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대 미술
금대 미술 金代美術
금金(1115~1234)은 중국 동북지방 만주의 퉁구스 계 여진족女眞族이 세운 나라. 처음에는 거란족이 세운 요遼의 지배를 받고 있었으나, 1120년 송宋과 제휴하여 요를 멸하고 1127년에는 송의 수도였던 개봉開封을 함락한 후 화북전역을 지배하였다. 금대(金代)의 문화는 대체로 요 문화를 계승하면서 송의 제도를 채용했다. 또한 불교미술과 도자미술 등에서 당唐의 양식을 의도적으로 부흥시킨 면이 보인다.
건축:대부분 산서성山西省에 많이 남아 있는데, 산서성 오대현五臺縣의 〈불광사佛光寺 문수전文殊殿〉(1137) 삭현의 임오 〈숭복사崇福寺 미타전彌陀殿〉(1143) 등 요遼의 양식이 남아 있는 비교적 웅대한 사원이 있다. 〈평요현平遙懸 문묘文墓 대성전大成殿〉(1163), 태원太原의 〈진사晉祠 성모묘聖母廟 헌전獻殿〉(1168), 〈응현應縣 정토사淨土寺 대전大殿〉(1184) 등과 산서성 남부에 몇 개의 유적이 있다. 불탑은 거의 전탑(塼塔)인데 〈하남성河南省 심양현沁陽縣 삼성탑三聖塔〉(1171), 낙양 근교 〈동백마사東白馬寺 석가사리탑釋迦舍利塔〉(1175) 등은 모두 당 양식의 사각13첨탑이다. 요 양식의 팔각첨탑은 화북지방에 보급되었고, 하북성 정정현의 〈임제사臨濟寺 청탑淸塔〉(1185)에서 그 정형을 볼 수 있다.
조각:불상은 전탑 속에 소상(塑像)이 남아 있는 예가 있는데, 전체적으로 요의 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풍만하고 단아한 표현은 당대의 지방 양식으로 보인다. 그러나 명창明昌 6년(1195) 평양부平壤府 홍동현洪洞縣의 명문*(銘文)이 있는 목조 채색의 〈관음보살입상觀音菩薩立像〉은 송 양식의 영향이 강하다.
회화:금이 송의 휘종과 흠종 이외에 3,000명의 귀족과 화공 등을 납치하여 송의 궁정문화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화가에는 장종(章宗, 1189~1208)대에 활약한 무원직武元直(우 위앤즈)과 그의 제자 곽민郭敏(구어 민)도 수묵산수화에 뛰어났으며, 원대 산수화*에도 영향을 주었다. 그 외에 인물을 잘 그린 완안윤공完顔允恭(이엔윈꽁, 顯宗), 대나무그림에 능한 위엔 완안량完顔亮(이엔리), 화조화*에 서영지徐榮之(쉬 잉즈) 등이 유명하다.
서예:초기에는 미불米芾(미 후, 1051~1107)의 사위 오철吳澈(우지)과 우문허중宇文虛中(위원 쉬쫑), 고사담高士談(까오 스탄), 왕긍王競(우앙 징), 임순任詢(르언 쉰) 등의 서예가가 알려지고 있다. 특히 장종은 수금체瘦金體를 잘 썼고 서화수집에도 열의를 보였다. 궁정에는 미후 양식의 행초법行草法이 인기였으며, 특히 왕정균王庭筠(우앙 띵쥔, 12세기)과 소식蘇軾(쑤 스, 1036~1101)을 배운 당회영黨懷英(띵 회이잉), 조병문趙秉文(자오 삥원) 등에 의해 전반적으로 북송北宋의 글씨체가 유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