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슈지(紙)
아르슈지(紙) arches(프)
프랑스제 수채화 종이. 여러 종류가 있으며, 부드럽고 흡수성이 좋아 붓의 촉감이 잘 나타나는 특성이 있다. 아르슈는 보주 지방의 도시이름이며 15세기경부터 제지 산업이 시작된 곳이다.
아르슈지(紙) arches(프)
프랑스제 수채화 종이. 여러 종류가 있으며, 부드럽고 흡수성이 좋아 붓의 촉감이 잘 나타나는 특성이 있다. 아르슈는 보주 지방의 도시이름이며 15세기경부터 제지 산업이 시작된 곳이다.
아르카익 미술 Archaic Art(영)
‘고식의’ ‘더 낡은’ ‘태초의’라는 뜻의 그리스어 ‘아르카이오스(archaios)’에서 유래됐다.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로마네스크* 미술 등에서 발전의 초기 단계를 이루는 생경하고 미숙한 표현양식을 가리키기도 하나, 특히 기원전 8세기말부터 기원전 480년경에 이르는 그리스 초기의 미술을 말한다. 이 시대의 양식은 건축과 회화보다는 소아시아, 이집트의 영향을 받은 조상, 즉 쿠로스*Kouros라 불리는 남자 조상과 코레*Korai라 통칭되는 여자 조상에서 그 특성이 잘 드러난다. 입술 끝을 살짝 위로 향하게 하고 볼을 뾰족이 내민 특유의 표정, 일명 ‘아르카익의 미소‘로 친밀감과 신비함을 준다. 이 상들은 정면성이 강해 조각적인 깊이감은 다소 부족하지만, 단순 직립형에서 유기적인 인체 표현으로, 직선적이고 투박한 옷주름에서 인체를 우아하게 드러내는 부드러운 표현 등으로 이행하는 과정을 잘 나타내고 있다.
아르카익 미술은 그리스 각지에서 볼 수 있는데, 특히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에서는 파르테논 이전의 신전을 장식한 것으로 보이는 많은 박공군상(牔栱群像) 조각들이 발굴되고 있다. 이 조각들은 기술적으로는 그리스 조각의 고전기 작품에는 미치지 못하나 꾸밈없고 맑은 정신성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기원전 6세기 말경부터 그리스 조각은 보다 자유롭고 풍부한 인체의 변화를 지향하게 되어 형태상의 구속이 강한 아르카익 조각의 특성은 사라지게 된다. 미술사에 있어서 이 ‘아르카익’이란 표현은 일반적으로 성숙기 이전의 치졸하고 미숙한 시기의 양식을 말한다. 즉 아르카익-클래식*-바로크*로 이어지는 양식 전개도식의 한 개념으로 사용되는 것이다. 아르카익 양식을 의도적으로 모방한 의고적(擬古的)인 양식을 아르카이즘(Archaism)이라 한다.
아르테 포베라 Arte Povera(이)
‘가난한’ ‘빈약한’ 미술이라는 의미이며 이탈리아의 비평가 첼란트Germano Celant가 1967년에 만든 용어로, 대개 지극히 일상적인 재료를 사용한 삼차원적 미술을 말한다. 모래, 시멘트, 나뭇가지 등 구체적인 사물들을 가능하면 손질을 최소화하여 배치하면서 자연, 초자연, 언어, 역사 등에 대한 작가의 사색과 성찰을 은유적인 이미지를 통해 나타낸다.
아르테 포베라에는 안셀모Giovanni Anselmo, 보에티Alighiero Boetti, 파브로Luciano Pabro, 쿠넬리스Jannis Kounellis, 메르츠Mario Merz(1925~ ), 페노네Giuseppe Penone, 피스톨레토Michelangelo Pistoletto, 조리오Gilberto Zorio 등이 참여하였으며, 그 용어는 주로 이탈리아 미술에 국한되어 사용되지만 사실상 보이스Joseph Beuys(1921~1986), 하케Hans Haacke(1936~ ), 헤세Eva Hesse, 모리스Robert Morris(1931~ ) 같은 과정미술* 작가들이나 안드레Carl Andre(1935~ ), 세라Richard Serra(1939~ ) 등의 작업들도 포함시킬 수 있는, 지역성을 뛰어 넘는 국제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
아르테 포베라는 빈곤한 재료와 수법을 통해서 일면으로는 서구문화로부터 소외된 주변 문화와 빈곤한 제3세계를 대변하는 측면도 있으며, 경쟁과 상업성을 피하면서 관객의 참여를 촉진하려고 한다. 지나친 변형을 가하지 않은 채 사용하는 재료(단련된 납판, 유리, 식물, 천, 바위, 점토 등)는 지배적인 미학적 표준과 문화적인 제도를 붕괴하기 위한 급진적인 실험 도구가 되며, 관람자는 단순히 조립된 오브제에 지나지 않는 형태에 직면함으로써, 개념적인 이해가 아닌 감각적인 방식으로 매스, 힘, 움직임이 이루는 긴장을 인식하게 된다.
