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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적인 것

미적인 것 Das Ästhetische(독)

미학*상의 용어. 이 어원은 그리스어의 ‘aisthesis’인데, 본래는 직감적이라는 뜻이지만, 미학적인 개념으로서는 좁은 의미의 ‘미*’를 위시하여, 이것이 갖가지 조건에 의해 변모되는 데서 성립되는 숭고*(장엄미), 비장(비극미), 해학(희극미) 등의 여러 형태를 총칭한다. 이들의 미적 기본 형태 또는 미적 범주*는 그 다양한 상이성(相異性)에도 불구하고 일종의 정신적 가치 내용으로서의 공통적 성격과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통일성과 특수화에 대해 연구하는 것이 미학*의 과제이다. ‘미적’과 ‘예술적’의 차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논의가 있지만 미적인 것의 본질이 예술의 영역에서 가장 뚜렷하고 순수하게 나타나고 동시에 예술이 그 본질상 필연적으로 미적 가치를 가져야 한다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미점

미점 米點

북송대(北宋代)의 문인화가 미불米芾(미 후, 1051~1107)과 미우인米友仁(미 이어우르언) 부자에 의해 이룩된 미법산수의 한 기법. 부드러운 곡선을 이룬 토산이나 녹음이 무성한 여름 수림을 그릴 때 붓을 옆으로 기울여 큼직한 묵점(墨點)을 찍어나가며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미불이 창시했다고 하며, 발묵*의 성격이 강했던 것 같으나, 후대에 가서는 형식화되었다.

미케네 미술

미케네 미술 Mycenaean Art(영)

선사(先史) 그리스의 미술. 크레타 문명이 쇠퇴한 뒤에 미케네를 중심으로 에게 문명을 받아들여 기원전 16세기경부터 12세기경에 걸쳐 번영했던 문명의 미술. 19세기 말엽 독일의 고고학자 쉴리만Heinrich Schliemann이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드》에서 영감을 받아 매장되어 있던 유적을 발굴하게 되었다. 쉴리만은 먼저 1871년에 트로이 유적의 발굴에 착수했고, 1876년 미케네, 1884년 티린스의 발굴을 시도한 결과, 그리스에는 선사시대에 이미 뛰어난 문명이 존재하였다는 것을 실증하는 여러 유품들을 발견하였다.
이후 다른 학자들도 그리스 본토에서 발굴을 시도하여 이 문명의 지리적 분포를 밝혀낼 수 있었다. 특히 미케네에서 뛰어난 유품들이 가장 풍부하게 출토되어 이를 미케네 문명이라고 총칭하게 되었다. 그리고 20세기 초 이래 영국, 이탈리아, 미국 등지의 고고학자 및 학회가 크레타섬의 크노소스Knossos, 파이스토스Phaistos의 대발굴 작업에 착수한 결과, 미케네 문명 및 그 미술의 원류가 크레타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추정하게 되었다. 미케네 미술은 크레타 미술의 계승이라기 보다는 미케네의 고유한 부분과 크레타로부터 도입한 부분 또는 그것이 후에 미케네인들에 의해 변형된 부분으로 이루어져 나타났다.

미투나

미투나 mithua(범)

사랑하는 한 쌍의 남녀 또는 사랑을 나누고 있는 행동을 말하며, 인도 종교에서는 대극성(對極性)안에서의 합일(合一)을 상징한다. 초기에는 석굴사원의 벽면이나 출입구에 두 남녀가 나란히 서 있는 부조* 형태로 나타났으나 이후에 조성된 오리사Orissa주의 부바네시바르와 코나락, 그리고 카주라호에 있는 힌두 사원*에는 성적인 결합을 나타내고 있는 미투나 상이 많다. 이러한 상들은 여성이 갖고 있는 생산성을 한 쌍의 남녀로써 상징화한 것을 의미한다. 특히 신과 그 샥티*와의 결합, 혹은 신과 인간의 결합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된다.

미학

미학 美學 aesthetics(영) esthétique(프) Ästhetik(독)

