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강수미의 공론장 2

양극화의 미학, 미술경향의 문제

1965년 출간돼 프랑스 젊은 층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조르주 페렉의 소설 《사물들》은 지금 여기 20~30대 독자가 읽어도 공감할 부분이 많을 것이다. 그 젊은이가 국내 예술대학 과/또는 유학을 마친 미술, 건축, 디자인, 영화, 연극, 패션, 무용 전공자라면, 그래서 남보다 나은 아비투스를 취득했고 세련된 감각을 가졌다고 자처한다면 더 그럴 것이다. 특히 연남동, 서촌, 경리단길, 한남동 등 소위 ‘핫 플레이스’가 마치 자기 취향의 고향, 자기 라이프스타일의 최신 버전, 자신의 미적 커뮤니티 혹은 심적 게토로써 감각의 쾌적함과 심리적 안락함과 지적 자존감을 높여준다고 느낀다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현재 경제 형편, 경력, 지위를 볼 때 학생 때부터 갈고 닦은 자신의 미시전공/오타쿠적 지식과 아방가르드/앞서가는 안목이 사회적으로 충분히 보상을 못 받고 있다고 느낀다면, 그/녀에게 《사물들》은 씁쓸한 일기장이 될 것이다. 자본주의 상품사회가 제공한 “오로지 그들만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사물들에 둘러싸여” 자신과 통하는 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자유롭고 여유롭게 일할 수 있다면 “삶은 하나의 예술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들의 경제 상황이나 사회적 지위에 걸맞은” 궁핍이 “그들의 현실이고”1 오늘 여기 88만원세대의 수입은 고사하고 신분조차 불투명한 젊은 예술인들의 현실이니 말이다.
이와 같은 간극, 즉 사물에 대한 취향의 사적 정치경제학과 사물을 소유할 수 있는 사회적 부와 권력의 불일치, 예술적 삶을 향한 꿈의 질적 수준과 예술을 전유할 수 있는 물질적 역능 사이의 낙차가 과거 어느 때보다 더 크고 깊어졌다. 그 간극은 사회구조적 원인에서 비롯됐다. 신자유주의 경제체제가 배태한 극단적 양극화가 그 간극의 다른 이름인 것이다. 하지만 그 간극, 또는 양극화는 특히 요즘 뜨는 감각과 훈련된 열정, 디지털미디어 기반의 다원적 정보력과 의사소통능력을 지닌(이런 능력은 큰 잠재력이지만 현실 자본이나 힘으로 교환되는 행운은 극소수에게만 주어진다) 청년세대에게 치명적 내상을 입히거나 강압적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이를테면 재능 면에서나 성실함에서나 그것을 소유하고 누릴 자격을 갖췄다고 자신하는 그/녀가 눈앞에 아른거리는/SNS를 보면 나보다 못한 이도 가진 욕망의 대상 획득에 번번이 실패한다. 그런 경우 그/녀는 점차 위축되고 자신과 세계 사이에 견고한 벽을 쌓기에 이른다. 혹은 반대로 과도하게 외부에 개방된 채 무조건 승자나 강자를 따라 하고 보는 카피캣(copycat)이 된다. 나는 여기에 한국현대미술의 어떤 문제를 결부시킬 수 있다고 본다.
우선 한국의 젊은 미술가(작가, 큐레이터, 비평가, 이론가)들을 중심으로 보면, 그 간극은 하부구조적 원인의 단계를 넘어서 문화적 표현의 꼭짓점까지 차올랐다. 이름 붙이자면 ‘미적 경향의 양극화’ 내지는 ‘양극화시대의 양극화된 미술 경향‘이다. 첫째로는 만든 이에게나 감상자에게나 사적으로 내밀한 부분에 연결되는, 내향적이고 스케일이 작으며 멜랑콜리한 미술이 있다. 또는 그런 속성을 대중문화 속 이른바 ‘병(신)맛’ 코드나 ‘비주류/비정상’ 기호로 덧씌워 자신과 같은 심리 및 처지에 있는 커뮤니티 안에서 증폭시키는 미술이 있다. 둘째로는 문화적 주도권이든 경제력이든 현실 사회에 강한 우세종의 미술, 대표적으로 테리 스미스가 컨템포러리 아트 유형으로 꼽은 리모더니즘(remodernism), 레트로 센세이셔널리즘(retro -sensationalism), 스펙터큘러리스트 아트(spectacularist art)2 중 하나를 부단히 학습하고, 내면화하고, 재-재생산함으로써 그 일원이 되려는 미술이 있다(지난 글에서 청년작가들에게 전위적이거나 혁신적인 작품을 보유하고 있냐고 물은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여기서 자세히 설명할 틈은 없지만 이 현대미술 유형은 대체로 과거의 유력 미술 유령들을 오늘의 글로벌미술시장에 맞게 재생한다. 기품 있으면서 섹시하고, 전통적이면서 센세이셔널 할 수 있게 ‘복고(retro-)’라는 위약과 ‘장관(spectacle)’이라는 강장제를 써서. 그러니 그것을 흉내 내는 새로운 세대의 미술은 낡은 미술 유령의 출몰을 뒷바라지하는 꼴이다.