아르티장 artisan(프)
직인(職人), 장인(匠人)의 뜻으로 미술 작품 제작 기술이 뛰어난 사람을 말한다. 예술 작품 제작에 있어서 기술은 중요한 부분이지만 ‘아티스트’에 대하여 상대적으로 창조성이나 독창성이 부족하고 기술적으로 능숙한 솜씨만을 소유한 자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아마라바티 미술 Amarāvat(Amaravati) Art
안드라 지방은 간다라*, 마투라*와 더불어 기원전 1세기부터 서기 4세기 초까지 인도 불교 미술의 중심지였다. 안드라* 왕조의 중심 도시인 아마라바티의 이름을 따서 아마라바티 미술이라고 부른다. 아마라바티 미술의 주요한 유적지는 간타살라Ghantāśāla, 자가야페타Jaggayyapeta(산치*나 바르후트* 양식과 연관됨), 나가르주나콘다Nāgārjunakonda, 골리Goli, 아마라바티 등이다. 아마라바티의 대탑(大塔)은 기원전 200년경에 처음 건립되었으나 서기 2세기에는 더욱 확장되고 장엄해졌다.
이 스투파*는 벽돌과 흙으로 된 단순한 돔* 형태였으나 조사 당시인 19세기에는 이미 파괴되어 원래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지만 후기 안드라 시대 유적에서 발견된 부조*판을 보면 스투파의 사방에 단이 있고 그 위에 다섯 개씩의 기둥(아야카āyaka, 석주*)이 세워져 있으며 아래쪽에는 불타의 상징*들이 새겨져 있다. 스투파의 기단부나 울타리, 울타리를 연결하는 기둥들에도 본생도*나 불전도*, 불상*들이 조각*되어 있다.
아마라바티 조각의 특징은 팔과 다리를 가늘고 길게 표현한다는 것이다. 또한 인물들을 자주 겹치게 하고 부조를 깊이 파서 배경을 무대처럼 만들기도 하며 단축법*을 능숙하게 사용하였다. 나가르주나콘다에서 나온 전투 장면 부조는 이러한 특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4세기경 안드라 왕조가 멸망할 무렵 아마라바티의 불교 미술*도 쇠퇴했다.
아말라카 āmalaka(범)
북방 형식 힌두 사원*의 시카라* 정상부에 올려지는 연꽃 모양의 장식이다. 납작하게 눌린 원형으로, 원형의 표면에는 세로로 홈이 파여져 있다. 이 장식 모티브*는 시카라의 네 모서리에서 각 단을 구분하고 있는 부미(bhumis)의 형태와 유사하다.
→ ‘시카라’ ‘힌두 사원’ 참조
아모리 쇼 Armory Show(영)
1913년 뉴욕에서 개최된 미국 최초의 국제 현대 미술전. 서유럽에서 일어난 새로운 미술 운동을 신대륙에 보급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인상주의 화가들과 앵그르Jean Auguste Dominique Ingres(1780~1867),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1798~1863), 모로Gustave Moreau(1826~1898), 쿠르베Gustave Courbet(1819~1877) 등을 위해 전시홀 하나가 마련되었고, 르동Odilon Redon(1840~1916), 퓌뷔 드 샤반느Pierre Puvis de Chavannes(1824~1898)의 작품들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였으나, 마티스Henri Matisse(1869~1954), 피카소Pablo Picasso(1881~1973), 브라크Georges Braque(1892~1963), 레제Fernand Léger(1881~1955), 드랭André Derain(1880~1954), 블라맹크Maurice de Vlamink(1876~1958),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1866~1944), 뒤샹Marcel Duchamp(1887~1968), 브랑쿠시Constantin Brancusi(1876~1957) 등 당시 파리 화단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미술가들의 작품이 소개되었다.
그 밖에 미국의 슬론Jone Sloan(1871~1951), 글래큰스William Glackens(1870~1938)를 비롯한 몇몇 대가와 신예 작가들도 참여하였다. 출품작 수는 1,600여 점에 이르렀으며, 특히 뒤샹의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Nu descendant l’escalier>와 같은 전위적인 성격의 작품들로 인해 일반 대중들에게 커다란 스캔들을 일으키기도 했다. ‘아모리 쇼’라는 명칭은 이 전람회가 뉴욕의 제67기병대의 무기고를 전시회장으로 삼은 것에서 비롯된 것으로, 그 후 시카고의 미술 연구소나 보스턴에서 개최되었을 때도 이 명칭이 그대로 사용되었다.
이 전람회가 비록 대중의 매도와 공격을 받았지만 미국의 젊은 세대 화가들에게는 큰 충격과 영향을 주었다. 특히 데이비스Stuart Davis(1894~1946), 벤턴Thomas Hart Benton(1889~1974), 웨버Max Weber 등 유럽 미술의 영향을 받은 작가들의 활약은 미국 현대미술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드는 계기가 되었다.
