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벽도 赤壁圖
산수화*의 한 화제(畵題). 북송北宋의 문인 소식蘇軾(쑤 스, 1036~1101)이 지은 전후 두 편의 《적벽부赤壁賦》를 그린 것이다. 원풍 5년(元豊, 1082) 7월 16일, 소식은 무도산武道山의 도사 양세창楊世昌과 함께 황강성黃崗城 밖의 적벽에서 배를 띄우고 노닐었다. 이때의 감회를 서술한 것이 《전 적벽부前赤壁賦》이다. 이후 같은 해 10월 15일에 두번째로 이곳에서 노닐며 《후 적벽부後赤壁賦》를 지었는데, 이를 통칭하여 《적벽부》라고 한다. 《적벽부》는 중국 부문학(賦文學) 사상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데, 훌륭한 화제로 환영받았다. 즉 북송 말 교중상喬仲常(콰오 종창)에 의해서 <후 적벽부도>가 그려진 이후에 적벽도는 문학작품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회화의 주제가 되었다.
<적벽도>는 주로 문인화가들에 의해서 그려졌으며 특히 16세기 중반 문징명文徵明(원 즈엉밍, 1479~1559)과 그의 영향을 받았던 오파*吳派 화가들에 의해서 많이 그려졌다. 적벽도의 형식이 종합정리된 것은 오파에 이르러서인데 표현방법에 의해서 세 가지로 분류된다.
첫째 형식은 《후 적벽부》의 내용을 8개의 장면으로 나누어 서술적으로 그린 것이고, 두번째 형식은 일반 산수화*처럼 한 장면으로 그리되, 수권(手卷)과 축(軸)으로 나누어진다. 세번째 형식은 혼합식으로 여러 장면으로 표현한 것과 한 장면으로 표현한 것에서 각각 한 요소씩 가져와 함께 표현한 것이다. 적벽도에는 소식과 친구들이 탄 배, 적벽과 같은 황강성 풍경 등이 공통적으로 등장하는데, 문인화*의 시(時), 서(書), 화(畵) 일치사상을 반영하고 있다. 교중상의 작품이라고 전해지는 <후 적벽부도>(뉴욕 개인소장)와 금金의 무원직武元直(우 위앤즈)이 그린 <적벽도>(대북 고궁박물원 소장) 등이 알려져 있으며, 송宋 원元 이후로 제화(題畵)의 시문도 많이 남아 있다. 우리나라에는 조선 초기에 안견安堅이 그린 것으로 알려진 <적벽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