이용하고 있다. 현재 뉴뮤지엄 전시에서도 색서폰 연주자인 안드레 비다(Andre Vida)가 전시기간 동안 비디오 <오래된 슬픔>의 주변을 돌며 라이브 연주로 비디오 속에서 아파트 꼭대기의 창문에 몸을 내민 채 연주하는 재즈음악가 제밀 문닥과 듀엣을 이루는 퍼포먼스 <3-2-1>(2011)이 벌어지고 있다.
현재 파리와 베를린, 그리고 티라나를 오가며 작업하는 살라는 지역적인 노마드일 뿐만 아니라 공산권에서 태어나고 자라 서구에서 살고 있으며 유럽에서는 보기 드문, 이슬람 국가인 알바니아에 가족을 둔 사상적인 노마드이기도 하다.
전시장에서 만난 큐레이터 막시밀리아노 지오니(뉴뮤지엄 아티스틱 디렉터)는 “살라는 알바니아의 전통적인 화가 교육을 받은 작가로 음악을 사운드 효과로 쓰는 비디오작업에서도 그런 배경을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면서 “인물들 개인의 역사를 보여주는 손, 얼굴, 머리카락, 근육 등을 클로즈업하는 디테일이 음악과 어우러져 작가가 인간에 대해 가지고 있는 따뜻한 시각을 느낄 수 있다”고 밝힌다.
그의 작업은 예술이 사회에 참여할 때 작품이 어떻게 예술로서의 기능을 잃지 않고 그 메시지를 전달하는가, 더 나아가 어떻게 자신의 운명과 그 운명이 가르쳐준 사회, 정치, 역사적 메시지를 예술로서 승화시킬 수 있는지를 훌륭하게 보여준다.●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사이에 있는 아주 작은 나라 리히텐슈타인 공국(公國) 파두츠미술관(Kunstmuseum Liechtenstein, Vaduz)에서 2월 19일부터 5월 16일까지 〈텔레젠:아트와 텔레비전(TeleGen:Kunst und Kernsehen), 이하 ‘텔레젠’〉이 열리고 있다. 이 전시는 동시대 시각예술에서 텔레비전이 가지는 의미를 역사적으로 고찰하고, 텔레비전과 예술 간의 다양하고 밀접한 관계를 보여준다.
김희영 국민대 교수, 미술사
이 전시는 독일 라이프치히 미술대학 (Academy of Visual Arts(HGB), Leipzig) 미술사-미디어이론학과 교수인 디터 다니엘스(Dieter Daniels)이 기획했다. 다니엘스는 예술과 음악의 관계에 관심을 갖고 미디어 역사와 미디어 아트를 연구해 온 인물로, 1984년 <본 비디오날레(Videonale Bonn)>의 창설자이며 ZKM(Zentrum fur Kunst und Medientechnologie)의 비디오소장 기획자로 일하기도 했다. 이와 같이 미디어 아트 분야의 권위자인 다니엘스가 기획한 이 전시의 취지는 동시대의 다양한 예술적 실행 안에서 텔레비전과 예술 간의 유기적인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다. 본 쿤스트뮤지엄(Kunstmuseum, Bonn) (2015.10.1~1.17) 전시의 순회전이기도 한 <텔레젠>은 텔레비전이 대중매체로 자리를 잡은 1964년의 상황에서 출발해 TV 형태와 채널이 다양해진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살핀다.
이 전시는 크게 역사적 부문과 현재 부문으로 나뉜다. 역사적 부문은 1960년대에 텔레비전 이미지 혹은 텔레비전 세트 자체를 오브제나 기록물로 다룬 작품들, 즉 비디오아트 출현 이전의 회화, 조각, 설치, 사진, 영화에서 보이는 텔레비주얼(televisual)한 양상을 다룬 작업들을 포괄한다. 현재 부문은 한때 지배적이었던 텔레비전 매체가 1960년대 초반부터 현재에 이르는 디지털화, 변종화, 매체융합의 시기를 거치면서 해체되는 징후를 다룬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텔레비전은 기술적인 대중매체일 뿐 아니라, 세계를 구축하는 도구로 이해될 수 있다. 즉, 사색을 위한 공간, 사회적 의미를 창출하는 방법으로 이해된다.
