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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문

암문 暗門

성(城)의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적이 알지 못하는 출입구를 내어 사람과 가축이 통과하고 양식 등을 나르도록 하는 곳.

암벽화

암벽화 岩壁畵

동굴, 절벽, 암괴 등의 벽면에 그린 그림. 각지에 걸쳐 구석기 시대부터 중세까지 각 시대의 것이 있다. 실루엣*을 새기거나 윤곽선을 단색의 안료로 그린 것에서부터 부조나 여러 색채를 사용한 것까지 그 기법과 양식이 다양하다. 작품 소재는 구석기 시대에는 주로 수렵의 대상인 들소, 말, 맘모스, 코뿔소 등이었고, 신석기 시대 이후로는 집단적인 수렵, 어로, 경작, 제의 장면이 표현되었다. 이것들은 대개 주술적인 목적에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구소련에는 구석기 시대의 암벽화로 카포바야 동굴과 쉬슈키노 등이 있고, 신석기 시대의 것은 자라보르가 등이 알려져 있으며, 특히 러시아 동북부와 동 시베리아에 많이 분포한다. 우리나라의 암벽화로는 경남 울주군 언양면 대곡리와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의 것 등이 있다.

암영주의

암영주의 暗影主義
Nuagisme(프)

이 용어는 아이러니컬한 의미로 사용되어, 1953~1966년 함께 의견을 표명한 프랑스 화가 집단을 가리킨다. 이들은 벤라스Benrath, 뒤빌리에René Duvillier, 그라지아니Pierre Graziani, 로비에스René Laubiés, 룹찬스키Marcell Loubchansky, 아사르Nasser Assar 등으로, 평론가 알바르Julien Alvard(1960년 파리 장식 미술관에서 <대립관계Autagonismes>라는 전시를 기획)의 지지를 받으며 기하학적이지도 제스처적이지도 않은 추상미술을 전개하였다. 그들을 결합시켰던 것은 앵포르멜 미술*에서의 투명성과 심오함의 재도입이었다. 1953년 알바르에 의해서 주관된 그들의 첫 전시회의 제목인 <한계없는 자연으로부터 무경계의 회화까지D’une nature sans limites áune peinture sans bornes>에서 그들의 화풍이 잘 드러난 바 있다.

암포라

암포라 amphora(영, 라)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에 가장 널리 쓰였던 항아리의 한 형식. ‘2개의 손잡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타원형으로 불룩 나온 긴 몸통을 가진 암포라의 경부(頸部)는 원통형을 이루고 받침 부분이 안정되어 있다. 항아리의 목 부분에서 몸통에 걸쳐 세로로 2개의 손잡이가 달려있고, 대부분이 동그란 손잡이가 붙은 뚜껑이 있다. 본래 포도주나 올리브 유 등을 담는 그릇이지만 곡식이나 물고기의 운반, 저장용으로 주로 사용되었고 묘표(墓票), 유회(遺灰) 용기, 경기의 승리자에게 주는 상품 등 특수한 목적에도 쓰였다.

압사라

압사라 Apsaras(범)

인드라*의 하늘에 사는 천녀(天女)이지만 원래는 물의 요정이다. 팔부중*의 하나인 간다르바Gandharva(乾喪婆)의 부인인데, 때로는 춤을 추거나 음악을 연주하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간다르바의 한 종류로 생각되는 긴나라*Kinnara(緊那羅)는 하반신이 새인 음악의 신이다.

압윰

압윰 yab-yum(티)

라마교의 남녀 포옹상(像). 남존(압)이 명비(샥티*)가 되는 여존(윰)을 껴안고 남녀 2존이 일체가 된 상. 라마교 미술에서는 그 수가 매우 많은데, 인도 후기 밀교의 쌍입(yuga-na-da)의 사상을 구체적인 불교 존상으로 표현한 것으로, 현실 세계의 온갖 대립적인 원리, 특히 반야(般若)와 방편(方便), 승의(勝義)와 세속(世俗), 부처와 중생이라는 종교적인 이원성의 일원화를 의미하고 있다. 본초불(本初佛), 금강살타(金剛薩埵), 헤비주라, 산파라, 주라바이라, 야만타카*, 가라샤크라, 스야크리비 등에 압윰상이 있다.

앗상블라주

앗상블라주 assemblage(프)