어쨌든 위 첫 번째 미술은 젊은 미술가들이 사회경제구조가 초래한 양극화에 대해 무력한 소외 또는 자발적 잉여생산 및 소비의 방식으로 응대하는 것이다. 두 번째의 미술은 정반대로 그 양극화 또는 간극을 양성하고 고착화한 문화예술경제의 패권적 기제를 영리하게 마스터하고 점유, 활용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스스로 주인미술(라캉의 ‘주인담론’에 유비하자면)로 거듭나고자 하는 양태다. 그런 면에서 이 두 미술의 방향은 분리된 노선처럼 보인다. 하지만 현대미술계에는 가령 현재는 우세종 미술에 포함되지 않은 것들이 예외적 스타일이나 별스러운 취미라며 하루아침에 각광 받을 기회가 널려있다. 두 노선이 얼마든 뒤섞이고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말이다.
‘미적 경향의 양극화’ 문제를 젊은 미술가들에 한정하지 않고 한국현대미술 전반이라는 큰 틀에 맞추면 무엇이 보이는가? 막대한 물량 공세로만 구현 가능한 스펙터클 미술 기획안, 시쳇말로 ‘몰빵’에 가까운 ‘선택과 집중’ 정책을 통해 발탁한 스타 아티스트, 그/녀에게만 몰리는 재정 지원과 미술제도적 후원, 그런 거대 자본과 시스템을 통해서만 획득 가능한 문화예술지식 및 현장 경력에 독점적 지위 부여, 그것을 우월하고 유효한 것으로 가공해줄 수 있는 미술계 내부 전문가의 영향력 행사. 이렇게 다양한 성부(聲部)의 여러 박자가 긴밀하게 울려 퍼지면서 한국 미술계의 소위 ‘상위 1%(객관적 통계가 없으니 양극화를 표상하는 사회적 수치를 빌리면) 컨템포러리 아트’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보인다. 이는 짧게는 최근 몇 년, 길게는 10여 년 사이에 만들어진 현상이다. 또 국립현대미술관, 아르코, 리움, 에르메스코리아, 양현재단, 일우재단, 국제갤러리, 갤러리 현대, 아라리오, SBS, CJ, 현대자동차, 하이트 등을 통해 이뤄진 각종 미술사업, 즉 전시, 컬렉션, 상, 오디션, 국제교류, 작품 위촉, 출판, 국제비엔날레와 레지던시, 국제미술시장에서의 판매, 경매, 프로모션, 협업 사례에 등재된 소수의 작가/심사자/결정권자 이름과 그들의 작품/프로젝트를 검토하는 것으로 충분히 확인 가능한 사실이다. 말하자면 그 이름들과 사업들이 한국현대미술의 우세종이다.
그런데 위의 장면과는 반대로 보이는, 그러나 분명 동시대의 조건 속에서 동시대미술의 일부로 공존하는 미술 종(種)이 있다. 의식적으로 넝마주이의 질료와 방식을 써서 약함, 부적응, 결여, 궁핍, 불완전, 불안정, 버려짐을 드러내고 그렇게 해서 소수자적 감수성과 삶의 방식에 어필하는 작업이 그에 속한다. 가까운 과거에는 철 지났거나 폐허로 취급됐을 장소를 서로 알음알음 협력해 주변부 예술공간으로 변용하고 운영하면서 기업의 자본이나 공적 제도의 지원 대신 자생력과 문화예술 힙스터의 지지를 양분 삼아 커가는 미술 시스템도 있다. 그리고 뻔한 예가 되겠지만, 셀 수도 없이 많은 미술가가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가운데, 합당한 자리도 없이 각자의 현존으로 각자의 미술을 하고 있다. 예를 들면 화실에 고독하게 앉아 40년째 사군자를 연마하는 이서부터 공동체에 기여하는 미술을 실천하고 싶어 자비를 들여 강화도 섬 주민들의 미적 일상을 신문으로 만드는 이까지 말이다. 이들은 싫든 좋든 한국의 상위 1% 현대미술과는 현재로서는 다른 지점에 있다. 아니, 사실은 사회에서 말하듯 그 1%를 떠받치고 있는 99%의 나머지일지 모른다. 그리고 그들도 어떻든 충분치 않은 사회적 인정과 경제 형편에 고통 받고, 스타 아티스트의 휘황찬란한 행보와 작품 앞에서 쪼그라든 채 어찌할 바를 모를지 모른다. 이렇게 보면 앞서 말한 젊은 미술가들의 현실과 어려움은 특정 세대가 아니라 대다수 미술인이 겪고 있는 현실이고 문제다. 문제는 가진 기성세대와 못 가진 청년세대, 의식과 취향이 ‘꼰대’인 이들과 그에 앞서가는 이들의 미학적 갈등이 아니다. 조건 설정에 따라 그것들은 얼마든 바뀌고 뒤섞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진짜 문제는 기형적으로 양극화된 미적 경향을 문화 경쟁력을 빌미로 내속시키는 미술계 상하부구조다. ‘세계적 미술관’ ‘국제적 지명도의 작가’ ‘글로벌 전시’ ‘명품’ ‘저명 전문가’ 같은 둔한 수사학 뒤에서 다수의 다종다양한 미술가능성이 억압받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든 꿈에서 깨 짚어야 한다.
강수미 동덕여대 교수

