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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소이장군

대소이장군 大小李將軍

청록산수*(靑綠山水)의 창시자로 알려진 중국 당대(唐代)의 산수화가 이사훈李思訓(리 쓰쉰), 이소도李昭道(리 사오따오) 부자(父子)에 대한 관용적 호칭.

대안공간

대안공간 代案空間
alternative space(영)

1969~1970년 뉴욕의 그린 스트리트 98번지와 112번지, 애플 스트리트 98번지에 등장한, 미술가들을 위한 미술가들에 의해 운영되는 소규모 비영리조직. 독립적인 대안공간들은 대부분의 미술관과 상업화랑, 미술가협회에서 받아들이지 않았던 실험적 미술이 확산되던 시대에 꼭 필요한 독립된 조직으로 간주되었다. 또 대안공간은 여성,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계 미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함으로써 페미니스트 아트*와 다양한 민족미술을 옹호했다. 1970년대 전반에 걸쳐 대안공간은 미국과 캐나다의 대도시에 우후죽순처럼 설립되었고, 비록 적은 수이지만 서유럽의 주요 도시에도 등장했다.
1970년대의 다원주의*는 설치* 미술, 비디오 아트*, 퍼포먼스*, 개념미술* 등의 전시장이었던 대안 공간이 없었다면 상상할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1980년대 초에 이르러서는 대안 공간의 성격이 더욱 다양해졌다. 여전히 미술학교를 갓 졸업한 미술가들의 비디오 아트나 퍼포먼스가 대안공간에서 행해지기도 했지만, 몇몇 대안공간은 많은 직원을 거느린 조직적 기관으로 발전했고 재단이나 시당국 및 ‘국립예술기금National Endowment for the Arts, NEA’으로부터 자금지원도 받게 되었다.
최근에는 대안공간보다는 ‘미술가 조합’이나 ‘미술가가 운영하는 조합’이라는 명칭이 선호되며, 미국내의 대안공간을 대표하는 기구로 워싱턴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립미술가조합연합National Association of Artists’ Organizations, NAAO’을 발족했다.

대안적 디자인

대안적 디자인 alternative design(영)

대기업에 봉사하고 있는 산업디자인*에 대한 대안의 디자인*을 의미한다. 대안적 디자이너들은 대량생산과 산업화가 갖는 사회적 의미에 관심을 갖고, 좀 더 나은 디자인을 통해 그것들을 개선시키려고 노력한다. 그들은 또한 사회 내의 혜택받지 못한 소수를 위해 디자인 하기도 하며, 제3세계의 미개발국에 무보수 디자인으로 봉사하기도 하였다.
영국의 산업 예술가 및 디자이너 협회(SIAD)는 대안적 디자인 그룹을 결성하여 1976년 영국왕립미술원*에서 ‘필요를 위한 디자인’이라는 모임을 가졌다. 점차 대안적 디자인은 ‘통합적이고 포괄적이며 앞을 내다보는 디자인’으로 널리 알려졌다. 또한 주창자이며 실행자인 파파넥Victor Papanek은 자신의 디자인에 대한 특허권과 저작권을 거부하고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자신의 디자인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대자

대자 對字

→ 대련

대전

대전 大篆

소전*(小篆)과 대칭되는 서체. 넓은 의미에서는 소전 이전의 글자체 전체를 가리켜 갑골문*(甲骨文), 금문*(金文), 주문*(籒文) 및 전국(戰國)시대에 통용되었던 육국문자(六國文字)를 포함하지만, 좁은 의미에서는 주문만을 가리킨다.

→ ‘주문’ 참조

대족석굴

대족석굴 大足石窟 Dazu shiku(중)

