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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포 多包
공포*(栱包)의 일종. 기둥과 기둥 사이에 창방*(昌枋)과 평방*(平枋)을 걸고 그 위에 포작(包作)을 짜올리는 양식. 중국에서는 요대(遼代)부터 다포형식이 사용되기 시작하여 송, 원대(宋元代)에는 일반적인 양식이 되었다. 특히 송대에는 《영조법식營造法式》이라는 건축기법에 관한 서적이 발간되어 다포계 양식의 규범이 만들어졌다. 일본에서도 가마쿠라(鎌倉)시대에 다포 양식이 많이 사용되었다.
한반도에서는 이러한 형식이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 확실히 알 수 없지만, 1323년 〈관경변상도〉(교토 知恩院 소장)와 북한에 있는 〈심원사心源寺 보광전普光殿〉(1374), 〈석왕사釋王寺 호지문護持門 옹진전應眞殿〉(1384) 등의 건축 자료로 미루어 고려 말기에는 전형적인 다포계 양식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출목(出目) 수에 있어 내외이출목(內外二出目), 내외삼출목 등 구조 양식의 급격한 발전을 보임에 따라, 전형적인 다포계양식의 시작은 적어도 고려 중기 이전으로 여겨진다. 다포 양식은 목조건축 양식 중에서도 가장 장중하고 복잡한 구조와 형식을 가지므로 주로 조선시대 이후 궁전이나 사찰 등 권위있는 건축물에서 사용되었다. 지붕 사이의 공간에 있는 공포는 공간포(空間包)라 한다.
다폭 제단화 多幅祭壇畵 polyptych(영)
기독교의 제단화*, 혹은 세 폭 이상의 패널*로 된 기도용 미술 작품을 말한다.
→ ‘제단화’ 참조
단구 單鉤
집필법의 일종. 단구법에서는 엄지와 검지, 중지로 붓대를 잡으며 무명지와 새끼손가락은 중지를 아래쪽에서 받쳐준다. 다른 말로 ‘단포*(單苞)’라고도 하는데, 정작 사용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단선점준 短線點皴
조선 초기 산수화*에 쓰인 준법*(皴法)의 하나. 가늘고 뾰족한 붓끝을 화면에 살짝 대어 끌거나 점을 찍듯이 하여 짧은 선이나 점의 형태를 이룬 것이다. 산이나 언덕의 능선 주변 또는 바위 표면에 집합적으로 가하여 질감과 양감을 나타내는 것으로, 조선화단에서만 쓰인 고유한 준법이다.
단선점준은 원래 개별적인 필획이나 필흔이 드러나 보이지 않던 안견安堅의 필법이 계승되어 15세기 후반 경부터 그의 영향을 받은 화가들에 의해 점차 필획이 개별화되어 16세기 전반, 특히 1530년대에 가장 유행하면서 그 전형을 이루었다. 16세기 후반부터는 가늘고 길며 부드러운 필선에 가까운 형태로 변모하여 16세기말까지 지속되었으며, 각종 궁중행사도 등 보수성이 강한 기록화에서는 17세기 후반까지도 사용되었다. 단선점준은 15~16세기의 조선적 화풍형성과 발달의 중요한 사례이며, 이 시기 작품의 연대판정과 양식변천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이다.
단청 丹靑
중국 고대 회화에서 주홍색과 파랑색을 자주 사용함에 따라 생긴 명칭. 《한서漢書》 〈소무전蘇武傳〉에는 ‘간과 비단에는 글을 쓰고, 단청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竹帛所載, 丹靑所)’라고 기록되어 있고, 광범위하게 회화예술을 칭할 때도 있다. 가령 《진서晉書》 〈고개지전顧愷之傳〉에는 ‘더욱 그림에 뛰어났다(尤善丹靑)’라는 기록이 있다. 단청은 청색, 적색, 황색 ,백색, 흑색 등 다섯 가지 색을 기본으로 하여 여러 가지 문양이나 그림을 그려 아름답게 단장하는 것으로, 구조물을 보호하고 건물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전조(塼造)의 고분, 기명(器血), 공예품, 조상(造像) 등도 단청의 대상물로 채화(彩畵)되었지만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목조 건물에 많이 사용되었다.
단청의 실례는 고구려 고분벽화나 고분에서 출토된 채화(彩畵), 칠기*(漆器)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고려시대 때의 건축물인 〈수덕사修德寺 대웅전大雄殿〉에 그려졌던 벽화에서 단청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단청술(丹靑術)은 현대 건축에서도 매우 뛰어난 건축 의장기법으로서 계승, 발전시킬 만한 가치가 있다.