1 Georges Perec, 《Les Choses: Une histoire années soixante》, 1965, 조르주 페렉, 김명숙 역, 《사물들》, 펭귄클래식 코리아, 2011, pp.20~23.
2 Terry Smith, 《What is Contemporary Art?》,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9, pp.267~268. 참고할 것.

HOT PEOPLE 박우홍 제 17대 한국화랑협회 회장・동산방화랑 대표

代를 이은 畵商, 화랑협회 수장이 되다

3월 21일부터 24일까지 코엑스에서 열리는 <제33회 화랑미술제> 전시 포스터
위 2014년 9월 25일부터 29일까지 열렸던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전시광경. 박 회장은 “임기 중 <KIAF>를 재설계할 것”임을 밝혔다
박우홍 동산방화랑 대표가 2월 12일에 열린 사단법인 한국화랑협회(이하 ‘화랑협회’) 정기총회에서 제17대 화랑협회장에 선출됐다. 국내외 경제 침체로 우리 화랑가의 표정도 그리 밝진 못한 터라 더욱 막중한 책임이 지워진 지금, 3년 임기를 시작하는 박 회장을 만났다.
박 회장은 “화랑협회가 1976년 출범할 당시에는 회장을 맡은 이의 화랑에서 곁방살이를 했는데, 현재 회원화랑 수만 140여 곳에 달할 정도로 위상이 높아졌습니다. 이전 선배들의 공이지요”라고 인터뷰의 운을 뗐다. 그러나 현재 한국 미술시장은 화랑협회의 위상에 걸맞은 성장을 이루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는 표정이다. 박 회장은 현재 우리 미술시장이 봉착한 어려움의 원인을 분석했다. “우리 시장이 협소한 것은 잘 알려졌지요. 그런데 주변국인 중국, 일본, 싱가포르 등의 상황도 매우 안 좋아요.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아트바젤 홍콩>이 성황을 이루며 활발한 움직임을 이어가고 있죠. 그러니 우리 작가를 아시아에서 열리는 다양한 아트페어에 소개하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럴 때 자국 시장에서 받쳐줘야 하는데 구조적 문제로 그러지를 못하고 있어요.” 작금의 상황에 대한 답답함의 토로다.
불황도 문제지만 시장 상황의 왜곡으로 화랑에 대한 불신이 커진 것도 큰 문제다. 박 회장은 이를 선결해야 할 과제로 꼽았다. “한 사회에서 화랑문화가 성숙하려면 충분한 시간과 교육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면 최근 일고 있는 특정 장르에 대한 열풍은 설익은 감이 없지 않아요. 이를 뒷받침할 전시와 비평적 논리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시장의 열풍은 거품과 같아서 금방 꺼져버릴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제 그는 한 단체의 수장으로 정책 입안 과정부터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 박 회장은 현재 입법부는 물론, 정책 입안을 담당하는 주무부서도 화랑계를 불신하는 실정이라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화랑에 대한 이미지 쇄신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임기 중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겁니다. 화랑협회가 문화예술 분야의 한 축을 담당함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상인들의 이익단체로 치부하는 시선을 느낍니다. 그간 쌓이고 쌓인 불신이 지금의 상황을 만든 것이겠죠.” 이를 타개해 이후 화랑계를 이끌어갈 세대들을 위한 초석을 다지는 데 역량을 기울일 것을 출마소견서에 적시했던 박 회장이다.
우리 미술시장을 몇몇 대형 화랑이 장악한 상황과 경매사와의 갈등도 풀어야 할 과제로 지적된다. 이 문제에 대해 박 회장은 회원 화랑의 의견수렴을 적극적으로 해 하나 하나 풀어가겠다고 말했다. 또한 컬렉터문화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다양화를 지향하되, 질이 담보되며, 일반인이 컬렉터가 되는 데 있어 높은 문턱을 의식하지 않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는 점을 들었다. 작가의 유족이나 컬렉터의 기부문화 활성화와 그에 대한 정책적 지원도 필요함을 역설했다. 올해 시장을 예상해달라는 주문에 대해서는 “더 떨어질 것은 아니나, 나아지지도 않을 것”이라고 다소 비관적으로 전망했다. 덧붙여 <화랑미술제>나 향후 열릴 <한국국제아트페어(KIAF)>의 변혁을 예고했다. “특히 <KIAF>는 적극적인 모멘텀을 만들려고 합니다. 이에 7개국(한국, 중국, 일본, 타이완, 싱가포르, 홍콩, 호주) 화랑협회와 머리를 맞대고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할 묘안을 찾고 있습니다. 상호 단체가 주관하는 아트페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또한 컬렉터를 연결시키는 등의 방안을 모색 중입니다.” 그러면서 KIAF의 재설계도 임기 내에 이뤄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장에 맡겨 미온적으로 대처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박 회장의 부친은 화랑협회 2, 6대 회장을 역임한 박주환 전 동산방화랑 대표다. 지금도 고미술 전람회를 기획할 때면 부친에 대한 헌정전으로 생각한다는 박 회장이다. 이번 회장직 선출로 우리 화랑협회 역사상 처음으로 부자(父子) 회장이 탄생했다. 2대에 걸쳐 화랑을 운영하는 그에게 현재 화랑계의 가업화(家業化) 상황에 대해 물었다. “우리 화랑은 당대에 한 작가의 특정 작품 경향을 트레이드마크화해 올인하는 경향이 있어요. 외국의 경우 할아버지 대에 상대하던 작가가 손자 대에 이르러 큰 평가를 받는 것이 일반적이죠. 그래서 화랑의 가치를 인정받습니다. 따라서 후대에 이르러 평가받을 수 있는 작가를 발굴하고 대를 이어 지원하고 평가받을 수 있는 분위기를 형성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화랑의 역사가 오래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발굴 작가가 의미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다시 미술관이나 비평의 역할이 중요함을 강조한 셈이다.
새로운 수장의 선출로 화랑계가 침체된 분위기를 쇄신하고 미술계의 한 축으로서 도약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을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황석권 수석기자

박 우 홍 Park Woohong
1952년 충남 당진에서 태어났다. 단국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인사전통문화보존회 이사 및 부회장(1997~2002), 한국화랑협회 감정위원(2002), 한국미술품 감정평가원 감정위원(2005~2014), 한국화랑협회 부회장(2009~2012) 등을 역임했다. 2000년부터 동산방화랑 대표를 맡았다.

2007년 11월 제274호

특별기획
106 대한민국은 미술축제 중!

미술시장이 활성화되고 대중의 미술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도 높은 지금, 미술계도 대중에게
다가가고자 노력하고 있다. 특히 서울에 집중되어 열리던 미술행사가 전국으로 그 범위가 넓어지
고 있음은 미술의 대중화가 이제 정착했다는 방증일게다. 가을을 맞아 전국에서 많은 미술행사가
열리고 있다. 《월간미술》이 이들을 찾았다. 이제 5회를 맞은 청주공예비엔날레(청주예술의전당과
청주첨단문화산업단지, 10.2~10.28)를 시작으로 두 번째 광주디자인비엔날레(김대중컨벤션센터,
10.5~11.3)가, 그리고 지난 2005년 시작되어 2년마다 열리는 〈안양공공미술프로젝트(APAP 2007)〉
(평촌시내 일대, 10.20~11.18)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려 아트 피플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경남의
클레이아크에서는 원로작가 신상호의 조각회고전(10.16~2008.3.30)이 열리고 있어 관객의 시선을
잡고 있으며, 경남도립박물관은 〈2007 경남국제아트페스티벌(GIAF)〉(10.12~11.11)을 통해 지역
주민과의 소통을 꾀하고 있다. 이와 함께 광주는 새로운 시립미술관의 건립으로 대중과의 거리 좁
히기에 적극 나섰다. 이뿐만이 아니다. 〈포천아시아비엔날레〉(포천반월아트홀 일대, 10.1~31),
〈국제인천여성미술비엔날레〉(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11.10~12.30) 등 특색있는 미술 프로그램이
하반기 미술 라인업에 포진해 있어 우리의 아트신을 더욱 풍부히 해주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미
술축제 중이다. 축제를 즐겨보자!

테마기획
156 주한 외국대사관에서 만나는 세계미술

작가
136 작가탐구 이반
        분단체제 속의 행동하는 지식인, 李반 _ 김준기
142 해외한인작가 9 조숙진
       알 수 없는 神에게 _ 정용도
186 작가리뷰 _ 이석조
       아름다움을 넘어서 아름다움이 되다 _ 서영은

해외미술
148 월드리포트
       영국․프랑스․독일․오스트리아․일본․중국

전시
172 전시 초점 투모로우展
       불명료한 내일은 명료한 과거의 위장 혹은 지연 _ 반이정
180 전시와 테마 한국 현대사진 10인展
       전통과 진보의 기로에서 바라보다 _ 이경률
190 전시리뷰
       시티_넷 아시아․채널 1․구성연․유클리드의 산책․황혜선․성낙희․이수영
       정정주․민병헌․박병춘․최태훈․김창겸․김지원
198 전시프리뷰

