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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제실

마리아 제실 lady chapel(영)

기독교 성당에서 성모 마리아에게 기도를 올리는 제실(祭室). 성가대나 제단*이 위치한 챈슬의 연장으로서 일반적으로 교회 본당의 동쪽 끝에 돌출되어 지어진다. 영국과 그리스의 교회 건축에서 마리아 제실은 대개 평면도 상에서 직사각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 ‘내진’ 도판 참조

마스타바

마스타바 mastaba(영, 프)

고대 이집트 고분 형식의 하나. 선왕조시대 말기부터 고왕국시대 전반에 걸쳐 유행한 일반인의 개인묘 형식으로 이집트 전역에 고루 분포되어 있다. 전형적으로 옆면이 경사지고 지붕은 평평한 직사각형의 외관을 띠고 있다. 마스타바라는 명칭은 아라비아어로 ‘직사각형의 벤치’를 의미한다. 여러 개가 쌓여서 계단형 피라미드*를 형성하기도 한다. 그 안에는 예배당과 안치소, 통로에 해당하는 수갱(竪坑)이 있으며 내부는 대개 채색회화 혹은 부조*로 장식되어 있다.

마아준

마아준 馬牙皴

구륵전채*의 채색화에서 주로 사용되는 것으로 산의 모습이 말의 이빨처럼 뾰족하게 보이는 준법*. 구륵으로 윤곽을 그리고, 그 안에 채색을 가하여 장식적인 경향이 강하다. 당대唐代의 이사훈李思訓(리 쓰쉰), 이소도李昭道(리 사오따오), 조백구趙伯駒(자오 뿌어쥐) 등 채색화가들이 즐겨 사용하였다. 당대 이소도의 〈춘산행려도春山行旅圖〉와 송대(宋代)의 작품인 〈송암선관도松岩仙館圖〉 등에서 이 준법을 볼 수 있다.

마우리야시대 미술

마우리야시대 미술 Maurya Period Art(영)

마우리야는 인도 최초의 통일 왕조로서 기원전 322~185년 사이에 지금의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일부(카이버르) 및 데칸에 이르는 넓은 지역을 지배했다. 왕조의 시조 찬드라굽타 마우리야Candragupta Maurya는 알렉산더 대왕 사후의 북인도 지역을 장악하면서 셀레우코스의 세력을 밀어냈으나 셀레우코스 왕조와의 긴밀한 문화 교류는 지속되었다.
찬드라굽타의 손자였던 아쇼카왕Aśoka(재위 기원전 272~232)의 통치기는 정치종교, 문화적인 면에서 마우리야 시대의 절정기였다. 마우리야 왕조의 수도였던 파탈리푸트라Pātalīiputra(현 파트나Patna 근처)에는 약 80개의 석주(石柱)를 세웠던 궁전지가 남아 있다. 이 건축물은 아케메네스* 왕조의 페르세폴리스* 궁전 건물과 매우 흡사한 형태를 띤다. 열렬한 불교도였던 아쇼카왕이 불법(佛法)을 널리 펴기 위해 세운 기념 석주들 또한 이전의 인도 미술*과는 다른 이란 미술이 전파됐음을 보여 준다. 석주 위의 주두*를 장식한 사자나 황소 조각은 인도에서는 볼 수 없었던 마연 기법으로 제작되었다.
이처럼 마우리야의 미술은 아케메네스왕조의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알 수 있다. 불교를 믿었던 아쇼카왕은 불교의 스투파*를 만들었으며 불교가 아닌 다른 종파를 위해 바라바르Barabār 언덕의 석굴을 기증하기도 했다. 이 시대의 미술품들은 외래적인 요소가 강하지만 인도의 양식을 보여 주는 석조 약샤*상들도 제작되었다.

마우솔레움

마우솔레움 mausoleum(영)

일반적으로 생전에 유명했던 사람의 장대한 규모의 묘를 가리킨다. 이 명칭은 기원전 4세기경 소아시아의 핼리카르나소스에 건조된 카리아의 총독 마우솔러스Mausolus를 위한 거대한 무덤 ‘마우솔레이온Mausoleion’에서 유래하였다.
이 마우솔레이온은 거대한 규모와 화려하고 정교한 구조 때문에 고대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힌다. 건축물의 전면에 장식된 조각들의 일부는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마이에스타

마이에스타 maiesta(이)

‘위엄’을 의미하는 이탈리아어로, 미술에서는 ‘장엄한 성모(聖母)’ 혹은 ‘옥좌의 성모자(聖母子)’라고 부른다. 주로 이탈리아에서 행해진 기독교 미술의 주제로 옥좌에 앉아 있는 성모자를 중심으로 그 주변에 이들을 예배하는 천사와 성인들을 배치한 대구도를 말한다.

