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랑 미술 樂浪美術
낙랑은 중국 한漢의 무제武帝가 원봉 3년(기원전 108)에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설치한 한사군漢四郡 중의 하나다. 현재 낙랑군의 위치에 대해서는 의견들이 분분하나, 설치 당시의 강역은 위만조선의 옛땅을 중심으로 하여 대체로 평안남도 일대와 황해도 북단이 낙랑군의 영역이라고 추측된다. 낙랑군은 한사군 중에서 위치를 변동하지 않고 한곳에 줄곧 자리잡아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동방군현의 중추적 역할을 하였다. 한사군의 400여년에 걸친 통치는 낙랑 중심의 지배를 뜻하므로, 고조선 문화가 일부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지만 대체적으로는 한문화의 연장으로 생각된다.
건축:평안남도 대동군 대동면 토성리와 용강의 어을동 등지의 토성이 있다. 토성리의 토성은 길이 약 709m, 남북길이 599m의 소규모로서, 그 내부에는 약간의 건물지, 포도구지(鋪道溝址)가 있다. 어을동 고성은 토성의 가장 긴 면이 150m에 지나지 않는 소규모의 읍성이다.
공예:금속공예로는 대동강면의 제9호분에서 출토된 박산향로*(博山香爐), 용호경(龍虎鏡), 금수경(禽獸鏡), 내행화문경(內行花文鏡) 등 한대(漢代)의 대표적인 형식을 보여주는 청동경 등이 있다. 또한 금지환(金指環), 은지환(銀指環), 금천(金釧) 및 순금제대구(純金製帶鉤)가 출토되었다. 이 중 제9호분에서 출토된 순금제대구는 순금판 위에 7마리의 용을 누금세공*기법으로 새기고 녹색 보석을 삭감한 작품이다. 목공예 유물로는 칠기*(漆器)류가 대량으로 출토된 바 있다. 칠기류에는 안(案), 반(盤), 배(杯), 우*(盂) 등이 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제9호 묘에서 출토된 〈금동구칠반金銅鉤漆盤〉, 왕우묘王旴墓의 〈채화칠반彩畵漆盤〉, 채협총출토의 <채화칙협彩畵漆敎> 등을 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