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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공

익공 翼工

공포*(栱包)의 일종. 공포의 구조형식인 주심포*(柱心包), 다포*(多包), 익공(翼工)계의 세 가지 중에서 가장 간결하게 꾸며진 형식이다. 주심포의 변형으로, 기둥 위에 공포를 짜올리지 않고 끝이 소의 혀 모양으로 새겨진 부재를 설치하여 장식효과와 함께 보*를 지탱케하는 형식이다. 익공의 수에 따라 초익공(初翼工), 이익공(二翼工), 삼익공(三翼工)으로 나뉜다. 익공형식이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 확실치 않지만, 실제 익공계 형식을 사용하였던 가장 오래된 유구로는 강릉 〈오죽헌烏竹軒〉(1536)과 〈해운정海雲亭〉(1530) 등 조선 초기의 건물이 있다. 익공이라는 용어는 1796년(정조 20년)에 집필된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에 쓰여 있다. 익공계의 전형적인 형식은 경복궁, 창덕궁 등 궁궐내의 누정(樓亭)이나 행각(行閣) 및 부속건물, 침전(寢殿) 그리고 서원, 향교건물, 사찰의 부속건물 등 일반적으로 중요도가 낮은 소규모의 건물에 사용되었다.

익랑

익랑 翼廊 transept(영, 프)

십자형 교회의 팔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신랑*에 직각으로 위치하며 보통 성단소(聖壇所)와 애프스*와 구분된다.

→ ‘내진’ 도판 참조

익주명화록

익주명화록 益州名畵錄

3권으로 된 중국회화 품평서. 북송北宋의 황휴복黃休復(후앙 시어우후, 10세기말~11세기초)이 지은 것으로 《성도명화기成都名畵記》라고도 한다. 책 앞에는 경덕 2년(景德, 1005) 이전李畋(리 티앤)의 서(序)가 있다. 당唐 건원乾元 초(758)에서 북송 건덕 연간(乾德, 963~967)까지, 익주에서 본 화적(畵迹)을 기록하였는데, 특히 서촉西蜀 고찰의 벽화*가 많다. 각각 간략한 전기와 그림 및 예술작품에 대한 평을 서술하였다. 그림만 있고 이름은 없는 경우와 이름만 있고 그림은 남아 있지 않은 경우를 첨가하였다. 품평은 모두 58명의 화가를 일(逸), 신(神), 묘(妙), 능(能)의 사격(四格)으로 나누어 화가들의 예술적인 수준을 평가하였다. 묘격과 능격은 다시 상, 중, 하의 3품으로 나누어 세분하였다. 황휴복은 화가를 평함에 있어 일격을 가장 높은 품평 기준으로 삼아 문인화가의 심미관을 반영하고 있다. 일격은 법도나 색에 맞게 그리는 데 서투르며 필은 간략하나 형태가 갖추어져 있는데 저절로 얻어 본받을 수 없으며 뜻 밖에서 나온 것을 이른다. 이것은 ‘마음이 내키는 대로 하여 일정함이 없는 것을 일(逸)이라 한다’는 당시의 문인화론과 일치하는 미학사상이다.
신, 묘, 능이라는 회화비평기준은 당의 장회관張懷瓘(즈앙 후에이꾸완)이 처음으로 제시한 것이다. 그 뒤에 주경현朱景玄(주 징시앤, 9세기 전반기 활동)이 일격을 첨가하여 사격이라는 개념이 형성되었다. 이후 황휴복은 사격 중 일격이 가장 높은 품평 기준이라는 새로운 주장을 덧붙여 주목되었다. 아울러 황휴복이 기록한 이 책은 서촉의 회화예술과 화원(畵院) 연구에 관한 중요한 자료도 제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