원뜻은 ‘모으기, 집합, 조립’. 여러 가지 물질을 이용해 평면적인 타블로* 회화에 삼차원성을 부여하는 기법으로서, 넓은 의미로는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는 기성품이나 잡다한 물건들을 모아서 만든 작품 또는 그러한 일을 말하며, 만들어진 형태가 구상이나 추상을 불문하고 모든 소재와 내용을 포괄하므로 양식에 관련된 것이라기 보다 기법이나 방법론의 명칭이다. 앗상블라주라는 용어는 뒤뷔페Jean Dubuffet(1901~1985)가 콜라주*와 구별하기 위해 1954년에 풀 먹인 종이 및 여러 물질들로 이루어진 작은 인물상을 지칭한 데에서 시작되었으나 그 기원은 피카소Pablo Picasso(1881~1973)로 거슬러 올라간다.
브라크Georges Braque(1892~1963)와 공동작업을 하던 피카소는 1912년 얇은 금속판을 이용한 <기타>를 만들었으며, 뒤샹Marcel Duchamp(1887~1968)은 1915년에 자전거 바퀴와 의자를 이용하여 기성품으로 된 앗상블라주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런 경향의 작품들은 일반적으로 ‘오브제*’로 통용되다가 1961년 사이츠William G. Seitz가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앗상블라주 미술전The Art of Assemblage>을 개최하면서 그 용어가 일반화되었다.
그는 다다*, 초현실주의* 이래의 오브제들에 대한 현대적 호칭으로 이 용어를 사용했으며, 이 전시에는 챔벌레인Johe Chamberlain(1927~ ) 등의 정크 아트*도 포함되었다. 그에 따르면, 앗상블라주는 그리거나 조각된 것이 아니라 접착제나 용접 등에 의해 긁어 모아진 것으로 전부 또는 일부가 전혀 미술을 의도하지 않고 만들어진 자연물이거나 공업제품이 소재로 쓰인 것을 말한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물질 문화의 반영이라 할 앗상블라주는 작품에 따라 신비로움과 은폐성을 보여주기도 하고 사회와 인간에 대한 공격성을 드러내기도 하는 등 다양한 성격을 띠게 된다. 앗상블라주는 아르망Arman(1928~ ), 스포에리Daniel Spoerri(1930~ ), 세자르César Baldaccini(1921~ ) 등의 신사실주의*, 네오 다다*, 정크 아트, 펑크 아트*, 아르테 포베라*, 환경미술*, 해프닝* 등과 결합하여 일종의 범예술적인 측면으로 발전하게 된다.

앙데팡당

앙데팡당 Indépendant(프)

반관학파(反官學派). ‘독립적, 자주적’을 뜻하는 형용사로, 속박이나 지배를 받지 않고 독립정신을 지향하는 ‘독립 예술가 협회La Société des Artistes Indépendant’의 약어. 심사가 매우 엄격하던 살롱*전에 대항하여 낙선자들과 아카데미즘*에 반대하던 화가들이 1884년에 조직하여 제1회 전시를 개최한 이후 지속되고 있는, 심사도 시상식도 없이 소정의 참가비만 내면 일정한 수의 작품을 제출하고 대중에게 보일 수 있도록 한 전시회이다. 신인상주의*, 나비파*, 입체주의* 등의 모체가 되었던 이 전시회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초에 걸쳐 근대 미술의 대중화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앙데팡당 전은 아카데미즘*의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시각과 양식을 취한 전위적인 미술을 발전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였으며, 현재도 파리에서 매년 봄 개최되고 있고, 또한 세계 각국에서도 이러한 취지에 따른 여러 가지 형태의 앙데팡당 전들이 열리고 있다.

앙소문화

앙소문화 仰韶文化

→ ‘중국 신석기시대 미술’ 참조

앙코르 미술

앙코르 미술 Angkor Art(영)

캄보디아*의 크메르Khmer 제국(9~15세기 전반) 시대에 전개된 조형예술*을 말한다. 앙코르 시대에는 수도였던 앙코르를 중심으로 많은 건축물이 만들어졌다. 9세기 말 야쇼바르만 1세YashovarmanⅠ(재위 889~910)가 앙코르 톰Angkor Thom을 건설했는데 그 주변에는 대규모의 사원이 지어졌고 건축물을 장식하는 다양한 부조*와 신상* 조각*들이 현존한다. 또한 프놈 바켕Phnom Bakheng, 피메아나카스Phimeanakas, 반테아이 스레이Banteay Srei 등지에도 훌륭한 건축물이 세워졌다. 12세기 초 수리야바르만 2세Suryavarman Ⅱ(재위 1112~1151)가 앙코르 와트*를 건립하였고 이 때에 크메르 건축은 최절정기에 다다랐다.
그 후 1200년경 자야바르만 7세Jayavarman Ⅶ(재위 1181~1220)가 앙코르 톰 중간에 바욘Bayon이라는 불교 사원을 건축했다. 앙코르 시대에는 데바라자*라고 하는 특이한 신왕숭배(神王崇拜)가 행해져 왕을 신격화했다. 그래서 왕을 위한 사원 건축이 조형 활동의 중심이 되었고 그 사원은 왕의 분묘 사원과 같은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건축에는 주로 석재(사암)를 사용했으며 라테라이트(홍토紅土)로 만든 벽돌도 함께 쓰였다. 사원 형식은 이전의 고탑형 사당(프라사트*)이 점차 정비되어 경사가 심한 계단식 피라미드형으로 바뀌었다. 예를 들면 바욘은 제3층 중앙에 본당을 이루는 고탑이 있고 제2, 3층에는 40개 이상의 인면탑*이 서 있는 피라미드형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건축물에는 풍부하고 다양한 부조가 장식되어 있다. 바욘의 회랑*벽에 새겨진 부조 프리즈*는 시바*신의 전설, 크메르* 시대의 전투나 왕궁 생활을 묘사하고 있는데 그 표현방식이 뛰어나다. 앙코르 이전 시대에는 굽타* 조각의 영향을 받은 힌두 신상을 제작했지만 이 시대가 되면 크메르족의 인종적인 특색이 가미된 조각상으로 변모한다. 초기의 불상*이나 신상은 경직되고 직립한 형태였으나 바욘 양식으로 바뀌면서 부드러운 조형 양식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그렇지만 13세기부터는 조형 활동이 쇠퇴하여 현재는 남아있는 유물이 거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