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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르레알리슴

쉬르레알리슴 Surréalisme(프)

→ 초현실주의

쉬포르 쉬르파스

쉬포르 쉬르파스 Support-Surface(프)

1970년대에 프랑스에서 결성된 전위적 미술단체, 때로는 그 기법을 가리키기도 한다. 주요 작가들로는 데바드Marc Devade, 칸Louis Cane, 비울레Vincent Bioulès, 드죄즈Daniel Dezeuze, 비알라Claude Viallat, 세이투르Patrick Saytour 등이며, 비평가 플레네Marcelin Pleynet가 이론적으로 뒷받침하였다. 쉬포르는 ‘버팀(支柱)’ 즉 회화에서의 지지체를 뜻하고, ‘표면’이라는 말인 쉬르파스는 화면을 지칭하는 것으로 회화 캔버스*에 대한 상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들은 ‘그림 그리는 것은 아직도 가능하다. 다만 회화적 방법의 개조가 필요할 뿐이다’라고 강조하면서 구조에의 새로운 탐구, 신사실주의*와 같은 반예술*적인 전위주의의 추방, 모든 미술이 파리에 집중되는 경향의 분쇄 등을 구체적인 목표로 내세워 회화로 실천하고 있다. 회화를 인식의 대상으로 대하기 이전에 먼저 회화를 둘러싸고 있는 상업적 또는 회화에 개입된 불순한 요소들을 제거하려고 노력하였다. “회화를 혁신하고 혁명을 그리는 것”이라는 데바드의 표현에서 드러나듯이, 이들은 마르크시즘과 모택동의 유물론적 변증법까지 원용하여 회화에서 정치, 경제적 시스템을 혁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1968년 프랑스 5월혁명 전후의 사상적 동향(마르크스와 프로이트로의 회귀)에 대한 예민한 반응의 한 예로 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회화를 신화화하는 서명, 제작일자, 제목 등도 일체 포기해 화포의 중성적인 성격을 오브제*화하고 있다. 이들은 캔버스의 나무틀을 떼내어 버림으로써 종래의 화포에 대한 고정 관념을 바꾸었다. 한 장의 물질적인 천이 지지체인 동시에 표면임을 확인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틀이 없는 물질로서의 화포를 장대로 받치거나 상 위에 펼치거나 직물처럼 접어서 개어 놓음으로써 회화와 직물 도안과의 구별을 모호하게 만들었다. 특히 비알라의 경우에는 섬유의 종사와 횡사의 틈 사이가 확대된 망을 사용한다든지 혹은 그 구성요소인 실의 차원으로까지 해체시켜 천의 물질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쉬포르 쉬르파스가 미술 오브제를 회복시켜 놓은 것은 개념미술*에 대한 반동이라 할 수 있으며, 정치적 편향성을 지닌 작가들이 미술작품 대신 선전 선동(demonstration)으로 치우치는 것에 대한 반발이기도 하다.
쉬포르 쉬르파스의 이론이 복잡한 것에 비해 작품은 비정치적이고, 단순하며 온화하고 장식적인 추상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미술작품을 화랑과 미술관에서 안이하게 관찰하는 ‘고고학적 태도’에서부터 시대와 장소의 상황에 밀착하여 보는 ‘보편적 위상 수학’으로 옮길 것을 주장하면서 사회적 현실을 이야기하고, 다른 한편으로 회화 요소의 물질성을 강조하는 두 입장은 결과적으로 이 그룹의 이론적 대립을 심화시켰고, <쉬포르 쉬르파스>라는 명칭의 전시회가 1972년 제4회를 끝으로 막을 내리게 된 원인이 되었다.
유물론에 의한 급속한 이론화를 추진했던 칸, 데바드, 드죄즈의 성향과 비알라, 세이투르 등의 반이데올로기적 태도가 필연적인 분열을 야기한 것이다. 이들은 마르크시즘적 입장으로부터도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그들의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대한 이해가 표면적일 뿐 아니라, 이들이 계급투쟁의 직접적인 기치가 될 예술작품을 제작하기보다 무계층 미술이라는 부르주아 이념 하에 활동했기 때문이었다. 이들의 작업은 물질적 형태로의 환원을 기도한다는 점에서 회화의 시각적 형태로의 환원이라는 미국의 형식주의*적 강령을 거역한다는 일단의 특징을 찾을 수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미니멀 아트*의 프랑스적 전개의 한 양상으로 볼 수도 있다.

쉬프레마티슴

쉬프레마티슴 Suprematism(프)

→ 절대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