퐁텐블로파
퐁텐블로파 École de Fontainebleau(프)
이 용어는 16세기 프랑스의 퐁텐블로 성과 관련되어 하나의 양식으로 함께 작업한 일군의 작가들을 말하며 1차와 2차로 나뉜다.
프랑수아 1세는 스스로 학문과 예술을 장려한 위대한 이탈리아의 왕들에 뒤지지 않도록 국가 차원의 아낌없는 후원으로 예술을 부흥, 발전시키고자 하였으며 그러한 야심을 실현하기 위하여 퐁텐블로 궁을 전면 개축하는 사업을 벌였다. 그러나 프랑스 내에서는 그의 장엄한 계획을 실현할 미술적 전통이 부족했기 때문에 이탈리아의 거장들을 불러왔으며, 이에 따라 1528~1558년 30여 년에 걸친 작업이 전개되었다.
퐁텐블로 궁에서 작업한 2명의 가장 탁월한 이탈리아 미술가는 피오렌티노Rosso Fiorentino와 프리마티치오Francesco Primaticcio(1505~1570)였다. 이들은 각각 1531년과 1532년에 참여하기 시작했는데, 피오렌티노는 1540년 사망시까지 줄곧 종사하였다.
피오렌티노는 <프랑수아 1세의 갤러리>에서, 프리마티치오는 <대접견실>과 <에탕프 공작부인의 방>에서 자신의 양식을 프랑스 궁정의 우아하면서 세련된 취향에 맞추는 데에 성공을 거두었다.
이들과 프랑스와 플랑드르 미술가들의 결합은 특별한 매너리즘* 양식을 탄생시켰고, 이는 감수성과 예민한 장식적 감각 그리고 여성적인 관능미와 창백함 우아함으로 대별된다. 많은 고부조의 스투코*들이 장식되었으나 특히 피오렌티노는 가죽이나 양피지 같은 모양으로 틀을 만드는 특이한 모티브*를 창안해냈으며, 이는 영국을 비롯한 여러나라에서 대중적인 장식적 형태가 되었다.
프리마티치오의 독특한 인물, 즉 사지가 길고 얼굴이 작으며 날카롭고도 우아한 형태의 인물들은 사실상 16세기말까지 프랑스 미술에서 하나의 전형(典刑)이 되었다.
퐁텐블로에서 작업하던 다른 이탈리아 미술가들로는 아바테Niccolò dell’ Abbate(1509~1571)와 벤베누토 첼리니Benvenuto Cellini(1500~1570)가 있었으나 한편 뛰어난 벽화 <사냥꾼 다이아나>(1550)에서 보듯이 알려지지 않은 미술가들에 의한 작품도 많이 있다. 신화적인 주제, 길게 늘어진 우아함, 목가적인 풍경의 배경, 복잡한 기교의 인공적인 분위기 등이 퐁텐블로파 작품의 전형적 특성들이다.
제2차 퐁텐블로파는 종교전쟁(1562~1598)으로 단절이 있은 이후, 앙리4세의 후원으로 작업한 작가들이다. 뒤부아Ambroise Dubois, 뒤브레이으Toussaint Dubreuil(1561~1602), 프레미네 Martin Fréminet를 중심으로 많은 플랑드르 미술가들이 이에 포함된다. 이들은 17세기로 향하는 중개자로서 힘찬 양식으로 1620년경까지 이어갔으나 제1차 작가군들이 보여주었던 창조적인 탁월함은 지니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