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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그룹

공간 그룹 Groupe Espace(프)

정기 간행물인 《오늘의 예술Art d’Aujourd’hui》지와 관련된 미술가들에 의해 1951년 파리에서 설립된 신구성주의 미술가 협회. 마를Félix Del Marle, 피에Edgard Pillet, 베오티Étienne Béothy, 쇠페르Nikolas Schöffer(1912~ ), 고렝Jean Gorin 등이 참여하였다. 사회적이며 비개인적인 행동으로서의 미술에 대한 공간 그룹의 신념은 신조형주의*와 구축주의*로부터 유래한 것이며, 공간주의*, 제로 그룹*, 시각예술탐구그룹*과 같은 기타 현대적 경향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공간예술

공간예술 空間藝術 Raumkunst(독)

일정한 공간*을 구성함으로써 형상화되는 예술을 가리킨다. 음악이나 문학 등과 같은 시간예술(Zeitkunst)에 대비된다. 회화, 평면 장식 등의 이차원적 예술과 조각, 건축 등의 삼차원적 예술을 총칭한다. 흔히 조형예술이라고 할 경우, 일반적으로 공간 예술을 의미한다. 공간예술의 특색은 그 작품이 물질적 재료를 매개로 해서 실재적 공간성을 지니고, 제작자로부터 독립된 객관적이고 항상(恒常)적인 완성품적 존재라는 데 있다.

공간주의

공간주의 空間主義 Spatialism(영) Spazialismo(이)

이탈리아의 화가 폰타나Lucio Fontana(1899~1968)에 의해 제창되었던 예술 운동. 제2차세계대전 후 밀라노를 중심으로 여러 가지의 <공간주의 선언>을 동반하여 예술표현 영역의 확대를 지향했다. 이 운동은 전통적인 예술 개념을 탈피하고 세라믹, 도자기, 콘크리트, 인광 물질과 같은 공업사회의 재료와 기술수단을 취급하며 특히 4차원적인 공간을 표현하고자 했다. 공간주의의 이러한 시도는 소재와 표현의 해방과 함께 제작자와 관중과의 관계, 예술의 사회성을 시사하였다. 공간주의의 본질적인 내용은 기존 미술의 미학을 타파하고, 시간과 공간의 통일에 기초를 둔 새로운 예술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폰타나의 <백색 선언Manifesto Blanco>에 잘 요약되어 있다. 1946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발표된 이 선언문은 “우리들은 예술의 혁신을 계속한다. 우리들은 기계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미 색종이와 석고 등은 의미가 없다. 포름*의 변화가 요구되어진다. 회화를, 조각을, 시를, 음악을 초월해야 한다. 새로운 정신이 외치는 주장에 걸맞은 예술이 요구된다. 이미 알고 있는 포름의 사용을 포기하고, 시간과 공간의 통일에 기초한 예술의 발전에 노력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폰타나는 1947년 밀라노에서 <제1차 공간주의자 선언>을 툴리에Tullier, 조폴로B.Joppolo 그리고 비평가 카이셀리안G.Kaisserlian과 함께 발표했다. 이듬해에는 <제2차 공간주의자 선언>이, 1950년에는 <제3차 공간운동헌장 제안>이 발표되었고, 1951년 제9회 밀라노 트리엔날레 국제회의에 임해서는 <제4차 공간주의 기술선언>과 부리Pol Bury(1922~ ), 탄크레디Parmeggiani Tancredi와 함께 발표한 <제5차 공간예술선언>이 잇따랐다. 1952년 텔레비전 방송을 위한 <제6차 공간운동선언>을 마지막으로 공간주의의 선언은 끝을 맺었다. 제9회 밀라노 트리엔날레에서 공간주의는 전시장 입구와 중앙 천장에 거대한 구멍을 뚫고 네온관에 의한 빛을 투사시켜 환경미술*의 원형을 이루었다. 또한 나비리오 화랑에서 열렸던 폰타나의 개인전 <검은 공간적 환경Black Spatial Environment>(1949)은 블랙라이트를 조명으로 사용한 자극적인 전시회였다. 그 전시회에서 작품은 울트라 바이올렛 빛으로 가득찬 화랑 내부에서 소멸해가고 관객은 다만 빛의 홍수 속에서 자신의 의식만을 직면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양상은 해프닝*과 퍼포먼스*를 예고하는 것이었다.

