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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 樑

처마와 무거운 지붕을 지탱하는 수평재로서 가구*(架構)의 바탕을 이룬다. 목조건물의 기둥 위나 공포*에 얹혀 내부공간을 구성한다. 놓이는 위치와 구조적인 기능에 따라 크게 대들보와 보충보(補充樑)로 나눈다.
대들보는 어떤 건물이나 반드시 있는 기본 가구재로서 평주(平柱)와 평주 위, 또는 평주와 고주(高柱) 위에 놓이거나 기둥 위의 공포가 있을 때에는 그 위에 놓이게 된다. 보충보는 기둥과 보, 보와 보 사이, 또는 보 위에 놓이는 것으로 종보(宗樑), 중종보(中宗樑), 퇴량(退樑), 충량(衝樑; 대들보의 직각방향으로 얹힌 퇴보), 우미량(牛尾樑; 도리*와 도리 사이에 놓는 누여진 들보), 귓보(耳樑) 등이 있다.

보관불

보관불 寶冠佛

보관을 쓴 여래. 여래상은 원칙적으로 관을 쓰지 않으나, 인도에서는 굽타* 후기부터 보살처럼 보관을 쓰고 목걸이를 한 상이 출현한다. 사르나트* 후기나 팔라조에 그 예가 많고, 좌상, 입상도 있으며 모두 석가불*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현장玄裝이 인도여행(629~645)에서 실지로 본 바로는 보드가야*의 불상도상은 보관을 쓰고 있었다 하나 그 이유는 불분명하다. 그리고 정순(正純) 밀교의 주존 대일여래는 보살형으로 보관을 쓰고 있다.

보도사진

보도사진 報道寫眞
photo journalism(영) reportage photographie(프)

사진*을 사실 전달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 신문, 주간지, 월간지 등에 실리는 저널리즘 뉴스 사진의 대부분을 보도사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사진들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것을 근본이념으로 하며, 주관적이거나 과장을 지양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최초의 보도사진은 1842년 함부르크 대화재를 다게레오타입*으로 찍어 《더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 뉴스The Illustrated London News》에 게제한 헤르만 비오우의 사진이다. 보도사진이 하나의 독립된 사진 분야로 확립된 것은 제1차세계대전 후 독일에서 신즉물주의* 운동이 일어난 후이며 독일을 중심으로 발전하여 각국에 파급되었다.

→ ‘기록사진’ 참조

보드가야

보드가야 BodhGayā(범)

인도 동북부 비하르의 가야시에서 남쪽으로 약 8km 떨어진 리라잔 강(옛 이름은 나이란자나 강) 서안에 있는 불교 유적지이다. 불타가 성도(成道)한 보리수 아래에는 마우리야 시대*의 금강좌(金剛座)가 남아 있다.
보드가야에는 마하보디Mahābodhi라는 사당이 있으며 그 사당을 둘러싼 방형의 울타리에는 조각들이 새겨져 있다. 원래는 아쇼카왕Aśoka이 세운 지붕 없는 간단한 형태의 건물이 보리수를 둘러싸고 있었으나 쿠샨 시대*에 이 건물 대신 사당이 세워졌다고 한다. 사당 주변의 울타리 기둥과 원판에 새겨진 조각들은 슝가 시대*인 기원전 1세기 중엽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불교의 불전도* 이외에 태양신인 수리야*, 인드라*, 락슈미* 등 베다의 신들도 조각으로 표현되어 있다. 현재의 마하보디 사당은 굽타시대*(5~6세기)에 처음으로 세워진 것이지만 이 벽돌 사당은 여러 시기에 걸쳐 보수되었다. 1880년대에 미얀마의 불교도들이 이 사당을 수리하면서 많은 변형을 가했고 현재의 외관은 19~20세기에 수리된 모습이다.
사당을 보수할 때 주변에서 수습된 상들을 감입하였는데, 사당의 정면 벽과 그곳을 채우고 있는 벽감의 상들은 팔라, 세나 시대*(750~1200)의 작품이다. 그리고 사당의 입구 옆에는 굽타 이후인 7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불입상이 있다.

