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과 공예 운동
미술과 공예 운동 Arts and Crafts Movement(영)
19세기 후반 영국에서 모리스William Morris(1834~1896)를 중심으로 일어났던 공예 개량 운동. 1851년 대전시회 이후 영국에서 제조상품의 질에 대해 불만의 소리가 높아지고, 민속 예술에 대한 관심이 증가되면서 제품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중세 장인들의 사회적 제도에 대한 향수 어린 관심을 갖게 된 데서 비롯하였다. 19세기말의 유럽 공예는 로코코식, 바로크식 등의 양식을 되풀이하는, 즉 위에서 밑으로 흐르는 특수 계급을 위한 공예가 조류였다. 또 한편으로는 기계 문명의 이용으로 말미암아 조잡한 상품이 대량으로 생산되기 시작하였다. 러스킨John Ruskin(1819~1900)과 모리스 등은 그러한 공예를 배척 또는 개혁하여 고딕*의 미를 찬양하였고, 수공예를 존중하여 중세의 공장 길드(guild)로 되돌아가 예술활동과 노동을 일치시킴으로써 이상사회를 만들어보려고 하였다. 모리스는 자신의 집 건축과 가구에서, 그리고 1861년 모리스 마샬 앤드 폼커 회사를 통해 수공직물, 직조, 가구 등을 생산함으로써 기계시대에 수공업의 부활을 꾀하였다.
그러나 예술작품은 도덕적인 개념의 산물이며, 따라서 도덕 관념이 없는 기계는 예술을 생산해 낼 수 없다는 러스킨의 생각과는 달리 모리스는 완전히 기계를 배척하지는 않았다. 1860년 이후 모리스의 이러한 혁신 운동은 많은 건축가와 공예가들의 호응을 받았으며, 1880년대에 들어와서는 공예기술의 향상을 위해 ‘센추리 길드’ ‘아트 워커스 길드’ ‘공예전람협회’ 등의 단체가 조직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러스킨과 모리스의 미술과 공예운동은 공예를 사회 대중화하고 수공예를 존중하여 직인(職人)을 예술가로 끌어올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은 그들의 이상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그 대신 프랑스의 아르 누보*, 오스트리아의 분리파* 운동으로 옮겨갔으며, 특히 바우하우스*의 설립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