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보 레알리슴 Nouveau Réalisme(프)
1960년대 초에 당시 유럽과 미국의 지배적인 조류였던 추상표현주의*, 서정 추상*, 타시슴* 등 일련의 앵포르멜 미술*에 대응해서 일어난 운동. 누보 레알리슴은 공업제품의 단편이나 일상적인 오브제*를 거의 그대로 전시함으로써 ‘현실의 직접적인 제시’라는 새롭고 적극적인 방법을 추구했던 미술이다. ‘기계화되고 공업화되면 광고로 넘치는 우리들 현대의 자연’을 있는 그대로 ‘차용’하여 제시하는 것은 누보 레알리슴의 가장 중요한 원리이자 방법이다.
누보 레알리슴의 중심 인물은 비평가 레스타니Pierre Restany로서 그는 1960년 4월 밀라노 아폴리네르 화랑에서 제1차 선언을 발표하고 <현실의 새로운 조망적 접근>이라는 기치로 전시를 개최했다. 정식으로 ‘누보 레알리스트’로서 그룹이 결성된 것은 같은 해 11월 클랭Yves Klein(1928~1962)의 방에서였으며, 이어 그해 말에 파리에서 열린 제2회 전위미술제에서 작품 전시, 1961년 5월 파리 J화랑에서 제2회 전시 <다다보다 40도 위>를 개최하고 선언서를 발표함으로써 그 주장을 보다 명확히 했다.
이 전시회에서 아르망Arman(1928~ )은 그림물감의 튜브나 진공관과 같은 대량생산의 공업제품을 집적(集積)한 작품을 출품하여 ‘현실의 직접적 제시’라는 방법을 구체화 시켰다. 스포에리Daniel Spoerri(1930~ )는 <타블로 피에지(함정의 회화)>라는 작품을 내놓았는데, 이는 음식물이 남아 있는 식기류를 쟁반 위에 그대로 고착시켜 음식을 먹고 난 그 시각과 상태를 현상 자체로 제시한 것이었다. 팅겔리Jean Tinguelly(1925~1991)는 폐물들을 이용한 작품을 하였고 세자르César(1921~ )는 자동차를 입방체로 압축시킨 조각을 보여줌으로써 소재의 특이성과 기교를 아주 내버린다는 점에서 누보 레알리슴의 미학을 잘 드러내었다. 빌르글레Jacques de la Villeglé(1926~ )와 앵스Raymond Hains는 벽에서 떼어내거나 찢어진 포스터 및 광고로 작업했다.
누보 레알리슴 운동의 최초 그룹 참가자는 레스타니, 아르망, 뒤프렌느François Dufrêne, 앵스, 클랭Yves Klein(1928~1962), 레이스Martial Raysse, 스포에리, 팅겔리, 빌르글레 등 10명이었으나 곧 세자르, 생팔Niki de Saint Phalle(1930~ ), 크리스토Christo Javacheff(1935~ ) 등이 참여했다. 이들은 세 개의 선언을 발표하면서 이념적인 통일성을 보이긴 하였으나, 구체적인 개개 작품간의 공통적 특성은 명확하지 않다.
1960년의 선언에서는 ‘실재를 자각할 수 있는 새로운 접근 방식’ 만을 요구하였으며, 각 작가들은 자신의 방식대로 다양하게 작업했다. 이들의 결속은 현대적 자연을 제시하려는 필요에 의한 전략적인 것이었으므로 조직력은 강하지 않아서, 의견의 대립으로 곧 클랭, 앵스, 레이스 등이 그룹의 해산을 선언했고 1962년 클랭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동요되다가 1963년에 운동으로서의 누보 레알리슴은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