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미술
환경미술 環境美術
Environment Art(영)
작품을 그 자체로서 완결된 것이라 생각지 않고 언제나 그 주변 환경과의 관계를 고려하는 경향. 현대의 새로운 작품은 새로운 수법의 전시 형태를 요구한다. 따라서 작품과 관람자와의 전체적인 교류를 의도하여, 보는 사람의 주위를 작품(회화*, 조각*, 오브제* 등)으로 둘러싸고, 때로는 소리, 빛 따위도 가해서 독특하게 꾸민 환경을 말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때, 다다이스트( →‘다다’ 참조)인 슈비터즈Kurt Schwitters(1887~1948)의 작품인 <메르츠바우*Mertzbau>나 초현실주의*의 대규모적인 전시회도 환경미술에 속한다.
그러나 환경미술이 본격적으로 시도된 곳은 미국으로 그 기원은 이미 추상표현주의*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경향의 작품들은 대형화되어, 관람자는 색깔을 바라보기보다는 그것에 압도되어 ‘경험’하기 시작한다. 말하자면 관람자는 뉴만Barnett Newman(1905~1970)이나 로스코Mark Rothko(1903~1970)의 거대한 화면에 둘러싸인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 같은 무렵에 건축가 키슬러Fredrick Kiesler(1890~1965)는 회화, 조각, 건축을 결합시키는 작업을 했고, 네벨슨Louise Nevelson(1899~1988)은 조각을 벽 전체로 확대시켰으며, 허버트 퍼버Herbert Ferber는 ‘조각의 방’이란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냈다.
1950년대 말 몇몇 젊은 작가들은 연극적인 이벤트와 해프닝*으로 눈을 돌렸다. 이런 것들은 모두 환경미술에서 발전한 형식으로 그 연원은 폴록Jackson Pollock(1912~1956)의 액션 페인팅*에서 찾을 수 있다. 그들은 살아 있는 환경 속에 실제의 인간과 실제의 대상물을 결합시킴으로써 해프닝을 개인주의적이고 고립적인 미술 작품으로보다는 전면적인 예술 환경을 새롭게 강조하는 경향으로 유도했다.
이와 같은 새로운 예술관이 잘 나타난 것은 올덴버그Claes Oldenburg(1929~ )의 <상점>이다. 그는 예술과 생활의 총체를 이끌어내기 위해 실제로 상점을 구입, 거기에서 작품을 제작, 상품도 진열해 놓고 판매했다. 그는 또한 거대한 기둥을 이용해서 여러 차례 퍼포먼스*를 보여주기도 했다. 1960년대 중반부터 이 경향의 작가들은 화랑의 전시로부터 순수한 환경으로 방향전환을 하기 시작했다. 안드레Carl Andre(1935~ )는 내화벽돌로 마루를 깔고, 스미스Tony Smith(1912~1980)는 거대한 공간 구조의 조각으로 건축학적인 환경을 창조해서 전시했다. 이러한 환경미술은 결과적으로 삼차원적인 형태와 거대한 규모, 그리고 건축과 풍경에 대한 새로운 공감에의 관심을 부활시켜 주었다. 그리하여 대지미술*과 같은 새로운 형태의 개념미술*이 탄생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