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테
콘테 conté(프)
프랑스의 화학자 콘테가 창안한 소묘*용 연필의 일종. 프랑스에는 현재 콘테라는 유명한 연필 제조회사가 있는데, 콘테라는 명칭은 그 회사의 등록 상표이다. 연필처럼 나무로 감싼 것과 심만으로 된 것이 있고, 색은 검정, 갈색, 빨강 등으로 나누어지며, 색수는 그리 많지 않다. 연필에 비해 농담(濃淡)이 뚜렷하다.
콘테 conté(프)
프랑스의 화학자 콘테가 창안한 소묘*용 연필의 일종. 프랑스에는 현재 콘테라는 유명한 연필 제조회사가 있는데, 콘테라는 명칭은 그 회사의 등록 상표이다. 연필처럼 나무로 감싼 것과 심만으로 된 것이 있고, 색은 검정, 갈색, 빨강 등으로 나누어지며, 색수는 그리 많지 않다. 연필에 비해 농담(濃淡)이 뚜렷하다.
콘트라포스토 contrapposto(이)
‘대비된다’는 뜻의 이탈리아어. 인체 입상에서 인체의 중앙선을 S자형으로 그리는 포즈를 일컫는다. 정면을 향해 꼿꼿하게 서있는 기원전 6세기말경의 그리스 아르카익*기 인물상과 다른 이 포즈는 기원전 5세기경 그리스 클래식기의 조각상에서 처음으로 나타났다. 딱딱하고 엄숙하게 정면을 향해 대칭적 자세로 서 있는 인물조각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중력은 여전히 조각의 중앙에 미치고 있었으나 몸체의 거의 모든 무게가 다리 한쪽에 몰려있고 이 경사진 다리가 무게를 지탱하고 있다. 골반은 기울어진 다리쪽에 돌출되어 있고, 다른 다리는 무릎에서 구부러진다. 머리는 반대 방향으로 비스듬히 기울여 중심을 잡는다. 옆에서 보면 버티고 있는 다리가 뒤쪽으로 약간 밀려나 있고 가슴은 위를 떠받치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와 같은 새로운 체계를 르네상스* 시대에 인체상의 각 부분의 작용과 반작용을 기술하기 위해 콘트라포스토라고 명명하였는데, 이것은 그리스 미술*의 위대한 업적의 하나로서 조상(彫像)의 조형적 가능성을 풍부하게 하였다.
조각가는 이와 같은 자유로운 모습으로 함께 서 있는 새로운 인물을 비롯해 더 큰 긴장감과 극적인 감정을 자아내는 포즈에 이르기까지 무한한 표현의 가능성을 탐색했다. 이러한 조각 체계는 현재 분실된 폴리클레이토스Polykleitos의 <캐논Canon>이라는 논문에 기술되어 있다. 이후 인체의 유기적 구조에 대한 이해와 재현을 위해 미술가들은 이 이론을 다시 활용하였다.
13세기말과 14세기의 고딕 미술*의 인물상에서 보여지는 과장된 S곡선도 이 이론의 변형이며, 도나텔로Donatello(1382~1466), 베로키오Verrocchio(c.1435~1488), 미켈란젤로Michelangelo(1475~1564) 등의 르네상스 대가들도 콘트라포스토를 도입하였다. 바로크* 조각은 균형잡힌 매스*를 이용하는 미켈란젤로의 방법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이러한 영향으로 17~18세기 독일 조각에서는 콘트라포스토 형식을 사용하여 마돈나나 성자의 상에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하였다. 19~20세기에 이르러서는 더이상 단일한 체계의 콘트라포스토가 지배할 수 없게 되었고 조각가들은 각각 자신에게 맞는 포즈를 선택하고 있다.
콘티누이타 그룹 Continuità(이)
1961년 이탈리아에서 포르마 그룹의 회원들이었던 콘사그라Pietro Consagra, 도라치오Piero Dorazio, 페릴리Achille Perilli, 투르카토Giulo Turcato 등이 형성한 그룹. 후에 노벨리Gaston Novelli, 벰포라드Bemporad, 폰타나Lucio Fontana(1899~1968), 지오 포모도로Gio Pomodoro, 아르날도 포모도로Arnaldo Pomodoro, 탄크레디Parmeggiani Tancredi 등도 여기에 참여했으며, 그들의 대변인은 아르간A.G. Argan이었다. 콘티누이타 그룹은 앵포르멜* 미술을 강력하게 반대했다. 그들은 형식성이 항상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탈리아 미술의 재평가를 요구했고, 이러한 전통의 자연적인 확장을 나타내는 현대 이탈리아 미술 형태의 발전을 확인하고 싶어했다.
콜라주 collage(프)
본래 ‘풀칠’ ‘바르기’ 따위의 의미였으나, 전용되어 화면에 인쇄물, 천, 쇠붙이, 나무조각, 모래, 나뭇잎 등 여러가지를 붙여서 구성하는 회화* 기법, 또는 그러한 기법에 의해 제작되는 회화를 가리킨다. 1911년경 입체주의* 시대의 피카소Pablo Picasso(1881~1973)와 브라크Georges Braque(1892~1963)는 화면 효과를 높이고, 구체감을 강조하기 위하여, 화면에 그림물감으로 그리는 대신 신문지, 우표, 벽지, 상표 등의 실물을 붙여 화면을 구성하는 방식의 파피에 콜레*라는 기법을 창안하였다.