또한 <텔레젠>은 텔레비전과 시각문화 간의 관계가 격변해 온 과정을 예술가들의 반응과 연계하여 보여준다. 역사적인 자료와 현재의 작업이 서로 연결되면서 전개되는 7개의 장으로 구성된 다양한 작가들의 작업을 보여준다.
텔레비전의 이미지와 메커니즘을 다루기 시작한 1960년대의 자료와 작품을 보여주는 첫 번째 방은 ‘Once upon a time’의 주제로 제시된다. <텔레젠>이 마련된 미술관 2층 전시장에 들어서면 계단이 끝나는 벽 전면에 투사된 브루스 코너(Bruce Conner)의 〈Report〉(1963~1967)가 관람객을 맞는다. 이 작업은 텔레비전에 보도되는 사건을 다양하게 편집하는 초기 단계의 양식을 보여준다. 코너는 1963년 11월 22일 댈러스 시내에서 자동차 퍼레이드 중 암살당한 존 F 케네디(JFK) 대통령 암살 사건을 다뤘다. 그는 이 사건을 보도하는 TV 화면에서 이미지들과 소리들을 녹화하고 편집하여 실제 암살 장면을 보여주지 않으면서 사건의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독자적인 양식 실험을 제시하였다. 이 작업에 이어서 배우이자 작가 데니스 호퍼(Dennis Hopper)의 〈JFK Funeral Suite〉가 전시된다. 호퍼 역시 1963년 11월 JFK 암살 뉴스에 충격을 받고 텔레비전 화면으로 보도된 JFK 장례식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기록하였다.
한편 군터 웨커(Gunther Uecker)의 〈TV〉는 프랑크푸르트의 갤러리에서 그가 구입한 TV 수상기에 못을 박아 현대인의 소비와 텔레비전 청취 행태를 도전적으로 비판한 사건을 보여준다. 이처럼 텔레비전이 지배하는 문화를 거부하는 입장은 볼프 보스텔(Wolf Vostell)이 해프닝을 융합한 작업에서도 강하게 드러난다. 그가 텔레비전 수상기와 일상에서 수집한 철조망, 자동차부품, 신문 등의 오브제로 구성한 아상블라주 작업 〈Deutscher Ausblick〉(1958~1959)이 전시되었다. 보스텔은 이 작업을 대중매체의 소음을 분절시킨다는 의미에서 데콜라주(De-coll/age)라고 칭했다. 전원을 켠 텔레비전 수상기를 아상블라주에 포함시키는 작업을 처음 시작하였고, 이 작업의 파괴적인 요소는 이후 1963년 뉴저지에서 실행된 해프닝에서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는 텔레비전 수상기를 땅에 묻는 상징적인 작업인 〈TV-Burying〉으로 이어졌다.
이와 함께 1960년대 실험작을 소개하는 중요한 장이었던 부버탈(Wuppertal)의 파르나스 갤러리에서 1963년 3월에 전시되었던 백남준의 〈Exposition of Music: Electronic Television〉의 일부인 다음 네 작품을 <텔레젠>의 첫 번째 방에서 볼 수 있다. 〈Magnet TV〉(1965/1995), 〈Zen for TV〉(1963/1995), 〈TV Experiment(Mixed Microphones)〉(1969/1995), 〈Sound Wave Input on Two TV Sets(vertical/horizontal)〉(1963/1995)는 1960년대 초반 백남준의 선도적인 실험을 보여준다.
이 작업과 함께 전시된 〈Study I-Mayor Lindsay〉(1965)는 그가 1965년 뉴욕으로 이주한 직후에 홈비디오 녹화기(Sony CV-2000/TCV-2010)를 사용해 제작한 것으로, 텔레비전 방송을 직접 녹화한 이미지로 작업한 것을 텔레비전 스크린에서 다시 보여준 최초의 실험이다. 이 작업은 코너와 보스텔이 텔레비전에서 상영된 이미지를 필름에 녹화하여 편집한 이미지를 투사하는 방식과 구분되는 ‘랜덤 액세스(random access)’ 비디오 작업이다.