보디 컬러

보디 컬러 body color(영)

흰색을 섞은 불투명한 수채화 물감 또는 투명묘법에 대한 물감의 불투명한 효과를 가리킨다. 과슈*와 마찬가지로 유색 종이 위에 드로잉을 하거나 수채화에서 하이라이트* 부분을 강조할 때 사용한다.

보로부두르

보로부두르 Borobudur

인도네시아의 자바섬 중부에 있는 불교 사원으로서 샤일렌드라Shailendra 왕조 시대인 8세기 후반~9세기 초에 세워졌다. 사원의 구조를 보면 방형 기단 위에 이중기단, 위로 올라갈수록 체감하는 오층의 방형층(方形層), 삼층의 원형층이 차례로 놓여 있으며 정상에는 종(鐘)모양의 스투파*가 있다. 삼층의 원형층 위에도 작은 종모양의 스투파들이 놓여 있으며 각 스투파 속에는 불좌상이 안치되어 있다. 가장 아랫부분의 기단은 한 변의 길이가 111.5m이고 사원의 전체 높이는 31.5m에 달하는 거대한 석조건축이다.
오층의 방형층은 복잡하게 굴곡이 지고 각 층마다 난순*(欄楯)과 불감*(佛龕)으로 둘러싸여 있다. 주벽(主壁)과 난순 사이에 네개의 회랑*이 만들어져 있으며 양쪽 벽면은 연속된 부조* 패널*로 장식되어 있다. 또한 하층 기단에 가려진 최초의 기단부 사방에도 부조가 있는데, 이 부조들은 특히 불전, 본생담*, 비유담, 《화엄경華嚴經》 〈입법계품入法界品〉에 나오는 선재동자善財童子의 순례도 등을 주제로 하고 있어 주목된다.
또한 각 층의 난순에는 바깥으로 향한 불감을 일정하게 배치하고 그 안에 불좌상을 안치했는데 모두 432구이다. 불좌상들은 방향마다 다른 수인*을 하고 있어 금강계 밀교의 오방불(五方佛)로 여겨진다. 이처럼 보로부두르의 전체적인 구조는 화엄경에 근거한 하나의 만다라*를 이루고 있다. 패널에 새겨진 부조나 불좌상은 굽타시대*의 조각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보상화문

보상화문 寶相華文
floral medallion motif(영)

반쪽의 팔메트* 잎 2개를 안으로 향하게 하여 만든 하트형의 꽃잎으로 둘러진 꽃장식 무늬. 연화문*(蓮花文)과 결합한 팔메트 잎의 변형으로서 고대 동양미술에서 연화문과 더불어 많이 사용되었다. 보상화문의 기본 요소는 서로 마주보는 반(半)팔메트가 이루는 꽃잎, 꽃잎 안쪽에 양쪽으로 벌어진 C자형 꽃받침, 그 사이에서 피어나는 꽃 등을 들 수 있다.
보상화문은 7세기 전후 사산, 페르시아에서 성립되어 한국과 일본에 전해졌다. 조각*, 회화*, 직물, 와전 등에 사용되었으며 동일한 바탕에 연화문, 팔메트, 동물문, 당초문*과 함께 장식되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통일신라시대에 보상화문이 성행하였다. 좌우대칭으로 완성된 팔메트의 꽃잎이 연속되면서 4잎에서 6잎, 8잎, 10잎 등을 이룬 연화문 형태의 무늬를 만든다. 초기에는 ‘당화(唐花)’라는 전형적인 당풍(唐風)이 유행하다가 8세기 중엽 이후부터 독창성을 띠며 통일신라 말기에는 도식화되어 화판을 묶어주는 꽃받침이 단순한 와상(渦狀)으로 되고 덩굴줄기도 와권 형태로 도안화된다. 통일신라시대의 흥륜사지, 임해전지, 신원사지에서 나온 전돌에 보이며 성덕대왕신종에는 당초문과 결합된 보상화문을 보여준다.
이외에도 포도, 석류, 모란, 연화 등과 함께 결합, 발전하여 각종 문양전과 와당*, 탑비, 범종*, 향완* 등의 여러 장식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보색

