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화
판화 版畵 engraving, print(영)
나무, 금속, 돌 등의 면(面)에 형상을 그려 판을 만든 다음, 거기에 잉크나 물감 등을 칠해 종이나 천 따위에 인쇄하는 것. 모노타이프 혹은 우니카(unica)라 불리던, 한 점 밖에 남길 수 없었던 초기(주로 15세기)의 예를 예외로 한다면, 판화란 우선 복제*의 예술이고 또한 기술이다. 판화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그 중 트럼프에서 나왔다는 설이 일반적이다.
실제로 뒤러Albrecht Dürer(1471~1528) 이전의 판화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무명 작가 한 사람이 트럼프의 도안을 디자인하고 그것을 동판화*로 인쇄함으로써 ‘트럼프의 화가’라고 불렸던 것도 초기 판화의 민중성을 말해주고 있다. 판화는 또 조각*에 있어서 소형의 브론즈와 마찬가지로 유명한 예술작품의 복제 수단으로서도 널리 보급되어, 실제로 작품을 볼 수 없는 사람들의 요구를 채워주는 역할을 했다. 이런 경향은 19세기 중반에 사진*이 발명되어 보급되기 시작할 무렵까지 계속되었다.
초기 판화는 정치적, 종교적 선전의 수단으로서도 중요한 역할을 다하고 있다. 물론 활자도 유효한 수단이었으나 문맹률이 높았던 당시의 민중에 호소하는 데는 도상*(圖像)이 문자보다도 한층 유효한 수단이었다. 이러한 종류의 판화 중에는 예술적으로 뛰어난 것도 있으나, 대개 문화사적 내지 사회사적인 기록 또는 자료로서 가치있는 것이 많다.
이와 같이 특히 사진의 발명 및 보급 이전의 판화에는 예술가 자신의 자유로운 발상에서 제작된 것도 다수 있으나 예술적, 미적 목적 이외의 이의적(二義的), 종속적인 복제 수단으로서 다뤄진 것도 적지 않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때문에 판화를 회화와 비교해 일종의 예술의 보급판, 염가판으로 보는 다소 소극적인 평가가 생긴 것도 사실이다.
근대 내지 현대에 있어서 이른바 ‘오리지널 프린트*’의 개념은 ‘오리지널리티’를 중요시하는 근대의 일반적 동향에 호응함과 동시에, 기존의 판화가 때로 감수해왔던 부차적, 타율적인 성격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고 또 복제의 역할이 사진에 의해 대체된 상황에서 필연적인 탈출로 일 수도 있다.
판화의 제작 과정에는 일반적으로 도안을 디자인하는 일, 그것을 판으로 새기는 일, 그리고 인쇄하는 일의 3단계가 있고, 그것에 대응하여 예술가도 회화사(繪畵師), 조각사(彫刻師), 인쇄사(印刷師)로 나눌 수 있는데, 오늘날의 판화가 ‘오리지널’한 것으로 취급되기 위해서는 제1단계와 제2단계가 동일한 예술가에 의해서 행해져야 한다. 소위 화가 겸 판화가라는 ‘peintregraveur’의 개념이 이것에 해당된다.
또한 오리지널 프린트는 위의 제1, 2단계는 물론 제3의 단계, 즉 작가가 인쇄에 입회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오늘날의 판화에서 서명*이 하나의 가치 기준으로서 중시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또 이렇게 예술가 자신이 판화 제작의 전 과정에 참여한다면 제작되는 판화의 수도 한정된다. 이런 종류의 소위 한정판의 경우는 판화의 어딘가에 그 수를 분수(分數)로 기록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18/50이면 인쇄한 장수가 50점이고 그 중 18번째임을 나타낸다. 그리고 이 인쇄범위 내의 장수라면 모두 오리지널*로 본다.
판화 중에서 동판화*는 전문적인 판화 출판사나 출판업자가 간행하는 것이 근대 이래의 추세이다. 근대의 유명한 판화 출판사로는 에칭* 전문의 로지에 라크리에르Rosier Lacriere, 드가Edgar Degas(1834~1917), 툴루즈-로트렉Henri de Toulouse-Lautrec(1864~1901), 뭉크 Edvard Munch(1863~1944) 등이 애용하던 석판 인쇄의 크로, 채색 석판의 발전에 중요한 공헌을 한 페레(이상 프랑스), 미국에는 석판화*의 개척자라 할 수 있는 캐리어, 또 제2차세계대전 후 로스앤젤레스에서 창설된 태머린드 공방* 등을 들 수 있다.
19세기부터 현대에 이르는 판화의 동향은 회화에 있어서처럼 혁신적이고 다양하다. 특히 사진의 발명과 보급은 판화에 적지않은 영향을 끼쳤다. 사진의 고안은 복제 수단으로서의 판화에 종언을 고한 것이었다.
화가 들라로슈Paul Delaroche(1797~1856)는 사진술의 탄생을 맞아 “오늘로서 회화는 죽었다”고 탄식했는데, 이러한 상황은 판화나 회화가 기계적인 사실성의 추구라는 점에서는 사진에 미칠 수 없다는 점을 미술가들에게 시사했다. 이것을 계기로 판화는 복제의 수단에서 오리지널한 것으로 전환했다.
휘슬러James Whistler(1834~1903), 고갱Paul Gauguin(1904~1948), 툴루즈-로트렉, 보나르Pierre Bonnard(1867~1947), 뭉크 등 세기말에 활약한 화가들의 목판화*나 석판화는 삽화적, 설명적인 성격이 강했던 종래의 판화의 틀을 대담히 타파하였으며, 20세기에 들어와서도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1866~1944), 놀데Emile Nolde(1867~1956), 키르히너Ernst Ludwig Kirchner(1880~1938) 등 독일 표현주의 작가들은 특히 목판화에서 새로운 표현의 가능성을 구하였고, 초기의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1881~1973), 브라크Georges Braque(1892~1963), 자크 비용 Jacques Villon(1875~1963) 등은 입체주의*적 시점을 그대로 판화의 세계에 도입하였다.
현대 판화의 오리지널리티가 가장 단적으로 나타난 것은 서적의 삽화로서 제작된 판화로, 특히 화상 앙브로와즈 볼라르Ambroise Vollard(1868~1939)가 피카소, 루오Georges Rouault(1871~1957), 샤갈Marc Chagall(1887~1985) 등에 의뢰하여 출판한 유명한 문학작품의 삽화가 그 좋은 예이다.
이 경우, 텍스트는 예술가에게 있어서의 단지 출발점에 지나지 않고, 그 이후는 오로지 예술가의 자유로운 상상력에 맡겨지기 때문에 완성된 작품은 결코 텍스트에 정확히 대응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것은 특히 삽화 판화의 황금시대였던 18세기 프랑스의 그것과 비교하면 명확한 것으로 텍스트와 삽화와의 정확한 대응은 현대 작품에서도 거의 고려되지 않고 있다.
또 양식면(樣式面)뿐만 아니라, 이를 테면 중국에서 일본을 거쳐 1930년대에 미국에 전파된 것으로 생각되는 실크 스크린*의 유행이나, 다색 에칭*, 기타 많은 시도에 의해 미국이나 유럽의 각국에 커다란 자극과 영향을 준 헤이터Stanley William Hayter를 중심으로한 ‘아틀리에 17*’의 활동, 또 많은 예술가가 시도한 동일한 작품에 있어서의 여러 기법의 병용 등도 종래의 우수한 ‘복제적’인 판화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으로 새로운 오리지널 프린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