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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스코

프레스코 fresco(이)

벽화*를 그릴 때 쓰는 화법. 이탈리아어로 ‘신선하다’라는 뜻. 덜 마른 회반죽 바탕에 물에 갠 안료로 채색한 벽화. 그림물감이 표면으로 배어들어 벽이 마르면 그림은 완전히 벽의 일부가 되어 물에 용해되지 않으며, 따라서 수명도 벽의 수명만큼 지속된다.
프레스코는 석고가 마르기 전에 재빨리 그림을 그려야 하는 어려움이 있으며, 그림의 수정도 거의 불가능해 정확하고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다. 또 사용할 수 있는 안료의 색깔도 제한되어 있고(15~16세기 화가들은 프레스코에는 천연 안료만이 적합한 것으로 보았다), 벽이 마를수록 색깔도 옅어지며, 색의 농담을 이용한 효과도 얻을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과 제약이 오히려 광범한 주제의 디자인과 과감한 방식의 도입을 권장하는 격이 되어, 이탈리아 르네상스* 회화의 순수함과 힘, 불멸성을 크게 촉진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프레스코 화법에서 석고는 안료를 접착시켜 주는 매체*로 작용하며, 흰색만이 사용된다. 이와 같은 정통적인 방법의 프레스코를 이탈리아에서는 프레스코 부오노 또는 부온 프레스코라 하며, 같은 안료를 사용하여 다른 회벽에 그리는 것을 프레스코 세코 또는 단순히 세코라고 불렀다. 프레스코는 기념 건조물의 벽화를 그리기에 가장 적합하다. 다만 습기가 차면 석고가 부서지므로 그림도 함께 떨어져 나가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건조한 지방에서는 가장 영구적이며, 그 결과 베니스를 제외한 이탈리아에서 많이 사용하였으며 북유럽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프레스코 회화는 크레타(→‘에게 미술’ 참조)와 그리스의 벽화, 폼페이의 그레코-로만 벽화가 있다. 중세 초에는 벽화를 그릴 때, 여러 방법이 혼합 사용된 듯하며, 프레스코로만 된 벽화는 없는 듯하다. 그러나 로마의 수도원 건물의 벽화를 보면 12~13세기에는 프레스코가 모자이크* 공예*의 일부로도 사용된 것이 발견된다.
훌륭한 프레스코는 대부분 이탈리아의 대가들에 의해 제작되었다. 그 일인자가 지오토Giotto(1266~1337)이고 그 밖에 마사치오Masaccio(1401~1428),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Pierro della Francesca(1415~1492), 라파엘로Raffaello Sanzio(1483~1520), 미켈란젤로Michelangelo(1475~1564), 코레지오Correggio(c.1490~1534) 등이 있다.
프레스코의 융성기는 14~15세기이며, 16세기 이후로는 점차 유화로 대체되었다. 19세기에 독일 기독교들과 영국의 라파엘전파*의 화가들이 전통적인 이탈리아 프레스코의 부활을 시도했으나 기법의 복귀가 어렵자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1798~1863), 퓌비 드 샤반느Pierre Puvis de Chavannes(1824~1898) 등 많은 화가들이 그 대신에 표구(marouflage) 방법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프레스코는 20세기에 들어와 멕시코의 리베라Diego Rivera(1886~1957)나 오로츠코José Clemente Orozco(1853~1949)에 의해 재발견되는 등 그 전통은 계승되고 있다.
한편 아시아 지역에서는 전통적으로 벽화를 그릴 때 마른 석고 위에 안료로 그리는 방법을 사용해 왔으나, 인도 지방의 벽화기법을 조사해 본 결과, 11~12세기에 프레스코 기법이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프로그램드 아트

프로그램드 아트 Programmed Art(영)

이탈리아의 미술가이자 디자이너인 무나리Bruno Munari가 1945년 이후에 제작한 자신의 작품을 서술한 말로, ‘만드는 과정에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하는 미술이다. 무나리가 예술 대상으로 삼은 것은 전자모터를 사용하여 작은 화면에 색깔과 형태의 배합, 변형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프로그램이란 컴퓨터 용어로 변형 속도와 전 과정이 한 번 바뀌는 데 소요되는 시간의 길이를 프로그램하는 것이다. 일종의 키네틱 아트*인 듯 하나 무나리는 이러한 가정을 거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네틱 작품에 프로그램 아트라는 명칭을 붙이기도 한다. 1960년대의 옵 아트*, 시스테믹 페인팅*, 시리얼 아트*에도 이 말이 사용된다. 그러나 이러한 유형의 예술은 문자 그대로 프로그램된 것을 뜻하므로 컴퓨터 아트*로 간주하는 것이 타당하겠다.

