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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미

순수미 純粹美
Das reine Schöne(독)

미학*상의 용어. 대체로 ‘미적인 것*’을 넓은 의미의 미*라고 할 때, 미적 범주*의 하나로서의 좁은 의미의 미를 가리킨다. 근대 예술이 특정 표현을 추구하게 되면서 미의 개념만으로는 부족하여 미와 숭고*를 대립시키기 위해 순수미를 제창하게 되었다. 순수미는 미적인 것의 특성이 가장 강하게 나타나는 것으로서 이상미와 동일시하는 입장도 있다. 그러나 순수란 결코 가치 개념이 아니며 순수미를 이상으로 지향하는 것은 하나의 태도에 지나지 않는다.

순수영화

순수영화 純粹映畵 cinéma pur(프)

독일의 절대영화*와 같은 시대에 프랑스에서 크게 부흥했던 전위영화운동. 레제Fernand Léger(1881~1955), 달리Salvador Dali(1904~1989)를 위시하여 많은 미술가들이 협력했다. 무성영화 중기에 주창되었던 구소련의 몽타주* 이론이 프랑스에서는 무시낙Léon Moussinac, 뒤락Gérmaine Dulac 등에 의해 주로 시각적 리듬을 중심으로 한 포토제니(photogénie)론이 되었고, 순수영화는 이에 입각하여 감각적인 미와 형이상학적인 관념을 표현하려고 하였다. 절대영화에서 보이는 추상적 형태나 빛의 효과에 화면을 한정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다소의 재현적인 요소를 가진다. 무엇보다 설명적인 기법, 문학적인 제재를 극복하고 순수하게 시각적인 표현만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 특징이다. 레제의 <기계적 발레>, 앙리 쇼메트Henri Chaumette의 <반사와 속도의 유희> 등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순수영화는 당시의 초현실주의* 운동에서 큰 영향을 받았으며, 만 레이Man Ray(1890~1977), 달리 등의 협력으로 전위영화의 주류가 되었다.

→ ‘절대영화’ 참조

순수주의

순수주의 純粹主義 Purisme(프)

입체주의* 미학을 계승하면서 1918년 오장팡Amédée Ozanfant(1886~1965)과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1887~1965)가 작성한 <입체주의 이후Aprés le Cubisme>라는 선언서에서 시작된 운동. 이 글은 1919년 창간되고 1925년에 폐간된 잡지 《에스프리 누보Esprit Nouveau》에 실렸으며, 순수주의 운동은 이 잡지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그들은 입체주의의 미학을 더욱 순수히 하여 쓸데없는 장식성이나 과장을 일체 거부한, 간결하고 명확한 조형표현을 주장하였다. 즉 그것은 기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 불필요한 장식을 모두 배제하는 기능주의*의 관점과 상통하는 것이었다.
회화에서의 환상과 근거 없는 자유에 반대하는 순수주의는 그 모델로 기계를 취하며, 작품에 우연성과 무의식이 가해지는 것을 금하였다. 이들의 원칙을 실제로 엄격히 따른 작가는 극소수였지만, 순수주의 이론은 회화*뿐만 아니라 건축, 조각*, 공예*, 음악, 연극의 분야에도 깊은 영향을 주었다. 르 코르뷔지에의 근대건축 사상도 여기서부터 전개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