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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석천

제석천 帝釋天 Indra Śakra(범)

인도 베다시대(기원전 1500~600년경)의 무용신(武勇神)인 인드라가 불교에 들어온 것으로 군신답게 거대한 체구에 벼락을 상징화한 금강저*를 든 모습으로 표현된다. ‘석제환인다라釋提桓因陀羅’ ‘석가제바인다라釋迦提婆因陀羅’라고 쓰던 것을 줄여 ‘제석천’이라고 부른다. 제석천은 도리천忉利天의 주인이며, 수미산 정상에 있는 선견성善見城에서 산다. 사천왕과 함께 주위의 32천왕(天王)을 통솔한다. 불법을 옹호하며, 불법에 귀의한 사람들을 보호할 뿐 아니라, 아수라*의 군대를 징벌하기도 한다.
제석천상은 인도의 간다라*시대에 많은 예가 있는데, 형상은 보통 귀족의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중국에서 북위北魏 이후의 중국사원들에 나타나는데, 형상은 《십이천공양의궤十二天供養儀軌》에 따랐다. ‘동방제석이 백상왕(白象王)을 타고 오색구름 속을 가는데, 몸은 황금색이고 오른손은 삼고저를 들어 가슴부위에 놓고, 왼손은 허벅지를 짚고, 왼쪽 다리는 아래로 늘어뜨렸다’고 서술되어 있다.
돈황*막고굴의 위대(魏代) 이후의 벽화*에도 보이며, 제왕 또는 동자의 형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또한 북경 법해사法海寺 정전正殿 서쪽 벽화(1443)에는 보관과 영락을 장식하고 천의를 입은 보살형의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한국에서는 제석과 단군환인檀君桓因을 동일시하여 삼국시대부터 신앙되었고 고려시대에는 호국진병(護國鎭兵)의 신앙의례로 제석도량(帝釋道場)이 행해질 정도로 제석신앙이 성행하였다. 제석은 범천과 함께 짝을 이루며 등장하는데, 이는 인도에서 온 전통으로 통일신라시대 석굴암의 제석, 범천상, 고려후기 〈부석사 조사당 벽화〉(1377)에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조선후기 신중탱화의 주존으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기도 한다.

제스처

제스처 gesture(영) geste(프)

예술적인 이념이나 감각을 구체화시킬 때 활발해지는 행위, 동작, 몸짓, 표현력 등 표현 태도 전체에 대한 총칭. 모든 미술 창작 행위는 제스처적인 요소가 있다고 볼 수 있으나 특별히 무의식적인 추상적 표현 행위를 가리킬 때 자주 사용된다.
어떤 의미에서는 제스처는 액션*과 거의 구별되지 않지만, 엄밀한 의미에서는 액션과 차이가 있다. 액션은 연극적인 수단에 의하여 미적 사고 과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행위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즉흥적인 이벤트를 갑자기 행함으로써 보는 이에게 실생활 그 자체를 최대한 인상적으로 실연(實演)해 보이는 데 그 목적이 있는 액션과는 달리, 제스처는 개인적인 필적에 관심을 집중시켜 회화 자체의 주관성을 일깨워 준다.
이는 화가의 표현적인 붓의 필치나 행위의 궤적이 화면에 반영된 것을 의미한다. 제스처가 두드러진 회화나 드로잉을 가리켜 ‘제스처주의Gesturalism’라고 한다. 강한 붓의 필치를 통해 예술적 개성을 발현한 예로는 할스Frans Hals와 벨라스케스Diego Rodriguez de sila Y Velasquez(1599~1660) 같은 17세기 미술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고, 근대 미술에서는 19세기 인상주의* 작가인 마네Edouard Manet(1832~1883)와 반 고흐Vincent van Gogh(1853~1890)의 경우가 포함된다. 특히 제스처주의는 독일 표현주의*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이러한 유대 관계는 최근의 신표현주의*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전후에는 손이나 몸놀림을 통해 화폭에 물감을 순간적으로 도입한 행위 중심적 추상회화가 등장하였는데 이러한 방식에 의한 일련의 작품에는 액션 페인팅*(action painting)이 있다. 대부분의 유럽 앵포르멜* 계열 회화에서 제스처는 손놀림에 그치나, 마티유George Mathieu(1921~ )나 폴록Jackson Pollock(1912~1956)에 이르러서는 신체의 제스처로 발전하였다. 이는 동양의 서예나 수묵화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것이기도 하다.

