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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다브르 엑스키

카다브르 엑스키 cadavre exquis(프)

작은 종이를 이용한 고전적인 놀이에 초현실주의자들이 붙인 공식화된 명칭으로, ‘cadavre’는 ‘시체, 잔해, 비밀’등의 뜻을, ‘exquis’는 ‘우아한, 말쑥한, 미묘한’등을 뜻한다. 초현실주의자들은 1925년을 전후해 실제로 이 놀이를 했다고 한다. 전체적인 작업의 형태를 참가자들 각자가 알지 못하더라도 공동으로 하나의 문장이나 데생을 만들어 가는 것을 말한다. 화가, 도안가 이외에 그래픽 미술에 대해 거의 문외한인 이들도 작업에 함께 참여할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데생들은 내면세계와 외부세계의 소통이 무의식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카르통

카르통 carton(프)

→ 카툰

카르투셰

카르투셰 cartouche(영)

①디자인 및 건축 용어. 장식 디자인에서 판지(板紙)의 양쪽 끝 또는 한쪽 끝이 말려 올라간 모양의 것으로, 그 안에 문자나 문장(紋章)을 배치한다. 바로크*의 건축 장식으로서 유행했던 것인데, 지금도 고전적인 느낌을 내려는 디자인에서 찾아볼 수 있다. ②이집트의 상형문자*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왕이나 신의 이름을 나타내는 문자를 둘러싸고 있는 난형(卵形) 혹은 장방형의 형상.

카르티케야

카르티케야 Kārttikeya(범)

→ 위태천

카리에르 아카데미

카리에르 아카데미 Académie Carrière(프)

1898년 외젠 카리에르Eugène Carrière(1849~1906)가 파리에서 설립한 미술학교. 이 미술학교는 짧은 기간 존립했지만 설립자보다 배출된 학생들 때문에 더 유명해졌다. 후에 야수주의*의 주축이 된 마티스Henri Matisse(1869~1954), 드랭André Derain(1880~1954), 퓌이Jean Puy(1876~1960), 라프라드Pierre Laprade, 샤보Auguste Chabaud 등이 1929년 당시 이 아카데미*의 학생이었다. 카리에르 자신은 그들의 혁명적 사상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만 학생들 개개인이 지닌 재능을 일깨워준 유능한 미술 교육자였다.

카메라 옵스쿠라

카메라 옵스쿠라 camera obscura(라)

라틴어에서 따온 말로서 원뜻은 ‘어두운 방’이라는 뜻. 일정한 사물이나 정경의 상을 넓은 종이나 유리 등에 투사시킴으로써 그 상의 윤곽을 정확히 그려내는 데에 사용하던 기구를 말한다. 빛을 투사할 수 있는 조그만 구멍을 가진 밀폐된 방이나 상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구멍을 통해 투사된 빛이 반대편 벽면에 사물의 역전된 상을 재역전시키기 위해서 흔히 거울을 사용하는데, 이럴 경우 그림자는 원물체의 모습 그대로 나타나게 된다. 카메라 옵스쿠라의 원리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이며, 중세때는 천문학자들이 이 원리를 이용하여 일식 현상을 관찰하기도 했다.
바자리Giorgio Vasari(1511~1574)의 문헌을 보면 알베르티Leone Battista Alberti(1404~1472)가 이와 비슷한 기구를 작품 제작에 응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기록이 나오며, 고우잉L. Gowing이 쓴 《베르메르》(1952)에는 베르메르가 이 기구의 도움을 받고 있다는 것이 상세히 분석되고 있다. 특히 18세기에는 이것이 성행하기도 했다.

카바레 볼테르

카바레 볼테르 Cabaret Voltaire(프)

스위스 취리히 슈피겔슈트라스 1번지에 위치한 건물. 취리히 다다*의 주 활동무대로서 유명해졌다. 이전에는 표현주의적 전시 장소였던 카바레 볼테르는 1916년 발Hugo Ball(1886~1927)과 그의 부인 해밍스E. Hemmings가 주도하고 차라Tristan Tzara(1896~1960), 아르프Jean Arp(1887~1966), 장코Marcel Janco, 휠젠벡Richard Huelsenbeck 등이 참여한 다다 작가의 회합 장소가 되면서 ‘다다’라는 말을 고안한 장소로, 즉흥시 및 음성시의 낭독 및 공연 장소 그리고 다다 작가들의 전시장으로서 자리잡게 되었다.
1916년 6월에는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로 된 동명의 잡지가 발간되기도 한다. 단일호로 발간된 이 잡지는 일종의 ‘문학 및 예술의 모음집’으로서 국제주의자와 평화주의자의 기치를 내세우며, 처음으로 다다라는 용어를 싣고 있다.

