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도시대 미술 江戶時代美術
에도시대는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멸망(1615) 후부터 다이세이 호칸(大政奉還, 1867년 강호막부가 정권을 잡은 메이지明治천황에게 반환한 일)까지 300여년간 지속되었다. 이 시기는 상품경제가 점차 발달함에 따라 토지의 생산물에 의존하는 농민과 무사의 생활이 어려워지고 상업자본을 장악한 상인의 세력이 강화되었고, 도시민인 조닌(町人)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되었다. 그와 더불어서 문화는 모든 국민 사이에 널리 보급되는 특징을 보인다.
건축:호화로운 전사(殿舍)건축인 니조성二條城의 〈니노마루二の丸殿舍〉, 장군 가광家光의 거동을 막기 위해 만든 본원사서원本願寺書院의 〈대면소對面所〉 〈백서원白書院〉 등이 대표적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초암풍 다실이 지닌 간소한 아름다움을 서원형식 속에 수용한 수기옥식(數寄屋式)의 〈계리궁桂離宮〉, 이와 반대로 장식적인 효과를 최대로 살린 권현(權現) 형식의 영묘(靈廟)건축이 있다.
조각:유행승(遊行僧)인 원공圓空이 간토關東에서 홋카이도北海道에 이르는 예리한 조형 감각의 타조(打彫)의 불상*과 신상*(神像), 후기의 유행승인 목식명만木鳩明滿은 원공의 격렬한 예각적 표현보다는 둥글고 여유로운 불상을 제작했다.
회화: 초기 관영 연간(寬永, 1624~1644)의 가노 에이도쿠狩野永德의 손자 탄유深幽, 에이도쿠의 제자 산라쿠山樂(1559~1635) 등 가노파狩野派는 전대에 이어 화단에서 지배적인 위치에 있었는데 점차 매너리즘에 빠진듯한 경향을 보이게 되었다. 서민 출신의 다와라야 소타쓰俵屋宗達는 전통적인 아마토에 수법에 서민적인 생활감정을 담아 독창적인 경지를 개척하였다.
풍속화*는 향략적인 유녀(流女) 등이 화제(畵題)로 즐겨 채택되는데, 이는 중기 이후 발전하는 우키요에*(浮世繪) 미인화와 결부됐다. 중기 원록 연간(元祿, 1688~1703)은 우키요에가 에도 시민의 예술로서 정착된 단계로서 베니에(紅繪), 우루시에(漆繪)로부터 색으로 찍는 최초의 단계인 홍색 판화와 색채 판화의 기법으로 점차 발전하였다.
후기 관정寬政, 문화文化, 문정文政 연간에는 우키요에, 문인화*(文人畵), 마루야마•시조파(圓山四條派), 복고(復古), 야마토에(大和繪), 양풍화(洋風畵) 등 여러 유파의 화가와 독립화가들의 활약으로 화단은 매우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서예:모모야마시대*(桃山時代) 말부터 이 시대의 초기에 고전 부흥에 따라 새로운 서풍이 이루어졌다. 송宋의 미불米芾(미 후, 1051~1107)의 필의를 가미하여 장식적인 효과를 낸 혼아미 고에쓰本阿彌光悅(1558~1637), 구카이空海의 글씨체를 배워 독자적인 양식을 만든 쇼카도 쇼조松花堂昭乘(1584~1639) 등이 있다.
공예:염직에서는 자수보다 한층 더 세련되게 그림문양을 표현할 수 있는 호방염(糊防染) 수법에 의한 우선염(友禪染)이 고안되어 급속히 유행하였다. 도자에서는 자기*(磁器)가 출현하였고, 도자기 표면에 채색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