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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병

혼병 魂甁 hunping(중)

중국 고대 명기*(明器)의 일종. ‘혼병(魂甁)’ 또는 ‘혼백병(魂魄甁)’ ‘곡창(谷倉)’으로도 불린다. 육조(六朝)시대 초기에 남방에서 유행한 기물로, 당시에 성행한 종교미신과 관련한 부장품이다. 일반적으로 청자* 제품이 많은데 형태는 항아리 위에 인물과 누각, 쌍궐(雙闕), 불상*(佛像), 포수*(鋪首) 및 금수(禽獸)를 소조*로 만들어 복잡하게 쌓아 올려 붙였다.

혼유석

혼유석 魂遊石

묘의 상석과 봉분 사이에 놓는 장방형의 돌로서 영혼이 나와서 놀도록 만든 돌. 능원에는 봉분 앞에 놓이며 일반봉분에는 상석과 봉분사이에 배치된다. 묘제를 지낼 때 영혼이 나와서 이곳에서 후손이 올리는 제수를 흠향한다고 생각하여 배치한 자리이다.

혼합 매체

혼합 매체 混合媒體 mixed media(영)

하나의 예술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여러 개의 매체들을 동시에 사용한 혼합 기법. 회화*, 조각*, 영화, 사진*, 텔레비전 등 모든 시각 커뮤니케이션*의 매체 중에서 몇 개를 동시에 사용하여 서로 결합시킴으로써 작품을 만든다. 1960년대 후반부터 뉴욕화파*의 전위미술가들 사이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약간의 뉘앙스 차이는 있지만 인터미디어와 동어적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미술에 있어서 믹스트 미디어는 통상의 그림 재료나 조각의 소재가 아닌 일상에서 발견된 오브제*의 조합으로 구성된 작품 또는 그 소재를 표기한다. 특히 20세기 들어서 전통적인 재료를 탈피하려는 작가들이 늘어나면서 그 범주와 종류가 증가하였다. 혼합 매체는 1960년대에 복합적 환경미술*, 이벤트, 해프닝*, 퍼포먼스* 등을 총칭하는 용어로서 사용되었다. 무용, 팬터마임, 음악, 영화 등 각기 다른 예술 형식이 혼재해 있을 뿐 아니라, 오브제, 음향, 빛, 등장인물의 행동까지도 포함하는 종합적인 미술 표현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예로는 1966년 뉴욕에서 행해진 아모리쇼*에 출품한 라우센버그Robert Rauschenberg(1925~ ) 의 텔레비전과 등장인물의 액션*을 포함한 작품이나, 휘트먼Robert Whitman의 영화와 텔레비전을 병용한 작품, 컬러 텔레비전이나 비디오테이프를 사용한 백남준의 작품들을 들 수 있다. 한편 1970년대 중반부터는 미술 저널리즘을 중심으로 자주 사용되었다. 이 경우에는 시각 커뮤니케이션의 여러 매체를 동시에 사용하여 서로 결합시키는 움직임을 구체적으로 지적하는 용어로 통용된다.

홀로그래피

홀로그래피 holography(영)

위상(位相)이 일관된 빛을 이용한 영상 기록 재생법. 1970년대 후반부터 테크놀로지 아트*의 새로운 소재로 부각되었다. 미국의 캐스딘 실버Harriet Casdin-Silver나 아나이트Anait는 일찍이 홀로그래피를 시작한 여류작가로서 상징적인 표현으로 이용하고 있으며, 제임스Randy James는 레인보 홀로그래피의 특성을 살려 풍부한 색채의 환상적인 추상작품을 만들고 있다. 또 레인보 홀로그래피의 발명자 벤턴Stephen Benton 자신도 탁월한 기술로 신선한 감각의 작품을 발표하는 등, 새로운 ‘빛의 조각’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홍도

홍도 紅陶 hong-tao(중)

중국 신석기시대에 출현한 도기*의 일종으로, 높은 온도에서 통풍이 잘 되게 하면서 구우면 태토 중의 철분이 산화되어 붉은 색을 띤다. 일반적으로 장식은 매우 단순하다. 앙소문화*(仰韶文化)의 채도는 정선된 홍도에 채색무늬를 그린 것이고 마가요문화(馬家窯文化), 제가문화(齊家文化) 및 대문구문화(大汶口文化) 초기에 모두 홍도를 주로 제작했다. 초기에는 태토가 불균일했지만 만기에 들어 정치하고 세밀해졌다.

홍살문

홍살문

능(陵), 원(園), 묘(廟), 궁전, 관아 따위의 정면에 세우던 나무문으로 그 표면에 붉은 칠을 한 것. 둥근 두 개의 기둥을 세우고 위에 지붕이 없이 화살모양의 나무를 나란히 세워놓았고, 그 중간에는 태극문양을 장식하였다. 홍살문의 기원은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아마도 이 문이 세워진 장소에 경배를 표하는 의미로 세워진 것 같다.

