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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

기능 機能 function(영)

건축 및 공예 용어. ‘실행’을 의미하는 라틴어 ‘functio’가 어원으로, 작용, 활동 등의 뜻을 지닌다. 디자인 상으로 기능이 주목받게 된 것은 19세기 중엽부터이며 미국의 조각가인 그리너프Horatio Greenough(1805~1852)가 최초의 인물이다. 그는 생물학자 라마르크Jean-Baptiste Lamarck가 내세운 ‘형태는 기능에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 FFF)’라는 명제를 조형의 세계에 도입하였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후에 건축가 설리반Louis Henri Sullivan(1856~1924)에 의해 건축 디자인의 한 원리로 받아들여졌으며, 제1차세계대전 후에는 기능주의*에 의해 극단으로까지 추진되었다.
그러나 기능주의자들에게 기능이란 개념은 너무나 생물학적이었고 곡선을 중요시하였을 뿐만 아니라, ‘하나의 기능을 위해 하나의 건축물을’ ‘특정한 포즈에는 특정한 의자를’ 등의 방법으로 주장하다가 마침내 벽에 부딪침으로써 운동으로서는 단명하였다. 그러나 이로 인해 기능의 개념이 무용지물로 된 것은 아니며, 오늘날의 사고방식에 따르면, 의미 또는 표상과 기능이 일단 분리되어 취급된다고 하더라도 양자는 불가분의 일체로서 작품에 실현된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한편 순수 미술의 경우는 자유로운 조형 표현이 주된 목표이므로, 기능은 거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

→ ‘기능주의’ 참조

기능주의

기능주의 機能主義
Functionalism(영)

기능*을 건축이나 디자인의 핵심 또는 지배적 요소로 하는 사고방식. 다시 말하면 건축이나 공예에 있어서 그 용도 및 목적에 적합한 디자인을 취한다면 그 조형의 미는 스스로 갖추어진다는 사고방식을 의미한다. 기능 개념의 모태를 이루는 실용성 또는 합목적성의 개념은 19세기 초반의 고전주의* 건축가 쉰켈Karl Friedrich Schinkel(1781~1841) 등의 사상에서 싹트기 시작하여,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바그너Otto Wagner, 메셀Alfred Messel, 미국의 설리반Louis Henri Sullivan(1856~1924) 등 진보적인 건축가들에 의해 처음으로 적극적인 조형의 요소로서 다루어졌다.
특히 근대 건축의 아버지라고 일컬어지는 오스트리아의 건축가 바그너는 “예술은 필요에 따라서만 지배된다”고 주장하였으며, 미국 건축의 개척자 중 한 사람인 설리반은 “형태(form)는 기능에 따른다”고 하였다. 한편 “집은 살기 위한 기계”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프랑스의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1887~1965)는 1924년경부터 회화 운동의 하나인 순수주의*의 원리를 건축에 응용하였다. 그는 순수하게 기능적인 목적을 획득하기 위해서 콘크리트, 놋쇠, 유리 등의 재료로 조작하고 또 부착시키는 디자인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제1차세계대전 후 ‘표현이 아니라 기능을’이라는 주제를 디자인의 기본 원리로 삼아 작업을 했던 핀스테를린Hermann Finsterlin, 헤링Loy Hering, 샤로운Hans Scharoun 등의 건축가들은 지나치게 인체나 생물 기관의 모방에 빠진 나머지 유기적 곡선에의 편중 및 극단적인 개성화를 초래하였다. 그리고 이론적으로는 특정한 기능에 대해 유일적인 형태가 결정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기능주의는 조형 미술 분야에서 바우하우스*, 순수 주의*, 구축주의* 등에 여러 형태로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기도서

기도서 祈禱書 book of hours(영)

로마 가톨릭 성당의 평신도들이 개인적으로 예배를 할 때 사용하는 기도서. 주로 라틴어나 해당 국가의 자국어로 쓰여 있으며, 성모 마리아의 기원을 중심으로 하는 기도문과 성가로 구성되어 있다. 때로는 달력까지 수록되어 있는데 14~15세기의 프랑스와 플랑드르 지역에서 제작된 채식(彩飾)된 필사본* 기도서는 미술사상 의미가 크다.

