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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라-세나시대 미술

팔라-세나시대 미술 Pāla-Sena Period Art(영)

팔라 왕조와 세나 왕조는 750년부터 1200년까지 인도 동부의 비하르Bihar와 벵골Bengal 지역을 지배했다. 북인도에서 불교는 백훈족의 침입 이후 7세기 무렵에는 거의 쇠퇴하였으나 이 지역에서만 불교가 중요한 세력으로 남아 있었다.
따라서 팔라-세나 왕조의 후원 아래 불교 미술*이 성행했다. 팔라 시대의 불교는 대승불교의 마지막 단계라고 할 수 있는 밀교(탄트리즘)였다. 밀교는 힌두교적인 요소들을 많이 받아들여 기존의 불교와는 성격이 달라졌다. ‘금강승(金剛乘, Vajrayana)’이라고 부르는 이 불교는 관련된 미술 형식과 함께 8~9세기에 티베트*와 네팔로 전해졌다.
이 시대 불교 미술의 중심지는 유명한 불교 대학이 있던 비하르의 날란다Nalanda이다. 방형(方形)의 승원(僧院, 비하라*)들이 서로 붙어 있는데 각각의 승원들은 중앙에 뜰이 있고 사면에 방들이 설치된 동일한 구조이다. 스투파*는 굽타 시대*의 건축 형식을 유지하고 있으며 스투파에서 볼 수 있는 부조*된 스투코* 소상(小像)들은 굽타 시대 사르나트*의 조각*을 복제한 양식*이다. 벵골 동부(현 방글라데시)의 파하르푸르Pāhārpur에 있는 대탑은 이 시대 불교 건조물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
팔라-세나 시대의 조각은 단단한 흑색 돌로 된 상들이 많은데 이 조각상들은 모두 정교하게 세부를 표현하고 있다. 또한 날란다 등지에서는 많은 청동상들이 발견되었다. 이러한 청동상들은 아시아 각지로 수출되어 네팔과 티베트, 카슈미르*의 금속 조각 제작에 영향을 주었다. 회화로는 7~8cm 길이의 종려나무 잎 위에 화려한 채색을 사용하여 그린 불교 경전 삽화가 있다. 팔라의 불교회화 양식은 네팔과 티베트에 전해져 그곳의 독특한 회화 양식 형성에 기여하였다.
데칸 지방에서 발흥한 세나 왕조는 팔라 왕조를 계승하여 11세기 후반부터 벵골 지역을 통치하였다. 11~12세기에 벵골 지역에서는 힌두교, 특히 비슈누*신을 섬기는 종파가 성행하여 힌두교 미술*도 발달하였다. 세나 왕조는 12세기말 이슬람교도의 침입을 받아 멸망하였다.

팔라디오식 요소

팔라디오식 요소 Palladian element(영)

팔라디오Andrea Palladio에 의한 비센차Vicenza의 바실리카*를 명백히 나타내는 아치*와 기둥의 조합에 대해 프랑스인이 부여한 명칭. 이러한 배치는 기둥 위에 올려진 아치가 개구부를 이루고 기둥의 엔타블러처*가 측면의 좁은 개구부의 인방보로 쓰이고 있다. 팔라디오의 바실리카에서 이러한 세개의 개구부는 더 큰 주범에 의해 형성되는 베이(bay, 기둥과 기둥 사이)로 에워싸인다.

팔라디오주의

팔라디오주의 Palladianism(영)

