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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된 사진

구성된 사진 fabricated photography(영)

인물이 아닌 대상을 단지 촬영을 위해 사진작가가 직접 제작하고 구성해서 찍은 사진. 1970년대 중반 이후 미국과 서유럽에서 시작되었고, 브룩스Ellen Brooks, 디볼라John Divola, 커밍Robert Cumming 등이 구성된 사진을 제작한 대표적인 사진가들이다. 이들은 대개 풍경이나 인물 등 전통적으로 사진의 주제가 되어 왔던 친근하고 사실적인 대상들을 배격하고, 극적이며 가공의 세계임을 확연히 드러내는 주제를 선호하는 새로운 접근방식을 취한다.
그러므로 기존에 존재하는 것을 합성하거나 변형시켜 전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기법이 주로 사용된다. 이런 의미에서 구성된 사진은 연출 사진*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연출 사진은 구성된 사진은 물론 동물사진과 인물사진을 포함하는 보다 광의의 개념이다. 의도적으로 계획된 장면을 담은 연출 사진의 예로는 셔먼Cindy Sherman(1954~ )이 자신을 영화 주인공처럼 연출하여 찍은 사진이나 웨그먼William Wegman이 그의 애견 만레이와 페이레이를 의인화하여 찍은 사진 등이 대표적이다.

→ ‘연출 사진’ 참조

구인묘

구인묘 蚯蚓描

인물십팔묘*(人物十八描)의 하나로 인물화*를 그릴 때 옷의 무늬를 그리는 기법. 구인이란 ‘지렁이’의 뜻으로서, 지렁이가 꿈틀꿈틀 움직이는 듯한 옷 무늬 묘사기법을 말한다. 선을 꺾지 않고 먹선이 두툼하고 매끄럽게 이어진다. 도석인물화(道釋人物畵)에서 파도치는 듯이 넘실대는 선을 반복하여 옷무늬를 나타내는 묘사법을 가리킨다.

구체미술

구체미술 具體美術 Art Concret(프) Concrete Art(영)

네덜란드 화가인 반 되스부르크Theo van Doesburg(1883~1931)가 1930년에 추상미술*에 대해 언급하면서 처음 사용한 용어. 그의 정의에 따르면, 구체미술은 자연에 뿌리를 두지 않은 대신, 미술 자체의 형식적 속성과 기하학에 바탕을 둔 미술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회화*의 형식적 속성은 색채와 형태이고, 조각*에서의 형식적 속성은 양감*과 윤곽*을 가리킨다. 1930년에 반 되스부르크는 “한 가닥의 선*, 하나의 색채, 하나의 면* 이상으로 구체적인 것이 있을까… 여자, 나무, 소 등은 자연의 존재로서는 분명히 구체적이지만, 회화적 존재로서는 면이나 선보다 훨씬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막연한 환영”이라고 말하면서, 추상미술, 추상회화 대신 구체미술, 구체회화의 명칭을 제안하였다.
이 용어는 1933년 독일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앨버스Josef Albers(1888~1976)와 빌Max Bill(1908~1994)이 구체미술을 전파하려고 노력한 결과, 제2차세계대전을 전후로 널리 통용되기 시작했다. 1936년 빌은 자신의 작품에 구체미술이라는 용어를 적용했다. 객관성을 추구하는 구체미술에서는 미술가의 개인적인 터치*가 감춰지기 때문에, 미술작품이 사람이 아닌 기계가 제작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구체미술은 1950년대 이후 더 이상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으나, 미술작품이 사회적 문제나 개인의 감정을 표현하지 않더라도 미술작품 자체로서의 독립된 가치를 지닌다는 기본 입장은 미술계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색면회화*, 옵 아트* 등은 구체미술과 직, 간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구축주의

