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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구도

일각구도 一角構圖

산수화* 구도법의 하나. ‘변각구도(邊角構圖)’라고도 한다. 그림의 한 쪽 부분에 중요한 경물(景物)을 근경(近景)으로 부각시켜 포국*(布局)하는 구도법이다. 자연의 일부분을 잡아 요점적으로 간결하게 묘사할 때 활용된다. 전 시대와는 차별성있는 공간감각을 보여주는데, 화면의 한 쪽에 풍경을 배치함으로써 끝없는 조망을 열어준다. 즉 광활한 자연은 원경(遠景)으로 처리되거나 여백으로 남겨 넓은 공간과 서정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중국 남송南宋 시대에 유행했던 마하파* 화풍의 전형적인 특징 중 하나이다.

일러스트레이션

일러스트레이션 illustration(영)

삽화, 도해(圖解), 신문이나 잡지, 광고의 문장이나 내용을 보충하거나 강조해 주기 위한 목적으로 첨가되는 그림. 대중의 이해를 위해 텍스트와 함께 출판되는 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그림, 또는 어떤 특정한 용도를 위해 주문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그림을 말한다. 그러므로 일러스트레이션은 광고 기획의 아이디어를 완전히 소화하고, 작품에 강한 개성을 주며, 아이디어와 표현 기술이 일치하여 소구효과(訴求效果)를 발휘해야 한다. 일러스트레이션은 디자인이나 사진*에 의해 사실적, 상징적, 만화적, 도표적 등 각종의 표현 형식을 취하며, 또 아이 캐처의 연속 사용에 의한 효과, 색채에 의한 강조 등 광범한 표현 기술을 이용한다. 헬러Steven Heller와 탈라리코Lita Talarico는 일러스트레이션을 정의하기를 ‘페인팅이나 드로잉, 콜라주*, 각종 이미지의 형상들을 장식을 위해서 또는 글과의 다리 역할을 위해서 쓰이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일러스트레이션은 목적에 따라 크게 출판 일러스트레이션과 광고 일러스트레이션 두 분야로 나뉘며 대부분의 일러스트레이터는 이 둘 중 한 분야에서 일한다. 이것은 사실상 순수미술과는 구별되는 목적미술이다. 그 까닭은 그림 자체로서의 가치보다는 글의 내용과 연계되거나 광고를 위한 커뮤니케이션이 전제된, 출판을 위한 그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부분의 일러스트레이션은 글의 내용이나 주제의 단면을 상징적, 풍자적, 해학적, 또는 설명적으로, 때로는 장식적인 그림으로 목적에 따라 가시화시켜 글이나 문구와 함께 삽입하거나 책표지나 포스터 또는 광고를 위해 그려진다.

일루저니즘

일루저니즘 illusionism(영)

자연주의* 미술의 ‘환영성(幻影性)’을 뜻한다. 이차원적인 평면에 삼차원적인 착각을 불러 일으켜, 현실을 눈에 비치게 하는 것과 같은 시각적 효과를 낳게 하는 회화적 기법. 원근법*처럼, 그려진 것을 실재라고 생각하도록 눈을 속이는 회화 기법 혹은 건축이나 무대 장치에서 구조물을 실제보다 더 확대되어 보이도록 하는 수법을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트롱프뢰유*는 일루저니즘의 논리적 완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실감을 묘출하기 위해서는 명암법*, 원근법, 단축법* 등을 사용한다. 고대 및 르네상스 시대의 일루저니즘은 타일 마루의 형태나 모자이크*, 벽화*의 가상 프레임같은 디자인 인테리어에 많이 사용되었으며 쉽게 눈속임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회화에서 일루저니즘의 가장 뛰어난 사례는 로마 치기Chigi성의 페루치Baldassare Peruzzi의 벽화를 들 수 있는데, 이는 벽 너머를 마치 개방된 주랑 현관을 통해 보는 듯한 전망을 전개하였다. 그림 속의 대리석은 실제 대리석과 조화를 이루고 가상 기둥 위의 빛은 실제 창문을 통해 비치는 듯하여 하이라이트*를 교묘하게 만들고 있다. 만테냐Andrea Mantegna(1430~1506)에 의한 만투아Mantua의 천장화(1474년 완성)는 15세기의 원근법의 산물로서 바로크* 장식의 놀라운 일루저니즘의 전조라고 할 수 있다. 바로크 양식으로는 1690년 로마의 성 이그나티우스 교회의 안드레아 포초Andrea Pozzo(1642~1709)가 그린 천장화가 있다. 르네상스의 건축 역시 건물 외관상의 크기를 확대하기 위해 일루저니즘의 한 방법으로 원근법적 기법을 사용한 바 있다. 또한 일루저니즘은 17세기 네덜란드의 요지경 상자들을 만들거나 그림을 그리는 기법에 적용되기도 했는데, 이는 과학적 원근법의 원리를 엄격한 적용에 의한 눈속임을 통해 오락을 제공했다.

