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 다이쇼시대 미술
메이지, 다이쇼시대 미술 明治, 大正時代美術
메이지(明治)정부에 의해 수용된 서구문명은 미술계에도 커다란 파란을 일으켜 전통을 고수하려는 세력과 그 전통을 부정하려는 세력이 서로 다투게 되었다. 이러한 가운데 오카쿠라 덴신岡倉天心(1862~1913)을 지도자로 한 화가들은 전통에 입각한 새로운 일본화의 창조를 지향하며 근대화로 나아갔다. 이 시대의 전람회의 개최는 미술을 일반에 보급시키는 효과를 거두었으며 정부에 의한 관전(官展)은 관료성의 폐해와 작품의 통속성을 낳게 했다. 다이쇼기에는 신예 작가들이 관전에 대항하여 재야 미술 단체들을 결성하였다. 또한 서양에 직접 유학하고 돌아와 서양화를 일본에 정착시키는데 공헌하였다.
건축:처음에는 서양인 설계자에 의해 건축되었으나, 이후에는 서양에서 새로운 기술을 배워 온 일본인 건축가에 의해서 작업이 이루어졌다. 르네상스 양식을 수용한 다쓰노 긴고辰野金吾 설계의 일본은행 본관, 17세기 프랑스 고전 건축인 베르사유 궁전을 따른 〈적판이궁赤坂離宮>(1909, 현 迎賓館) 등이 있다. 다이쇼기에는 미국식 고층건물 양식도 수용되었다.
조각:일본의 근대 조각은 양풍(洋風) 조각과 일본의 전통적 흐름을 이은 것으로 크게 나누어진다. 메이지 9년(1876) 공업 미술학교가 세워지면서 조각학과가 신설되어 이탈리아에서 라구사Vincenzo Ragusa가 교수로 초청돼 그의 지도를 받은 오쿠마 우지히로大態氏廣, 등전문장藤田文藏 등이 양풍조각의 기초를 닦았다. 또한 재야의 태평양회화연구소에도 조소교실이 신설되어 유럽에서 돌아온 신카이 다케타로新海竹太郞 지도아래 아사쿠라 후미오朝倉文夫 등의 신예가 배출되었다. 다이쇼 3년(1914) 재흥일본미술원*再興日本美術院에 조소부가 설립되면서 이곳을 무대로 신구 양파의 화가들이 우수한 작품을 많이 발표하였다.
회화:오카쿠라 덴신의 지도를 받은 요코야마 다이칸黃山大觀, 시모무라 간잔下村觀山 등은 일본문화원日本文化院을 설립하여 신일본화의 창조에 매진하였다. 이 외에 자연주의를 주장하고 양화의 기법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무성회無聲會(유키 모토가키結城素明, 히라후쿠 햐쿠쓰이平福百穗, 이시이 하쿠테이石井柏亭 등), 우키요에*(浮世畵) 풍속화 계열인 오합회烏合會(미오노 도시카타水野年方, 가부라기 기요카타鏑木淸方 등), 야마토에*(大和繪)의 전통을 중시하는 홍아회紅兒會(이마무라 시코今寸紫紅 등, 이후에 고바야시 고케이小林古俓, 하야미 교슈速水御舟 등도 참가) 등이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또한 다케우치 세이호竹內栖鳳 등 교토화단의 신예작가들은 1918년 국화창작협회國畵創作協會를 설립하여 다이쇼기 일본화단에 활기를 더했다.
양화 화단에서는 1893년 구로타 세이키黑田淸輝가 프랑스에서 돌아와 라파엘 콜랑Louis-Joseph -Raphaël Collin에게서 배운 외광파外光派를 소개하였는데, 이는 자파紫派로 불리면서 일반의 주목을 끌었다. 1896년에 도쿄미술학교에 구로타가 주임교수로 임명되고 백마회白馬會를 결성하면서 외광파는 더욱 널리 확산되었다. 다이쇼 원년인 1912년에는 다카무라 고타로高村光太郞 등이 퓨생회를 조직하여 개성있는 작품을 발표하였고, 1914년에는 야스이 소타로安井曾太郞 등에 의해 이과회二科會가 설립되어 인상주의*, 후기인상주의*, 야수주의*에 영향을 받은 작품이 발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