카셰타주

카셰타주 cachetage(프)

‘봉인(封印)하다’ ‘(도장을) 찍는다’는 뜻의 ‘cacheter’ 동사에서 나온 말로, 슈라이브Werner Schreib가 의미론적 회화(意味論的 繪畵)의 표현 기법으로 개발해낸 조형적 방법의 하나. 슈라이브는 법칙화된 의미론적 기호를 채색된 합성수지 판 위에 찍는다는 반입체적인 방법을 통해 작품을 제작했다. 이 경우 톱니바퀴, 나사, 화폐(주화), 병뚜껑, 캡슐, 버튼 따위의 오브제*를 스탬프(도장) 대신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여기에서 사용된 오브제는 일상적으로 있는 그대로의 물건의 제시라는 다다*적인 의미와는 대조적으로 새로운 용도로 전환된다. 즉 최초의 있는 그대로의 수동적인 이용에서 서체적인 기호로서의 능동적인 표현으로 변주되는 것이다. 다다에서는 오브제가 그 미적 현상성(現象性)만을 보여주고 있는데 반해서 슈라이브는 오브제를 미적인 창조 과정의 주요한 매체*로서 사용하고 있다.

카슈미르 미술

카슈미르 미술 Kashmirian Art(영)

인도 서북부 히말라야 산맥에 위치한 카슈미르는 기원전 3세기 아쇼카왕Aśoka 시대부터 인도 문화권의 일부였다. 이 시기에 불교도 전해졌으며 카니슈카왕Kaniska 재위시(2세기)에는 카슈미르에서 ‘제4결집(結集)’이 행해질만큼 불교 중심지의 하나였다. 시리나가르Śrīnagar 근처 하르완Hārwan에서는 쿠샨 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불교 사원지가 발견되었다. 스투파*가 있는 차이티야*를 주목할만한데 벽의 하단부와 뜰의 바닥 부분에는 얕은 부조*가 장식된 테라코타* 타일이 남아 있었다. 아크누르Akhnur와 우슈쿠르Uskur에서는 5세기말~6세기초로 추정되는 테라코타 두상(頭像) 몇 점이 출토되었다.
카슈미르는 카르코타Kārkota 시대(약 625~855), 우트팔라Utpāla 왕조(855~939), 로하라Lohāra 왕조(10~14세기) 시대로 구분된다. 카르코타 시대의 조형 활동은 라리타디티야Lalitāditya 통치 시대(약 724~750)에 활발해지는데 이 시대는 사원 건축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시기였다. 대표적으로 마르탄다Mārtānda 사원을 들 수 있다. 만다파*와 그 양 옆에 2개의 사당이 있는 건물이 사원 중앙에 있는데 이 건물은 독특한 카슈미르 양식*의 지붕과 외관을 갖추고 있다. 또한 이 건물은 84개의 작은 성소(龕)가 있는 열주*식의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런 형식은 간다라*나 박트리아*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8세기 이후 카슈미르에서는 힌두 사원*이 많이 건축되었다. 한편 8세기의 카슈미르는 불교의 중심지이기도 했는데 파리하사푸라Parihāsapura에 있는 라리타디티야의 차이티야가 중요한 유적이다. 그리고 돌이나 상아, 금속으로 된 불상*, 힌두 신상*도 만들어졌다. 14세기 이후에는 이슬람교의 세력이 강화되어 무갈 왕조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카운터 릴리프

카운터 릴리프 counter relief(영)

구소련의 구성주의자 타틀린Vladimir Tatlin은 1913~1917년간의 서유럽 여행 도중 피카소Pablo Picasso(1881~1973)와 브라크Georges Braque(1892~1963)를 파리에서 만나 재료를 콜라주*로 합성하는 방법을 알게 된 이후, 거친 금속이나 철사, 유리판과 목재판을 재료로 하여 추상적이면서 입체적인 벽면으로 구성된 카운터 릴리프를 창안해냈다. 그렇게 함으로써 타틀린은 사물의 미적인 색채의 외관에 중점을 둔 입체주의* 화가들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강렬함으로 추구했다. 타틀린은 철사 조각이나 널빤지 같은 것을 물질적 특성으로부터 완전히 분리시켜, 고유한 구축적 결합 상태를 담고 있는 새로운 기능적 구조로 변화시키는 가능성을 카운터 릴리프에서 구현하고 있다. 타틀린의 카운터 릴리프에서 사물은 더이상 끈이나 철사나 목재와 같은 즉자적 존재가 아니라, 그 내부의 특수한 구성적인 관계 속에 있는 기능적인 가능성인 것이다. 콜라주한 카운터 릴리프는 이와 같은 의미로 그 이후의 제3인터내셔널을 위한 기념탑 구성의 기초적이고 실험적인 선행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타틀린은 이 기념 건축에서 3단계로 피라미드 형의 동적인 철골 구조를 세웠다. 그 철골 구조는 소재가 지니는 무게가 경감된 것처럼 보여지며 무게를 상실한 물질이라는 관념을 구체화시킨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