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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수주의

야수주의 野獸主義
Fauvisme(프)

20세기 초 프랑스에서 일어난 혁신적인 회화 운동으로, 이론적인 운동이라기보다는 색채를 강렬하게 추구한 화가들의 자연발생적인 그룹으로서 서로 다른 경향의 미술가들의 일시적인 결합이었다.
여기에 동참했던 미술가들은 대체로 모로Gustave Moreau(1826~1898)의 문하생들이었던 마르케Albert Marquet, 망갱Henri Charles Manguin, 마티스Henri Matisse(1869~1954), 카무엥Charles Camoin, 퓌이Jean Puy, 샤투파* 출신의 작가들인 블라맹크Maurice de Vlamink(1876~1958)와 드랭André Derain(1880~1954) 그리고 르 아브르Le Havre 출신의 프리츠Emile Otton Friez, 브라크Georges Braque(1892~1963), 뒤피Raoul Dufy의 세 부류로 구분되며 네덜란드의 반 동겐Kees van Dongen도 참여했다. 이들은 모두 반 고흐Vincent van Gogh(1853~1890)와 고갱Paul Gauguin(1904~1948), 세잔느Paul Cézanne(1839~1906) 등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야수주의’라는 명칭은 1905년 <가을 살롱전Salon d’Automne>에 출품된 마르케의 15세기 풍 청동조각에 대해 비평가 복셀Louis Vauxcelles이 “야수의 우리 속에 갇힌 도나텔로Donatello(1382~1466) 같다”라고 말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이 전시는 야수주의 동인들이 그들의 ‘다이나마이트 탄약통’을 폭발시킨 것으로서 색채만의 효과로 이루어진 공간 구성, 두드러짐도 명암도 없는 평평한 색조, 어둡고 두터운 윤곽선에 의한 형태의 단순화, 색채가 한정하는 대상이 불분명할 정도로 빨강과 녹색의 지배적인 사용 등을 특징으로 하였다. 색채에 대한 이들의 정열은 자연적 재현으로부터 색채를 독립시킨 것이었다. 이 운동은 1905년 가을 살롱전과 이듬해 앙데팡당전*에서 정점에 이르게 된다. 야수주의는 동인들에게 있어 서로 다른 양식의 발전 과정에서 거쳐갔던 일시적 단계였으며 1908년경부터 작가 자신들의 독자적인 방향으로 분산되면서 저절로 소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