프로세스 아트

프로세스 아트 Process Art(영)

→ 과정미술

프로타주

프로타주 frottage(프)

나무판이나 잎, 천 따위의 면이 올록볼록한 것 위에 종이를 대고, 연필 등으로 문지르면 피사물(被寫物)의 무늬가 베껴지는데, 그 때의 효과를 조형상에 응용한 기법. 원뜻은 ‘마찰하다’라는 의미의 프랑스 어 ‘frotter’에서 나왔다.
작자의 의식이 작용하지 않은 차원에서 우연히 나타나는 예기치 않은 효과를 노린다는 의미에서는 데칼코마니*나 타시슴* 또는 자동기술법*과 같은 성질의 것이다. 우연한 효과를 노리는 것뿐만 아니고, 몇 가지 피사물을 의식적으로 짜맞추는 경우도 있고, 혹은 거기에 나타난 무늬에서 힌트를 얻어 붓을 가하는 경우도 있다. 이 기법은 우연이나 무의식을 중시하는 초현실주의* 작가들이 다루었다. 특히 독일 태생의 에른스트Max Ernst(1891~1976)는 콜라주*와 함께 이 기법을 사용한 대표적 작가였다. 1926년의 《박물지博物誌》는 이 수법을 구사한 화첩(畵帖)으로서 유명하다. 그는 어느 날, 마룻바닥의 얼룩을 보고 있다가 거기에서 온갖 환각(幻覺)이 생긴다는 것을 깨닫고, 이 기법을 발견하였다. 이 기법에 의한 《박물지》 속의 나뭇잎 등의 형상은 인간의 머리, 괴물, 바다 풍경 등으로 변모하고 있다.

프로테

프로테 frottée(프)

‘난타한다’는 뜻. 붓에 물감을 발라 심하게 화면을 치는 기법을 말한다. 반 고흐Vincent van Gogh(1853~1890)의 자화상*의 배경, 블라맹크Maurice de Vlamink(1876~1958)의 수목(樹木) 묘사 등에서 그 예를 볼 수 있다.

프로필라이움

프로필라이움 propylaeum(영)

고대 그리스*의 신전이나 성지로 들어가는 입구에 세운 문. 특히 정교하고 모뉴멘털한 구조로 되어 있을 때 쓰는 용어. 가장 유명한 것으로는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서쪽 진입로에 있는 것으로, 두 개의 도리아 양식* 포르티코(portico, 주랑 현관)가 5개의 문으로 뚫린 중앙 벽 옆에 있다. 출입구가 1개 이상일 때 주로 복수형 ‘propylaea’을 쓴다. 건축가 무네시클레스Mnesicles가 기원전 437~432년에 건조했다.

프롤레타리아 미술

프롤레타리아 미술 Proletarian Art(영)

프로 미술이라 약칭되는 수가 많다. 노동자 계급의 사회의식 고양(高揚)을 반영하며, 그들을 중심으로 하는 민중 계급의 생활과 투쟁의 양상, 그리고 지배자의 압제, 허위, 부패를 그리는 미술.
도미에Honoré Daumier(1808~1879), 뫼니에Constantin Meunier(1831~1905)를 선구로 하며, 19세기말부터 1920년대에 국제적인 노동 운동이 전개되면서 성행하였다. 독일의 콜비츠Käthe Kollwitz(1867~1945), 그로츠George Grosz(1893~1959), 프랑스의 스탱랑Théophile-Alexandre Steinlen, 미국의 그로퍼William Gropper(1897~1977), 멕시코의 리베라Diego Rivera(1886~1957), 오로츠코José Clemente Orozco(1853~1949), 시케이로스David Alfaro Siqueiros(1896~1974) 등이 유명하다.
그 표현에는 개개의 작가에 따라 관념적인 저항성, 희생과 비참에 대한 인도주의적 감상(感傷), 염세주의적 또는 허무주의적인 현실 폭로의 태도, 우의적(寓意的) 혹은 도식적(圖式的)인 단순한 묘사가 많으며, 갖가지의 뉘앙스*가 있다. 점차로 방법론적 자각이 전개되어 프롤레타리아 리얼리즘의 주장이 일어났고, 1930년대 중반부터 이 운동의 주류는 사회주의 사실주의* 속으로 발전적 해체를 하였다.

