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팔괴 揚州八怪
청淸나라 건륭 연간(乾隆, 1661~1722)에 상업 도시였던 강소성江蘇省 양주揚州에서 활약했던 여덟 명의 대표적인 화가를 이르는 말. 일반적으로 왕사신汪士愼(우앙 스선), 황신黃愼(후앙 선), 금농金農(진 농), 고상高翔(까오 시앙), 이선李鱓(리 산), 정섭政燮(즈엉 시에), 이방응李方膺(리 황잉), 나빙羅聘(루어 핀)을 가리키는데, 이옥분李玉棻(리 위훤)의 《와발라실서화과목고甌鉢羅室書畵過目考》에 보인다. 사실상 여덟 명뿐만 아니라 왕사신, 고상, 나빙을 고봉한高鳳翰(까오 훵한), 변수민邊壽民(삐앤 서우민), 양법楊法(양 화)으로 바꾸기도 하고, 고상, 이방응을 민정閔貞(민 즈엉), 고봉한과 바꾸기도 한다.
또한 진찬陳撰(츠언 쥐앤)이나 이면李葂(리 미앤)을 대체하기도 한다. 주로 화훼(花卉)를 주제로 하며, 산수와 인물도 그리는데, 대개 진도부陳道復(츠언 따오후), 서위徐渭(쉬 웨이), 원제原濟(위앤 치) 등에게서 기법을 취하면서도 전통적인 법식에 얽매이지 않고 참신하면서도 파격(破格)적으로 진실한 감정을 펼쳐 냈다. 또 모두 시에도 능해 서예나 전각*(篆刻)으로도 유명하며, 시(詩), 서(書), 화(畵)의 결합을 추구하였다. 이는 당시 화단에 유행했던 상고모의(尙古模擬)의 풍격과 약간의 차이가 있어, 당시 사람들에게 ‘편사(偏師)’ ‘괴물(怪物)’로 지목되다가, 마침내 ‘팔괴’라는 명칭이 생기게 되었다. 그러나 이 화풍은 근대 사의화훼(寫意花卉)의 의취(意趣)와 기법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을 뿐 만 아니라 직접적으로는 현대의 백석白石(바이 스), 진사증陳師曾(츠언 스쩡), 서비홍徐悲鴻(쉬 빼이홍), 반천수潘天壽(탄 티앤서우), 래초생來楚生(라이 츠우성) 등에게도 기법상 영향을 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