일루전

일루전 illusion(영)

환상, 착각, 망상 등의 의미이며, 본래는 실재하지 않는 형상을 마치 실재하는 것처럼 지각하는 작용 및 그 형상을 일컫는다. 일반적으로 예술이 창조해내는 세계가 다소 현실처럼 보이더라도 허구에 불과하다고 한다면 예술의 본질을 일루전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입장을 취하는 랑게Conrad Lange(1855~1921)는 예술의 창작에 있어서 그 목적인 미적 쾌감은 의식적인 자기 기만으로서 일루전의 유희에 바탕하고 있다고 주장하여 예술 환상설을 부르짖었다. 미술에서는 예술 작품을 볼 때 일어나는 심적 과정의 하나로 의식적인 자기 착각을 말한다. 회화*는 평면 위에 그린 것이지만 마치 실재의 사물에 있는 입체감, 원근감, 공간감이 그대로 나타나는 것은 일루전이 있기 때문이다.
원근법*에서는 가까운 것은 크게, 먼 것은 그만큼 작게 나타난다. 이러한 방법으로 화면에서 거리감을 만들어 마치 멀리 있는 듯한 느낌이 들게 착각을 일으키도록 하는 것이 일루전이다. 이러한 원근은 색채에도 있다. 이를테면, 노랑이나 주황, 그리고 빨강은 가깝게 보이고 푸른 색, 녹색, 보라색 등은 멀게 보인다. 이와 같이 색 자체에도 그 성질에 따라서 멀고 가까운 일루전이 있다. 또 명암에도 원근이 있어서 밝은 색조는 가깝고 어두운 색조는 멀게 느껴진다. 이와 같이 회화나 부조*에 있어서 여러가지 표현상의 조작에 의하여 보는 사람의 눈을 속여 마치 자연에 있는 입체감, 원근감, 실재감을 나타내는 것이 일루전이다.

일몽고

일몽고 一夢稿

조선후기 문인 이규상李圭象(1727~1799)의 만록(漫錄) 형식의 문집. 《일몽고》 중 <서가록書家錄> <화주록畵廚錄>에는 영, 정조시대의 화가들에 대한 열전(列傳) 형식의 서화비평이 실려 있다. <서가록>은 서예가에 대한 기록인데 윤순尹淳, 이광사李匡師 등과 같은 쟁쟁한 인물들의 글씨에 대해 비평하고 있다. 아울러 이인상李麟祥, 강세황姜世晃 등의 글씨와 그림에 대한 간략한 평이 실려 있다.
<화주록>에는 조영석趙榮祏, 정선鄭敾, 심사정沈師正, 유덕장柳德章, 이인상, 강세황 등 12명의 사대부 화가와 변상벽卞尙璧, 김홍도金弘道 등 9명에 대한 그림평이 제기되어 있다. 이규상은 화가들을 비평하면서 “그림의 세계에는 사대부 화가와 화원 화가가 있다. 이들의 그림과 기법은 각기 유화(儒畵)와 원화(院畵), 유법(儒法)과 원법(院法)으로 나눌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대개 화가는 두 파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세속에서 원법이라 일컫는 것으로, 곧 화원(畵員)이 나라에 이바지 하는 그림의 화법이다. 또 하나는 유법으로 신운(神韻)을 위주로 하여 필획의 가지런함과 성김을 돌보지 아니하고 화원(畵院)에서 그리는 그림과 다른 것이 대체로 유화에 해당한다.
원화의 폐단은 신채(神彩)의 드러남 없이 진흙으로 빚어놓은 것 같다는 점이며, 유화의 폐단은 모호하고 거칠고 난잡하며 간혹 먹의 운용이 서툰 탓으로 필획이 두터우며 지면이 온통 새까맣게 되기도 한다는 점이다”라는 주장으로 요약된다. 이러한 주장은 의장(意匠)을 기초로 한 신운의 획득을 중시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규상은 동시대 사대부 화가 중 조영석을 당대의 최고화가로 평가하였는데, 그 이유는 “원법을 갖고 유화의 정채함을 제대로 펴낼 수 있었다”는 점에 있다.

