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 다다
네오 다다 Neo-Dada(영)
1957년 무렵부터 미국 회화에 나타났던 새로운 경향. 공식적인 용어로서 사용된 것은 1958년 1월 《아트뉴스Artnews》지에 익명으로 게재된 평론에서 존스Jasper Johns(1930~ ), 캐프로Allan Kaprow(1927~), 라우센버그Robert Rauschenberg(1925~), 톰블리Cy Twombly(1929~ ) 등의 작품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예가 처음이다. 그 후 네오다다는 캐프로와 톰블리의 작품보다는 존스와 라우센버그의 작품과 주로 연결지어져 왔다.
《아트뉴스》에서 다다*라는 이름을 연관시킨 것은 제1차세계대전 중에 일어난 다다 운동의 두 가지 측면 때문이다. 첫째는 과녁과 숫자와 지도가 캔버스 화면 전체를 덮는 존스의 회화에 내포되어 있는 다다와 같은 역설과 애매모호함 때문이다. 둘째는 라우센버그가 폐품과 발견된 오브제*를 사용하여 회화와 조각이 합쳐진 컴바인 페인팅*을 창조한 데에는 뒤샹Marcel Duchamp(1887~1968)과 슈비터즈Kurt Schwitters(1887~1948) 및 다른 다다이스트들과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전의 다다 운동이 주로 기성 가치의 부정을 목적으로 파괴와 반항으로 시종일관한 데 비해, 네오 다다는 반예술*적 활동을 그대로 창조 행위로 전환하고 여기에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하려는 특색이 있다.
인쇄물, 폐물 등을 모은 라우센버그의 컴바인 페인팅과 1958년 처음 개인전에서 발표했던 존스의 깃발과 표적의 회화는 비속한 것으로 여겨졌던 사물을 예술의 가운데에 적극적으로 참가시킴으로써 예술과 비예술, 예술과 생활의 경계를 다시금 묻고 생각해 보려는 것이었다. 네오다다는 추상표현주의*와 팝 아트* 사이를 잇는 역할을 했다. 존스와 라우센버그는 추상표현주의의 특징인 제스처*적인 붓질과 거대한 스케일은 물려받았지만, 추상표현주의가 추구한 숭고함을 배격하는 대신 일상적인 이미지를 표현대상으로 삼았다. 그리고 바로 이 점에서 존스와 라우센버그가 팝 아트*의 발전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네오 다다의 유럽판은 신사실주의*이다.
→ ‘다다’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