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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광파

외광파 外光派
Pleinairisme(프)

넓은 의미로는 19세기 프랑스 회화사에 등장하는 호칭으로서 아틀리에의 인공 조명을 거부하고 실외의 직접적인 빛을 받으며 습작뿐만 아니라 유화까지도 제작하려는 태도, 또는 그러한 태도를 취하는 화가를 지칭한다. 그러므로 주제는 필연적으로 풍경화가 많다. 특정의 유파를 가리키는 경우엔 인상주의*가 이에 해당한다. 넓은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때는 실외의 공기와 자연광선에 의한 회화적 효과를 표현하기 위하여 야외에서 그리는 화가들을 가리킨다. 19세기 중기까지 풍경화는 야외에서 모티브*를 취하여 화실에서 마지막 손질을 가해 완성하는 것이 통례였다. 따라서 이들의 작품은 전반적으로 다갈색을 기초로 한 어두운 화면을 지니고 있다.
19세기의 영국 화가 콘스터블John Constable(1776~1837), 터너William Turner(1775~1851)는 아틀리에*에서 야외로 나와 자연 광선에 의한 풍경의 변화하는 양태를 밝은 색채를 써서 직접 그리기 시작하여 외광파의 선구자가 되었다. 이탈리아에서는 역시 19세기 중반 마키아파(Macchiaioli)의 화가들, 프랑스에서는 인상주의 화가들 사이에 선행하여 퐁텐블로파*의 화가들, 즉 드비니나 네덜란드의 용킨트가 이 부류에 해당한다. 드비니는 수면에서 교차하는 빛을 잡기 위하여 강에 띄운 배 위에서 제작했는데, 이러한 제작 태도가 후에 마네Édouard Manet(1832~1883), 피사로Camille Pissaro(1830~1903), 시슬리Alfred Sisley(1839~1899), 모네Claude Monet(1840~1926) 등 인상주의의 화가들에 의해 채용되었다. 인상주의와 대립하는 입장에 있었던 관전파官展派의 아카데믹한 화가들 중에서도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아 야외에서 제작한 화가들이 있었는데, 이들을 인상주의의 아류라는 의미에서 외광파라고 부른 적도 있다.

외수화

외수화 畏獸畵
wei-shou-hua(중)

재앙이나 악귀를 쫓을 목적으로 괴수(怪獸)의 형상을 몸체까지 모두 표현한 그림을 일컫는다. 진晋의 곽박郭璞이 《산해경山海經》 〈북산경北山經〉에서 맹괴孟槐를 설명하기를, 벽사(辟邪)를 위한 외수화(畏獸畵)로 그려졌다고 하였고 이외에도 《산해경》중의 박駁, 효囂, 강량彊良이 외수화로 묘사되었다고 언급되어 있다. 또한 당唐의 장언원張彦遠(즈앙 이애위앤, 815~875경)이 찬(贊)한 《역대명화기歷代名畵記》 권5 중에 진의 명화가인 왕이王廙(우앙 이)가 외수화를 그렸다는 기록이 있어서 비롯된 말이다. 외수화는 전국말(戰國末)~한대(漢代)에 걸쳐 성행했던 귀신숭배와 귀신제사에 기인한 것으로, 《사기史記》 <봉선서封禪書>와 《초사楚辭》 <천문天問> 등의 기록을 보면, 당시에 궁(宮)과 사당에 각종각양의 여러 귀신그림이 그려져 신앙시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다양한 귀신의 형상은 전설 속의 전쟁신인 치우신(蚩尤神)에 대한 신앙이 대두됨에 따라 후한대(後漢代)에 치우신의 형상으로 정리통합되었다. 즉 입을 크게 벌린 맹수의 얼굴과 3~4개의 발가락을 지니고 갈기를 날리며 직립한 괴수의 형상으로 전형화되어 귀면문*(鬼面文)처럼 벽사 목적으로 ‘외수화’라는 일정한 회화장르를 형성했고 고분벽화나 공예품, 공현(鞏縣)석굴*과 같은 불교석굴에도 조각되었다.
외수화가 표현된 현존유물로는 후한後漢 말의 기남沂南 화상석묘, 무량사武梁祠 등의 여러 화상석*, 화상전*묘와 523년의 북위北魏 풍옹처원씨馮邕妻元氏 묘지(墓誌)와 524년의 북위 원소元昭 묘지*, 526년경의 소굉蕭宏의 묘지석을 비롯한 남북조(南北朝) 석각예술, 돈황*敦煌 249, 285굴 등의 벽화, 공현석굴* 1굴 등에 남아 있다. 한국에서도 고구려 고분벽화 중에 통구사신총通溝四神塚과 오회분五盔墳 4, 5호묘, 신라의 식리총飾履塚 출토 금동식리(金銅飾履)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