제1차세계대전 후 다다*에 이르러서는 파피에 콜레가 확대되어 실꾸러미, 모발, 철사, 모래 등 캔버스*와는 이질적인 재료, 또는 신문, 잡지의 사진이나 기사를 오려 붙여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부조리한 충동이나 아이러니컬한 연쇄 반응을 노리는 기법으로 쓰이게 되었다. 즉 피카소나 브라크의 파피에 콜레는 순전히 화면의 미적 구성을 위한 조형상의 한 수단이었지만, 다다의 콜라주에서는 붙여지는 물체로 관심이 이행되었던 것이다. 이로부터 사회풍자적인 포토몽타주*가 생겨났다. 또 에른스트Max Ernst(1891~1976)는 옛 이야기나 과학 서적의 삽화를 오려붙이는 수법으로 기상천외한 <백개의 머리를 가진 여인>이라는 작품을 제작함으로써 초현실주의*적인 콜라주를 확립했다.
초현실주의의 콜라주는 기성품에 손질을 가하지 않고, 전혀 엉뚱한 물체끼리 조합함으로써 별개의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 비유적, 연상적, 상징적인 효과를 노렸다. 한편 1960년대의 팝 아트*도 테크놀로지나 매스미디어에서 대중의 시각 속에 있는 조형적 요소를 몽타주*하여 작품 속에 짜맞추는 방식으로 콜라주의 수법을 이용하였다.
콜로니얼 스타일 colonial style(영)
식민지 양식. 식민지에서 모국의 건축을 본뜨는 양식으로 풍토, 재료, 기술수준, 생활수준의 차이에 의해 모국의 것과는 다른 독특한 특색이나 내용을 갖는다. 미국에는 영국계, 네덜란드계, 스웨덴계, 프랑스계, 스페인계의 각종 콜로니얼 양식이 있으며, 오스트레일리아와 인도에는 영국계 콜로니얼 양식이 지배적이다.
콜로디온 습판법 wet-collodion plate(영)
1851년 영국의 아처Frederick Scott Archer가 발명한 네거티브 제작법의 하나. 콜로디온은 알코올과 에테르에 니트로셀룰로오스를 녹여 만든 점액질 용액. 콜로디온 습판법(濕板法)은 이것과 요오드화 칼륨을 유리위에 바르고 질산은 용액에 넣어 감광성을 띠게 한 후 젖은 상태로 카메라에 넣고 사진을 찍는다. 사진이 찍힌 유리판을 질산 제1철로 현상하고 티오황산나트륨이나 시안화칼륨용액으로 정착하면 네거티브가 만들어지는데, 이 모든 과정을 유리판이 젖어 있는 상태에서 진행해야만 했다. 이 사진술은 1871년 젤라틴 건판이 등장하기까지 가장 폭넓게 사용된 네거티브 제작법이었다.
콜로타입 collotype(영)
사진의 연속적인 톤을 판화*로 옮길 수 있는 기법 중 최초로 상업성을 확보한 판화 과정. 감광처리된 젤라틴 표면이 판쇄로 쓰이므로 아교를 뜻하는 그리스어 ‘콜라(kolla)’에서 그 명칭이 유래되었다. 1855년 프랑스인 포아트뱅Alphonse Louis Poitevin이 특허를 낸 이후 발전을 거듭해온 콜로타입은 젤라틴과 포타시움 중크롬산염 용해액을 이용하는 데에 이르렀다.
콜로타입의 원리는 석판화*의 물과 기름의 반발원리와 유사하다. 젤라틴은 굳으면 물을 흡수하지 않고 노출되지 않은 부드러운 부분은 물을 빨아들이는 성질을 갖고 있다. 따라서 유리 또는 금속판에 감광된 젤라틴을 바르고 음화(negative) 필름을 통해 빛을 쪼이면 필름의 검은 부분은 빛이 거의 투과되지 않고 투명한 부분은 다량 투과되는 등 노출 비율에 따라 빛이 통과하게 되며, 빛의 노출 정도에 따라 젤라틴 막의 건조 또한 각 부분이 다른 정도로 진행된다. 여기에 잉크를 바르면 젤라틴 판이 잉크를 선택적으로 흡수하게 되는 것이다. 이 때 굳은 표면에는 자연스러운 균열이 일어나면서 망상조직의 무작위적인 형태를 형성하여 미묘한 중간톤의 효과가 가능하게 되는데, 이것이 콜로타입의 특징이다. 콜로타입은 드로잉, 수채화, 판화 등을 복제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의 하나였으나 현재는 포토그래뷰어(photogravure) 방법으로 대체되었다.
콰트로첸토 Quattrocento(이)
400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통상 미술사*의 시대 구분에서는 1400년대, 즉 15세기 이탈리아의 문예부흥기를 지칭한다. 특히 중부와 북부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한 초기 르네상스*의 시대양식과 시대개념을 나타내기 위한 용어로 쓰인다. 한편 트레첸토(Trecento)는 14세기, 친퀘첸토*(Cinquecento)는 16세기를 가리킨다.
쾰른 화파 Kölner Schule(독)
14세기 말에서 16세기 초에 이르는 동안 여러 지방 출신의 많은 화가들이 당시 부유한 상업 중심지였던 쾰른에 모여 작업하였다. 이 화가들의 작품 및 미완성의 많은 고딕* 양식의 성당으로 인해 쾰른은 중세 정신의 상징이 되었다. 전설적 인물 빌헬름Master Wilhelm은 이 유파의 창시자라고 알려져 있으나, 확실하게 그의 그림이라고 할 만한 작품은 존재하지 않는다.
쾰른 화파 양식은 길드(guild)의 규칙과 감독에 의해서 지속될 수 있었던 듯 하다. 15세기초에 쾰른의 회화는 국제적 고딕 양식의 특징인 서정적이고 부드러운 양식의 모든 특징들을 갖고 있었다. 15세기 중반에는 로흐너Stefan Lochner(1400~1451)가 쾰른 화파의 양식을 사용하였으며, 좀더 후기에는 네덜란드 풍의 사실주의*도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