단축법 foreshortening(영) scorcio(이)
단일한 사물, 인물에 적용된 원근법*으로서, 대상의 형태를 그것을 바라보는 각도와 관련하여 축소시키는 것. 양체(量體), 특히 인체를 그림 표면과 경사지게 또는 직교(直交)하도록 배치하여 투시도법적으로 감축되어 보이게 하는 회화기법이다. 그림 표면과 평행하게 사물을 배치하는 종전 방식에 비해 이 기법에서는 돌출, 후퇴, 부유의 효과를 연출해 강한 양감과 운동감을 표현한다. 대상의 크기는 보는 이로부터 멀어짐에 따라 줄어들어서 가장 가까운 부분은 과장될 정도로 크고 나머지는 매우 작게 보인다.
단축법은 르네상스 시대의 투시도법의 발견과 더불어 발달하였다. 만테냐Andrea Mantegna(1430~1506)의 <죽은 그리스도>와 코레지오Correggio(c.1490~1534), 미켈란젤로Michelangelo(1475~1564), 틴토레토Tintoretto(1518~1594) 등이 대표적이며, 특히 돔*과 천장 장식에서 뺄 수 없는 기법이다.
당대 미술 唐代美術
당唐은 수隋를 멸망시키고 이연李淵이 618년에 건국한 이래, 907년 애제哀帝때 후량後粱의 주전충에게 멸망당하기까지 290년간 20대의 황제에 의해 통치되었다. 한漢이래 한족(漢族)에 의한 통일제국을 형성, 문화의 황금시대를 이루어 동아시아에까지 널리 영향을 끼쳤다. 특히 당대(唐代)에는 서역으로부터 외래문화가 유입되어 당시 수도인 장안長安은 국제적인 성격을 띤 화려하고 독특한 미술을 발전시키게 되었다.
조각:불교 조각은 초당(初唐), 중당(中唐), 만당(晩唐)을 거치면서 발전하였다. 전체적인 특징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풍만하고 사실적이며 유려하다. 특히 현장玄裝 같은 구법승(求法僧)이 잇따라 인도에 다녀온 후 당문화는 서방의 영향으로 국제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 이러한 외래적 영향은 초당의 정관불貞觀佛에서도 이미 인도 굽타미술의 영향을 볼 수 있다. 초당의 조각으로는 용문석굴*龍文石窟의 〈재발동齋跋洞〉 〈경선사동經善寺洞〉 〈봉선사동奉先寺洞〉이 있다. 성당기(盛唐期)는 측천무후기의 치세로부터 시작되는데, 〈보경사석불寶慶寺石佛〉로 알려진 20여점의 작품이 유명하다. 용문석굴에서는 극남동極南洞과 간경동看經洞의 보살상들이 있는데, 굽타왕조의 삼굴법(三屈法)이 도입되어 허리를 틀고 있는 자세가 이색적이다.
회화:초당에는 염립덕閻立德(이앤 리떠), 염립본閻立本(이앤 리번, ?~673)형제와 서역에서 전래한 음영법(陰影法)을 구사한 위지을승慰遲乙僧(웨이츠 이썽), 화려한 궁중 인물화의 주방周昉(저우 황) 등이 당대의 인물화를 발전시킨 화가들이다. 또한 빠른 필선으로 장안과 낙양의 사찰벽화를 많이 그린 오도자吳道子(우 따오쯔), 금벽산수*(金碧山水) 또는 청록산수*(靑綠山水)의 전통을 연 이사훈李思訓(리 쓰쉰), 이소도李昭道(리 샤오따오) 부자 등이 있다. 그리고 시인이자 상서우승尙書右承의 벼슬을 하였던 왕유王維(우앙 웨이)는 남종화와 수묵화의 시조(始祖)로 불린다.
서예:초당에는 해서*(楷書) 양식이 확립되어 우세남虞世南(우 스난)이나 구양순歐陽詢 같은 명가가 나와 중국 서도의 전형이 자리잡게 되었다. 당시 분간포백(分間布白)에 의한 반듯한 미가 발휘되었는데, 우세남의 〈공자묘당비孔子廟堂碑〉, 구양순의 〈구성궁예천명九成宮醴泉銘〉 등이 대표작이다. 저수량楮遂良(주 쑤에이리앙)은 만년에 가늘고 감상적인 서체로 일세의 절묘한 풍운을 나타내었으며, 《안탑성교서雁塔聖敎序》가 있다. 성당시기에는 안진경顔眞卿(이앤 쩐칭)이 등장하였고 장욱張旭(즈앙 쉬)과 회소懷素의 광초(狂草)가 주목된다.
공예:도자기는 전반적으로 동체가 여유있게 넓으며 바닥이 평평하고 커서 안정감이 있다. 당대에는 백자*가 만들어졌으며, 특히 8~9세기에 하남성河南省의 형주요에서 만들어진 것이 유명하다. 청자는 월주요*(越州窯)의 것이 유명하였고, 당말(唐末)에는 흑유자(黑釉磁)도 제작되었다. 이외에 녹(綠), 갈(褐), 백(白), 황(黃), 남(藍) 등 낮은 온도의 유약으로 채색되는 이국적이며 화려한 당삼채*(唐三彩)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