프리마 묘법

프리마 묘법 alla prima(이)

이탈리아어로 ‘단번에’ ‘일시에’라는 뜻이다. 밑그림을 그리고 나서 그림물감을 몇 겹이나 쌓아가는 투명다층(透明多層)의 글라시*, 불투명 다층의 파트 기법에 대하여, 밑그림 없이 그림 물감의 단일한 칠로써 그리는 기법이다. 바탕칠의 순수성을 잘 유지하고, 그림물감 층의 상하의 상호 반발이 없으며 표면의 균열이나 변화가 적다. 오래 전부터 다층묘법(多層描法)과 나란히 행해졌으며 루벤스Pieter Paul Rubens(1577~1640), 앵그르Jean-Auguste Dominique Ingres(1780~1867)의 작품에 이 기법이 쓰이고 있다. 색채감의 변화와 마티에르*의 쇠퇴로, 오늘날에는 고도의 숙련을 필요로 하는 이 프리마 묘법이 잘 쓰이지 않고 있다.

프리미티브

프리미티브 primitive(영)

프리미티브라는 용어는 예술에 관한 저술에서 다음의 세 가지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 ①19세기말에는 진화론자들의 관점에서 문명의 중심지로부터 직접적인 영향권 밖에 있는 민족에게 프리미티브라는 말이 사용됐다. 그래서 아프리카 흑인, 에스키모, 태평양의 섬 주민들과 그들의 미술품이 ‘프리미티브 아트’라고 불렸다. 그러나 그 후 이러한 문화들이 반드시 문화의 형성기나 퇴화기 단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서유럽 문명과는 분명히 다른 사회조직과 기술 체계 안에서 완성된 독특한 문화라고 인식되었다. 따라서 프리미티브 아트 또한 예술적 완성에 도달하기 위한 초보적 단계에 속한다.
②유럽의 미술사가와 미술품 감정가들 사이에서 프리미티브라는 용어는 유럽의 여러 제국 중에서 그림이나 조각의 역사적 발달 과정에서 초기 단계에 속하는 것, 그리고 이 초기의 미술가들이 자연주의적이고 환영주의적인 재현의 분야에서 성숙기의 미술가에 의해 성취된 것을 얻으려고 시도했지만 성공하지는 못했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물론 이것은 오류임이 밝혀졌다). 19세기 중기부터 이 용어는 르네상스* 이전의 서구 미술을 지칭하는 말로 쓰여졌는데, 그 이유는 이 시기가 과학적 원근법*과 해부학의 시대 이전이었기 때문이다. 프리미티브란 용어는 미술사가, 감정가, 큐레이터* 등에 의해 자주 사용되기는 했지만 그것은 가치를 매기는 것도 아니며 완성 단계에 이르지 못한 초보적인 것을 이르는 말도 아니다.
③미술사가들이 전문적 교육을 받지 않고 그 시대의 전통적 또는 전위적 방법과는 다른 방식으로 독특한 소박성을 보여주고 있는 미술가들에게 붙인 명칭이다. 대표적인 예로 루소Henri Rousseau(1577~1640)를 들 수 있으며, 최근에는 모세Olivier Mosset가 있다. 용어가 가진 의미 자체만 볼 때 프리미티브란 정통적 기술이 모자라는 것을 의미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자연스러운 매력을 전해줄 수 있다는 가정이 따른다.

프리미티비즘

프리미티비즘 Primitivism(영)

1905년과 1920년 사이에 야수주의*와 입체주의*의 영향을 받아 일어난 러시아의 표현주의* 경향의 화가들을 가리킨다. 이 화가들은 러시아의 민속 미술*로부터 강력한 자극을 받아, 주로 러시아의 하층 계급의 생활 장면을 많이 그렸다. 그들은 또한 기술적으로는 고도로 단순한 형식과 강렬한 색채를 즐겨 사용했다. 모스크바의 푸른 장미파* 회원들, 라리오노프Mikhail Larionov(1881~1964), 곤차로바Natalia Sergeevna Goncharova(1881~1962), 부르류크 형제David & Vladimir Burliuk 등은 전형적인 프리미티비즘 작가들이다. 말레비치Kasimir Malevich(1878~1935) 또한 초기 단계에서는 프리미티비즘을 추구한 화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