보색 補色
complementary color(영)

색상이 다른 두 가지 색을 적당한 비율로 혼합한 결과 무채색이 될 때, 이 색들을 서로 보색 또는 여색(餘色)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서 빨강과 청록, 노랑과 청색, 녹색과 보라 등의 색깔은 서로 보색이 된다. 또 이들의 조합을 보색 대비(補色對比)라고 한다. 색상환(色相環)에서 서로 마주보는 위치에 놓인 색은 모두 보색 관계를 이루는데 이들을 배색하면 선명한 인상을 준다. 이는 눈의 망막상의 색신경이 어떤 색의 자극을 받으면 그 색의 보색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보테가

보테가 bottega(이)

이탈리아 중세 혹은 르네상스* 시대에 성립된 미술가들의 워크숍(workshop) 혹은 아틀리에*이다. 이탈리아어로 ‘가게’를 의미하며 공방*이라고 번역되기도 한다. 대규모 조직의 작업장인 보테가를 운영했던 대표적인 작가로는 르네상스의 기베르티Lorenzo Ghiberti(c.1378~1455)나 베로키오Verrocchio(c.1435~1488) 등이 있다. 한 명의 작가와 몇 명의 조수들로 구성된 보테가에서는 스승의 지휘하에 도제들도 함께 작업에 참가하여 예술작품을 제작했으며, 보테가는 그렇게 제작된 작품들을 전시, 판매하는 장소로 이용되기도 했다.

보티시즘

보티시즘 Vorticism(영)

소용돌이파로 번역되며, 영국에서 일어난 미래주의*와 입체주의*를 종합한 성격의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1914년 영국의 화가이자 소설가인 루이스Wyndham Lewis(1882~1957)가 주창하였으며, 잡지 《질풍:위대한 영국의 소용돌이에 대한 리뷰Blast:Review of Great English Vortex》 제1호의 간행과 동시에 발족하였다. 보티시즘이라는 용어는 이 잡지의 부제인 ‘소용돌이(vortex)’에서 비롯되었고, 기계와 에너지를 찬미하였다.
워즈워드Edward Wadsworth나 로버츠William Roberts(1895~1980), 봄버그David Bomberg(1890~1957) 같은 화가, 조각가로는 엡스타인Jacob Epstein(1880~1959)이 보티시즘에 참여하였으며, 문학에서는 미국의 시인 파운드Ezra Pound가 있었다. 파운드는 “소용돌이는 에너지의 최고점이며, 메커닉 가운데 가장 큰 효과를 나타낸다”고 주장하였다. 이처럼 소용돌이를 세계관의 상징으로 삼는 보티시즘의 역동적인 사고 방식은 전통적으로 정적인 영국의 예술계에 충격을 주었다. 이 그룹의 이념은 미래주의 문학과 사회이론 및 입체주의 이론에 바탕을 두었으며, 영국 전위미술* 운동의 한 분기점을 이루었다.
보티시즘은 제1차세계대전의 발발과 더불어 중단되었지만, 전후에 ‘X그룹’(1920년 결성)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단체에 의해 계속되었다. X그룹에는 루이스, 워즈워드, 로버츠 등 기존의 보티시즘 작가들과 런던 그룹*의 진보적인 회원이었던 기너Charles Ginner(1879~1952), 돕슨Frank Dobson(1886~1963), 코퍼Mcknight Kaufer(1890~1954) 등이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