학술․자료
207 논단
       시각예술, 교육할 수 있을까? _ 김형숙

인물․정보․기타
028 영문요약
089 에디토리얼
090 독자편지
092 아트러버 송영숙 _ 심정원
094 이색박물관을 찾아서 5 청주 고인쇄박물관 _ 남선우
096 사이트 앤 이슈
       이동기&가오유 2인전 _ 이준희
       상하이 주얼리 아트페어 _ 이건수
212 아트마켓 소식
       미술시장 안정과 경매 낙찰률의 함수관계 _ 한국시각문화정책연구원 미술시장팀
214 아트저널 뉴스․지역․피플․노티스․아트북
230 독자선물
232 넥스트 이슈

SIGHT & ISSUE 故임영방 제12대(1992~1997)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대쪽 같은 작은 거인의 귀천

지난 1월 31일, 관장님 부음을 접하고 잠시 멍해졌다. 언제나 찾아뵈면 반가이 맞아주실 줄 알고 바쁘다는 핑계로 뵙기를 미루고 시간을 보내다 관장님이 하늘나라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아뿔싸 후회했지만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누구에게나 인생에 있어, 삶에 있어 은인 같은 분이 있게 마련이다. 내게 임영방 관장님은 은인을 넘어 부모님 같은 분이다. 세상의 고마운 분들로부터 늘 은혜를 입어 지금과 같은 꼴을 갖추고 살고 있지만 관장님은 오늘의 나를 만들어주신 분이다. <제1회 광주비엔날레>를 마친 나를 국립현대미술관으로 불러 학예실장이라는 과분하고 무거운 짐을 주셨다. 그 부름에 조금이라도 답하고자 모든 것이 낯설고 어려웠지만 부딪쳤다. 가끔 힘이 들고 어려운 기색을 보일라치면 저녁에 퇴근하면 소주 한잔하자고 슬그머니 이끄셨다. 허름한 대폿집에 들어서면 늘 미술관 직원들이 함께 있었다. 미술관 구석구석에서 소리 없이 자신의 일에 열심인 직원 몇을 저녁 술자리에 불러 스스럼없이 대해주시며 소주잔을 기울였다. 이때는 엄한 관장이 아니라 동지적 관계(?)에서 새로운 미술관 시스템을 이야기하고 이해를 구하고 설득하는 자리였다. 덕수궁미술관 시절부터 근무해온 그들에게 관장님이 그리는 선진적인 미술관의 시스템을 이렇게 자연스럽게 설명하시면서 함께 새로운 미술관을 만들어갈 것을 당부하셨다. 그런 점에서 인간적인, 귀천과 높낮이를 가리지 않고 사람을 사람답게 대해주는 그런 소탈한 분이셨다. 그런 관장님이 2015년 유난히 매섭던 겨울이 꼬리를 감추고 봄이 오려는 즈음에 하늘나라로 돌아가셨다. 관장님은 늘 섬기고 따르던 하느님의 품에 안기어 행복하실지 모르지만 속세에 남은 장삼이사들은 그 서러움에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이다.
사실 임영방에게 세상은 너무 많은 임무를 부여했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 스스로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어렵던 시절 홍콩과 프랑스에서 공부할 수 있었던 남다른 기회에 대해 국가와 민족에 보답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더 컸을지도 모른다. 그는 우선 학문적으로 보면 한국미술사에 근대적 개념의 미학과 미술사의 개념과 방법론을 제시했다. 그는 근대기 지식인이었으며, 국민을 계몽해야 한다는 의지로 지사적 실천을 행했다. 하지만 그는 인문학이라는 틀을 지키는 철저한 원칙주의자였다. 학문적 원칙주의는 그의 삶에서도 그대로였다. 그는 자신의 가치와 철학에 따라 주도적으로 원칙을 만들고 이를 스스로 지킨 사람이다. 그 원칙 때문에 때로는 오해도 샀지만 자신의 원칙을 잠시 미룰지언정 허무는 법은 없었다. 이런 그를 보면서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스스로 만든 원칙을 지키면서 힘들고 때로는 거추장스러웠을까, 아니면 행복했을까’. 그럼에도 그는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고 스스로에게도 양보하지 않는 원칙의 삶을 살았다. 그 사실만으로도 그는 우리에게 영원한 사표이자 대한민국에서 21세기까지 존재한 마지막 선비였다.
특히 한국 미술관에서 임영방은 변곡점이다. 그 이전의 미술관은 근대적인 미술관 아니면 개발도상국가형 미술관이었다면 그 이후의 미술관은 현대적인, 글로벌 스탠더드를 추구하는 미술관으로 전이해나간 과정 그 자체이다. 그래서 그는 큐레이터 중심의 미술관을 꿈꾸었고 그들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또 삶과 유리된 구름 위의 미술을 세상의 미술, 사람들의 미술로 변화시킨 주인공이다. 하지만 그가 학문과 삶에서 추구했던 것처럼 미술이 삶 속으로 들어온다고 해서 그 가치와 격이 떨어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는 1992년 국립현대미술관장을 맡고 그 이듬해 <93 휘트니비엔날레 서울전>을 논란을 물리치고 개최했다. 단색조회화라는 전대미문의 집단 개성화된 한국화단에 다문화적 당대미술을 드러내 보임으로써 한국미술에 새로운 국면을 불러일으켰다. 또 <민중미술 15년전>을 열어 산발적인 미술운동차원의 미술을 한국미술사에 편입시켰다. 또 <올해의 작가>라는 제도를 통해 미술의 영역을 확대하고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기를 희망했다. 또 <일본현대미술전>을 통해 정치와 문화를 구분해서 일본을 대하고 바라보는 기회를 제공했다.
그는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고 내세우지 않았다. 그는 소리 없이 세상을 움직이고자 했다. 사실 그는 오늘날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는 베니스비엔날레의 한국관 건립에도 막후에서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광복 후 홍콩에서 동문수학한 후배 백남준과 함께 이탈리아와 베니스시를 설득하고 한국 정부를 이해시켜 건립 예산을 확보하기까지 안살림을 맡아 동분서주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한국 현대미술의 격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킨 1995년의 광주비엔날레도 그의 작품이다. 첫 비엔날레의 조직위원장으로 그는 자신의 유학시절 인맥과 경험을 최대한 가동시켜 척박한 불모의 땅에 비엔날레라는 씨앗을 움 틔웠다. 이후 그가 떠난 후의 광주비엔날레를 떠올려보면 그의 혜안과 지도력 그리고 실천의지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미술사에서 그의 족적을 살펴보고 이를 서술한다는 것은 내겐 역부족일지 모른다. 미술사, 미학 등의 이론분야는 물론 문화정책과 박물관학에 이르기까지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구석이 없다. 하지만 그는 이론 또는 책상에서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행동에 옮긴 문화운동가였다. 필설로 다 할 수 없는 단구의 거목이었다.
인천에서 태어나 일찍이 개화된 가풍으로 인해 열린 세상을 누구보다 먼저 접한 그. 지사적 자세로 파란만장한 한국의 근현대사를 헤쳐 나오면서, 가끔은 기뻐했으나 많은 시간을 통분하고, 혹은 질주하고, 때로는 돌아오면서 역사와 현재의 화해를 통해 미래를 그리고자 고군분투했던 임영방 관장에게 가장 큰 힘은 거침없는 용기와 강단 있는 명철한 판단이었다. 그리고 굽히지 않는 자신감과 소명의식이었다. 이런 지사적 풍모와 대쪽 같은 그의 기개는 조선 선비의 그것과 다름이 없었다.
관장님을 하느님의 품으로 보내드리고 나서야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겠습니다. 계실 적 그리 일러주어도 알아듣지 못하던 제가 이제야 깨우쳤지만 결코 관장님처럼 격과 결이 있는 삶을 살 수 없음이 더욱 부끄럽습니다. 부디 누구도 당신이 세운 올곧은 뜻을 거스르는 자 없는 하느님의 품 안에서 평안하소서.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1992년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취임식을 마치고