공공미술

공공미술 公共美術 public art(영)

가장 일반적인 의미의 공공미술은 단순히 지역사회를 위해 제작되고 지역사회가 소유하는 미술을 말한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공공미술이라는 개념은 1960년대 말 미국 정부에서 시작한 두 가지 제도, 즉 ‘미술을 위한 일정지분투자*’ 프로그램과 국립예술기금의 ‘공공장소의 미술(Art in Public Place)’ 프로그램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미술을 위한 일정지분투자 프로그램은 현재 미국의 50개 주 중 약 반 수 정도와 여러 도시 및 카운티에서 시행 중에 있다. 이는 공공건물을 신축할 때 건설 예산액의 일정 지분(대개 1%)을 예치해 미술품을 위해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공공장소의 미술 프로그램에서는 지역사회에서 공공장소에 전시할 미술품을 제작, 의뢰하고 구입하는 데 드는 자금과 자문을 도맡아 준다.
이러한 관(官)주도의 미술진흥정책과 발맞추어 미술의 본질에 대한 의식의 변화가 1960년대 말에 일어났다. 많은 미술가들이 작업실을 떠나 작업실 규모보다 큰 건축적 규모를 요구하는 대지미술*과 그 밖의 다른 환경미술* 형태를 창조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작가들은 복잡한 프로젝트의 완수라는 도전적인 상황으로 인해 필요한 기술을 습득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공동작업을 기꺼이 하게 되었고, 그 결과 작업실 제작의 전 과정을 혼자 관리하려는 태도를 버리게 되었다. 공공미술 작품은 코즐로프Joyce Kozloff가 지하철역 구내에 설치한 타일 벽화에서부터 노이하우스Max Neuhaus가 비슷한 장소에 설치한 사운드 아트* 조각, 노구치Isamu Noguchi(1904~1989)가 설계한 수백만 평방미터에 달하는 공원과 광장들, 하스Richard Hass가 단조로운 벽을 환상적인 건축으로 탈바꿈시킨 실물과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눈속임 기법* 벽화, 또 아담스Dennis Adams가 버스 정류소를 통해 보여준 첨예한 정치적 이미지, 베이카Judy Baca가 로스앤젤레스 강변에 늘어선 콘크리트 담장 위에 그린 로스앤젤레스와 스페인계 미국인 사회의 역사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공관복음서

공관복음서 共觀福音書
Synoptic Gospels(영)

신약성서 중에서 마태복음, 누가복음, 마가복음의 3서(書)를 가리킨다.

→ ‘복음서’ 참조

공동작

공동작 共同作
cooperated works(영)

복수의 예술가가 동일한 작품을 대등하게 분담, 제작하는 것. 이는 스승이 제자나 조수에게 원안을 주어 그리게 하고 가필, 수정하여 완성시키는 것과는 다르다. 이러한 공동제작 개념으로 잘 알려진 경우는 피카소Pablo Picasso(1881~1973)와 브라크Georges Braque(1882~1963), 뒤샹Marcel Duchamp(1887~1968)과 만 레이Man Ray(1890~1977) 등의 상호 인용을 들 수 있다. 특히 전후의 현대미술에 있어서 공동제작이 보다 전략적인 의미로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영국의 앙상블 아티스트인 길버트와 조지Gilbert & George로 대표되는 1960년대의 개념미술*에 있어서이다. 1970~1980년대에 걸쳐서는 바르트Roland Barthes의 《작가의 죽음》, 에코Umberto Ecco의 《열려진 작품》이라는 구조주의 혹은 후기구조주의의 테제(these)에 호응하는 형태로서 복수의 주체 사이에 함수화되어진 텍스트 공간으로 작품(행위)을 생성시키는 시도가 많이 출현했다.

