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체스코 수도회
프란체스코 수도회 Franciscan Order(영)
1209년 교황 이노센트 3세의 인가를 얻어 이탈리아의 성 프란체스코St. Francesco(본명은 지오반니 디 베르나르도네, 1182~1226)가 창설한 탁발수도회. 그 목적은 가난하고 비천하게 지낸 예수의 생활을 본받아 특히 청빈 정신을 강조하며, 편력 설교(遍歷設敎)를 통해서 가난한 사람과 병든 사람을 위로하는 데 있다.
프란체스코 수도회 Franciscan Order(영)
1209년 교황 이노센트 3세의 인가를 얻어 이탈리아의 성 프란체스코St. Francesco(본명은 지오반니 디 베르나르도네, 1182~1226)가 창설한 탁발수도회. 그 목적은 가난하고 비천하게 지낸 예수의 생활을 본받아 특히 청빈 정신을 강조하며, 편력 설교(遍歷設敎)를 통해서 가난한 사람과 병든 사람을 위로하는 데 있다.
프랑스 전통 청년화가 Les Jeunes Peintres de la Tradition Française(프)
프랑스의 전통적인 조형 정신을 회화*에서 살리고자 했던 젊은 화가들의 그룹. 1941년 파리의 살롱 드 브롱에서 제1회 전시회를 개최했다. 본래 이 그룹은 이즘을 중심으로 하여 결성된 이념적인 유파는 아닌 자유로운 작가들의 모임이었다.
그들이 주장한 전통적인 조형정신은 나치 점령하의 레지스탕스의 한 방법이다. 따라서 ‘전통’이란 일반적인 의미의 보수적인 전통 내지는 과거의 양식으로 복귀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현실 속에서 순수한 회화적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 새로운 의욕의 표현으로서의 형태, 공간, 데생, 색채를 발견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들은 전통을 부흥시켰던 르네상스* 양식을 퇴폐적인 것으로 보고, 그 이전의 크레타(→‘에게 미술’ 참조), 이집트*, 로마네스크*의 비사실적, 장식적인 예술을 재인식하여 세잔느Paul Cézanne(1839~1906), 반 고흐Vincent van Gogh(1853~1890), 고갱Paul Gauguin(1904~1948)의 길을 발전시켜 새로운 휴머니티를 표현코자 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야수주의*의 풍부한 색채와 입체주의*의 기하학적인 형태를 종합하여 새로운 조형 양식을 창조하고자 했다. 이 그룹에는 로뱅Gabriel Robin, 바젠Jean Bazaine, 르 모알Jean Le Moal 등 10여명이 참가했다.
프랑스 창 french window(영)
마루면까지 안으로 열리는 쌍여닫이 창문으로, 프랑스 도어라고도 한다. 발코니, 베란다, 테라스 등으로 나갈 수 있게 되어 있다.
프레스코 fresco(이)
벽화*를 그릴 때 쓰는 화법. 이탈리아어로 ‘신선하다’라는 뜻. 덜 마른 회반죽 바탕에 물에 갠 안료로 채색한 벽화. 그림물감이 표면으로 배어들어 벽이 마르면 그림은 완전히 벽의 일부가 되어 물에 용해되지 않으며, 따라서 수명도 벽의 수명만큼 지속된다.