백남준 작업과 인접하여 전시된 존 케이지(John Cage)의 〈Water Walk〉 (1959)는 케이지가 텔레비전 토크쇼에 출연하여 실연한 퍼포먼스를 통해 소리에 대한 자신의 실험적인 접근을 대중에게 소개한 것으로 1960년대 전후 텔레비전을 통한 전위적인 실험을 대중적으로 공유하려는 보여준다. 이외에도 1960년대에 텔레비전 수상기나 텔레비전 화면을 다루는 폴 텍(Paul Thek), 톰 웨셀만(Tom Wesselmann), 파비오 마우리(Fabio Mauri)의 회화작품도 소개된다.
역사적인 실험 작품들로 구성된 첫 번째 방을 지나면 1960년대 이후 현재까지 텔레비전과 예술의 관계를 다각도로 살펴보는 작업이 펼쳐진다.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는 뉴스의 내용과 형식에 대한 언급, 과장된 사건 보도, 방송의 형식을 차용한 예술가의 입장 표명(크리스티앙 얀코브스키(Christian Jankowski), 〈Discourse News〉(2012)), 방송국의 권위에 대한 역설적인 발언(Caroline Hake, 〈Monitor〉(1998~2002)), 드라마의 인물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특정한 감정적인 동작(줄리앙 로즈펠트(Julian Rosefeldt), 〈Soap Sample〉(2000~2001)), 방송매체에 의해 조작된 이미지가 집단의 기억에 미치는 힘에 대한 발언(토마스 데만트(Thomas Demand), 〈Studio〉(1997)), 파편적인 텔레비전 광고이미지로 제시된 보통 사람의 일상(하룬 파로키(Harun Farocki, 〈Ein Tag im Leben der Endverbraucher〉(1993)), 텔레비전 수상기의 진화가 가져온 이미지의 변화 (사이먼 데니(Simon Denny), 〈Deep Sea Vaudeo〉(2009)), 인터넷을 통한 이미지 정보 수용을 다루는 작업(로버트 사크로브스키(Robert Sakrowski), 〈Analog Switch-Off〉(2015)) 등이다.
<텔레젠>은 1960년대 이후 텔레비전 매체가 발전하고 보급되면서 현대인의 시각문화에 미친 영향과 텔레비전 매체의 특정한 내용에 대하여 예술적으로 고찰한다. 향후 텔레비전 매체가 나아갈 방향과 형태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거울과 같은 기회를 제시한다. 이 전시는 협의의 텔레비전-비디오-아트 작업을 다루는 데 그치지 않고 회화, 조각, 사진, 설치, 퍼포먼스, 비디오, 인터넷을 포괄하는 다양한 장르에 걸친 ‘텔레비주얼’의 의미를 통시적, 공시적으로 재고한 진지한 노력으로 평가된다. ●
위 Christoph Draeger & Reynold Reynolds <The Last News> 2002 MiniDV, transferred to DVD, color, sound, 13’00” Courtesy of the artists, Lokal30, Warsaw and Galerie Zink, Berlin
지난해 말, 영국 테이트모던에서 열린 <Dislocations: Remapping Art Histories>는 근현대 아시아 미술사를 탈서구적 시각에서 보고자 기획됐다. 모더니즘적 세계관을 극복하고, 현실적인 대안, 즉 다차원적 아시아 미술의 양상을 들여다보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 총3부로 구성된 이 컨퍼런스의 토론 현장을 정리했다.
