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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화

산수화 山水畵

산과 강, 자연경관을 그리는 동양화의 한 분야. 동양에서는 산악을 신선이나 진귀한 짐승이 살고 있는 영적인 곳으로 인식하여 왔으므로 이미 진秦, 한漢 때부터 공예의장 등에 산수를 도식적, 관념적 문양으로 표현하는 것이 성행하였다.
자연 경관을 대상으로 하는 순수한 회화로서의 산수화는 육조(六朝)에 이르러서야 독립된 주제로 그려지기 시작하였다. 육조시대의 고개지顧愷之(꾸 카이즈, 344~406)는 도교의 선산(仙山)을 교리적으로 그렸으며, 종병宗炳(쫑 빙)은 기억 속의 산천을 즐겨 그렸다는 일화가 있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나무나 언덕, 특히 공간 표현은 여전히 고졸한 형태였다가 당대(唐代)의 이사훈李思訓(리 쓰쉰), 이소도李昭道(리 사오따오) 등에 의해 청록산수*의 화풍이 완성되었다. 때를 같이하여 오도자吳道子(우 따오쯔)가 수묵화* 기법으로 산수를 표현하는 이른바 ‘산수의 변화’를 일으켜 그 표현 방법이 한층 다양해졌다.
그후 오대(五代)의 형호荊浩(싱 하오), 이성李成(리 츠엉), 북송北宋 초기의 범관范寬(환 쿠완) 등으로 대표되는 화북계(華北系) 산수화와 동원董源(똥 위앤), 거연巨然(쥐 르안) 등이 중심인 강남산수*(江南山水)가 형성된다. 이들은 곽희郭熙(구어 시)에 의해 종합적인 이론으로 정립되었다. 명대(明代)의 동기창董基昌(똥 치츠앙, 1555~1636)은 그때까지의 산수화를 다시 남종화*와 북종화*로 나누고 남종화를 우위에 놓음으로써 남종화의 확립자인 원사대가*(元四大家)의 화풍이 중국은 물론 우리나라에도 오래도록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산신도

산신도 山神圖

산의 신령이라고 믿었던 호랑이를 신격화시켜 그린 불화*로서 산신각에 모셔진다. 산신은 민간신앙으로서 불교의 토착화 과정에서 흡수된 것들이다. 산신신앙은 중국에서도 수隋나라 때부터 시작하여 당唐나라 때 유행하였던 것 같다. 한국의 산신도는 조선후기에 많이 그려지는데, 도상은 기암절벽을 등지고 백발이 성성한 산신과 그 옆에 친근한 모습의 호랑이를 그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산업디자인

산업디자인 industrial design(영)

대량 분배를 지향하는 대규모로 제작된 공업, 산업 생산품의 디자인. 좁은 의미로는 공업 제품의 형태, 색채, 표면 처리 등의 미적, 조형적인 면부터 넓게는 상품과 인간의 보다 좋은 관계를 만드는 일까지 포함된다. 그 사상적 원류는 19세기말부터 20세기초에 걸쳐 모리스William Morris(1834~1896)에 의해 일어난 영국의 미술과 공예운동*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공업화 사회에 있어서 인간성의 부활을 주장한 이 운동은 1907년에 설립된 독일공작연맹Deutscher Werkbund으로 계승되었고, 바우하우스*를 거쳐 오늘날에도 세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산업디자인에서 또 하나의 커다란 흐름은 미국의 공업디자인이다. 이는 1930년 역사적 대공황 이후의 경제부흥 과정을 통해 사회에 정착되었던 것으로 대량판매 정책의 일환으로 공업디자인의 수법을 이용하는 입장이다. 기업활동과 공업 생산적 수법을 수용함으로써 인간과 공업활동 상호 관계를 개선하려고 하는 공업 디자인의 사상은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계생산된 상품의 디자인에 미학적인 성격을 적용함으로써 우선적 기준이 되는 실용성과 미적인 것을 결합하는 것을 의미한다. 소비품에서 외형은 산업 디자인이 지향해야 할 최우선 가치이며 따라서 외적 디자인의 우수성은 시장경쟁에서 가장 유리하게 작용한다.
미국에서는 ‘미국산업디자이너협회American Society of Industrial Designers’와 ‘산업디자이너협회Industrial Designer’s Institute’가 있어서 회원을 두고 운영되고 있다. 한편 영국에서는 런던의 왕립예술협회가 자격있는 전문가들을 ‘영국산업디자이너‘로 지명하며, 1944년 발족한 산업디자인 평의회는 산업디자인의 제작과 전시, 판매, 교육 등 전반을 주관하고 있다. 이 협회에는 창립 이후 지금까지 40여개국이 회원으로 가입하였다. 산업디자인은 세계 경제, 개인의 효용과 만족도, 예술과 기계공학 및 교육에까지 영향을 주고받고 있으며, 미적 성취보다도 경제적 활동에 더 많은 기여를 해왔다.

산치

산치 Sāncī(범)

인도 서부 마디야프라데시주의 동쪽 지방에 있는 불교 유적지로 슝가* 왕조의 수도였던 비디샤Vidiśā 근처에 있다. 약 90m 높이의 언덕 위에 세개의 스투파*와 기원전 3세기부터 서기 11~12세기에 걸쳐 제작된 많은 불탑*과 사당, 승원(비하라*)의 유구가 보존되어 있다.
제1탑의 동문 옆에는 주두*에 네 마리의 사자를 조각한 아쇼카왕Aśoka의 석주(石柱)*도 남아 있다. 산치 대탑(제1탑)은 기원전 3세기부터 서기 1세기까지 몇 차례에 걸쳐 만들어졌으며 현존하는 조각*은 서기 1세기 전반경의 작품이다. 기단부의 지름은 36.6m이고 스투파의 높이는 16.5m이다. 스투파의 주위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는 돌로 된 울타리(베디카*)를 둘렀으며 사방에는 전기 안드라 시대*에 만들어진 문(토라나*)이 있다. 이 4개의 문에는 불전이나 본생담*의 내용을 깊은 양각 기법으로 새긴 부조*가 장식되어 있다.
제2탑은 산치 대탑(제1탑)의 서쪽 조금 아래에 위치하며 기원전 2세기말 말와지방을 통치하던 슝가* 왕조에 의해 세워졌다. 이 스투파가 발굴되었을 때 돔* 안에서 불타의 양대 제자의 사리와 기원전 250년경 아쇼카왕이 소집했던 결집(結集)에 참석한 10대 성인(聖人)의 사리가 발견되었다. 토라나는 없지만 베디카가 보전되어 있고 여기에도 부조가 조각되어 있다.
제3탑은 대탑의 북쪽 약 45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베디카는 남아 있지 않지만 부조가 새겨진 남문이 남아 있으며, 이곳에서 불타의 2대 제자의 이름을 새긴 사리 용기가 발견되었다. 그 외에 이 언덕 위에는 굽타시대*에 속하는 제17사당 및 기둥 일부가 남아 있는 차이티야*(제18사당)가 남아 있으며 중앙에 뜰이 있는 사각형의 승원지(僧院地)도 여러 개 있다.

산화 안티몬

산화 안티몬 antimony oxide(영)

도자기의 기본적인 저화도(低火度) 유약*인 연유(鉛釉)에 있어서 황색을 내는 유독성 산화물(酸化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