구축주의 構築主義
Constructivism(영)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러시아에서 건축, 조각*, 회화*, 공예* 등의 여러 분야에 걸쳐 일어난 전위적인 추상미술* 운동. 현대 미술상의 반(反)사실주의 운동 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예술상의 한 주의로서, 자연의 묘사 또는 인상적인 표현을 배제하고 주로 기계적 또는 기하학적 형태의 합리적, 합목적 구성에 따라 새로운 형식의 미를 창조, 표현하려고 했다.
구축주의는 브라크George Braque(1882~1963)와 피카소Pablo Picasso(1881~1973)가 시도했던 입체주의*의 실험적 작품에서 발전된 것이다. 1913년 타틀린Vladimir Tatlin(1885~1953)은 피카소의 파리 스튜디오에서 피카소가 제작한 금속판과 철사로 구성된 최초의 작품 <기타Guitar>(1912)를 보고, 러시아로 돌아간 후 조각사상 최초로 완전한 추상작품의 하나로 인정되는 구축주의 부조*들을 제작하였다.
전통적으로 조각을 제작하는 기법은 진흙이나 석고 등을 이용하여 양감을 덧붙이거나, 돌이나 나무에서처럼 깎아내는 데에 초점을 두어 왔다. 그러나 구축주의자들은 한가지 또는 여러 종류의 금속, 유리, 판지, 나무, 플라스틱 등의 재료를 함께 사용하고, 양감보다는 공간이 중시되는 조각을 제작하였다. 또한 타틀린은 ‘재료에 충실한(truth to materials)’ 구축주의의 원리를 성립시켰는데, 이는 각 재료가 지니고 있는 본질적 속성에 의거하여 조각형태가 결정된다는 주장이다. 한편 타틀린이 1919년에 모형으로 제작한 <제3인터내셔널을 위한 기념물>을 비롯한 많은 구축주의 구조물들은 건축이나 무대 미술, 공업디자인 등의 원형이 되었다.
1917년에 일어난 볼셰비키 혁명 이후 구축주의 미술가들은 추진력을 얻었으나 보다 개인적인 미술을 추구하려는 작가들과 대중을 위한 공익적 설계를 내놓는 데 관심을 가진 사람들 사이의 이견으로 두 파로 갈라졌다.
즉 타틀린이나 로드첸코Aleksandr Rodchenko(1891~1956)가 구축주의의 정치성을 강조한 것에 반해, 가보Naum Gabo(1890~1977) 및 펩스너Antoine Pevsner(1886~1962)는 순수 조형을 의도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1921년 가보와 펩스너는 모스크바를 떠나 특히 기술적인 분야에 중점을 둔 독일의 바우하우스*로 옮겨가 유럽 전역에서는 물론, 미국에서까지 일어난 구축주의의 국제적 확산에 기여했으며, 그 후에 이들은 파리의 추상창조그룹*과 융합하였다. 한편, 타틀린 일파는 국내에서 일시 왕성한 운동을 전개하였으나 구 소련의 미술 지도 방침의 변화에 따라 1930년 이후 그 활동을 완전히 중단하였다.
구축주의가 제2차세계대전 이후의 미술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특히 기법면에 큰 영향을 주었는데, 주로 용접을 이용해 여러 다른 재료를 결합하는 이 기법은 1940년대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의 조각과 제작방식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또한 구축주의는 미술을 테크놀로지 및 과학과 관련지어 생각하는 사고 방식에 주요한 공헌을 하였다.
이러한 구축주의의 합리적 접근방식은 키네틱 아트*, 미니멀 아트*, 미술과 테크놀로지 프로젝트 뿐만 아니라 하드엣지* 페인팅과 기하학적 추상*에서까지 그 영향을 찾아 볼 수 있다. 또한 구축주의는 회화, 조각뿐만 아니라 건축, 무대미술, 상업미술의 영역에도 커다란 영향을 주었으며, 이는 네덜란드의 데 스틸*이나 신조형주의*와 함께 건축 및 공업 의장(意匠)을 혁신시킨 원동력이 되었다.

국전

국전 國展

→ 대한민국미술전람회

국제건축

국제건축 國際建築
International Architecture(영)

20세기 전반, 산업 및 과학기술의 발전과 보급이 국제적으로 공통점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상 및 운동. 건축가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1883~1969)가 1925년 바우하우스* 총서의 제1권으로 출판한 서적의 제목이기도 하다. 그는 서문에서 “기계들이 국제화함에 따라, 그것들이 만드는 건축도 국제화한다”고 주장했다. 국제건축의 특징은 직육면체의 구성, 큰 유리창, 장식이 없는 벽면 등이며 이러한 건축형태는 1930년대에 세계 각국의 근대 건축의 기반을 형성하였다.

국제적 고딕 양식

국제적 고딕 양식 International Gothic Style(영)