지가은 런던 골드스미스대학 비주얼 컬처 박사과정
서도호는 자신이 살던 집을 실물 크기의 천으로 본떠 모기장처럼 접어 가방에 넣고 세계 곳곳을 옮겨다닌다. 그의 서울집, 뉴욕집, LA집, 베를린집은 새로운 공간을 만나 매번 다시 지어진다. 때로는 복도나 통로를 따라 서울집과 뉴욕집 두 채가 나란히 이어지는가 하면, 한 집 안에 다른 한 집, 그 안에 또 다른 한 집이 들어앉아, <집 속의 집 속의 집 속의 집 속의 집>이 되기도 한다. 어린 시절을 보낸 한옥집, 유학 기간 생활하던 아파트, 해외 활동으로 머물던 스튜디오는 본래의 자리에서 떨어져 나와 전혀 다른 시공간의 지점에 안착하거나 연결된다. 반투명한 천으로 직조되어 집의 안과 밖을 구분해주는 경계와 조건들도 희미해진다. 이들은 집주인의 지극히 구체적이고 내면적인 기억으로부터 시작된 사적인 공간이면서, 새로 안착한 지점의 특수한 사회적, 역사적 맥락과의 관계 맺음과 대화를 촉발하는 상호적 공간이 된다. 또, 이를 마주하는 관객에게는 각자의 집에 대한 경험과 기억이 투영될 수 있는 보편적 공간으로 전치된다. 말하자면, 서도호의 이동하는 집들은 과거와 현재, 내부와 외부, 사적인 공간과 공적인 공간, 문화와 문화, 나와 타자가 연결되고 교차하며, 그 안에 겹겹이 자리 한 무수한 이야기를 모두 담아내는 공간인 것이다.
지난 2015년 12월 3, 4 양일간 런던 테이트모던에서 열린 <전치: 미술사 지형도 다시 그리기(Dislocations: Remapping Art Histories)> 콘퍼런스는 서도호가 자신이 옮겨다니는 집 속의 집의 여정을 소개하는 것으로 그 포문을 열었다. 바로 이 여정이 본 콘퍼런스에서 풀어놓고자 하는 이슈들의 실마리를 꿰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안과 밖, 중심과 주변이라는 이분법적 경계를 허물고 이를 뒤집어보는 일, 전치된 시공간의 이질적 요소들과 수평적인 관계 맺기를 시도하고 그 안에서 나 스스로의 이야기와 본질을 찾아가는 일, 한 공간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겹겹의 개인적, 공동체적 기억과 역사의 이야기 망들을 연결해 보는 일이다. 핵심은 근현대 아시아 미술사의 복합적이고 다차원적인 양상을 탈서구중심적인 시각으로 접근하고, 미술사 쓰기와 실천의 수평적인 연대를 고민해보는 데에 있었다. 총 3부로 구성된 프로그램은 (1)퍼포먼스: 확장된 영역(Performance: An Expanded Field), (2)아시아가 만나는 지점: 중심부의 탈식민화(Where Asias meet: Decolonising Centres), (3)동시대 미술과 사회(Contemporary Art and the Social)로 진행되었다. 특히, 20세기 아시아 지역의 퍼포먼스와 사회참여적 미술 흐름을 집중 조명하는 사례 발표가 이어졌다.
20세기 아시아 국가들은 지역마다 특수한 문화적, 정치적, 사회적 전통과 환경 속에서 급격한 변화를 거쳤거나, 지금 이 순간에도 그 변화의 소용돌이를 통과하고 있다. 전쟁과 식민의 역사와 잔재,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라는 경제 이데올로기의 충돌, 독재정권과 민주화의 갈등 등 저마다 다른 조건에서 전개된 아시아의 근대화 과정과 근대성의 개념은 단일한 형식이나 범주로 묶어 설명하거나 서술할 수 없다. 영국의 피터 오스본(Peter Osborne) 박사는 《시간의 정치학(The Politics of Time)》(1995)에서 근대성과 근대화 담론을 규정하는 시간성을 설명하면서, 연대기적으로는 같은 시간대를 공유한다고 하더라도 지리적으로 차별적인 공간에서 나타나는 비동시성을 지적한 바 있다. 각 지역의 다양한 문화적 토양과 형태에 따른 시간성의 국면에는 어떤 질적인 차이가 있는지, 이를 역사화하는 관점과 서술 방식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비서구권인 아시아가 서구권의 후발 주자로서 근대화되었다는 인식, 문화적 우위를 점한 중심부에서 주변부로 그 영향력이 옮아간다고 보는 인식, 식민지와 피식민지라는 관계 설정 안에서만 전자의 역사 서술이 가능하다는 논리는 기본적으로 동질성과 지속성에 기반을 둔 역사적 시간과 서술 구조를 가정하는 것이다. 