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 미술 五代美術
오대(五代, 907~960)는 당唐의 멸망으로부터 송宋 건국까지 10세기 전반 약 반세기의 시기. 오대라는 명칭은 중국의 북동쪽에 도읍을 두었던 다섯 개의 왕실인 후량後梁, 후당後唐, 후진後晉, 후한後漢, 후주後周의 5왕조를 말한다.
건축: 이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목조 건물은 많다. 하북성河北省 정정현正定縣 현성 안의 현문묘縣文廟 대성전大成殿이나 개원사開元寺, 산서성山西省 평수현의 천태암, 예성현 북쪽의 오룡왕묘五龍王廟, 감숙성甘肅省 돈황의 막고굴 제196굴 앞면에 첨가된 랑(廊) 등은 당대(唐代) 말기나 오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오대의 건축이라고 확실하게 여겨지는 것은 화북 이북의 북방형 계통의 〈대운사大雲寺 대불전大佛殿〉(후진 천복 5년, 940), 〈진국사鎭國寺 대전大殿〉(후한 천회 7년, 964년)과 같은 건축으로 당의 양식에 가까우나 다소 차이가 있다. 양자강 유역의 남방형으로 묘실 안의 작은 모형 정도가 있다. 전탑은 팔각 다층탑이 일반적이고, 소주蘇州 호구虎丘의 운암사雲巖寺(오월 현덕 6년, 959), 산동성山東省 추현鄒縣의 중흥사中興寺 등이 있다. 석탑으로는 남경南京 섭산攝山의 〈서하사棲霞寺 팔각오첨 사리탑八角五檐舍利塔〉이라 부르는 다각 다층탑도 주목된다. 철탑으로는 사각칠층인 광주廣州의 광효사光孝寺의 동서 두 탑이 있다.
조각:일반적으로 화북은 꽤 오랫동안 당의 전통양식을 따랐음에 비해 강남은 송 양식의 기반을 형성했다. 항주杭州에 도읍을 정한 오월吳越은 서호西湖 부근에 영은사靈隱寺의 석탑, 비래봉毘萊峰, 연하동煙霞洞, 석옥동石玉洞 등의 석굴을 남겼다. 남당의 서하사 사리탑* 기단의 석가팔상도釋迦八相圖 부조*는 그 대표작이다. 사천성四川省 서북부 마애불감의 광원철불애, 파중 마애석굴, 통강 천불암 등에 오대에서 송대 초기의 조상이 많고, 도암부의 대족보정마애에도 오대의 조상이 보인다. 그 밖의 목조의 보살상, 철불도 많다.
회화:인물화*를 보면, 양자강에서 활동하던 관휴貫休(쿠완시어우, ?~912)는 과장된 선으로 선(禪)의 경지에 이른 스님들을 주로 그렸다. 그의 그림은 원칙을 완전히 벗어났다는 의미에서 일품(逸品)으로 평가되고 있다. 남경南京에서는 이와는 전혀 다른 화풍이 싹트고 있었는데, 당의 황혼기 예술로 평가되고 있는 주문구周文矩(자오 윈지)의 인물화가 대표적이다.
이공린李公麟(리꽁린, 1040~1106)은 백묘화*법(白描畵法)으로 말이나 도석인물화에 능하였는데 그의 필선은 인물화가들의 모델이 되어 후대 명대(明代)에 까지 지속되었다. 산수화가로는 형호荊浩(싱 하오), 이성李成(리 츠엉), 관동寬董(꾸 완통), 범관范寬(환 쿠완) 등이 있는데, 이들이 활동하였던 10세기는 중국의 고전적 산수화*가 절정에 달했다고 할 수 있는 시기였으며, 광대한 산수화 예술의 이상을 수립하였다. 또한 이들의 산수화는 감상자로 하여금 산수화에 들어가 있듯이 압도적으로 사실감을 주어야 한다는 북송北宋 산수화 이념으로 연결되었다.
10세기 초반에는 남경에서 동원董源(똥 위엔), 거연巨然(쥐 르안)이 활동하고 있었는데, 이들의 산수화는 윤곽선이 둥글고 필법이 유연하고 자유스럽다. 이들 그림에서 중요한 것은 중국 산수화에 처음으로 순수한 서정시의 요소가 나타난 점이다. 화조화*에서는 오대, 북송 초기에 촉蜀의 황전黃筌(후앙 취앤), 남당南唐에 서희徐熙(쉬 시)가 유명하였다. 섬세하고 선명한 색깔로 여러 번 덧칠을 해서 그리는 혁신적 방법을 창안하였던 황전의 그림은 다분히 장식적이어서 궁정 화가들간에 유행하게 되었다. 반면 서희는 꽃이나 잎을 수묵담채(水墨淡彩)와 선염법(線染法)을 써서 매끄럽게 그렸는데, 필묵을 자유롭게 이용한 측면에서 문인들에게 호응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