1992년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취임식을 마치고 (사진제공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연구센터)

임 영 방 Lim Youngbang
고 임영방(1929~2015)은 경기도 인천 출생이다. 프랑스 파리 대학에서 철학과 미술사를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1871~1940년 사이 파리시의 공공건물 내의 벽화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미술대학 및 인문대학 교수와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을 역임했다. 1995년 광주비엔날레 조직위원장을 맡아 국내 최대 규모의 국제미술제를 이끌었으며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건립에도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저서로는 《서양미술전집》 《미술교육》 《현대미술의 이해》 《미술이 걸어온 길》등과 중세부터 바로크시대까지 시대별로 미술을 정리한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인문주의와 미술》 《중세미술의 도상》 《바로크》가 있다. 서울신문비평상(1986), 프랑스 일급문화예술훈장(1996), 제36회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은관 문화훈장(2006)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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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ibute
50년 동안의 스승과 제자의 인연을 기리며

선생님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이 제가 스무 살 학생 때였으니 벌써 50년 전 일입니다. 그 당시 저는 미술대학에 대해 대학은 학문의 전당이니 당연히 미술에 관련된 논의가 활기차게 흘러넘치고 ‘미술로 세상을 열어’ 갈 저에게 빛이 되어줄 곳이란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허기진 지식욕을 채워주기에는 실기 위주의 미술대학 분위기는 기대와 영 딴판이었습니다. 게다가 한일회담 반대시위로 매 학기 정상적으로 수업이 이뤄진 적이 거의 없던 때였습니다.
바로 그러할 때 선생님이 미술대학(저에게)에 나타나셨습니다. 지성적인 면모의 패션, 걸음걸이까지 멋지던 선생님은 저에게 막연히 동경하던 미술의 나라 프랑스 그 자체였습니다. 해맑은 미소는 말할 것도 없고 서투른 모국어까지 멋있어 보였으니 선생님의 뭔가가 제게 씌어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 학보사 편집을 맡고 있던 저를 선생님은 퇴근길에 자주 데리고 다니시면서 세상 보는 시각을 넓혀 주셨습니다. 심지어 동베를린사건으로 곤욕을 치른 친구들이 모이는 자리에 저를 데리고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선생님을 통해 한국 사회의 어두운 면에 대해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제가 졸업한 뒤 한참 지나 문리대 미학과로 자리를 옮기셨습니다. 저는 속으로 당신이 원하던 인문학의 자리로 옮기신 것을 축하드렸지만 당신은 그래도 미술대학에 애착을 갖고 있었다는 얘기를 나중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거기서도 훌륭한 제자를 많이 배출하셨으니 보람 있는 자리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선생님과 저의 특별한 인연이 다시 시작된 것은 국립현대미술관 관장님으로 재직하실 때였습니다. 과천의 산속에 뚝 떨어져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에 관장으로 계시면서 〈휘트니 미술관전〉과 〈아! 고구려전〉 등 몇 개의 특별전으로 미술관의 대중화에 대성공을 거두셨습니다. 그 직후에 당시 운동권미술인 ‘민중미술’ 전시회를 개최한 것은 선생님이 아니면 할 수 없는 큰 결단으로 지금도 제 가슴을 설레게 합니다. 그 당시 선생님의 주위에는 불온한(?) 민중미술전을 열지 말라는 따가운 시선과 만류가 없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러한 시선과 비난에도 불구하고 전시회의 개최를 밀고 나가셨습니다. ‘민중미술’은 허구가 아니라 분명히 이 땅에서 만들어진 리얼리즘미술이란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선생님의 빛나는 업적은 은퇴 후 세검정 시절에 이룩한 인문학적 저술 활동입니다. 르네상스미술과 중세미술, 바로크미술에 이르기까지 거의 800~1000 페이지에 달하는 엄청난 저작들을 80세 전후의 고령에 펴낸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입니다. 아깝게도 선생님은 낭만주의 미술에도 손을 대시다 영면하신 걸로 전해 들었습니다. 미처 완성하지 못한 원고들은 저희 제자들이 능력이 되는 대로 출판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러한 저술은 그 자체로 인문학적 학술활동으로서의 가치만이 아니라 미술의 지평을 인문정신의 영역으로까지 확장시켰다는 데 큰 의미가 있어 미술학도로써 또 제자로써 대단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남을 가르치는 데 스스로 모범을 보이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동안 선생님은 많은 일을 하시면서 알게 모르게 후학들에게 모범으로서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한 인간이 참다운 스승을 모실 수 있는 기회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것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선생님을 은사로 모실 수 있는 인연을 가지게 된 것은 저희 제자로서는 정말 행운입니다. 저희는 이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선생님의 인문정신의 가르침을 우리들 스스로 실천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저 높은 곳에서 이제는 편히 쉬시기를 바랍니다.
김정헌 작가, 서울문화재단 이사장

스승의날 모임을 마치고 제자들과 함께(앞줄 왼쪽부터 김정헌, 임영방 부부, 안필연, 뒷줄 왼쪽부터 최태만, 임옥상, 박영남)

스승의날 모임을 마치고 제자들과 함께(앞줄 왼쪽부터 김정헌, 임영방 부부, 안필연, 뒷줄 왼쪽부터 최태만, 임옥상, 박영남)

 

