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로피
엔트로피 entropy(영)
물질계(物質系)의 열적(熱的) 상태를 나타내는 물리량의 하나로, 한 체계 안에 존재하는 무질서의 정도에 관한 양적인 척도. 물질계의 엔트로피가 항상 증가한다는 개념에 근거한 엔트로피 법칙은 열역학 제2법칙이다. 열역학 제1법칙은 에너지 보존의 법칙으로서, 우주의 에너지가 한 형식에서 다른 형식으로 그 형태가 변화될 수는 있지만 에너지 자체는 일정하여 새로이 창조되거나 소멸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때 자연 현상의 변화는 언제나 우주의 질서있는 상태에서 무질서, 즉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만 진행한다.
1860년대 독일 물리학계에서 최초로 등장한 엔트로피 이론은 이전까지 서구 문화와 사상의 핵심을 형성해왔던 이성중심주의와 진보적 역사관을 전복시켰으며, 1960년대에 사회학과 문화 조직, 예술 분야에 응용되면서 개념적으로 확장되었다.
예술 심리학자인 아른하임Rudolf Arnheim은 그의 책 《엔트로피와 미술Entropy and Art》에서 우주적 무질서의 증가를 다루는 열역학 제2법칙을 예술적 창조의 영역에 결합시킴으로써 현대미술의 혼란한 상황을 설명하였다. 시각 미술에서는 역학적인 무질서, 즉 엔트로피를 지향하는 경향과 기하학적인 질서를 추구하는 경향의 두 가지 양식으로 구분되는데, 후자의 경우가 말레비치Kasimir Malevich(1878~1935)의 절대주의* 회화처럼 극도로 단순하고 억제된 양식이라면, 무작위적인 우연의 미학을 추구했던 다다*나 폴록Jackson Pollock(1912~1956)의 액션페인팅*이 전자에 속한다는 것이다. 아른하임은 자신의 창조물에 질서를 부여하고 조직화하려는 인간의 성향과 무질서와 엔트로피를 향해 진행되는 물질적 우주 간의 대립과 모순을 해소하려고 시도하였다.
한편 대지미술* 작가인 스미슨Robert Smithson은 《엔트로피와 새로운 기념비들Entropy and the New Monuments》(1966)에서 이성과 진보적 역사관 중심으로 이루어져 온 전통 미술사를 부인하고 엔트로피를 부각시켰는데, 특히 그에게 있어 미니멀 아트*는 미술에서 엔트로피를 산출하는 대안으로 간주되었다. 스미슨은 저드Donald Judd(1928~1994), 모리스Robert Morris, 플래빈Dan Flavin, 르윗Sol Lewitt(1928~ ) 등 미니멀리스트의 작품이 ‘비활동적인 역사’ 혹은 물리학자들이 부르는 소위 ‘에너지 소멸’의 상태를 구현하고 있다고 평가하면서 미니멀 아트를 열역학 제2법칙과 연관시켰다. 작위적인 텅 빈 듯한 느낌, 정적인 효과 등을 창출하는 미니멀 아트의 특성을 설명하는 비평용어로 대두된 엔트로피 개념은 미술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후기 산업사회에서 목격되는 혼란과 소외를 설명해주고, 1960년대말 미국의 사회와 문화를 간접적으로 수렴 비판하는 매개 역할을 담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