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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파

오파 吳派 wupai(중)

중국 명대(明代, 1368~1662)의 화파. 강소성江蘇省 소주蘇州 지방에서 활약한 심주沈周(선 저우, 1427~1509)를 시발로 그의 영향을 받은 문징명文徵明(원 즈엉밍, 1470~1559)과 그 문하의 진후陳淳(츠언 츠운), 륙치陸治(루 즈)등이 문인화* 일파를 이루게 되고, 때를 같이하여 구영仇英(처우 잉), 당인唐寅(탕 인), 장령張靈(즈앙 린) 등이 소주화단(蘇州畵壇)을 이루게 되었다. 특히 원사대가*를 양식상의 실질적 개창자로 여긴 심주 등의 남종화*는 가정 연간(嘉靖, 1522~1566) 이후의 중국화단 전체를 지배하는 세력이 되었다. 그 전까지는 절파*계 화가의 활약과 그 양식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한 정황을 배경으로 ‘절파, 오파론’이 생기고, 그 차이가 논란이 되곤 하였다. 절파는 용필(用筆)과 묵*을 많이 쓰지만 오파는 그렇지 않다는 기법론과 하량준何良俊(헤 리앙쥔)이 말하는 행가(行家), 이가(利家)로 분류하는 품격론이 있다. 나아가서는 행가 곧 직업화(職業畵=浙派), 이가 곧 문인화(文人畵=吳派)라는 분류와 화가의 신분상의 변화를 가져오기도 하였으나, 그 이후의 중국 화단은 오파 양식이 지배적인 위세를 보였다.

오프셋

오프셋 offset(영)

밑그림의 데생과 일단 인쇄된 종이의 화상을 원압(圓壓) 프레스로 다른 종이에 다시 박는 것. 공업 인쇄에 있어서는 프로세스 인쇄하고도 불리며 평판의 대표적인 방식으로 다방면에 쓰인다.

오호십육국시대 미술

오호십육국시대 미술 五胡十六國時代美術

→ 위진•남북조시대 미술

오회

오회 懊繪

→ 장벽화

옥기

옥기 玉器

옥을 사용한 기물. 중국에서는 옥(玉)이 선사시대 이래로 영성(靈性)을 지니고 있다고 믿어지는 권위의 상징이었다. 주로 연옥(軟玉)을 가리키는데, 오래전부터 실용품과 의식용의 상징으로서 사용되었다. 은대(殷代)부터는 더욱 성행하여 하남성河南省 안양에서 다량 출토되었고, 주대(周代)에는 의례용 서옥(瑞玉)과 제사용 제옥(祭玉)이 있었다. 《주례周禮》에 따르면, 작위를 표상하거나 동서남북의 방위를 나타내는데 사용되기도 했으며 장신구용의 패옥 또는 기물의 장식에도 쓰여졌다. 대표적인 기형에는 규(圭), 장(璋), 벽(璧), 종(琮) 등으로 나눠볼 수 있다.
규는 위가 뾰족하고 아래가 사각의 모양이며 가늘고 긴 좌우대칭형의 판상(板狀)의 서옥으로서, 제후로 봉해질 때 천자로부터 받는 신인(信印)으로 제사나 조빙(朝聘) 때 쓰는 것이다. 장은 규를 절반 나눈 것이고, 벽은 가운데에 구멍뚫린 원반형태로 구멍의 직경과 둘러싼 옥의 폭이 같을 때 벽이라 하고 구멍이 더 크면 환(環) 또는 원(瑗)이라고 한다. 최고의 벽은 신석기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무늬가 없으나 그 후 은殷, 주周시대에는 표면을 정교하게 장식했고, 사회적 신분이나 사자(使者)의 표시 및 제사 등에 사용되었다. 종은 길고 짧은 갖가지 원통상의 옥이다. 이러한 옥기는 특정한 계급에 따라 다른 기형을 지녔고 종류도 다양했다.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에는 표면에 곡문(穀文)이나 기하학적 무늬를 부조*하거나 용봉문(龍鳳文)을 선각 또는 투조하는 절탁(切琢)기술이 크게 발달하였다. 전국 말(戰國末)부터 한대(漢代)에 걸쳐 서옥 중에서 규가 없어지고 벽이 많아졌으며 특수한 용도의 옥기가 만들어졌다. 또한 시신보존의 주술적인 목적으로 시신의 구혈(九穴)을 막는 전(栓)이나 손에 쥐어주는 옥돈(玉豚) 등으로 쓰였으며 옥의(玉衣)로도 사용되어서 옥의 신령성을 빌려 육체의 불멸을 기원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도 신라시대*의 고분에서 옥제(玉製) 물품이 출토되고 금관총金冠塚과 천마총天馬塚의 금관장식에도 쓰이는 등 오래전부터 사용되어왔다.

옥루우

옥루우 屋漏雨

→ 옥루흔

옥루흔

옥루흔 屋漏痕

중국 당대(唐代)의 안진경顔眞卿(이앤 쩐칭)이 고안한 수직방의 용필(用筆)이 두드러진 서체에 대한 비유. 가옥에서 물이 떨어져 벽 사이에 스며드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하여 이름 붙여졌다. ‘옥루우(屋漏雨)’라고도 한다.

옥충

옥충 玉蟲

옥충으로 만든 장식물. 옥충은 비단딱지벌레의 일종으로, 금록색 날개가 매우 아름답다. 경주 98호분의 당초문*이 투조된 금동판을 비롯하여 삼국시대*의 유물에 몇 가지 옥충장식의 예를 볼 수 있다.

올 오버 페인팅

올 오버 페인팅 all over painting(영)

→ 전면균질회화

옴므 테므앙

옴므 테므앙 Homme Témoin(프)

제2차세계대전 말기에 결성되어 전후 프랑스 화단에서 활약했던 그룹. 옴므 테므앙이란 ‘목격자’ 또는 ‘증인’을 뜻한다. 그룹의 이름에서 볼 수 있듯, 이들은 사회적 관심의 차원에서 사실주의*를 주장했고, 구상적 화풍으로 전쟁 직후의 어두운 현실과 인간의 불안, 고뇌 등을 표현하는데 목표를 두었다.
그룹의 중심 인물은 부르주아 사회에 통렬한 풍자를 던진 로르주Bernard Lorjou였고, 그 주변에 모테Yvonne Motter, 르베이롤Jean Rebeyrolle, 드 갈라르de Gallard, 톰슨Thompson, 미노André Minaux, 구티Jean Gouty 등 젊은 세대의 작가들이 모였다. 이들의 경향은 어느 것이나 명확한 테마를 둘러싼 강렬한 의도를 지니고 있었으며 전통적인 사실주의에 바탕을 두었다. 또 묘사의 기술, 특히 소묘*를 중시하고 데포르마시옹*과 색채의 효과에 호소하였다. 이들 중 특히 뛰어난 재능을 보인 화가는 미노와, 세계적 화단의 총아가 되기 직전의 뷔페Bernard Buffet였다. 뒤에 르베이롤, 톰슨, 드 갈라르 등은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로 접근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