마투라 미술

마투라 미술 Mathura Art(영)

인도 북부 우타르 프라데쉬주에 위치한 델리에서 동남쪽으로 약 140㎞ 떨어진 줌나강 유역의 마투라를 중심으로 기원전 3세기부터 7세기까지 번성한 미술을 가리킨다. 마투라는 이미 기원전 200년경 종교 미술의 중심지로 등장했다. 기원 초인 쿠샨 시대부터 사산의 침입까지(241) 간다라 지역과 더불어 전성기를 누렸으며 굽타시대에도 불교 미술*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였다. 쿠샨시대부터 굽타시대까지 마투라 조각은 모두 근처의 시크리Sikri에서 나오는 적색 바탕에 황색과 백색 반점이 있는 사암으로 제작되었다. 불교 조각은 아니지만 파르캄Parkham에서는 슝가시대에 만들어진 약샤*상이 발견되어 마투라의 조각 전통이 오래되었음을 말해 주고 있다.
또한 외래의 영향을 받아 제작된 것으로 생각되는 왕들의 초상 조각이 쿠샨시대의 마투라에서 출토되었다. 서기 2세기경 마투라에서는 도티(치마)만 입고 몸이 비치는 얇은 겉옷을 걸친 소위 편단우견(偏袒右肩)의 인도적인 불교 조각상들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간다라와는 달리 소라 모양의 육계(우슈니샤usnīsa)도 함께 표현되었다. 카니슈카 기원 50년경(약 2세기말) 마투라의 상들은 간다라의 의복 형식인 통견으로 바뀌었다. 그 외에 불전 장면을 새긴 부조*판도 제작되었다.
마투라의 건축은 이슬람교 침입자들에 의해 모두 파괴되어 남아 있는 예가 없으나 마투라의 스투파*도 이전 시대의 형태를 기초로 하여 발전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부테샤르나 자이싱푸라에서 발견된 스투파 울타리들에는 관능적인 모습의 약샤상들이 고부조로 새겨져 있다. 쿠샨시대의 마투라 조각은 여러 면에서 고졸기 양식을 이어받고 있으며 인도적인 감각을 잘 조형화하였다. 그렇지만 쿠샨 후기에는 형식적인 표현이 많아져 양식적으로 쇠퇴하였다. 굽타시대의 마투라는 사르나트*와 더불어 이 시대 불교 미술의 중심지이다. 이 시대의 대표적인 마투라 조각은 자말푸르Jamālpur에서 출토된 불입상이나 인도 대통령궁에 소장된 불입상을 들 수 있다. 불상*의 양 어깨를 덮은 옷(승복)은 간다라에서 도입된 것인데, 옷의 주름은 사실적인 표현의 간다라와는 달리 반복되는 줄모양으로 바뀌었다. 마투라에서는 불상들과 거의 비슷한 형식의 자이나교 티르탕카라(지나*)상도 제작되었다.

→ ‘쿠샨시대 미술’ ‘굽타시대 미술’ 참조

마티리움

마티리움 martyrium(라)

예수가 수난받았던 성적(聖跡)과 순교자의 유물을 모아 놓은 기념당. 단독으로 세워진 구조물의 형태가 아니라, 순교자나 성인의 묘를 수용하여 건립했다. 애프스* 지하의 묘실이나 애프스 부근의 벽감* 등과 같이 성당의 일부분을 지칭하는 경우도 있으며, 이 때에는 메모리아(memoria) 혹은 묘실(confessio)과 같은 의미이다.

마티에르

마티에르 matière(프)

예술 작품의 물질적인 재료, 소재, 재질 혹은 재질감. 일반적으로 표현된 대상 고유의 재질감을 가리킨다. 또한 작품 표면의 울퉁불퉁한 질감 자체 혹은 회화기법필치, 물감에 따라 야기되는 화면의 표면 효과를 의미한다.

마피준

마피준 麻皮皴

→ 피마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