2007년 10월 제273호

특별기획
128 Performance Art of Korea 1967-2007
한국 퍼포먼스아트, 그 40년의 마이너리티 리포트

1967년 겨울. 오리진, 무동인, 신전동인 등이 국립중앙공보관에서 벌인 〈비닐우산과 촛불이 있는
해프닝〉을 그 시발로하는 한국 퍼포먼스아트가 어느덧 불혹의 나이로 접어들었다. 발생과 동시에
소멸하는 운명을 지닌 퍼포먼스아트는 그러나 강력한 전위적 에너지가 충만한 장르로 평가받는다.
지금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한국의 행위미술 1967-2007전〉(8.24~10.28)이 열리고 있다.《월간
미술》은 한국 미술의 영역을 확장하는데 한 역할을 담당한 퍼포먼스아트의 연원부터 현재까지를
살펴보는 특집을 마련했다. 전시를 통해 소개된 작가는 물론, 화려하고 밝은 빛이 비추지 않는 길에
스스로 빛을 내며 걷는 퍼포먼스 작가가 여러분을 기다린다. 한국 퍼포먼스아트 첫세대인 성능경과
최근 세대인 이윰이 마주한 세대간 대담과 각 세대 작가 3명이 털어놓는 가슴 깊은 곳에서 나온 이
야기도 들어본다. 그리고 시대를 거치면서 무엇이 작가에게 퍼포먼스를 하도록 지시했는지 살펴보고,
마지막으로 우리 퍼포먼스 아트가 출발하는데 그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서구의 퍼포먼스 아트를
살펴본다. 자, 이제 인간 본연의 모습을 담은 몸짓이 독자여러분 앞에 벌어진다.

작가
164 작가탐구 최재은
        순환하는 시간의 숭고함_심상용
194 3545 작가 박윤영
        말할 수 없는 알레고리적 내러티브_홍성민

해외미술
170 월드리포트 중국ㆍ영국ㆍ프랑스ㆍ독일ㆍ일본ㆍ이스탄불

전시
178 전시리뷰
        Shall we smell?ㆍ한중 현대미술 교류ㆍ홍성철ㆍ민균홍ㆍ임상빈ㆍ한용진ㆍ장재록ㆍ
        김일권ㆍ정재호
189 전시프리뷰
200 화제의 전시 금누리+안상수=?展
        디자인과 금속의 예술화, 그 경계에 대한 질문_진휘연
206 전시와 테마 윌리엄 모리스展
        윌리엄 모리스의 북 유토피아_이광주ㆍ이주은

인물ㆍ정보ㆍ기타
028 영문요약
105 에디토리얼
106 독자편지
109 제12회 월간미술대상 수상자 발표
114 아트러버 6 권기찬_심정원
116 이색박물관을 찾아서 4 별난물건박물관ㆍ롤링볼뮤지엄_남선우
118 사이트 앤 이슈 현태준展_황석권
214 아트마켓 소식 미술안목을 키우는 법_한국시각문화정책연구원 미술시장팀
216 아트저널
        뉴스ㆍ지역ㆍ피플ㆍ노티스ㆍ아트북
230 독자선물
232 넥스트 이슈

2007년 9월 제272호

특별기획
086 나의 아름다운 미술관
         My Beautiful Museum

아름다운 미술작품들, 그리고 그 작품과 조화로운 공간. 독특한 개성의 미술관 건물을 나오면서
우리는 또 하나의 좋은 전시를 봤다는 만족감에 젖어든다. 이렇게 기억에 오래 남는, 다시 방문하
고 싶은 “나만의 아름다운” 미술관들…. 박물관, 미술관은 19세기 계몽주의 세기의 연속성 상에서
그 중요함이 강조되어 왔다. 특히 미술관 건축은 그 안에서 전시가 이루어진다는 특수한 목적,
관람객과의 관계 등 건축가들에게는 도전의 대상이자 건축의 꽃이라고 할 정도로 매력 있는 프로
젝트다. 최근 우리 나라 미술관 건축은 전문화와 특화, 복합화의 중심에 있으며 작품성면에서 한
국 컨템포러리 건축의 주요한 포지션을 차지하고 있다. 《월간미술》은 최근 새로이 등장하고 있는
건축적으로 아름다운 미술관을 찾아가 본다. 미술관 건축의 역사와 개념, 중요성 등을 살펴보고,
우리 나라 미술관 건축의 현황과 컨템포러리 건축의 궤적에 대한 심도있는 대담을 통해 한국 미술
관 건축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생각해 본다. 마지막으로 가족과 함께 찾아가 볼 수 있는 독특한 건
축 양식의 박물관 미술관을 소개한다. 이제 “나의 아름다운 미술관”으로 들어갈 시간이 되었다.

테마기획
164 대한민국의 큐레이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_ 임근혜 이숙경

작가
116 작가 탐구 오치균
        풍경의 겁데기를 관통한 회화의 지층 _ 기혜경
122 3545 작가 유현미
        회화, 조각, 사진의 하이브리드 _ 박영택

해외미술
128 월드 리포트
        영국ㆍ프랑스ㆍ독일ㆍ미국ㆍ오스트리아ㆍ일본ㆍ중국

전시
136 화제의 전시 누보팝展
        누보 팝이 앵글로색슨계 팝에서 갈라지는 것들 _ 심상용
157 화제의 전시 사경변상도의 세계, 부처 그리고 마음展
        그림으로 설파한 佛心의 세계 _ 배영일
142 전시리뷰
        MoA Picks-매체의 기억ㆍ-스케이프ㆍ정미영ㆍ정운학ㆍ박미나ㆍ김범ㆍ박홍순
148 전시프리뷰

인물ㆍ정보ㆍ기타
028 영문요약
067 에디토리얼
068 독자편지
070 핫피플 오병남 _ 황석권
072 이색박물관을 찾아서 3 울릉도 독도박물관 _ 류동현
074 사이트 앤 이슈
        이규일 소장품전 _ 이준희
        조영남 아트쇼 _ 황석권
        창원아시아미술제 _ 이준희
        백남준 비디오 광시곡전 _ 황석권
182 아트마켓 소식
        그림, 알고 사야한다_한국시각문화정책연구원 미술시장팀
184 아트저널
        뉴스ㆍ지역ㆍ피플ㆍ노티스ㆍ아트북
198 독자선물
200 넥스트 이슈

