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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모

임모 臨摹

서화 모사(模寫)의 한 방법. 서(書)의 경우, 임서(臨書)라고 한다. ‘임’은 원작을 대조하는 것을 가리키고, ‘모’는 투명한 종이를 사용하여 윤곽을 본뜨는 것을 말한다. 넓게는 원작을 보면서 그 필법에 따라 충실히 베끼는 것을 의미한다. 남제南齊의 사혁謝赫(시에 허)이 주장한 ‘육법*’중 ‘전이모사(傳移模寫)’가 이에 해당된다. 임모의 목적은 앞시대 사람들의 창작규율, 필묵기교 등 경험을 배우는 고전연구에 있다. 형체만이 아닌 화의(畵意)를 베끼는 것이 요체(要體)가 된다. 한편 투명한 종이를 위에 대고 베끼는 것을 ‘탑화(搨畵)’라고도 한다. 탑화는 당대(唐代)에 성행하여 궁중에도 수장(守藏)되었다고 하며 그 후에도 그림을 익히는 제1단계로 중요시되었다.

임천고치

임천고치 林泉高致

중국 북송北宋의 산수화론서. 곽희郭熙(구어 시)의 소설(所說)을 아들 곽사郭思(구어 쓰)가 편집 증보한 것으로, 북송 정화 7년(1117)경 완성되었다. 청淸의 《사고전서四庫全書》에 여섯 편으로 나뉘어 실려 있는데, 〈산수훈山水訓〉 〈화의畵意〉 〈화결畵訣〉 〈화제畵題〉 〈화격습유畵格拾遺〉 〈화기畵記〉로 구성되었다. 앞의 네 편은 곽희가 지었고 뒤의 두편은 곽사가 편찬하였다. 이 중 〈산수훈〉이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평가된다. 〈산수훈〉에서는 산수화*의 본의(本意)가 “임천(산림과 샘, 또는 은거지를 뜻함)의 뜻, 즉 세속을 초월한 고답(高踏)의 경지를 펼침으로써 마음을 상쾌하게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산수화가는 모름지기 몸소 산천으로 나아가 그것을 취해야 가슴 속에 뚜렷이 펼쳐지며, ‘멀리 바라봄으로써 그 기세를 얻고, 가까이 살핌으로써 그 바탕(質)을 얻어’ 대상의 특징을 파악하고 제련 개괄해야 가행(可行) 가망(可望) 가유(可遊) 가거(可居)의 산수화의 경지를 그려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사계절의 변화에 따른 음청조모(陰晴朝暮) 등의 경치와 변화를 구별하고, 평원 고원 심원을 삼원*이라 하면서 산수화의 취경법(取景法)을 총괄하였다. 아울러 화학(畵學)을 개인적인 것으로 국한시키는 것에 반대하면서 두루 배우고 널리 고찰함으로써 스스로 일가를 이룰 것을 주장하였다. 〈화격습유〉는 곽희의 진적(眞迹)을 기록한 것이고, 〈화기〉는 곽희가 신종神宗(재위 1068~1085)의 총애를 받았던 일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임천고치는 종병宗炳(쫑 빙), 왕미王微(우앙 웨이), 형호荊浩(싱 하오) 이후에 나온 산수화론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저술이다. 이것은 곽희의 평생동안의 창작경험을 총괄한 것으로, 그 중에서도 자연경물에 대한 관찰방법과 태도, 창작에 있어서의 소재선택의 전형화(典型化), 투시법에 있어서의 삼원의 주장 등이 뛰어나다. 이후 산수화 이론과 창작 활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임파스토

임파스토 impasto(이)

‘반죽된’이라는 의미의 이탈리아어에서 나온 말. 그 어원이 암시하듯 유화 물감을 두껍게 칠하는 기법을 일컫는다. 붓이나 팔레트 나이프, 또는 손가락을 사용해 색을 칠하거나, 직접 튜브에서 물감을 짜 바르는 방식으로, 붓자국 등을 그대로 남겨 표면과 질감에 다양한 변화를 주려할 때 이 기법을 사용한다. 루벤스Pieter Paul Rubens(1577~1640), 넬러Sir Godfrey Kneller(1646~1723), 렘브란트Rembrandt(1606~1669)의 그림을 보면 보통 중요한 부분이나 강조하고자 하는 부분에 임파스토를 사용한 것을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임파스토 기법을 애용한 유명한 화가로 할스Franz Hals, 벨라스케스Diego Rodriguez de sila Y Velasquez(1599~1660), 마네Eduard Manet(1832~1883), 사전트John Singer Sargent(1856~1925), 반 고흐van Gogh(1853~1890)등이 있다. 안료가 갖는 성질상 수성 물감이나 템페라* 화법으로는 불가능한 기법이며 유약칠이나 바림칠과 대조되는 효과를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