1715년경부터 18세기 말엽까지 지속된 영국의 주택건축물 양식. 팔라디오주의는 영국 바로크* 건축물의 과도한 장식에 대한 반동으로 생겼으며, 이탈리아의 건축가이자 사상가인 팔라디오Andrea Palladio(1508~1580) 및 그의 추종자인 영국의 존스Inigo Jones(1573~1652)의 건축물과 사상 속에 내재한 고전적 순수함을 되찾으려 했다. 바로크의 인위적인 감각적 요소를 ‘지성적인’ 고전적 자연스러움으로 바꾸려 하였다.
팔라디오주의는 팔라디오가 해석한 비트루비우스Vitruvius의 글에서 시작되기는 했으나, 당대의 외국의 영향 특히 프랑스, 네덜란드 및 이탈리아의 바로크를 거부하면서, 영국 르네상스* 건축의 시조인 존스를 회고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는 국민적인 운동이었다.
캠프벨Colen Campbell과 아마추어 건축가 벌링턴 경Lord Burlington은 팔라디오주의의 실제적인 선구자였다. 캠프벨은 런던 근처의 웬스테드 하우스Wanstead House를 1714년에 설계했으며, 벌링턴은 치즈윅 하우스Chiswick House(c.1723~1729)를 설계하였는데, 팔라디오의 빌라 로톤다Villa Rotonda를 바탕으로 하였다.
이들 외에도 윌리엄 캔트William Kent(1734년에 노포크Norfolk에 위치한 홀크햄 홀Holkham Hall을 건축하기 시작), 프리트크로프트Henry Flitcroft(1733년경 남부 요크셔South Yorkshire의 웬트워드 우드하우스Wentworth Woodhouse를 건축하기 시작), 웨어Isaac Ware(1754년 허트포드셔Hertfordshire의 로덤 파크Wrotham Park 건축) 등이 있다. 18세기 중반 경 베네토Veneto에서 일어난 팔라디오 사상의 부흥으로, 교회건축 및 주거건축이 영향을 받았으며, 이후 영국 팔라디오 주의는 북미로도 전파되었다.

팔라바왕조 미술

팔라바왕조 미술 Pallava Dynasty Art(영)

인도 남부의 타밀 지역을 통치한 팔라바 왕조는 7세기초부터 9세기초까지 수도인 칸치푸람Kanchipuram을 중심으로 힌두교 미술*을 발전시켰다. 팔라바 왕조는 남방 형식의 힌두 사원*을 만들었으며 이 전통은 계속 이어졌다.
7세기초부터 타밀 지역에서는 팔라바 왕조의 후원 아래 높은 수준의 석조 예술이 발달하였다. 만다가파투Mandagappattu의 석굴 사원은 왕조 초기에 만들어진 예이다. 마드라스 부근의 마말라푸람Māmallapuram(현 마하발리푸람)에는 바라하Varaha 석굴, 5개의 라타rathas 성소(‘다르마라자’ ‘비마’ ‘아르주나’ ‘드라우파디’ ‘나쿨라-사하데바’) 등 많은 건축물이 만들어졌으며 〈강가*Gangà의 강하(降下)〉라는 거대한 암각 부조*도 유명하다. 또한 돌을 쌓아 만든 칸치푸람의 〈카일라사나타Kailasanatha 사원〉(8세기)도 중요한데, 이 사원의 문은 남인도 사원 형식에서 중요한 고푸라(gopura, 문)의 초기 형태를 잘 보여 준다.
활발하던 팔라바 왕조의 조형 활동도 9세기 초부터는 쇠퇴하였으며 새로이 흥기한 촐라 왕조*에 정복되었다.

팔라초

팔라초 palazzo(이)

중세 이탈리아의 도시국가 시대에 건립된 정청(政廳)이나 규모가 큰 귀족의 개인 저택. 라틴어의 팔라티움(palatium)에서 파생된 말로, 고대 로마 시대에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팔라티노스에 궁전을 건축한 데에서 시작되어 일반적으로 대규모의 주택 형식(왕궁, 궁전)을 가리키는 용어가 되었다. 특히 이탈리아 르네상스*기에 이르러 이 용어는 범위가 확대되어 부유한 시민의 대저택까지 가리키는 건축 양식의 중요한 분야가 되었다.

팔레스트라

팔레스트라 palestra(그)

고대 그리스의 레슬링이나 육상 훈련장으로 쓰였던 공공 장소, 체육관.

팔레트

팔레트 palette(영)

회화용 도구. 그림물감을 늘어놓고 색깔을 확인하거나 거기서 색깔을 서로 섞기 위해 만든 판. 이집트에서 팔레트는 안료, 화장료 등을 조제하기 위한 석판을 의미했으며, 대개 편암(片岩)이나 점판암제(粘板岩製)로 되어있다. 이집트에서는 예부터 독충이나 햇빛으로부터 눈을 보호하면서 화장을 겸해 공작석을 부셔서 갠 후 눈 주위에 바르는 풍습이 있었기 때문에 팔레트가 필요하게 되었다.
근대 이후 유럽 회화에서 팔레트는 엄지손가락이 들어갈 만한 구멍이 뚫린 타원형이나 사각형의 평평한 나무판을 의미하는데, 경우에 따라 유리판 혹은 도자기나 에나멜*로 처리된 금속제 용기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한편 화가들이 사용하는 색채들의 범위와 이 색채들을 정돈하는 화가 나름의 방식도 팔레트라 불린다.
‘제한된 팔레트(restricted palette)’라는 말은 화가들이 활용할 수 있는 것을 스스로 제한한 색채의 범위를 의미하고, ‘등급 지워진 팔레트(scaled palette)’는 제한된 숫자의 도료를 체계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선별해 둔 것을 의미하는데, 미술가는 등급 지워진 팔레트에서 일정한 원리에 의해 색깔들을 혼합함으로써 원하는 농도와 색상을 얻게 된다.

