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나전칠기
고려나전칠기 高麗螺鈿漆器
한국에서는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에 걸쳐 칠공예가 발달하였고 고려시대에는 자개를 붙인 정교하고 화려한 나전칠기*의 제작이 성행했다. 나전기법을 보여주는 최고의 유물은 통일신라시대의 〈나전단화금수문동경螺鈿團花禽獸文銅鏡〉이고 고려시대 이전에는 나전칠기의 유물이나 기록이 없다. 나전칠기가 고려시대에 이미 발달한 것으로 보아 이미 통일신라시대에 존재하였고 그것이 점차 숙련되어 고려시대에 독자적인 양식을 이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의 나전에 관한 문헌상의 첫 기록은 11세기에 문종이 요遼나라 왕실에 나전칠기를 선물로 보냈다는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에서 볼 수 있다. 또 1123년에 고려에 왔던 송宋나라 사신 서긍徐兢이 쓴 《고려도경高麗圖經》에는 “그릇에 옻칠하는 일은 그리 잘하지 못하였지만 나전 일은 세밀하여 귀하다고 할 만하다”고 언급하였다.
고려시대의 나전칠기의 특징은 흑칠 위에 나전(螺鈿), 대모(玳瑁), 은사(銀絲), 동사(銅絲)를 감입(嵌入)하여 무늬를 만드는 데 있다. 전복껍질을 종잇장같이 얇게 갈아서 사용한 박패법(薄貝法)은 중국의 당나라에는 없던 것이다. 또한 대모(玳瑁, 鼈甲)를 얇게 갈아 그 뒷면에 붉은 채색을 칠하여 표면에 비쳐 보이도록 하는 복채법(伏彩法)은 고려 나전칠기의 중요한 기법이며 당唐나라의 나전에서도 적지않게 발견된다. 또 하나의 특징은 금속선의 사용으로, 중국의 유물이 희소한 반면 고려나전칠기에서는 당초문*의 덩굴줄기나 무늬와 무늬 사이의 경계선 등으로 다양하게 응용되었으며 주로 은선, 동선, 주석선이 쓰였다. 문양은 대개 국화문과 당초문*을 전면에 가득 밀집배치하는 것이 특징이며 귀족적 취향에 영합하여 정교하고 우아하다. 고려의 나전칠기 기법은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금속선이 자개로 대치되고 문양의 구도와 대칭이 흐트러지고 여백도 많이 남기며 점차 대범하고 거친 표현의 회화적 의장(意匠)으로 정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