이는 미술사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 그래서 예술의 중심부로서의 서구권과 주변부로서의 아시아라는 관계도를 탈피하고, 인과관계의 동질성이 아니라 다양성을 기반으로 한 지역과 미술의 생태적 관계도를 그리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이러한 위치 재편의 과정은 다층적인 아시아 미술 지형도의 파편적, 구체적인 편린들을 모아보는 것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콘퍼런스에서 다뤄진 사례들은 주로 구체적인 지역적 움직임들을 풀어놓았다. 1부 <퍼포먼스: 확장된 영역(Performance: An Expanded Field)>에서는 전후 아시아에서 일어난 사회 비판적 어조의 퍼포먼스 미술 동향을 살펴보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 이그나시오 아드리아솔라(Ignacio Adriasola) 교수는 아라카와 슈사쿠(Arakawa Shusaku)의 활동을 중심으로 1960년대 일본의 퍼포먼스 미술을 소개하면서, 초현실주의의 ‘objet’ 개념이 아닌, 적극적인 관객 참여와 각성을 주도했던 ‘obuje’의 사회정치적 의미를 분석했다. 미시간 대학 티나 리(Tina Lee)는 계엄령이 선포되기 직전의 1970년대 필리핀 미술계가 처했던 억압적 사회 분위기와 이에 도전한 필리핀문화센터의 개관 기념 해프닝 <Cassettes 100>의 기록을 추적했다. 뒤이어, 뉴욕 대학 리 앰브로지(Lee Ambrozy)는 2000년대 이전 중국 퍼포먼스 미술의 흐름이 정부 검열과 통제 속에서 어떻게 타지역과 다른 개념적 행보를 보였는지 그 독자성에 주목했다. 퍼포먼스 미술은 현장 에너지의 즉각적이고 융합적인 특징 때문에, 보다 능동적인 공론화의 장을 생성하는 힘이 있다. 각기 다른 특수성을 지닌 지역 사회의 변혁을 위한 목소리와 행위를 담아내는 직간접적인 그릇과 도구로써, 퍼포먼스 미술의 수행성을 조명하는 것은 어쩌면 가장 자연스러운 일일지 모른다. 그 사회의 내부에서부터 일어난 예술적 실천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와 더불어 무엇을 할 수 있었는지를 들여다보는 일 말이다.
이어진 2부 <아시아가 만나는 지점: 중심지의 탈식민화(Where Asias meet: Decolonising Centres)>는 특히, 20세기 유럽중심주의적 관점과 거리를 둔 아시아 미술사 읽기와 쓰기의 자생적인 담론 형성과 방법론에 대한 고민을 촉발시켰다. SOAS대학의 파멜라 코리(Pamela N. Corey) 교수는 캄보디아가 식민, 전쟁, 독재, 민주화 등 지난한 역사를 통과하는 동안 프놈펜이라는 도시가 겪어야 했던 무차별적인 서구식 근대화의 흔적, 이에 따라 파괴된 시민들의 삶과 도시환경을 기록한 사진들에 주목했다. 그 안에 스며든 집단적 기억을 소환하는 사진의 역할과 매체성도 함께 짚어보았다. 그다음은 인도로 이동한다. 워싱턴 대학의 소날 쿨라(Sonal Khullar) 교수는 인도에서도 전통적 성향이 가장 강한 도시인 봄베이를 중심으로 활동한 1960~70년대 화가와 시인들의 관심사가 도시 거리 자체의 풍경과 일상으로 옮겨간 현상을 포착했다. 후기식민지 사회의 이러한 변화는 당시 예술가들의 빈번한 교류에 따른 결과물이었고, 본래 지역사회의 일상적 면면으로부터 새로운 형식의 주체성과 공동체 의식이 발현된 중요한 계기였다고 해석했다. 한편, 칼턴 대학 밍 티암포(Ming Tiampo) 교수는 전후 시기 파리를 교류와 통로의 공간으로 보았다. 그는 파리에서 왕성하게 활동했던 이주 아시아 예술가들이 어떻게 일방적인 오리엔탈리즘을 해체하고, 역으로 파리 미술계에 영향력을 미치며 새로운 추상세계를 구축했는지를 세계 지도의 확장된 지면 위에서 추적했다. 