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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명화기

역대명화기 歷代名畵記

당唐의 장언원張彦遠(즈앙 이앤위앤, 815~875께)이 847년에 쓴 중국의 화론서 10권. 앞의 2권은 화학(畵學)에 관한 통론으로 이루어져 있다. 3권은 장안長安과 낙양洛陽의 두 수도와 외주外州의 사관(寺觀;불교 도교 사찰에 대한 총칭)의 벽화, 고서화의 발미압서(跋尾押署), 궁정과 개인의 수장인기(收藏印記) 등을 기록하였다. 뒤의 7권은 헌원軒轅 시대에서부터 당의 회창 원년(會昌, 841)에 이르기까지의 화가 373명에 대한 간략한 전기와 품평으로 구성되었다. 회화*의 생성과 발전에 대한 인식이 유심론적이나, 회화를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바라보고 교화와 같은 사회적 기능을 강조한 점 등이 돋보인다.
또 회화의 감식과 수장에 대한 기본 이론을 정립하여 주목된다. 《사고전서총목제요四庫全書總目提要》에서는 “견문을 기술한 것이 매우 널리 갖추어졌다”고 평가한 바 있다. 장언원은 전대 사람들의 평가를 수용하면서도 자신의 견해도 참고하였는데, 화가의 사승관계 시대와 출신지 그림의 품격과 품평 등에 대한 논조가 매우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인증(引證)의 출처도 명확하고 그 가운데 몇몇 화가들의 화론(畵論)을 수록하고 있어 더욱 귀중한 가치가 있다. 그러나 자료를 모으는 과정에서 민간의 화공(畵工)을 경시한 부분이 있다. 현재 남아 있는 비슷한 종류의 저작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이다.

역사화

역사화 歷史畵
historical painting(영)

역사상의 사건을 주제로 한 회화*. 넓은 의미에서는 신화나 전설 중의 사건을 그린 것도 포함되며 또 작가와 같은 시대의 사건을 그린 그림도 포함되는 경우가 있다. 제재가 되는 사건은 한 민족이 광범위하게 주지하고 있는 내용이 등장하는 게 일반적이며, 대체로 사건의 중심 인물로 활약하는 민족적 영웅이 이상화되어 등장한다.
그러므로 역사화의 의의는 사실의 충실한 서술에 있기보다 사건의 역사적인 중대성이나 장면의 극적 구성에 있다.
역사화는 모든 시대에 그려지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로마 시대의 대표적 예로는 폼페이 출토의 유명한 <알렉산더 모자이크>가 있고, 중세에는 잉게르하임의 카롤링거 왕성 내의 벽화*등이 있다. 중세에 역사화는 다소 소강상태를 보이다가 14세기 초 이탈리아에서 다시 그려져 널리 퍼지게 되었고, 17~19세기 초에는 유럽의 아카데미에서 회화의 가장 고귀한 과제가 되었다. 그러나 동시대적인 사건을 정확히 재현하고자 하는 기록적 역사화는, 서양에서는 19세기에 이르러서야 겨우 시작되었고, 이러한 경향도 인상주의 이후엔 급격히 쇠퇴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