프레스코는 석고가 마르기 전에 재빨리 그림을 그려야 하는 어려움이 있으며, 그림의 수정도 거의 불가능해 정확하고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다. 또 사용할 수 있는 안료의 색깔도 제한되어 있고(15~16세기 화가들은 프레스코에는 천연 안료만이 적합한 것으로 보았다), 벽이 마를수록 색깔도 옅어지며, 색의 농담을 이용한 효과도 얻을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과 제약이 오히려 광범한 주제의 디자인과 과감한 방식의 도입을 권장하는 격이 되어, 이탈리아 르네상스* 회화의 순수함과 힘, 불멸성을 크게 촉진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프레스코 화법에서 석고는 안료를 접착시켜 주는 매체*로 작용하며, 흰색만이 사용된다. 이와 같은 정통적인 방법의 프레스코를 이탈리아에서는 프레스코 부오노 또는 부온 프레스코라 하며, 같은 안료를 사용하여 다른 회벽에 그리는 것을 프레스코 세코 또는 단순히 세코라고 불렀다. 프레스코는 기념 건조물의 벽화를 그리기에 가장 적합하다. 다만 습기가 차면 석고가 부서지므로 그림도 함께 떨어져 나가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건조한 지방에서는 가장 영구적이며, 그 결과 베니스를 제외한 이탈리아에서 많이 사용하였으며 북유럽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프레스코 회화는 크레타(→‘에게 미술’ 참조)와 그리스의 벽화, 폼페이의 그레코-로만 벽화가 있다. 중세 초에는 벽화를 그릴 때, 여러 방법이 혼합 사용된 듯하며, 프레스코로만 된 벽화는 없는 듯하다. 그러나 로마의 수도원 건물의 벽화를 보면 12~13세기에는 프레스코가 모자이크* 공예*의 일부로도 사용된 것이 발견된다.
훌륭한 프레스코는 대부분 이탈리아의 대가들에 의해 제작되었다. 그 일인자가 지오토Giotto(1266~1337)이고 그 밖에 마사치오Masaccio(1401~1428),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Pierro della Francesca(1415~1492), 라파엘로Raffaello Sanzio(1483~1520), 미켈란젤로Michelangelo(1475~1564), 코레지오Correggio(c.1490~1534) 등이 있다.
프레스코의 융성기는 14~15세기이며, 16세기 이후로는 점차 유화로 대체되었다. 19세기에 독일 기독교들과 영국의 라파엘전파*의 화가들이 전통적인 이탈리아 프레스코의 부활을 시도했으나 기법의 복귀가 어렵자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1798~1863), 퓌비 드 샤반느Pierre Puvis de Chavannes(1824~1898) 등 많은 화가들이 그 대신에 표구(marouflage) 방법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프레스코는 20세기에 들어와 멕시코의 리베라Diego Rivera(1886~1957)나 오로츠코José Clemente Orozco(1853~1949)에 의해 재발견되는 등 그 전통은 계승되고 있다.
한편 아시아 지역에서는 전통적으로 벽화를 그릴 때 마른 석고 위에 안료로 그리는 방법을 사용해 왔으나, 인도 지방의 벽화기법을 조사해 본 결과, 11~12세기에 프레스코 기법이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프로그램드 아트 Programmed Art(영)
이탈리아의 미술가이자 디자이너인 무나리Bruno Munari가 1945년 이후에 제작한 자신의 작품을 서술한 말로, ‘만드는 과정에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하는 미술이다. 무나리가 예술 대상으로 삼은 것은 전자모터를 사용하여 작은 화면에 색깔과 형태의 배합, 변형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프로그램이란 컴퓨터 용어로 변형 속도와 전 과정이 한 번 바뀌는 데 소요되는 시간의 길이를 프로그램하는 것이다. 일종의 키네틱 아트*인 듯 하나 무나리는 이러한 가정을 거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네틱 작품에 프로그램 아트라는 명칭을 붙이기도 한다. 1960년대의 옵 아트*, 시스테믹 페인팅*, 시리얼 아트*에도 이 말이 사용된다. 그러나 이러한 유형의 예술은 문자 그대로 프로그램된 것을 뜻하므로 컴퓨터 아트*로 간주하는 것이 타당하겠다.
프로타주 frottage(프)
나무판이나 잎, 천 따위의 면이 올록볼록한 것 위에 종이를 대고, 연필 등으로 문지르면 피사물(被寫物)의 무늬가 베껴지는데, 그 때의 효과를 조형상에 응용한 기법. 원뜻은 ‘마찰하다’라는 의미의 프랑스 어 ‘frotter’에서 나왔다.