일본 고분시대 미술

일본 고분시대 미술 日本古墳時代美術

→ 일본 선사시대 미술

일본 선사시대 미술

일본 선사시대 미술 日本先史時代美術

선사시대라는 말은 일본에서 조형적 유품이 최초로 모습을 보이는 조몽繩文시대부터 야요이彌生시대를 거쳐 고분시대까지를 총칭하는 의미로 사용한다. 조몽시대의 연대는 불분명하나 기원전 3~2세기에서 그 이전의 수천 년에 이르는 시기로 보고 있다. 조몽시대인들은 수렵을 중심으로 어로나 식물의 채집으로 생활했고, 도구로는 자연석을 쪼아 다듬은 석부(石斧) 등을 사용하였다. 용기로는 승문(繩文)이나 자라 무늬가 있는 승문토기(繩文土器)를 사용하였다. 한편 주거에는 수혈주거(竪穴住居), 평지주거(平地住居)가 있었고 동굴도 이용되었다. 고분이 발생하는 서기 4세기까지의 500~600년간을 야요이시대라고 부른다.
이 시대에는 중국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서 사회생활이 진보하였다. 야요이 시대의 토기*는 조몽시대에 비하여 장식도 간단하고 실재적인 형태로 만든 것이 많다. 기라코(唐古)라는 촌락에서는 선각문양이 새겨진 토기들이 발굴되었는데,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주제는 동물들이다. 그리고 팔을 번쩍 들거나 배를 젓는 인간들도 표현되어 있다. 전반적으로 보면 화면 구성이라는 개념이 없는 즉흥적으로 구성된 느낌을 주고 있다. 또한 금속 공예의 기술이 발전하여 동검(銅劍), 동경(銅鏡), 동탁(銅鐸) 등이 청동으로 주조되었다.
야요이 문화기의 촌락에서 권력은 점차 가장 힘센 사람들에게로 집중되었는데, 이러한 사회적 변화를 보여주는 예는 사자(死者)를 묻은 거대한 고분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 중 가장 연대가 이른 것은 서기 3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하니와’라는 토우들이 이 분묘를 에워싸도록 배열되었다. 하니와 중에는 무인(武人), 악인(樂人), 농부 등을 표현한 것들이 있는데, 표정이 매우 풍부하다. 5, 6세기 분묘들은 벽화들로 장식되었는데, 이러한 벽화고분들은 한반도와 가까운 규슈九州 지방에만 한정되었다. 지금까지 72개의 벽화고분이 발견되었으며 벽화*는 대개 현실(玄室)과 전실(前室)의 돌벽에 그려졌다. 고분의 벽화는 적(赤), 흑(黑), 황(黃), 녹(綠) 등의 광물성 안료로 사람이나 말, 개 등의 동물, 큰 칼, 배 등의 물건들, 그리고 원, 삼각형, 고사리문과 같은 추상적 도형을 그렸다. 가장 대표적인 벽화고분은 오쓰카王塚와 다케하라竹原촌의 다케하라 고분들이다. 고분출토 공예품에는 관옥(菅玉), 소옥(小玉) 등의 옥공예품과 관모冠帽, 금동 신발, 귀고리 등의 금속공예품들이 있다.

일본미술원

일본미술원 日本美術院

→ ‘도쿄화단’ 참조

일필서

일필서 一筆書
i-pi-shu(중)

서체*의 일종. 후한後漢 장지張芝(즈앙 즈)가 창시했다는 서체로, 문자를 한 붓으로 연결해서 쓴 것. 양梁의 소자량蕭子良(샤오 쯔리앙)이 쓴 《전예문체 篆隸文體》에서 실례를 볼 수 있다. 양의 유원위庾元威(위 위앤웨이)가 쓴 《논서論書》의 <십첩백체병풍十牒百體屛風> 가운데 일필전(一筆篆), 일필예(一筆隸)가 있다. 육조(六朝)의 귀족들 사이에서는 유희적으로 행해졌다. 동진東晋 왕헌지王獻之(우앙 시앤즈)의 《십이월첩十二月帖》 《중추첩中秋帖》, 당唐 장욱張旭(즈앙 쉬)의 《추심첩秋深帖》, 북송北宋 미불米芾(미 후, 1051~1107)의 《장계명첩張季明帖》 등에 일행일필(一行一筆)로 쓰여진 부분이 일필서의 풍습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