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수화
외수화 畏獸畵
wei-shou-hua(중)
재앙이나 악귀를 쫓을 목적으로 괴수(怪獸)의 형상을 몸체까지 모두 표현한 그림을 일컫는다. 진晋의 곽박郭璞이 《산해경山海經》 〈북산경北山經〉에서 맹괴孟槐를 설명하기를, 벽사(辟邪)를 위한 외수화(畏獸畵)로 그려졌다고 하였고 이외에도 《산해경》중의 박駁, 효囂, 강량彊良이 외수화로 묘사되었다고 언급되어 있다. 또한 당唐의 장언원張彦遠(즈앙 이애위앤, 815~875경)이 찬(贊)한 《역대명화기歷代名畵記》 권5 중에 진의 명화가인 왕이王廙(우앙 이)가 외수화를 그렸다는 기록이 있어서 비롯된 말이다. 외수화는 전국말(戰國末)~한대(漢代)에 걸쳐 성행했던 귀신숭배와 귀신제사에 기인한 것으로, 《사기史記》 <봉선서封禪書>와 《초사楚辭》 <천문天問> 등의 기록을 보면, 당시에 궁(宮)과 사당에 각종각양의 여러 귀신그림이 그려져 신앙시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다양한 귀신의 형상은 전설 속의 전쟁신인 치우신(蚩尤神)에 대한 신앙이 대두됨에 따라 후한대(後漢代)에 치우신의 형상으로 정리통합되었다. 즉 입을 크게 벌린 맹수의 얼굴과 3~4개의 발가락을 지니고 갈기를 날리며 직립한 괴수의 형상으로 전형화되어 귀면문*(鬼面文)처럼 벽사 목적으로 ‘외수화’라는 일정한 회화장르를 형성했고 고분벽화나 공예품, 공현(鞏縣)석굴*과 같은 불교석굴에도 조각되었다.
외수화가 표현된 현존유물로는 후한後漢 말의 기남沂南 화상석묘, 무량사武梁祠 등의 여러 화상석*, 화상전*묘와 523년의 북위北魏 풍옹처원씨馮邕妻元氏 묘지(墓誌)와 524년의 북위 원소元昭 묘지*, 526년경의 소굉蕭宏의 묘지석을 비롯한 남북조(南北朝) 석각예술, 돈황*敦煌 249, 285굴 등의 벽화, 공현석굴* 1굴 등에 남아 있다. 한국에서도 고구려 고분벽화 중에 통구사신총通溝四神塚과 오회분五盔墳 4, 5호묘, 신라의 식리총飾履塚 출토 금동식리(金銅飾履)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