작자의 의식이 작용하지 않은 차원에서 우연히 나타나는 예기치 않은 효과를 노린다는 의미에서는 데칼코마니*나 타시슴* 또는 자동기술법*과 같은 성질의 것이다. 우연한 효과를 노리는 것뿐만 아니고, 몇 가지 피사물을 의식적으로 짜맞추는 경우도 있고, 혹은 거기에 나타난 무늬에서 힌트를 얻어 붓을 가하는 경우도 있다. 이 기법은 우연이나 무의식을 중시하는 초현실주의* 작가들이 다루었다. 특히 독일 태생의 에른스트Max Ernst(1891~1976)는 콜라주*와 함께 이 기법을 사용한 대표적 작가였다. 1926년의 《박물지博物誌》는 이 수법을 구사한 화첩(畵帖)으로서 유명하다. 그는 어느 날, 마룻바닥의 얼룩을 보고 있다가 거기에서 온갖 환각(幻覺)이 생긴다는 것을 깨닫고, 이 기법을 발견하였다. 이 기법에 의한 《박물지》 속의 나뭇잎 등의 형상은 인간의 머리, 괴물, 바다 풍경 등으로 변모하고 있다.
프로테 frottée(프)
‘난타한다’는 뜻. 붓에 물감을 발라 심하게 화면을 치는 기법을 말한다. 반 고흐Vincent van Gogh(1853~1890)의 자화상*의 배경, 블라맹크Maurice de Vlamink(1876~1958)의 수목(樹木) 묘사 등에서 그 예를 볼 수 있다.
프로필라이움 propylaeum(영)
고대 그리스*의 신전이나 성지로 들어가는 입구에 세운 문. 특히 정교하고 모뉴멘털한 구조로 되어 있을 때 쓰는 용어. 가장 유명한 것으로는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서쪽 진입로에 있는 것으로, 두 개의 도리아 양식* 포르티코(portico, 주랑 현관)가 5개의 문으로 뚫린 중앙 벽 옆에 있다. 출입구가 1개 이상일 때 주로 복수형 ‘propylaea’을 쓴다. 건축가 무네시클레스Mnesicles가 기원전 437~432년에 건조했다.
프롤레타리아 미술 Proletarian Art(영)
프로 미술이라 약칭되는 수가 많다. 노동자 계급의 사회의식 고양(高揚)을 반영하며, 그들을 중심으로 하는 민중 계급의 생활과 투쟁의 양상, 그리고 지배자의 압제, 허위, 부패를 그리는 미술.
도미에Honoré Daumier(1808~1879), 뫼니에Constantin Meunier(1831~1905)를 선구로 하며, 19세기말부터 1920년대에 국제적인 노동 운동이 전개되면서 성행하였다. 독일의 콜비츠Käthe Kollwitz(1867~1945), 그로츠George Grosz(1893~1959), 프랑스의 스탱랑Théophile-Alexandre Steinlen, 미국의 그로퍼William Gropper(1897~1977), 멕시코의 리베라Diego Rivera(1886~1957), 오로츠코José Clemente Orozco(1853~1949), 시케이로스David Alfaro Siqueiros(1896~1974) 등이 유명하다.
그 표현에는 개개의 작가에 따라 관념적인 저항성, 희생과 비참에 대한 인도주의적 감상(感傷), 염세주의적 또는 허무주의적인 현실 폭로의 태도, 우의적(寓意的) 혹은 도식적(圖式的)인 단순한 묘사가 많으며, 갖가지의 뉘앙스*가 있다. 점차로 방법론적 자각이 전개되어 프롤레타리아 리얼리즘의 주장이 일어났고, 1930년대 중반부터 이 운동의 주류는 사회주의 사실주의* 속으로 발전적 해체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