SIGHT & ISSUE 함창예고을-금.상.첨.화錦.上.添.畵

비단과 술이 익는 마을, 함창의 미술프로젝트

우리나라에서 마을미술프로젝트가 벌어진 지 올해로 7년째를 맞았다. 이 사업은 지금까지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받으며 조용히 진행돼 왔다. 조용하게 진행됐다란 말은 기획 특성상 마을미술프로젝트가 미술계 안에서 작가들과 기획자에게만 주목받고 있다는 뜻이다. 미술공간과 행사가 대도시를 중심으로 분포되어 있으며, 예술계의 관심도 당연히 여기에 맞춰져 있다. 마을미술프로젝트는 생산(작가의 창작), 소통(전시와 비평), 수용(관객의 반응)의 세 꼭짓점 중에서 주로 생산 장소로 쓰이던 곳에 나머지 요소를 불러들인다. 경북 상주시 함창읍의 마을프로젝트는 작년에 발주한 사업 가운데 가장 크게 진행되는 행사다.
<함창예고을-금.상.첨.화>라는 표제를 붙인 프로젝트는 비단 위에 꽃을 얹었다는 금상첨화(錦上添花)에서 꽃 화(花)를 그림 화(畵)로 바꾸었다. 예부터 뽕나무와 누에를 키워서 비단의 고장으로 이름 높은 이곳에 그림까지 더한 마을을 일군다는 뜻의 ‘금.상.첨.화(錦.上.添.畵)’는 프로젝트 전체의 성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함창 간이역 앞에 세워진 육근병의 미디어아트 작품은 누에고치 형태로 상주시 함창의 장소성을 함축해 보여준다.
전체 둘레길은 육근병과 오승환의 작품이 설치된 함창역을 <금상첨화> 가운데 ‘금(錦)’으로 잡고, ‘상(上)’에 해당하는 가야마을에 정의지, 양현진, 오유경과 김경아, 이창호, 프로젝트팀 2반(최혜정, 달문, 나다), 가야사랑마을공작소, 김성석의 작업이 들어갔다. 읍내 전통시장의 담벼락과 아케이드 천장에 각각 백용성과 이강준의 벽화와 조형물이 ‘첨(添)’을 이뤘고, 마지막 ‘화(畵)’에는 가장 많은 작가(이재형, 고순정, 윤동환, 라온(이미정, 신순단, 박남규), 김승영과 박기진, 김석환, 있다1(최정은 등)과 2(요아킴 등), 상주예총 협업, 안경진, 이승원)이 들어갔다. 이는 미술의 각 분야에 더하여 공연, 출판까지 아우르는 총체 예술의 성격을 띤다.
상주 특산품인 비단과 더불어, 전쟁 직후부터 ‘세창도가’란 명성을 쌓으며 함창에서 번성하던 양조업이 자취를 감춘 지금, 함창프로젝트는 양조장 폐건물을 예술공간으로 되살려냈다. 모두 여섯 개의 복합전시공간으로 변신한 이곳은 예컨대 김승영, 박기진 작가의 협업 <술도가>(술을 빚어내는 집이란 뜻으로, 지역에서는 ‘술도가이’라는 발음에 가깝게 쓴다)처럼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잇는 맥락을 얻었다. 무엇보다 함창마을프로젝트가 큰 조형물을 놓거나 선전 문구를 뿌리는 식의 자치단체 홍보수단으로 변질되는 선례를 따르지 않았다. 역설적으로 이는 출발 단계에 선 이 프로젝트가 아직도 원 거주민에게는 예술마을 정착이건 관광산업 혹은 양조업의 부활이건 하나의 활력 요소로 자리 잡지 못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함창=윤규홍 갤러리 분도 아트 디렉터

육근병 <터> 철근 철판 FRP 영상설치 310×230×290cm 2014 함창역 앞에 설치됐다

육근병 <터> 철근 철판 FRP 영상설치 310×230×290cm 2014 함창역 앞에 설치됐다

 

2007년 8월 제271호

특별기획
076 카셀도쿠멘타12 & 뮌스터조각프로젝트07

베니스비엔날레와 함께 독일發 미술축제가 세계인의 관심 속에서 화려한 막을 올렸다. 5년에 한번
열리는 〈카셀도쿠멘타12〉(6.16~9.23)와 10년에 한번 열리는 〈뮌스터조각프로젝트〉(6.17~
9.30)이 그 주인공들. 지난 도쿠멘타가 플랫폼 형식의 담론 중심 행사였다면 이번 도쿠멘타는
관람객이 미적체험을 겪을 수 있는 작품 중심의 전시로 구성했다고 총감독 로저 M. 뷔르겔은
밝혔다. 이와 함께 〈도쿠멘타 매거진〉 프로젝트를 마련해 볼거리와 담론 사이의 균형을 맞추
고자 노력했다. 100여 명 작가의 작품 480여 점이 출품된 이번 도쿠멘타의 현장을 《월간미술》
이 직접 찾았다. 아울러 1977년 시작된 뮌스터조각프로젝트의 네 번째 행사도 카셀도쿠멘타와
하루 사이를 두고 대장정에 올랐다. 시작부터 함께한 카스퍼 쾨니히 총감독의 진두지휘로 총
36명 작가의 조각작품 34점이 뮌스터 곳곳에서 관람객을 맞이했다. 로저 M. 뷔르겔, 카스퍼
쾨니히 총감독의 인터뷰를 비롯, 카셀도쿠멘타, 뮌스터조각프로젝트의 생생한 현장으로 독자를
안내한다.

작가
140 해외 한인작가 8
         박은선ㆍ고요 속의 움직임, 안단테 혹은 알레그로 _ 이건수
146 작가리뷰
        문범ㆍ회화의 탈규범적 시도 _ 진휘연
        한진섭ㆍ유토피아와 세속적인 삶을 보듬는 조각 _ 고충환
170 젊은작가구역
        정혜련ㆍ백승우ㆍ신기운

해외미술
118 월드토픽 써모클라인展
        ZKM을 점령한 서구와 ‘다른 것들’_ 낸시 아다자니아
132 월드토픽 메이드 인 저머니展
        독일 현대미술의 최전선 _ 심정원

전시
068 전시와 테마 까레이스키展
        민족의 정체성이 녹아있는 회화의 힘 _ 김보희
072 화제의 전시 플래시 큐브展
        공간에 투사된 욕망 읽기 _ 심상용
154 전시리뷰
        쿨 비츠ㆍ한국화 교류ㆍ홍승남ㆍ송명진ㆍ추경ㆍ박수인ㆍ정연두ㆍ서동욱
        공시네ㆍ이강욱ㆍ김소라
162 전시프리뷰