이들의 행보 속에서 초국가적인 지역주의를 가늠할 수 있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선두주자와 후발주자라는 위계에서 비롯된 타자화된 담론 대신에, 아시아 미술 서사들의 비동시성에 귀를 기울이고 이 다성적인 이야기들의 교차 지점을 연결해보는 ‘매핑(mapping)’을 지향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자생적이고 대안적인 담론들을 이끌어내보자는 것이다. 콘퍼런스의 컨비너 중 한 사람인 미시간대 조안 기(Joan Kee) 교수는 관성화된 양자 구도의 지형도에서 벗어난 도시와 도시 사이의 ‘이웃’ 맺기라는 연대 의식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는 서구와 비서구권 간의 상호 교류를 전제한 수평적 관계뿐만 아니라, 아시아 내 이웃한 미술 서사들 간의 교류와 연대를 포함하는 것이다. 내외부를 오가는 미술사 연구의 서로 다른 층위들을 병치하고 공유하는 기회 속에서 비로소 새로운 차원의 아시아 근현대 미술에 대한 이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매핑을 가시화하는 노력은, 끝으로 3부 <동시대 미술과 사회(Contemporary Art and the Social)>에서도 이어졌다. 중국 본토와 대만의 사회참여적 미술의 미묘한 관계와 차이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독립 큐레이터 쑤웨이(Su Wei)는 중국 정부의 정치적 검열 안에서 미술비평의 자기성찰과 참여의 의미란 무엇인가에 대해, 대만의 미술비평가이자 큐레이터인 루페이이(Lu Pei-yi)는 후기산업화와 민주화 시기 대만의 사회정치적 기후를 비롯해, 2000년 이후의 중국-대만 관계를 반영하는 사회참여적 미술의 특징적 면모에 대해 설명했다. 한편, 홍콩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 쩡보(Zheng Bo)는 중국 공산당의 정치적 이념극 무대와 오늘날 중화권의 사회참여적 미술의 연계성에 대해 성찰하고 그 형식과 내용의 동시대적 의미를 되물었다.
여러 지역과 주제, 작품을 아우른 이번 콘퍼런스의 목적은 20세기 미술사 서술에서 고착화된 중심부와 주변부의 의미와 개념을 전치시켜보는 것이었다. 이어진 패널 토론에서도 무엇보다 아시아 미술을 바라보는 미시적, 거시적 관점과 방법론을 한자리에 모아 새로운 연결고리로 맺어보는 이러한 시도가 지속돼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결국 이러한 연대는 서구 중심의 모더니즘 담론을 뒤집어 볼 수 있는 아시아 미술의 전통과 정체성이 무엇인가, 탈서구화된 담론의 실천이 가능한가라는 난제에 해답을 찾아가는 여정일 것이다. 지역 단위의 작은 이야기들이 이웃한 또 다른 이야기들을 만나고, 지리적 경계를 옮겨다니면서 아시아 미술을 재맥락화하는 움직임이 가시화되려면, 매개체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이 매개체는 도시 사이를 활발히 오가는 연구자들의 활동이 될 수도 있고 이들을 이어주는 플랫폼이 될 수도 있다. 콘퍼런스를 주관한 테이트 아시아 리서치 센터(Tate Asia Research Centre)는 2012년에 설립되었다. 이후 이숙경 리서치 큐레이터를 필두로, 한국, 중국,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의 근현대 미술 연구와 교류 활동에 주력해왔다. 올해부터는 ‘아시아-태평양 리서치 센터’에서 ‘아시아 리서치 센터’로 공식 명칭을 바꾸고, 서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지역까지 그 활동 범위를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센터가 지정학적 공동체라는 아시아 개념을 넘어 다양한 지역, 시기, 주제, 현상, 방법론에 대한 확장된 연구과 연대를 매개하는 주요 채널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