화 盉

→ ‘이기’ 참조

화계

화계 畵繼

중국 남송南宋의 등춘鄧椿(덩 츠운)이 저술한 회화 이론서 10권. 북송北宋 희녕 7년(熙寧, 1074)에서 남송 건도 3년(乾道, 1167)까지의 화가 219명에 대한 간략한 전기와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그림의 목록 및 그림에 대한 평론, 일화 등을 기록하고 있다.
1~5권까지는 황제 귀족 문인 등 사람에 따라 분류했다. 6~7권까지는 산수 인물 화훼영모 소과약초 소경잡화 등 그림에 따라 나누었는데, 여러 대가들의 기교와 그들의 장단점을 각각 서술하였다. 8권은 자신이 실제로 본 명화 중 기이한 흔적들을 기록하였다. 9~10권은 잡설(雜說)로 화론*과 고사일화를 서술하였다. 특히 10권에는 휘종화원(徽宗畵院)에 관한 기록이 많아 주목된다.
등춘은 문인화*가 아주 흥성하던 시대에 살았기 때문에 회화를 사회적, 정치적 교육을 행하는 방법으로 보지 않고 순수한 미감에 기여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따라서 사류(士流)를 중시하고 공기(工技)를 낮게 평가하면서 예술적 재능의 ‘천부’적 성질을 강조한 곳이 많아 북송 원체화*파(院體畵派)의 격법설(格法說)을 일변시켰다. 즉 문인화가 문동文同(원 통), 소식蘇軾(쑤 스, 1036~1101), 미불米芾(미 후, 1051~1107) 등의 미학사상이 곽약허郭若虛(구어 루어쉬, 11세기 후반경 활동)의 《도화견문지圖畵見聞誌》를 계승한 등춘의 《화계》에 집중적으로 반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정당독서기鄭堂讀書記》에서는 “조사하여 판단하는 것이 명쾌하고 타당성이 있으며 조리도 정연하다”고 평하였다.

화공

화공 畵工

그림을 직업으로 삼은 예술 공인을 가리킴. ‘단청사부(丹靑師傅)’라고도 한다. 사회적인 지위에 따라 민간화공과 궁정화공으로 구분한다. 맡는 일에 따라 벽화공(壁畵工), 칠화공(漆畵工), 자화공(瓷畵工), 연화공(年畵工), 정선화공(灯扇畵工), 조각화공 등으로 나뉜다.
화공의 그림은 석굴이나 묘실의 벽화*, 건축물의 그림 등 중국 민족회화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 왔다. 역대 회화에서 화공과 그들의 작품은 상당히 많은 수를 차지하지만, 봉건사회에서 줄곧 지배계급의 멸시와 비하가 있어 왔다. 역대에 걸쳐서 기록되거나 전설로 남은 화공으로는, 춘추전국(春秋戰國) 시대의 노반魯班(루 빤), 서한西漢의 모연수毛延壽(마오 이앤서우), 동한東漢의 위개衛改(웨이 카이), 당唐의 송법지宋法智(쏭 화즈) 송문군宋文君(쏭 원쥔), 북송北宋의 조대형趙大亨(자오 따헝), 남송南宋의 소조蕭照(샤오 자오), 원元의 마군상馬君祥(마 쥔시앙)과 그의 장남 마칠등馬七等(마 치덩) 및 주호고문인朱好古門人(주하오꾸먼르), 장준례張遵禮(즈앙 쭌리), 명明의 노홍路洪(루 홍) 하충河忠(허 쫑), 청淸의 장문휘張文輝(즈앙 원후에이) 장태고張太古(즈앙 타이꾸), 양연옥梁延玉(량 띵위) 등이 있다. 연화(年畵)쪽으로는 양유청(楊柳靑)의 장롱자張聾子(즈앙 룽쯔), 대립삼戴立三, 고동헌高桐軒, 양속楊續(양 쉬), 염문화閻文華(이앤 원화) 등과 도화오(桃花塢)의 천노전踐老錢 등이 있다.
근대 중국의 화공은 대개 경식(京式, 북경지구)과 소식(蘇式, 소주지구)으로 크게 양분되는데, 경식의 채화(彩畵)는 장식 도안에 뛰어나고 소식의 채화는 화조화*에 특징이 있다. 제재는 산수 화조 외에도 인물화*가 민간에 유행하는 희곡고사(戱曲故事) 및 소설에 많이 이용되었다. 화공들은 스스로 안료(顔料)를 만들었고, 일부 뛰어난 화공들은 스스로 새로운 분본*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화금청자

화금청자 畵金靑磁

→ ‘고려청자’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