기록사진

기록사진 記錄寫眞
documentary photography(영)

사회의 생활상이나 현실, 사건을 충실하게 재현하는 사진. 허구적 요소를 배제하고 현실에 충실한 태도가 전제되는 사진 분야이다. 이 용어는 20세기초 프랑스의 앗제Jean Eugène Auguste Atget(1857~1927)가 자신이 사는 아파트 문에 ‘예술가를 위한 다큐멘트’라고 써 붙이고, 자신의 사진을 화가들에게 판매하면서 처음으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다큐멘터리 사진은 사실의 기록과 전달이라는 측면에서 보도사진*(photo journalism)과 그 근본은 같지만, 전개양상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즉 보도사진은 신문이나 잡지같은 저널을 통해 어떤 사실이나 현상을 알리는 구체적인 목적과 기능적인 측면이 강조되는 반면, 기록사진은 보도 사진의 영역과 더불어 사진가의 예술관과 세계관을 표현하는 예술적 표현 매체를 일컫는 보다 넓은 영역을 포괄한다. 다큐멘터리 사진은 하인Lewis Hine이 세기말의 슬럼가 주민을 찍은 사진과 에반스Walker Evans와 랭Dorothea Lange이 정부지원 하에 제작한 1920년대 공황기의 빈민을 찍은 초상사진으로 대표된다.

→ ‘보도사진’ 참조

기명절지

기명절지 器皿折枝

동양 회화의 한 화제(畵題). 고동기(古銅器)나 자기*(磁器)에 꽃가지 과일 문방구류 등을 함께 그린 그림이다. 잡화(雜畵) 계통의 그림으로 정물(靜物)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중국에서는 ‘박고도(博古圖)’ ‘청공도(淸供圖)’라고도 한다. 처음에는 그릇에 꽃을 꽂는 병화도(甁花圖)에서 비롯되었으나, 오대(五代)말~송대(宋代)에 이르러 고동기가 중심 도상*(圖像)이 되는 기명절지도로 발전되었다. 특히 송대에 왕성한 발전을 보였는데 이는 금석학*金石學의 대두로 인한 문인사대부들의 복고취미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고동기는 상, 주(商周)시대의 제사에 쓰이던 제기(祭器)로, 신비스러운 힘을 가진 왕권 상징의 보기(寶器)였다. 송대에 와서 고동기는 몸체에 새겨진 명문*(銘文)으로 인해 역사적 사실을 담고 있는 유물로, 꽃을 꽂아 감상하는 애완품으로 문인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따라서 고동기를 연구하고 그림으로 남기는 작업이 성행하였고, 이러한 도상에 길상성(吉祥性)의 뜻을 내포한 꽃이나 과일이 곁들여져 기명절지도라는 화제가 성립되었다.
기명절지는 문인취향의 성격에 길상적 의미까지 있어 원, 명, 청대(元明淸代)를 걸쳐 자주 그려졌다. 한국에는 고려시대에 <제기도祭器圖>가 중국 송宋으로부터 전래되었다는 기록이 보여 그 원류에 대한 추정을 가능하게 한다. 조선 초기에는 <의기도欹器圖>에 대한 기록이 보이며, 조선 중기에 들어서면 본격적인 박고물(博古物)과 박고취미에 대한 인식이 보인다.
조선 후기에 들어와 문인화가 강세황姜世晃(1713~1791)에 의하여 <정물靜物>과 같은 본격적인 기명절지도가 그려지기 시작하였다. 이후 김홍도金弘道의 <서원아집도西園雅集圖>나 <포의풍류도布衣風流圖>와 같은 그림에 기명절지적 요소가 보이며 책거리나 도자기, 신선도, 민화*(民畵) 등 여러 방면에서 그 요소를 찾아볼 수 있다. 장승업張承業(1843~1897)에 의해 근대 기명절지도의 전형이 마련되어 유행되었다. 이후 근대기의 많은 화가들에 의해 1880년대부터 1920년대까지 일상적으로 그려졌다.