중국의 불교석굴. 사천성四川省 대족현大足縣 현성의 전현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 북산, 보정산, 남산, 석문산, 묘고산 등 대략 10개 지역으로 나누어진다. 이 중 북산과 보정산의 마애조상이 가장 유명하며, 만당(晩唐), 오대(五代)에서 남송대(南宋代)에 이르기까지 석굴의 발전된 면모를 볼 수 있다.
북산 마애불군은 현성 북쪽 2.5㎞의 북산에 있으며, 1950년에 조사되었다. 불감*(佛龕) 290개소, 3,000여구의 조상이 있다. 당唐 건녕 2년(895)에 창주자사(昌州刺史) 위군정韋君靖이 불상을 제작한 것이 시초이며, 남북 약 250m에 당, 송(唐宋)시대의 석굴이 있고 그 중에도 만당기(晩唐期)의 정토변상감과 송대의 심신차굴(心神車窟)이 주목된다.
이어서 만든 것이 북탑파의 마애군인데, 전방에 서 있는 송대 말기의 다보탑은 8각12층의 전탑이고 탑 꼭대기에 청좌(請座)와 복발*(覆鉢)이 있으나 상륜(相輪)은 없고, 높이는 40m, 일층의 한변이 약 5m이다. 안벽에 남송南宋 소흥 연간(1131~1162)의 불상, 석각 100점, 제6층에는 송대의 부문각직학사(敷文閣直學士) 빙씨일족(憑氏一族) 10여인의 공양상이 있다. 대불만(大佛灣)의 마애군(磨崖群)은 규모가 장대하고 남북 양안에 걸쳐 비로동(毘盧洞)과 원각동(圓覺洞)의 2석굴과 다수의 마애불로 되어 있다. 제20호 마애의 지옥변상 부조는 중국에 현존하는 유일한 예이다.

대좌

대좌 臺座

상을 안치하기 위한 대(臺). 불교조각의 대는 단순한 받침대만이 아니라 불상*의 장엄구로서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불상을 제작할 때에는 불신(佛身)을 반드시 대좌에 안치한다. 32길상 80종호에는 대좌에 관한 설명이 없어 그 기원과 전래를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원래는 부처가 보리수 아래에서 불도(佛道)를 깨달았을 때 앉았던 풀방석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측되며, 이 자리를 금강좌(金剛座)라고 한다.
대좌는 불상의 종류, 시대 또는 재질에 따라 형태가 다양한데, 연꽃을 본뜬 연화좌(蓮華座)와 방형(方形)에서 발달한 수미좌(須彌座), 상현좌(裳懸座), 운좌(雲座), 생령좌(生靈座) 등이 있다. 연화좌는 불, 보살을 비롯한 여러 불상에 널리 사용되나 사자좌는 여래상에만 쓰인다. 상현좌는 결가부좌한 불상이 입고 있는 옷자락이 내려와 대좌를 덮은 형상인데, 인도 간다라 불상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특히 중국화하는 과정에서 옷주름이 강조되면서 나타난 형식이다. 생령좌는 천인부터 아귀축생에 이르기까지 살아있는 모든 생물을 대좌로 한 형식이다. 이는 옳지 않은 생령을 힘으로 항복시킨다는 의미가 있다. 그 밖에 원형대좌(圓形臺座), 의좌(倚座) 등이 있다.

대중문화

대중문화 popular culture(영)

서구의 대중 민주주의와 관련, 라디오나 텔레비전 방송, 출판사, 레코드 회사, 영화사, 공공 박물관, 중계소, 여행사 등을 통하여 구성된 문화. ‘매스 컬처(mass culture)’라고도 불리지만, ‘대중 문화’가 더 일반적으로 통용된다. 영화, 재즈, 팝 음악, 라디오, 광고, 만화, 텔레비전 등 수많은 형태의 문화적인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형성되는 대중문화는 19세기에 서유럽의 여러 도시에서 탄생한 모더니즘*적인 현상이다.
한편으로 대중문화는 증가하는 노동 생산성을 통하여 가능하게 된 여가의 증대와 모든 사회 계층들에게 문화에 대한 문호를 개방한 상대적인 복지의 증대에서 기인하며, 다른 한편으로 일반적으로 획득할 수 있고 더 이상 특정 계층의 이익이 되지 못하는 문화적 재화의 상품적 특성에 기인한다. 또 대중문화란 무엇보다 강력한 추세의 획일화와 정신적 수준의 하락을 통해서 특징지어진다. 시리즈로 된 기술적인 생산을 허용하는 대중문화의 공급은 표준화를 지향함으로써 국가적, 지역적인 차이나 특성도 점차적으로 균등하게 만든다. 거래상의 위험을 의미하는 새로운 것이나 신기한 것은 종종 배제되는 대신에 영화, 소설, 음반 등은 이미 시험된 상투적인 것으로 구성되기 쉽다.
아도르노Theodore W. Adorno, 뢰벤탈Löwenthal 등은 무엇보다 노동 시간을 초과하는 압도적인 여가와 인간 조직 속에서 대중 문화의 정치적 기능을 본다. 문화산업은 대리 충족을 만들어내고 일상에서의 도피를 조장하며 획일적 방식으로 교육하고 환상과 자발성을 위축시키며 기존의 지배 관계를 안정되게 만든다는 것이다.
미술계 내부에서 살펴보면, 20세기 전반기 동안 고급미술과 대중미술을 가르는 벽은 매우 높았다. 현대미술은 스스로를 부르주아 문화에 대한 비판자이자 혁명자로서 간주하였다. 또한 현대미술은 비타협적인 이상주의적 태도를 견지했고 매매가 어려운 경우가 흔했기 때문에 상업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 반면에 대중문화는 상업적으로 성공했느냐 아니면 실패했느냐에 의해 규정됐다. 그러나 1960년 무렵 팝 아트*의 등장으로 상황은 바뀌었다.
미술은 20세기 중엽의 삶에서 매우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가 된 소비자 지향적 이미지로부터 더 이상 고립되지 않았다. 미술과 대중문화 간의 공생적인 관계는 1960년대의 팝 아트로부터 시작되었고, 1970년대의 개념미술*에 의해 개화(開花)됐다. 1970년대 후반기에 퍼포먼스* 예술가, 미디어 아트* 미술가, 그리고 비디오 아트* 작가들은 소프 오페라(soap opera), 이류 소설, 광고 같은 대중문화의 여러 형태를 작품의 주제로 삼게 되었다.