제시

제시 題詩

그림이나 표구의 대지(臺紙) 위에 적어 놓은 시문(詩文). 제화시(題畵詩), 화찬(畵讚)이라고도 한다. 제시의 내용으로는 그림이 이루어지게 된 배경이나 감흥, 작가에 대한 평, 진위(眞僞)에 대한 고증 등 다양하다. 제시와 그것을 쓴 서체*, 그리고 그림이 한데 어우러져 그림을 더욱 아름답고 풍부하게 만드는 데 기여하기도 한다.

→ ‘제발’ 참조.

제왕도

제왕도 帝王圖

중국 인물화의 한 화제(畵題). 중국 역대 제왕들의 초상화*를 그린 것이다. 중국 황실에서는 고대(古代)부터 바로 앞의 왕조까지의 역대 황제 황후를 제사지내면서 스스로 정통성을 강조하였다. 이 때 선군(先君)의 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여러 제왕의 초상화를 상상으로나마 궁전과 종묘 벽에 그리기 시작하였다. 제왕도가 그려진 것은 한대(漢代)부터라고 추정된다. 현존하는 제왕도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용문석굴*의 북위굴 중 빈양동賓陽洞 등에 있는 부조* <황제 황후의 예배>로, 위풍당당한 거구의 제왕과 시자(侍者)들을 나타내고 있다.
미국의 보스턴 미술관에 소장돼 있는 염립본閻立本(이앤 리번, ?~673)의 작품으로 전하는 <제왕도>는 전한前漢의 소제昭帝로부터 수隨의 양제煬帝까지 13인이 면복(冕服)의 위엄을 갖춘 거구의 열상(列像)으로 그려져 있다. 염립본은 중국의 전통적인 인물화법으로 궁중인물이나 제왕들의 초상화를 많이 그렸는데, 이 그림은 위진남북조(魏晋南北朝)시대의 각 제왕들의 집정(執政)모습이나 거동할 때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제왕도는 명 청(明淸)시대에도 꾸준히 그려져 역대 황제 황후가 성장을 하고 있는 정면상이나 청대(淸代)의 <남훈전도상> 등이 있다.

제정양식

제정양식 帝政樣式
Style Empire(프)

근세 프랑스 나폴레옹 제1제정기(1804~1814)를 중심으로 1830년경까지 실내장식, 가구, 복장 등에 유행하였던 양식으로 고대 로마제국의 장대함을 원했던 나폴레옹의 요구로 장려되었다. 따라서 고전주의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으나 여기에 나폴레옹 원정의 영향으로 이집트와 터키의 장식양식 또는 군국주의적인 모티브*가 애용된 점이 특색이다. 작품들은 대부분 장엄하고 화려한 반면 치밀함은 부족하며 1815년 이후에는 다소 양식상의 경직성이 보인다.
이 양식의 건축으로는 피에르 알렉상드르 비뇽의 마들렌 교회와 샬그랭Jean-François Chalgrin의 에투왈 개선문(Arc de Triomphe de l’Étoile), 페르시에Charles Percier와 퐁텐Pierre-François Fontaine(1762~1853)의 궁전 리노베이션과 카루셀 개선문(Arc de Triomphe du Carrousel)이 좋은 예이다. 특히 페르시에와 퐁텐은 나폴레옹의 의전실 비품을 설계했으며 제정양식의 실내장식과 가구 디자인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마호가니를 대고 구리와 아연의 합금인 오르몰루로 둘려진 가구는 스핑크스, 종려나뭇잎, 날개달린 사자 등의 모티브로 장식되었고, 특별히 나폴레옹의 권위를 암시하는 것으로 승리를 나타내는 날개 달린 승리의 여신상과 월계관, 번영을 상징하는 벌이나 곡식단 및 풍요의 염소뿔, 정복을 상징하는 막대기 다발에 끼워진 도끼나 스핑크스 등이 자주 사용되었다. 회화에서는 장대한 <나폴레옹의 대관식>(1805~1807)을 그린 다비드Jacques-Louis David(1748~1825)가, 조각에서는 나폴레옹 가족의 형상을 만든 카노바Antonio Canova(1757~1822)가 유명하다.
한편 복식에 있어서는 여성 의복의 경우, 어깨와 목 부분을 많이 파고 가슴 바로 아래에 띠를 둘렀으며 가벼운 천으로 부드럽고 품위있게 늘어뜨렸는데, 이는 혁명 이전의 화려함과 우아함을 의식적으로 모방한 것이었다. 남성의 경우에는 조끼가 드러나도록 앞섶을 비스듬히 잘라낸 연미복과 깃이 화려한 셔츠가 주를 이루었다. 제정양식은 프랑스에서 시작되었지만 곧 유럽 전체에 퍼져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북부에서 유행했던 비더마이어(biedermeier) 양식과 같이 각국의 고유한 취향에 따라 조금씩 변형되었다.