1400년을 중심으로 하는 전후반 세기에 서구 전체 내지는 동구 일부에 퍼진 회화에서 보는 공통된 미술 양식. 1892년 쿠라조드Loius Courajod가 최초로 분류하였는데, 회화를 중심으로 모자이크*, 타피스트리*, 에나멜*, 스테인드 글라스* 등에서 공통적인 특징을 볼 수 있다. 국제 고딕 양식의 첫 단계는 지오토Giotto(1266~1337)와 두치오Duccio di Buoninsegna(1255~1319)의 이탈리아 자연주의에 프랑스 마르티니Simone Martini(c.1284~1344)의 우아함을 혼합시키고 후기 로마 회화의 고대 양식을 가미시킨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퓌셀Jehan Pucelle이 아라베스크* 선의 운동감과 우아함으로 프랑스 양식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고 프랑스-플랑드르 예술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1400년 네덜란드 예술가들은 플랑드르의 사실주의적 취향과 예리한 관찰력이 새로운 이탈리아 자연주의와 교류를 이루게 하였다. 그러나 각지에 싹터 있던 소박한 자연의 세부묘사에 대한 관심이 받아들여져, 단순한 외국 양식의 국제적 파급이 아니고 상호영향 하에 동질적인 양식이 성립되었다.
국제적 고딕의 주된 특징은 양식화된 유연한 곡선 형식으로, 인위적이고 목가적인 분위기에 세속적인 상류사회에 대한 관심이 두드러지게 표현된다. 또한 동, 식물 풍속묘사에서 정교하고 치밀한 관찰력을 보이면서, 전체적으로 우아한 후기 고딕 궁정 취미의 장식적 화풍으로 통일되었다.
국제적 고딕은 프랑스의 귀족적인 궁정양식을 바탕으로 프랑스와 부르고뉴 벌간디의 세계적인 궁정 양식으로 성숙하였다. 그것은 남부 스페인과 제노아, 나폴리, 베니스를 상업적으로 강력하게 연결하여, 프랑스에서 쇠퇴한 지 오랜 후인 15세기초까지도 계속 번영하였다.

→ ‘고딕 미술’ 참조

국화점

국화점 菊花點

수묵산수화에서 나뭇잎을 그리는 기법. 작은 필촉으로 여덟 내지 아홉개 정도의 점을 찍어 국화가 핀 것처럼 그린다. 주로 근경(近景)의 수목(樹木)을 그리는 데 사용된다.

군상

군상 群像

조각이나 그림에서 여러 사람이 집합해 있는 상태를 구성하여 어떤 주제를 표현한 것.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의 신전에는 박공*이나 회랑*의 벽에 군상이 부조된 예가 많이 발견된다. 또한 중세에는 성당의 벽에 군상화 및 군상 조각이 장식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특히 미켈란젤로Michelangelo(1475~1564)가 제작한 시스틴 성당의 천장화가 유명하다. 오늘날에는 기념물의 성격을 띤 군상이 많이 제작된다.

굽타시대 미술

굽타시대 미술 Gupta Period Art(영)

굽타 왕조는 320년 인도 동부(옛 마가다국) 비하르의 파탈리푸트라(현 파트나Patna)에서 찬드라굽타Candragupta 1세가 즉위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아들인 사무드라굽타Samudragupta 시대에는 북인도 전역을 지배하는 통일 제국이 되었지만 6세기 초 백훈족(Epthalites)의 침입으로 인해 굽타 왕조는 마가다 지역의 군소 왕조로 세력이 약화되었다가 550년경 멸망했다.
따라서 굽타 시대 미술은 4세기초에서 6세기 중엽까지 북인도를 중심으로 진행된 미술만을 가리킨다. 굽타 왕조의 멸망 이후 하르샤Harsa가 카나우지를 수도로 재차 북인도를 통일하여 하르샤 시대(606~647)가 약 40년간 지속되기도 하였으나 그 이후에 다시 분열되었다. 반면에 남인도는 안드라* 왕조를 이어 팔라바*, 찰루키야* 등의 독립 왕조들이 통치하고 있었다.
굽타 시대의 미술은 제국의 흥성과 인도 고전 문화를 배경으로 5세기에 절정을 맞이했다. 이 시대에는 제국의 융성과 고전문화의 전개, 확신을 배경으로, 높은 이념과 세련된 기법의 극히 수준 높은 미술을 개화시켰다. 이 시대 불교 미술*의 중심지는 마투라*와 사르나트*이다. 불교 조각상들은 균형과 조화를 이룬 인도적 고전기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 이 시기는 굽타 문화권 지방에서 석굴사원의 제2의 전성기로 데칸 고원 서부에 있는 아잔타 석굴*에 굽타 양식의 벽화*들이 많이 남아 있으나 굽타 이후 불교 미술은 점차 쇠퇴하게 되었다. 굽타 시대는 신상과 석굴 등의 힌두교 미술*이 발달하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5세기초에서 중엽까지의 우다야기리Udayagiri 석굴, 6세기 전반인 데오가르Deogarh의 비슈누* 신전, 6세기 중엽의 엘레판타Elephanta 석굴 등은 굽타 시대의 중요한 힌두교 유적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