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모더니즘 Post-Modernism(영)
포스트 모더니즘은 지난 20세기에 걸쳐 서구의 문화와 예술, 삶과 사고를 지배해 온 모더니즘*에 대한 반동으로서 1960년대 중반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나의 통일된 사조나 운동은 아니지만, 그 중심적 동기는 모더니즘을 통해 수립된 고급문화와 저급문화의 엄격한 구분, 예술 각 장르 간의 폐쇄성에 대한 반발이다.
다니엘 벨Daniel Bell, 하산Ihab Hassan, 오더허티Brian O’Doherty, 로젠버그Harold Rosenberg(1906~1978) 등 많은 사상가들이 모더니즘의 종말을 선고했다. 벨은 “오늘날 모더니즘은 쇠잔했다. 거기에는 긴장도 없고, 창조적인 충동의 기운도 빠져 버렸다. 모더니즘의 반란적 충동은 제도화되었고, 그 실험적인 형식은 광고와 고급문화의 기호와 구문으로 흡수되어 버렸다”고 썼다. 모더니즘의 확립된 양식들이 의심을 받게 되자, 양식에 대한 확실성이 무너지고, 다양성이 대두된 것이다.
‘포스트모던’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쓴 것은 건축 비평가들이었는데, 1960년대까지 유행하던 엄격한 사각형 형태의 국제적 양식에 대한 반발로 나온 건축물을 일컫는 데 사용하였다. 포스트모던 건축에 있어서는 직선과 사각형의 고착된 형태를 탈피하여 삼각형과 원의 형태가 도입되었다.
‘포스트모던’ 경향의 중요한 특징으로는 분화되지 않은 과거의 예술을 소생시키려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다른 시대, 다른 문화로부터 양식과 이미지를 차용*하는 경우가 많다. 한편 고급문화와 저급문화의 엄격한 구분을 파기하고 장르*의 장벽을 넘나들기 위해, 여러 가지 대중문화의 현상들(신문기사, 광고, 만화, 통속물)과 갖가지 신화적 요소들을 작품에 차용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미술가로는 워홀Andy Warhol(1928~1987), 보로프스키Jonathan Borofsky(1942~ ), 카스텔리Luciano Castelli, 키아Sandro Chia(1946~ ), 클레멘테Francesco Clemente(1952~ ), 쿠키Enzo Cucchi, 살로메Salome 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음악에서는 클래식과 팝을 혼합한 필립 글래스나 테리 릴리 같은 작곡가들이 해당된다.
독일 신표현주의*의 기수 페팅Reiner Fetting과 살로메는 독일 표현주의*의 시대로 되돌아간다. 클레멘테와 슈나벨Julien Schnabel(1951~ )은 1930~1940년대에 프랑스나 이탈리아에서 유행한 신낭만주의적이고 의사(擬似) 초현실주의*적인 측면을 골라낸다. 그들은 콜라주* 기법을 통한 재료의 자유로운 합병을 시도하며, 르네상스*와 바로크* 회화, 값싼 종교 성물 등을 작품에 끌어들인다. 그러나 이러한 차용과 혼합의 방식에 대해 비판적인 평론가들도 있는데,
예를 들어 제임슨Fredric Jameson은 그러한 차용행위가 당대의 언어로 당대의 현실을 표현할 능력이 고갈되었음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포스트모더니즘 미술가들의 또다른 주된 특징은 모더니즘적 문화와 사고방식이 세워놓은 엄격한 지배의 틀을 거부하는 데 있다. 즉 후기 산업사회는 자본주의적 지배 이데올로기를 모든 삶의 영역에 부과하며 그러한 이념을 떠받치는 것은 엄격한 합리주의이다. 따라서 각각의 문화의 영역에서의 고도의 전문화를 지향하고, 다른 영역과는 소통이 안 되는 전문적인 언어로만 자체소통하게 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그러한 소통불가능한 상태를 타파하고 삶과 문화의 경계를 무너뜨리기 위해 예술에 정치와 이데올로기를 끌어들여 비판적으로 다룬다. 특히 크루거Barbara Kruger와 하케Hans Haacke(1936~ )에서 보이는 산업자본주의 사회의 소비적 생활방식에 대한 비판은 상당히 정치적 색채를 띤다. 또한 골럽Leon Golub(1922~ )은 제3세계의 고문과 쿠데타를 작품으로 다뤄 첨예한 정치적 쟁점을 부각시킨다.
그러나 서구사회에서 지배 이데올로기에 반발하는 가장 대표적인 형태는 페미니스트 아트*이다. 그것은 기존 사회에 통용되고 있는 남성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과,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하려는 형식으로 나타난다. 사진과 글을 적절히 결합하여 비판적 환기력을 높이는 바바라 크루거, 스스로 갖가지 형태의 여성으로 분장하여 사진의 모델이 되는 셔먼Cindy Sherman(1954~ ), 비디오, 영화, 패션사진으로 작업하는 다라번바움이 그 예이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의 그러한 정치 지향적인 성격은 모더니즘에 대한 근본적인 대안이 되지 못한 채, 몇 가지 새로운 내용과 형식을 추가한 것 뿐이라는 비판도 있다.
모더니즘의 지속적인 존립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키게 한 요인으로는, 현대화에 따르는 부작용, 현대 건축과 도시계획의 실패, 미니멀 아트* 및 개념 미술가들이 모더니즘 이론의 몇 가지 단초를 자신들의 논리적 귀결로 이끌어간 데서 비롯된 부조리, 모더니즘 자체 내에서의 자기 파괴적 경향, 1960년대의 문화혁명이 야기한 태도 변화, 마르크시즘의 영향, 그리고 모더니즘에 기초하지 않은 문화와 예술을 가진 공산주의 국가의 증가 등을 들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아직은 확정되고 일관성 있는 사상의 체계는 아니며, 근본적인 변화에 대한 욕망에 의해 촉발된 회의주의적이고 비판적인 의식이다.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필연적으로 모더니즘의 폐허를 헤치고 나아가 그 대안을 세우려 노력한다. 결국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모더니즘의 많은 개념들을 전용(轉用)할 수밖에 없지만 그것을 다른 목적에 맞도록 이용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