대지미술

대지미술 大地美術
Earth Art, Land Art(영)

1960년대 후반 영국과 독일, 특히 미국에서 성행했던 미술 경향. 그 용어는 대표적인 대지미술 작가인 스미슨Robert Smithson(1938~1973)이 소설가 앨디스Brian W. Aldiss의 동명(同名)의 과학소설 제목에서 힌트를 얻어 전람회의 이름에 사용함으로써 일반화되었다.
대지미술은 1960년대의 두 가지 주요 관심사를 공유하고 있다. 미술의 상업화에 대한 반대와 당시에 부상한 환경운동에 대한 지지가 그것인데, 후자는 ‘땅으로 돌아가자(back-to-the-land)’라는 반도시화(反都市化)주의와 지구라는 혹성에 대한 정신적인 자세 등으로 나타났다. 대지미술가들의 폭넓은 방법과 목표는 다양한 예를 통하여 잘 나타난다.
손피스트Alan Sonfist(1946~ )는 도시의 현장을 조경하여 그 장소를 예전의 자연적 상태나 선사시대의 상태로 되돌려 놓으려고 시도했으며, 홀트Nancy Holt는 스톤헨지*를 연상시키는 천문학적인 성향을 보여주는 건축적인 구조물을 세웠다. 하이저Michael Heizer와 스미슨은 고대의 무덤봉분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대지조각을 창조해 내기 위해, 미국 서부의 사막에서 수톤에 이르는 흙과 바위를 퍼냈다. 롱Richard Long(1945~ )은 그가 돌아다닌 자연 풍경과 도중에 그가 일시적으로 재배치한 바위와 꽃을 아름답게 구성된 사진 속에 담았다.
한편 대지미술은 작품과 그것을 보고 체험하는 사람과의 사이에 생기는 관계에 주의를 환기했던 미니멀 아트*의 연극적인 측면이 화랑의 공간을 불만족스럽게 느꼈던 결과로서 나타났다. 그리고 그것은 똑같은 발상에서 나온 해프닝*과 같은 관계를 지닌 채 행위로서의 예술이라는 개념을 발전시키기도 했다. 장소와 규모 등이 갖는 특성 때문에 사진에 의한 도큐먼트(document)로 남겨질 수밖에 없는 대지미술 작품의 형태는 드디어 작품이라고 하는 형태 자체를 불필요하게 만들었으며 따라서 낱말, 문자, 사진 등에 의한 개념미술*이 전개되도록 했다.

대칭

대칭 對稱 symmetry(영)

균제(均齊), 상칭(相稱)이라고도 하며, 미술용어로는 좌우 대칭, 좌우 균제 따위로 불린다. 좌우 또는 상하로 동일한 형상의 상사(相似)형의 한 짝이라는 뜻이다. 중심점 또는 중심축을 둘러싼 여러 단위, 여러 부분이 양쪽으로 대응하고 있는, 물체의 구조 또는 배치를 말한다. 인체, 동식물, 기구(器具) 등에 그런 예가 많다. 대칭적인 미술은 보는 이에게 정지, 안정, 장중, 엄숙, 신비한 느낌을 주어 종교적인 목적이나 효과를 위한 회화와 조각에 많이 이용된다. 그러나 대칭을 기계적으로 남용하면 경직감을 낳고, 유기적인 생명감이 손상되는 단점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