기분

기분 氣分 mood(영) Stimmung(독)

일반적으로 감각적 직관에 수반, 융합되는 막연하고 가벼운 주관적 감정. 일시적이든 지속적이든 모두 마음의 상태로서 의식의 전체로 확대된다. 미적 감정*과 같이 주관과 객관의 조화에 근본을 둔다고 간주되어 철학적으로도 중요하게 취급되고 있다. 예술 분야에서는 건축, 장식, 음악, 무용 등 기분의 표출을 특색으로 하는 예술을 특히 ‘기분예술(Stimmungskünste)’이라 부르며, 사물의 재현을 본질적 계기로 하는 ‘묘사예술(Darstellendekünste)’과 대립시킨다. 일반적으로 어떤 종류의 예술도 다소 기분을 그 내용으로 갖는다. 본래의 미적 기분과는 별도로, 예술 창작 과정의 제1단계에서 창작 충동의 기분이 막연한 형태를 띠게 되는 것을 창작적 기분이라고 한다.

기억화

기억화 記憶畵
memory picture(영)

실물에 의한 것이 아니라 기억에 의해서 그려진 그림. 아동화의 용어로서 흔히 쓰여지며, 아동 미술교육의 한 방법으로서 최근 그 중요성이 인식되고 있다.

기졸

기졸 記拙

조선 후기 문인화가 윤두서尹斗緖가 지은 화평 모음집. 1691년 9월부터 1715년 11월까지 기록된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현재 제1권은 전하지 않는데 그가 세상을 떠난 후 바로 유실되었다고 한다. 제2권의 내용은 시(詩)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화평(畵評), 서간(書簡), 경문(經文), 열전(烈傳), 축문(祝文), 묘지찬문(墓地撰文) 등으로 꾸며져 있다. 회화관계의 글은 조선 초, 중기 화가들에 대한 작가평과 중국화에 대한 품평, 자신의 회화관으로 서술되어 있다. 조선시대 화가들에 대한 작가평은 안견安堅, 강희안姜希顔, 이상좌李上佐 등 20여명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자신의 필묵 경험을 바탕으로 비평하였다. 중국 화가들에 대한 품평은 한대(漢代)의 모연수毛延壽(마오 이앤서우), 송대(宋代)의 소식蘇軾(쑤 스, 1036~1101), 원대(元代)의 조맹부趙孟頫(자오 멍후, 1254~1322), 전순거錢舜擧(치앤 순쥐), 예찬倪瓚(니 짠, 1301~1374) 등을 거론하였다.
자신의 회화관은 <자평自評>에 잘 나타나 있다. 그는 “필법이 공교로워야 하고 묵법은 그 묘미를 터득해야 하는데, 이 두 가지 법이 화합을 이루어야 ‘화(畵)’가 ‘도(道)’에 도달한다”고 주장하였다. 또 화도(畵道)에 이르는 화품을 5가지로 구분하여 도(道), 학(學), 지(識), 공(工), 재(才)를 제기하였다. 즉 만물을 포괄하여 헤아릴 수 있는 것은 화지(畵識)이며, 형상의 의표(意表)를 터득하여 실행하는 것은 화학(畵學)이고, 만물의 척도가 되는 작대의 제작은 화공(畵工)이며, 마음먹은 대로 표현할 수 있는 손의 능력을 화재(畵才)라 하였으며 이들을 모두 갖추어야 화도를 이룰 수 있다는 회화관을 나타내고 있다.
이는 정확한 관찰과 사생을 통하여 대상의 진의를 파악하려는 회화관이며 단순히 사의*(寫意)만을 강조하는 기존의 회화관과는 어느 정도 차별성을 보인다. 즉 청아하고 속기가 없는 사의적인 남종화*론(南宗畵論)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전대(前代)에 비해 사생과 관찰을 중시하는 사실주의적인 회화관을 엿볼 수 있다.

기하학적 추상

기하학적 추상 幾何學的抽象
geometric abstraction(영)

→ ‘추상미술’ 참조

기호

기호 記號 sign(영)

기호는 1970년대 미술에서 주관적인 표시법으로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최근의 미술에서는 관찰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신비적인 암호와 같은 형태를 사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를테면 주변 공간과의 연관을 설정하고 미시공간과 거시공간 사이의 긴장 관계 같은 것을 요구하는 팔레르모Blinky Palermo의 색점은 설명하기는 어려우나, 그 때문에 더욱 강렬하게 체험할 수 있는 기호적 특성을 지닌다.
이른바 패턴 아트(pattern art)에서 기호들은 장식적인 문양이라는 또 다른 특징을 지닌다. 이탈리아에서는 1970년대말 ‘아르테 치프라(arte cifra)’라고 불리는 양식이 등장했는데, 이 양식의 전체적인 특징은 기호를 통한 주관적인 표현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