젯소

젯소 gesso(영)

석고와 아교를 혼합한 회화* 재료. 헌 캔버스를 갱생하였을 때의 애벌 바름 혹은 새 화포의 애벌 처리로서 테레빈유*로 바르는 흰 물감을 가리킨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는 채색이나 도금용으로 캔버스와 패널의 바탕에 젯소를 사용하였다. 보통 바탕을 만들 때는 젯소를 여러겹 칠한다.

조각

조각 彫刻 sculpture(영)

공간 속에서 삼차원적인 입체 형상을 창조해내는 시각예술. 회화*가 색이나 선에 의해 이차원적 화면에 평면적으로 표현되는데 반해, 조각은 공간을 점유하고 현존하는 삼차원의 입체로 표현된다. 즉 회화가 이차원에서 삼차원의 일루전*을 재현한다면, 실제로 삼차원의 물체인 조각은 물질적인 현존성을 보유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조각된 상은 시각적이면서도 직접 만질 수 있는 촉각적인 장점을 지닌다. 조각은 또한 조소(彫塑)라고도 불리는데, 의미나 내용상의 차이는 없으나 일반적으로 조각이란 말이 통용된다.
조각은 그 표현 방식에 따라 부조*(浮彫)와 환조(丸彫)로 나뉘는데, 환조는 공간 속에서 그 자체로서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부조는 배경이 되는 벽 등의 바탕에 부착되어 그것의 일부로서 존재한다. 환조는 다시 단일상과 군상*, 또 인물의 자세에 따라 좌상(坐像), 반가상(半跏像), 와상*(臥像), 전신상(全身像), 반신상(半身像), 흉상(胸像), 두상(頭像) 등으로 나뉜다. 회화와 조각의 중간 형식이라고 할 수 있는 부조에는 새겨 넣는 정도에 따라 고부조와 저부도가 있고, 특수한 것으로는 이집트에서 볼 수 있는 음각이 있다. 형태를 만들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조각의 재료가 될 수 있으나, 그 중에서도 점토, 브론즈, 돌, 나무, 석고 등이 가장 많이 사용된다. 석재(石材)는 기후 변화에 잘 견디고 어디에서나 쉽게 구할 수 있으며, 균일한 질감과 경도를 지니므로 기념 조각이나 건축적 조각에 자주 쓰였다.
반면에 돌보다 내구성이 약하고 기온과 습도에 변하기 쉬운 나무는 주로 실내 조각에 이용되었다. 석고는 조각의 원형 및 주형을 뜨기 위해 사용되며 특히 기존의 원작을 복제하는데 이용되기도 한다. 한편 현대 조각에서는 철강, 알루미늄, 플라스틱, 유리뿐만 아니라 움직임, 소리, 빛 등 점차 새로운 시대정신*과 조형감각을 수반하는 재료들이 조각의 제작에 이용되고 있다.
키네틱 아트*는 움직임을 조각의 중요한 요소로 받아들임으로써 이제까지 정적인 사물이었던 조각에 동적인 움직임과 생명을 부여하였다. 예를 들어 칼더Alexander Calder(1898~1976)의 모빌*은 기류나 바람에 의해 움직이고, 팅겔리Jean Tinguely(1925~1991)의 조각 작품은 전동장치에 의해 기계적으로 움직인다. 전통적으로 조각은 덩어리로 이루어진 물질적 실체로 간주되어 왔으나, 현대에는 비물질적인 빈 공간의 조형적인 의미가 부각되었다.
고대 및 중세까지만 해도 모든 조각에 채색하였으나, 근대에 들어서는 재료에 충실하기 위해 거의 착색을 하지 않고, 재료 자체의 자연색과 질감을 살린 조각이 많이 제작되었다. 그러나 현대미술에서는 선명한 원색으로 채색된 다색조각도 많이 나타나고 있다. 조각에서 역사적으로 가장 중심이 된 주제는 인물, 신, 동물 등이었다. 서양의 전통 조각은 르네상스에서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대상들을 재현하는 것이 주를 이루었으나, 현대에 들어서면서 점차 기하학적이고 추상적, 개념적인 방향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조감도법

조감도법 鳥瞰圖法
bird’s-eye view(영)

투시도의 한 종류. 투시 투상(透視投象) 중에서 조감적 투시를 생략해서 조감도라고 말한다. 시점을 높이 하면 항공기나 고층 건물의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는 것과 동일한 도형을 구할 수 있다. 복잡한 배치 등을 한 눈에 담으려고 할 때에 편리한 도형이다.

조몽시대 미술

조몽시대 미술 繩文時代美術

→ 일본선사시대 미술

조미전

조미전 朝美展

→ 조선미술전람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