아미타불 阿彌陀佛
Amitabha(범)
서방 극락정토에 살면서 중생을 위해 자비를 베푸는 부처. ‘무량수불(無量壽佛)’ 또는 ‘무량광불(無量光佛)’이라고도 한다. 《무량수경無量壽經》에 따르면, 법장이라는 비구가 48대원(四十八大願)을 세웠는데, 그 중 18번째 서원에서 자신이 부처가 되면 그를 믿고 그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이 그가 건설한 정토에 태어나서 열반에 이를 때까지 복을 누리며 살게 하겠다고 맹세했다. 법장은 자신의 서원을 모두 이룬 뒤 아미타불로서 서방 극락정토를 주재하게 되었다고 한다. 《무량수경》외에 정토삼부경으로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 《아미타경阿彌陀經》이 있다. 아미타불은 대승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부처로 정토사상의 발달과 함께 중국, 한국, 일본 뿐만 아니라 인도 및 서역 등에서도 일찍부터 널리 퍼졌던 것 같다.
그러나 인도에서는 아직 조상(彫像)의 예가 발견되지 않았으며, 중국의 경우는 650년경 신앙이 널리 유행하기 시작하여 7세기 후반에는 상(像)으로 많이 제작되었다. 그 형상에는 단독상과 삼존상이 있는데, 보통 아미타9품인(阿彌陀九品印)의 손 모양을 취하고 좌우에는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표현되는 것이 특징인데 시간이 흐르면서 대세지보살 자리에 지장보살*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한국에서는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慈藏이 《아미타경소阿彌陀經疏》를 저술하면서 아미타불을 신앙하게 되었고 현재 많은 작품이 남아 있다. 그 중에서 통일신라시대*의 〈경주 구황동九黃洞 황복사皇福寺 3층석탑 출토 금제아미타불좌상〉을 비롯하여 〈감산사甘山寺 석조아미타불입상〉 〈불국사佛國寺 금동아미타불좌상〉 등이 단독상으로서 유명하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아미타불을 불화*로서 많이 제작하였는데, <독존도獨尊圖> <아미타삼존도三尊圖> <아미타구존도九尊圖> <극락회상도> 등이 있다.
또한 왕생자를 극락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왕생자를 맞이하러 오는 장면을 묘사한 <아미타내영도(來迎圖)>, 《관무량수경》의 내용을 도해한 관경변상도가 있다. 관경변상도는 마가다왕궁 왕사성王舍城에서 일어난 부자 사이의 왕권쟁탈에 얽힌 비극적인 내용을 그린 <관경서품변상도觀經序品變相圖>와 마가다왕국의 왕비 위데휘韋提希에게 아미타불 및 그 세계를 관상하는 16가지 방법을 표현한 <관경십육관변상도觀經十六觀變相圖>로 나뉜다.
아바쿠스 abacus(영)
주두*(柱頭)의 맨 꼭대기 부분. 아키트레이브*를 받치기 위해 주두의 꼭대기에 놓여진 정방형의 슬라브를 일컫는다. 도리아 양식*에서는 평평한 받침 모양이며, 바로 아래에는 아바쿠스와 주신을 연결하는 부분인 에키누스*(echinus)가 있다. 이오니아 양식*과 코린트 양식*에서는 아바쿠스의 형태가 변모하며, 에키누스는 없어진다.
아바타르 avatar(범)
비슈누*신이 악마로부터 신과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해, 그리고 세계 질서를 바로 잡기 위해서 인간이나 동물의 형상으로 나타나는 것을 말하며 화현(化現) 또는 화신(化身)이라고 한다.
비슈누의 대표적인 화신은 모두 10가지로 물고기(마트시야Matsya), 거북(쿠르마Kurma), 멧돼지(바라하Varaha), 사람 모양의 사자(나라싱하Narasimha), 난쟁이(바마나Vamana), 도끼를 든 라마(파라수라마Parasurama), 라마(Rama), 크리슈나*(Krsna), 불타(Buddha), 칼킨(Kalkin)을 말한다. 그 중 마지막 화신인 칼킨은 유가의 마지막 시기에 인간을 구원하러 올 화신으로서, 아직 세상에 오지 않은 미래의 화신이다. 그러나 10가지 화신 중에서 가장 많이 숭배되었던 바라하, 나라싱하, 바마나, 라마, 크리슈나 등이 주로 조각*이나 회화*로 자주 표현되었다.
바라하는 악마 히라니약샤Hiranyaksa를 물리치고 대지의 여신을 우주의 바다에서 구했다는 신화에 등장한다. 나라싱하는 사람도 동물도 아닌 사람사자의 형상을 하고서 신과 인간들을 박해하던 아수라* 히라니야카시푸Hiranyakasipu(히라니약샤의 형)를 죽였다고 한다. 또한 발리Bali라는 악마가 신과 인간을 괴롭히자 난쟁이로 변신한 바마나는 발리에게 세 걸음만큼의 땅을 요구했는데, 발리가 허락하자 거인으로 변한 비슈누는 단 세 걸음으로 삼계(三界)를 모두 차지했다. 그래서 이 도상*을 트리비크라마Trivikrama, 즉 ‘세 걸음을 소유한 자’라고 부른다. 라마와 크리슈나는 독립적인 신상*(神像)보다는 이들이 등장하는 서사시인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의 내용을 그림으로 풀어놓은 일련의 작품 속에서 많이 표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