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미술
낙서미술 graffiti art(영)
이탈리아어로 ‘긁기’라는 뜻을 지닌 ‘graffito’의 복수형. ‘graffiti’는 벽 표면을 긁어 만든 드로잉과 이미지를 의미한다. 사실 낙서의 역사는 오래된 것이며 그것은 인류가 문화를 갖기 시작하면서부터 행해왔던 생활의 한 흔적이기도 했다. 낙서가 갖는 잠재된 해방감과 제도화된 매체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의 또다른 비공식 표현매체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일찍부터 예술행위의 본질과 어느 부분 연결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본격적인 의미에서 낙서가 미술의 주제로 등장한 것은 제2차세계대전 이후부터이다. 톰블리Cy Twombly(1929~ )와 폴록Jackson Pollock(1912~1956) 같은 미술가는 낙서의 표현방법에 관심을 보였고, 프랑스인인 뒤뷔페Jean Dubuffet(1901~1985)는 아웃사이더 아트*로서의 낙서가 내포한 의미에 주의를 기울였으며, 스페인 출신의 타피에스Antoni Tàpies(1923~ )는 도시의 벽을 주제로 한 이미지에 낙서를 포함시킬 수 있는 방식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낙서 운동이 본격적으로 일어난 것은 1960년대 말이며 특히 뉴욕의 거리에는 구석구석 낙서가 범람하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흑인이나 푸에르토리코인과 같은 소수민족들이 쉽게 구할 수 있게 된 분사식 스프레이 페인트를 통해 극채색과 격렬한 에너지를 지니고, 속도감 있는 그림과 도안화된 문자들을 거리의 벽과 지하철 등에 뒤덮어 갔을 때부터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러한 낙서가 예술로서 평가받게 된 것은 이탈리아의 <아트 페스티벌>이 최초였지만, 그 밖에도 몇 개의 중요한 전시회와 획기적 사건들이 실마리 역할을 하였다. 1975년 뉴욕의 아티스츠 스페이스에서 열린 낙서 미술가 연합의 전시회, 1980년에 프레디Pab Five Freddie가 워홀Andy Warhol(1928~1987)의 캠벨 수프깡통에 대한 경의의 표시로 제작한 스프레이 페인트 작품, 1980년에 열려 뉴욕 미술계의 관심을 끌었던 <타임스 스퀘어>쇼, 뉴욕 브롱크스에 있는 대안공간*인 ‘패션 모다Fashion Moda’의 전시회와 직업상담같은 형식으로 한 꾸준한 지원, 그리고 해링Keith Haring(1958~1990)같이 미술 전문교육을 받은 미술가들이 발전시킨 낙서 양식이 바로 그것이다.
1983년은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보이스만-반 보이닝겐 미술관에서 최초로 대규모 낙서미술전이 개최되고 시드니 재니스의 블루-칩 갤러리에서 <후기-낙서Post-Graffiti>란 전시회가 열려, 낙서미술이 절정기에 달한 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