팔메트

팔메트 palmette, honeysuckle(영)

종려나무의 잎을 부채꼴로 편 것 같은 동방 기원의 식물문양으로, 일본인 이토추타伊東忠太가 ‘인동문(忍冬文)’으로 번역하여 인동문이라고도 하나, 인동덩굴에서 기원된 문양이 아니므로 인동문이라고 부르기보다는 팔메트가 더욱 정확한 용어라고 할 수 있다.
원형은 기원전 16세기 이집트*의 로터스 문양으로 그리스의 아칸서스*가 팔메트로 바뀐 것이다. 아시리아나 신바빌로니아 궁전의 벽면 장식 등에서 보이며 아케메네스 왕조*의 페르시아에서도 사용되었다. 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원정으로 인도, 중국에까지 퍼지게 되었다.
그리스에서 만곡된 덩굴문과 결합된 팔메트당초문은 이후 서아시아를 거쳐 불교미술과 결합하여 중국에 전해지면서 애용되었다. 중국에는 운강 석굴*을 비롯하여 육조(六朝)시대의 석굴사원 등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한국에서도 삼국시대부터 고분벽화나 금속공예품, 와전* 등에 나타난다.

팔부중

팔부중 八部衆

부처가 설법할 때 항상 따라다니며 불법을 수호하는 여덟 종류의 신장상(神將像). ‘팔부신장(八部神將)’ ‘팔부신중(八部神衆)’ ‘천룡팔부(天龍八部)’ ‘용신팔부(龍神八部)’ 등으로 부르며, 약칭하여 팔부(八部)라고도 한다. 팔부중은 《법화경法華經》 《화엄경華嚴經》 《무량수경無量壽經》 《대반야경大般若經》 등의 대승경전에서 항상 법회자리를 수호하는 신중으로 등장하는데, 원래는 인도의 토속신으로, 불교에 수용되어 불법과 불국토를 수호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팔부중은 경전의 내용에 따라 다른데 《법화경》에는 ‘불타팔부중’이라고 부르는 이들의 명칭이 천(天), 용*(龍), 야차*(夜叉), 건달바*(乾達婆), 아수라*(阿修羅), 가루라*(迦樓羅), 긴나라*(緊那羅), 마후라가(摩睺羅迦)라고 서술해 놓았다. 사천왕 팔부중은 건달바, 비사사(毘舍闍), 구반다(鳩盤多), 사리다, 용, 부단나(富單那), 야차, 나찰(羅刹) 등을 말한다. 팔부중상은 고대 인도 신들의 모습에서 서역을 거쳐 중국과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점차 투구와 갑옷을 입은 무장상으로 정형화되었다.
한국의 팔부중상은 보통 무장형으로 자세나 지물*에 일정한 규범이 없이 석탑의 기단부나 불화* 등에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통일신라시대의 〈석굴암 팔부중상〉이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다.

팔상도

팔상도 八相圖

석가모니의 일생을 8장면으로 압축하여 묘사한 그림. ‘석가팔상(釋迦八相)’ ‘팔상성도(八相成道)’라고도 한다. 인도에서는 기원전 2세기경에 이미 석가모니의 생애를 묘사한 불전도*가 성립하였는데, 그 내용은 출생(出生), 성도(成道), 전법륜(轉法輪), 열반(涅槃)의 사상(四相)과 탁태(托胎), 출유(出遊), 출가(出家), 항마(降魔)로 모두 합쳐 팔상이라고 한다.
한국의 팔상도는 《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을 기본으로 하여 제작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1447년에 제작된 《석보상절釋譜詳節》의 목판 팔상도가 가장 오래되었으며, 《월인석보月印釋譜》(1568) 《석씨원류응화사적釋氏源流應化事蹟》(1673)의 목판팔상도도 있다. 조선후기의 팔상도는 공통적으로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 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 녹원전법상(鹿苑轉法相),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이라는 팔상의 명칭이 있다. 일반적으로 팔상도는 사찰의 팔상전(八相殿)이나 영산전(靈山殿)에 봉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