인간이 세계를 미적으로 파악할 때의 법칙 및 특수한 세계 파악의 형태로서의 예술의 발전 및 그 사회적 역할에 대한 본질과 법칙을 명확히 밝히는 과학. 미*나 예술에 대한 이론적 반성 그 자체는 일찍이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보통 미학의 시조를 플라톤Plato과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라고 하나, 철학의 한 부분으로서의 미학은 18세기 중반 독일의 바움가르텐Alexander Gottlieb Baumgarten이 ‘감성적 인식의 학(scientia cognitionis sensitivae)’이라는 의미로서 aesthetica-그리스어의 ‘감성적(aisthetikos)’이라는 말에서 유래-라는 명칭으로 사용한 것이 처음이었다.
칸트Immanuel Kant는 이를 비판주의의 입장에서 한층 더 명확하게 기초를 세워 그 후 셸링Friedrich.W.J.Schelling, 헤겔Georg W.F.Hegel을 거쳐 하르트만Nicolai Hartmann에 이르기까지 소위 독일 관념론을 중심으로 주로 발전했으며, 그 밖에도 헤르바르트 일파의 실존론적 미학, 영국의 흄Thomas Ernst Hulme이나 버크Edmund Burke(1729~1797)류의 경험주의적 미학, 프랑스의 디드로Denis Diderot(1713~1784) 일파의 계몽주의적 미학이 각기 그 나름대로 독자적인 주장을 펼쳤다.
19세기에 접어들자 경험 과학 일반의 발달에 밀려 독일의 페히너Gustav Theodor Fechner 일파는 전통적인 관념론적 미학의 주관적 사고를 배척하고 객관적 기록에 의한 미적 현상의 연구를 주장하여 방법상 종래의 소위 철학적인 ‘위로부터의 미학(Ästhetik von Oben)’과 과학적인 ‘아래로부터의 미학(Ästhetik von Ungen)’과의 대립이 생기기도 하였다. 한편으로 러시아에서는 벨린스키V.G.Belinski, 체르니세프스키N.G.Chernyshevskii 등이 구체적으로 사회와의 연관성 속에서 새로운 미학적 고찰을 시도하였는데, 이 속에는 신구(新舊)시대 간의 사고의 투쟁이 비교적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곧이어 등장한 마르크스주의 미학*은 예술과 그 역사에 관한 연구에 한정되지 않고, 현실(예술도 포함하여)에 대한 인간의 미적 태도의 일반적 원리를 연구한다. 즉 그것은 세계의 미적 파악의 본성을 명확히 밝히고, 이것에 의해 성립하는 예술을 고찰한다. 미학은 이러한 의미에서 예술로서 성립한 것만을 문제로 삼지 않아 철학적 과학이라고 일컬어진다. 철학이 그러하듯이 미학은 하나의 이데올로기로서 성립하는 과학으로, 사회적 존재, 인간 생활에 대하여 미적 의식 및 예술의 관계를 해명하는 것을 주된 과제로 삼는다. 이것에 기초하여 예술의 본성으로부터 나오는 다양한 영역 및 예술적 창조의 과정, 예술의 기원 및 그 본질과 기타 사회적 의식 형태와의 관계, 예술이 갖는 당파성, 예술적 방법 등에 대해 과학적으로 해명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더불어 사회 혁명에 있어서 예술의 역할을 조명한다.
한편으로, 현대 미학의 다방면의 전개 양상을 ①과학적 미학 ②철학적 미학 ③예술과학 ④예술철학으로 개괄하기도 한다. 과학적 미학은 미적 사실을 경험적, 귀납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목표인데, 예를 들면 페히너•립스Theodor Lipps 등의 심리학적 입장, 엘렌Grant Allen•베인Alexander Bain 등의 생리심리학적 입장, 텐느Hyppolyte Adolphe Taine•귀요Jean Marie Guyau 등의 사회학적 입장 등이 모두 그것이다. 그러나 이들 과학적 방법은 미적 현상의 각 측면에서 경험적 특수성을 설명할 수는 있지만 그 통일적인 본질성, 법칙성은 갖추지 못했다. 바로 이 점에서, 이들 과학적 미학의 성과를 검토 종합하며 넓은 의미의 ‘미적인 것*’의 궁극 원리를 해명하는 철학적 미학이 요청되기도 한다. 현대의 철학적 미학은 과거의 관념론적 미학과는 달라, 그 방법도 다양하나 모두 철학과 과학을 조화, 종합시키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으며, 미와 예술의 본질을 그 직접성, 구상성(具象性)에서 파악하려는 특성을 갖는다.

미화

미화 美化 beautification(영)

미학*상의 용어. 미의식*에 포함되는 관념화, 이상화의 작용. 예술의 여러 양식에서 갖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①미적 대상*의 개별적, 우연적 요소를 제외하고 본질을 표현하는 방법(고전주의*) ②대상의 본질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확대하여 초현실적으로 재구성하는 방법(원시상징주의) ③대상의 가치적 통일에 모순되는 내용을 제외하고 소극적으로 미화하는 방법. 예컨대, 현실의 인간 속에서 선인은 선한 일면, 미인은 미의 일면만을 표현한다(이상주의*) ④주관적 견지에서 본 대상의 가치를 확대 과장하여 초현실적으로 표현하는 방법(낭만주의*). 또는 형식상으로 말하면, 미화 작용은 현실의 대상을 가상화하고 자아의 체험 내용을 관념화하는 작용을 한다. 위와 같은 의미의 미화는 사실주의* 예술에도 포함된다. 다만 일반적으로는 ②와 ④의 경우와 같은 대상의 주관적, 초현실적 과장이나 형식상의 조화를 구하여 대상을 왜곡시키는 표현(양식화)을 주로 미화라고 부른다.