학술ㆍ자료
176 논단 발굴, 김환기 가계 _ 이태호

인물ㆍ정보ㆍ기타
028 영문요약
053 에디토리얼
054 독자편지
056 아트러버 5  이우복 _ 심정원
058 이색박물관을 찾아서 2 한국잡지박물관 _ 류동현
060 사이트 앤 이슈 26-도큐먼트展 _ 황석권
182 아트마켓 소식
2007년 상반기 미술시장 동향 _ 한국시각문화정책연구원 미술시장팀
184 아트저널
         뉴스ㆍ지역ㆍ피플ㆍ노티스ㆍ아트북
198 독자선물
200 넥스트 이슈

HOT ART SPACE

가나아트콜렉션
가나인사아트센터 1.27~3.16

인사동 가나아트센터가 내외관을 리뉴얼하고 <가나아트콜렉션전>을 전관에서 진행한다. 1월 27일부터 3월 16일(<고암 이응노전>은 3월 1일까지)까지 열리는 이 전시는 <한국근대조각전>, <근대한국화 4인전>, <해외작가전: 기억과 체험>, <외국인이 본 근대 풍물화전> 그리고 <고암 이응노 미공개 드로잉전 1930~1950s>으로 구성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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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혜 (1)

양주혜 개인전
신세계갤러리 본점 1.22~2.25

<시간의 그물>을 타이틀로 한 이번 개인전은 작가가 프랑스 유학시절부터 30여 년간 해온 색점작업으로 구성됐다. 그를 대표하는 바코드 작업과 더불어 ‘지난 시간을 지우고 새로운 시간을 덧입히는’ 과정을 보여준다.

[section_title][/section_title]

최선 (1)

최선 개인전
송은아트스페이스 2.13~3.28

제12회 송은미술대상 대상 수상작가인 최선의 이번 전시 제목은 <메아리>다. 작가는 작품의 주제와 연관있는 재료를 이용하거나 다양한 외부인을 제작 과정에 적극 참여시켜 완성한 작품을 선보였다.

[section_title][/section_title]

경남도립

텍스트 콜라주
경남도립미술관 1.29~5.13

윤성지 이광기 조은지 3인의 작가가 참여해 현대미술에 일반화된 소재인 텍스트를 기반으로 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기존 문법을 거부하는 텍스트가 이미지화될 때 벌어지는 다양한 미적체험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section_title][/section_title]

드로잉_일우 (6)

Play with Drawing
일우스페이스 1.8~2.25

19명의 작가가 드로잉 및 설치작품 60여 점을 선보인 전시는 다양한 세대의 작가들이 참여해 세대별로 다른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작가의 내면을 보다 직접적으로 표현한, ‘날것’의 성격을 지닌 드로잉의 매력을 발견하는 자리였다.

[section_title][/section_title]

김부연 (4)

김부연 유작전
갤러리 팔레 드 서울 1.28~2.10

뜻밖에 요절한 故 김부연(1969~2013)의 유작전이 열렸다. 천진난만한 아이의 세계를 화면에 옮겼다는 평가를 받는 그의 작업은 순수함과 밝음으로 가득 차 있다. 특히 이번 유작전은 그를 추모하는 이들이 뜻을 모아 개최한 것으로 그 의미를 더했다.

2007년 7월 제270호

특별기획
066 제52회 베니스비엔날레

세계 최대의 미술축제로 손꼽는 베니스비엔날레가 6월 10일 대단원의 막을 올렸다. 52회를 맞은
올해 베니스비엔날레는 어느 해보다 전세계 미술인에게 관심과 주목을 받고 있다. 이번 베니스비
엔날레는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인이 총감독을 맡았다. 뉴욕현대미술관 큐레이터 출신이자 예일대
학장인 총감독 로버트 스토(Robert Storr)는 실험성 짙은 젊은 작가의 작품이 주로 선보이던 과거
비엔날레의 관행에서 탈피해 미술사에 기록되는 대가의 작품을 대거 선보였다. 그가 내세운 본
전시의 주제는 ‘감각으로 생각하기- 정신으로 느끼기:현재 시제에 걸맞게 96명의 작가가 참여한
본 전시는 예년에 비해 상대적으로 역동성이 줄어든 반면 보수적이고 학술적인 성격이 두드러졌다.
또한 아프리카를 비로산 제3세계 국가에 각별히 주목함으로써 현재시제에서 현대미술의 좌표를 점검
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1986년 처음 참가한 이래 1995년에 독립 전시 공간을 마련한 한국관은
이번에 처음로 한 명의 작가, 이형구를 내세워 개인전 형식으로 꾸몄다. 커미셔너 안소연(삼성미술관
리움 학예실장)은 볼거리로 넘쳐나는 비엔날레에서 명료하고 집중적인 이미지를 내세워 인상적인
전시를 연출한 것이다. <월간미술>은 베니스 현지 취재를 통해 이번 비엔날레의 생생한 현장을 소개
한다.

작가
098 작가탐구 이형구
         미래 공상 생물학자의 신종 아니마투스_이지윤
110 3545작가 박소영
        물렁해, 슬픈 것들_강태희
116 해외 한인작가7 천성림
        내러티브 설치의 작가, 천성림_박민우
146 작가리뷰 전준
        고요와 평온 속의 다의적 층위_진휘연
150 젊은작가 구역
        이창원ㆍ이영빈ㆍ김재옥ㆍ정강

해외미술
104 월드토픽 바젤
        바젤에 부는 한국미술 열품_이준휘

전시
122 전시와 테마 거울신화展
        셀러브리티 사진을 향한 대중의 욕망_신수진
128 전시리뷰
        재활용주식회사ㆍ역의 정점ㆍ도구로부터-신체와의조응ㆍ홍순명ㆍ채우승ㆍ황인철
        이재삼ㆍ이옥련ㆍ윤정미ㆍ이혜영ㆍ김동유ㆍ이소영
136 전시 프리뷰

학술ㆍ자료
158 논단 미적 가치와 가격 사이의 부조리한 간극_심상용
168 미술사 라이벌7 마네 VS. 휘슬러
        모더니즘 회화의 서로 다른 문을 연 마네와 휘슬러_송혜영

인물ㆍ정보ㆍ기타
028 영문요약
051 에디토리얼
052 독자편지
054 핫피플 안소현_이준희
056 아트러버4 유상옥_심정원
058 이색박물관을 찾아서1 제주도 아프리카 박물관_이건수
060 사이트 앤 이슈
166 아트마켓 소식
        경매, 세계미술시장의 파워이동_한국시각문화정책연구원 미술시장팀
172 아트저널
        뉴스ㆍ지역ㆍ피플ㆍ노티스ㆍ아트북
186 독자선물
188 넷스트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