공동체 미술

공동체 미술 共同體美術
community art(영)

박물관의 죽어 있는 예술과 상반된 것으로 화랑이나 무대라는 상황을 벗어나 예술행위를 구체화하고, 사회적, 정치적 목적을 위해 특정 집단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려는 욕구를 가진 일군의 예술가들의 활동. 공동체 예술가들은 특정 예술 형태들 사이의 특성을 초월하여 거리의 무대, 비디오, 벽화*, 교통수단, 기구, 놀이구조 따위를 이용한 보편적인 매체 접근 방법을 쓴다. ‘액션 스페이스Action Space’와 ‘인터액션Interaction’과 같은 그룹이 지역공동체 중심의 역할을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관객들과의 일차적인 만남은 거리, 공공건물 등과 같은 환경 속에서 작품을 성취함으로써 형성된다. 1970년대의 공동체 미술 운동은 1960년대의 반문화로부터 발전되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것은 점차 공식화되고 제도화되었다. 공동체 예술가들은 전문가, 직업적인 예술가들과 비전문가들 사이의 구분을 없애는데, 이러한 접근 방식은 공동체 벽화운동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공방

공방 工房 workshop(영)

예술가, 장인 등이 작품을 제작하기 위한 방 혹은 작업장. 후에 뜻이 바뀌어 공통의 기반 혹은 방침 아래 제작하는 예술가나 직인(職人) 등의 집단을 가리킨다. 아틀리에*와 거의 같은 뜻이지만 공방이라는 말에는 ‘물건을 만드는 곳’이라는 뉘앙스가 짙다. 문명이 발생한 곳 특히 예술이 권위 표상의 수단으로서 큰 구실을 하는 경우에는, 지배자는 직속 공방을 설치해 놓고 제품의 질을 높이고 디자인을 통일하는 것이 상례였다. 고대 이집트*, 아시리아* 등의 미술은 그 배후에 대규모 그리고 조직적인 궁정 공방의 존재를 상상케 한다. 하지만 공적인 조직으로서의 기술자 집단이 확인되는 것은 고대 로마*로서, 율리우스 법에서는 ‘콜레기아Collegia’라는 동업자의 단체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서양 중세에 있어서는 대성당 건조에 필요한 모든 분야의 집단이 일단이 되어 그 사업에 종사했다. 비잔틴에서는 궁정에 통괄되어 있었지만 서구에서는 수도원에 부속되었고 중세 말에는 우수한 공인을 가지는 공방과 그 연합조직인 동업조합을 형성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개개의 공방이 자립한 기업가로서 수도원에서 독립하였고, 16세기 피렌체에서는 기를란다이오Domenico Ghirlandajo, 베로키오Verrocchio(c.1435~1488) 등의 대공방을 낳아 고객의 주문에 따라 제작했다. 공방은 근세까지 기술의 전승과 공인의 교육이라는 기능을 다해 왔지만 아카데미*의 성립과 함께 두 가지 기능은 후자에게로 옮겨지게 되었다.

공상화

공상화 空想畵
picture of imagination(영)

현실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 또는 실제로 체험하지 않은 사상(事象) 등 비현실적인 것을 자유롭게 상상하여 그린 그림을 의미한다. 공상화는 아동화(兒童畵)를 가리키는 용어로서 사용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때에는 동화나 미지의 세계에서 일어난 일 등을 상상하여 그리는 그림을 말한다.

공양인상

공양인상 供養人像

불교미술*에 등장하는 현실의 인물, 즉 불상에게 공양을 바치는 모습으로 표현해놓은 것. 이것을 통해 신도들은 자신의 ‘공덕(功德)이 체현(體現)’되었다고 믿었다. 이런 형식을 ‘예불도(禮佛圖)’라 부른다. 일반적으로 관료와 귀족이 많으며 일반 민중들도 있는데, 불단(佛壇)의 앞, 또는 석굴입구, 전문(殿門)의 양 옆에 배치된다. 대개 불상보다 크기가 작고, 단신 또는 무리를 이루고 있다. ‘예불도’는 여러 사람들의 배역 또는 행진의 장면이다. 예를 들면 용문석굴* 빈양중동賓陽中洞의 〈제후예불도〉가 가장 대표적이다. 맥적산석굴*麥積山石窟 제123굴에는 북위北魏의 〈남녀동공양니소男女童供養尼塑〉가 있다. 그 모습은 두 공자가 공수(拱手)를 하고 어린아이의 복식을 하고 있다. 조각 수법은 세련되었으나 형상이 귀여워 종교적 색채는 별로 없다. 산서성山西省 평요현平遙縣 쌍림사雙林寺 천불전千佛殿의 남녀공양인 채소(彩塑)는 조각이 정밀하고 움직임이 자연스러워 명대(明代)를 대표할 만한 아름다운 작품이다. 공현석굴* 제1굴 문안 양쪽에 있는 공양인 행렬상은 구도가 간단하면서 세련되었으며, 형상도 생동적이고 현재까지도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다.