민속미술

민속미술 民俗美術 folk art(영)

서민미술, 민족미술, 농민미술, 지방미술 등을 모두 포괄하는 다양한 의미로 통용되는 용어. 소박한 비전문적 집단이 만들어 낸 세련미나 정교함이 떨어지는 미술을 가리킨다. 특히 민속미술은 어떤 특정 문화에서 고유하게 나타나는 전통적인 장식과 기능적인 형태를 보여준다. 정규 훈련이나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장인의 손에 의해 일상용이나 장식용으로, 혹은 결혼식이나 장례식 같은 특별한 경우를 위해 전통적인 방식으로 제작된 물건이나 장식품이 이에 속한다. 목각, 자수, 직물, 편물, 바구니 세공, 토기 제품 등의 전형적인 민속미술품과 주택, 가구, 장식 등도 포함된다. 그러나 대중의 취향에 영합하여 대량생산된 제품들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민속미술은 유행이나 취향의 변화, 개인의 독창적인 표현에 크게 좌우되지 않으며, 일정한 형태가 이루어지고 나면 문양과 디자인이 거의 변형되지 않은 채 가내에서 대대로 전승, 지속되는 것이 특징이다. 19세기와 20세기 초까지 민간 미술을 과거의 직업 미술이 뒤늦게 반영된 것으로 보는 잘못된 인식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직업적인 예술인의 고유성과 그 기법은 수세기에 걸쳐 보존해 온 자생적인 전통이라고 여겨지고 있다. 민간 미술의 본질과 영역에 대한 기초 연구를 최초로 했던 미술사학자인 리이글Alois Riegl(1858~1905)은 《민간 미술, 가내공업》이라는 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민간 미술이 지닌 단순 소박하고 생생한 정취가 넘치며 그 실용적인 목적에도 부합하는 점이 높이 평가되어 지식층을 중심으로 미술과 공예운동*과 관련해 민간 미술을 부활시키려는 시도가 몇 차례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성공한 경우는 극히 드물며 오히려 현대에 들어서는 관광사업의 요구와 맞물려 타락하고 있는 실정이다.

민화

민화 民畵

조선시대의 민예(民藝)적인 그림. 특히 조선후기에 일반 민중의 그림으로 유행하였으며, 이규경李圭景(1788~1865)의 《오주연문장전상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는 이를 ‘속화(俗畵)’라 칭하고 여염집의 병풍, 족자 또는 벽에 붙여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대부분 무명화가나 떠돌이 화가들에 의해서 그려졌으며, 서민들의 생활양식이라던지 관습 등의 항상성(恒常性)에 바탕을 두고 발전하였기 때문에, 창의성보다는 형식화된 유형에 따라 인습적으로 계승되었다. 그러나 민화는 생활 양식의 오랜 역사와 밀착되어 형성되었기 때문에, 그 내용이나 발상 등에는 한국적인 정서가 보다 짙게 깔려 있다.
한편 민화라는 말은 일본인 미술평론가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1889~1961)가 ‘오쓰에大津繪’라는 일본의 민속적 회화에 붙였던 명칭에서 비롯되었다 하여, 민화를 ‘겨레그림’ 또는 ‘생활화’로 바꿔 부르자는 의견도 있다. 민화는 장식, 장소와 용도에 따라 종류를 달리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화목(畵目)으로 화조도, 십장생도*, 산수도, 문자도, 책가도, 풍속도, 고사도, 작호도(鵲虎圖), 어해도(魚蟹圖), 무속도 등이 있다.

민흘림 기둥

민흘림 기둥

아래쪽부터 위로 올라가면서 서서히 두께가 좁아지는 기둥으로, 사다리꼴과 같이 일정한 비율로 좁아지는 것이 아니라 각 지점마다 체감되는 비율을 달리하여 좁아지는 기둥을 말한다.

밀랍

밀랍 蜜蠟 beeswax(영)

벌집에서 채취한 동물성 고체랍으로, 예로부터 사용되어 온 조소의 거푸집용 재료이다. 그 조직이 치밀해서 점토처럼 습기의 정도에 따른 수축 및 균열이 없다. 유토(油土)에 가까운 가소성을 보이며 특히 브론즈 주조의 거푸집에 적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