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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갑

문갑 文匣

한국 전통 목가구의 하나로 각종 문방구와 간단한 문서 등을 임시로 치워두기 위해 주로 사랑방에 비치하는 나지막하고 긴 가구로 문구갑의 준말이다. 높이가 30cm정도로 낮고 가로로 길기 때문에 전통가옥에서 문지방의 높이를 넘지 않았다. 서랍으로 칸을 나누는 시원한 면처리와 간결한 구조 및 기능상 자잘한 물건을 치워서 실내를 정갈하게 했다. 조선 후기의 것이 많이 전래되며, 배나무가 주재료이다.

문수보살

문수보살 文殊菩薩 Mãnjuśri(범)

지혜를 상징하는 보살. ‘문수사리文殊師利’ ‘문수시리文殊尸利’의 준말로 원어 Mānjuśri에서 ‘만주’는 ‘달다, 묘하다, 훌륭하다’는 뜻이고 ‘슈리’는 ‘복덕(福德)이 많다, 길상(吉祥)하다’는 뜻이므로 합하여 ‘훌륭한 복덕을 지녔다’는 뜻이 된다. 문수보살은 석가 입멸 이후에 인도에서 태어나 반야(般若)의 도리를 선양한 이로서, 박학다식, 다재선변의 지혜를 상징하는 보살로 표현된다. 또한 《반야경般若經》을 결집, 편찬한 이로 알려져 있고 또 모든 부처님의 스승이요 부모라고 표현되기도 한다. 문수보살의 상주처(常住處)는 중국의 산서성山西省 청량산淸涼山(일명 五臺山)이고 일만명의 보살과 함께 있다고도 한다. 중국에서 가장 신격시되었던 4대 보살 가운데 하나이며, 전하는 바에 따르면, 보살이 해탈문으로 인도해 들어가는 것은 모두 문수의 힘이라고 한다.
《화엄경華嚴經》에서 보현보살과 함께 비로자나 혹은 석가모니불의 왼쪽 협시가 되며, 형상은 일반적으로 오른손에 지혜를 상징하는 칼이나 경권(經卷)을 들고, 왼손에는 연꽃을 들고 있다. 때때로 정수리에 대일여래의 5지(五智)를 상징하는 오계를 튼 동자형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대좌*는 연화대좌가 일반적이나 위엄과 용맹을 상징하는 사자를 타고 있기도 하다. 회화에서는 〈유마경변상도維摩經變相圖〉에서 유마거사維摩居士의 상대자로서 표현되는 예도 많다. 문수신앙은 신라 자장법사에 의해 한국에 전해졌으며 통일신라시대의 〈석굴암 문수보살상〉, 조선시대의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상〉(1466) 등은 대표적인 조각상이다. 사찰에서 문수보살을 모신 불전을 문수전(文殊殿)이라고 하며, 문수원(文殊院)과 같은 문수보살만을 신앙하는 사찰까지 만들어질 정도로 신앙이 성행하였다.

문인화

문인화 文人畵

전문적인 직업화가가 아닌 시인이나 학자 등 사대부 문인이 여기(餘技)로 그리는 그림의 총칭. 처음 ‘문인의 그림(文人之畵)’이라는 말을 쓴 사람은 명대(明代) 말기의 동기창董其昌(똥 치츠앙, 1555~1636)인데, 그 계보는 왕유王維(우앙 웨이, 699~759)로부터 시작하여 동원董源(똥 위앤), 거연巨然(쥐 르안), 이성李成(리 츠엉), 범관范寬(환 쿠안), 이공린李公麟(리 꽁린, 1040~1106), 미불米芾(미 후, 1051~1107), 원사대가*(元四大家), 문징명文徵明(원 즈엉밍, 1470~1559), 심주沈周(선 저우, 1427~1509)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들 역시 직업화가의 화풍을 따라 그리기도 했으므로 신분상의 구분을 하나의 일관된 기준으로 삼기는 어렵다. 따라서 근래에는 사군자*(四君子) 같은 사대부들의 교양으로 여겨지던 화제나, 사의*(寫意)에 중점을 둔 간일하고 격이 높은 화풍을 지닌 그림을 가리키기도 한다.
시서화일체 사상(詩書畵一體思想)과 정신세계의 표출을 중시한 문인화 이론은 소식蘇軾(쑤 스, 1036~1101)을 중심으로 고취되었으며 명대 중기 이후 직업화가를 압도하여 화단을 독점하였다. 또한 직업화가의 양식을 북종화*(北宗畵)라 부르고, 그들 자신의 화풍을 남종화*(南宗畵)라 칭하였다. 그런데 동기창이 말하는 ‘문인의 그림’ 계보에 속하는 화가는 남종화의 화가들과 큰 차이가 없다. 여기에서 문인화와 남종화의 혼동이 생겨나고, 문인화는 남종화와 같은 의미의 용어로 여겨졌다. 남종문인화라고 하여 구분없이 사용하고 있는 추세이지만 구분을 하자면 남종화는 주로 산수화*에 국한하여 사용하는데 비하여 문인화는 산수화는 물론 사군자, 화조화* 등 모든 화과(畵科)에 사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