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 미술
발해 미술 渤海美術
발해는 중국 당대(唐代) 후반에서 오대(五代) 전기에 걸쳐(698~926) 동북지방(東北, 滿洲)과 옛고구려 북부지방을 영토로 했던 왕국. 현재의 길림성 영안현 동경성은 성왕이 동경용원부에서 천도한 뒤 국가가 망할 때까지 135년간 수도였다. 동경성은 발굴 결과 동서 길이 4.6㎞ 남북3.3㎞의 큰 도성으로, 당나라 장안성長安成의 조영을 본떠 만든 것으로 보이며, 일본의 헤이안쿄平安京보다 그 규모가 컸다.
발해의 불교신앙에 대하여서는 사료의 부족으로 그 체계를 세우기는 어렵다. 그러나 고왕高王 대조영大祚榮이 건국한 지 13년 뒤인 713년에 당나라의 책봉사(冊封使)를 맞이하고, 당나라에 보냈던 왕자가 요청한 것 중의 하나가 ‘절에 들어가 예배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라는 기록에서 불교에 대한 관심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제3대 문왕의 존호가 ‘대흥보력효감금륜경법대왕大興寶曆孝感金輪經法大王’이라는 점에서 발해의 상류층이 지녔던 불교신앙을 추정할 수 있다.
또한 발해의 상경용천부上京龍泉府(黑龍江省 東京城鎭)의 발굴 때 제1사지(寺址)에서 제4사지까지 확인되었을 뿐 아니라 내성에서는 동서 대칭의 위치에 다시 사지(寺址)가 확인되고 있다. 불상으로는 원화 9년(814)에 발해사신 고예진高禮進 등이 금, 은 불상 각 1좌(座)씩을 당나라에 진공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상경용천부에서 발굴된 소형전불(小形塼佛)과 동경용원부東京龍原府(吉林城 半拉城子)의 유지 발굴에서 출토된 〈이불병좌석상二佛竝座石像〉은 고구려 양식과 고구려 제작 기법을 이어받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절터에서 출토된 불상은 석조, 금동, 철, 건칠, 전, 소상 등의 여러 가지 재료를 사용하고 있으며, 양식으로는 육조(六朝), 당唐, 고구려의 영향이 보인다.
또한 삼채도(三彩圖)의 파편이 발견되고 있다. 상경성내 남부의 흥륭사興隆寺 대전 앞에 있는 〈연등석탑燃燈石塔〉은 발해미술의 대표적인 유물이다. 송석(松石)과 소경(小景)을 잘 그렸다고 하는 대간지大簡之라는 화가의 이름이 전하여지나, 순수 회화* 작품은 현존하는 것이 없다. 그러나 1977년에 길림성 연변沿邊 화룡현和龍縣의 서용두산西龍頭山에서 정효공주貞孝公主(757~792)의 벽화*가 발굴되어 발해의 회화를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고분벽화의 인물들은 유려한 먹선과 아름다운 채색으로 그려져 있는데, 화면에는 입체감과 생동감이 넘치고 있다. 또한 인물들의 퉁퉁한 몸매나 복장에서는 당대 인물화*의 영향이 보이면서도 여러 가지 세부 표현에서는 발해회화의 독자적인 면이 간취되어 앞으로의 연구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